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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잃다
찾아 나서다
보다
얻다
기르다
잊다
떠나다

작가의 말

저자 소개

저자 : 하창수
1987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중편소설 「청산유감」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1991년 장편소설 「돌아서지 않는 사람들」로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하고, 소설집 『지금부터 시작인 이야기』 『수선화를 꺾다』 『서른 개의 문을 지나온 사람』과 장편소설 『그들의 나라』 『함정』 『1987』 등을 비롯해, 작가 이외수와의 대담집 『마음에서 마음으로』와 『뚝』, 에세이집 『발견되지 않는 소설가의 생활』 등, 삶의 행간을 읽어내는 존재론적 탐구와 함께, 인간과 사회의 부조화, 개체와 세계의 불합리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을 찾는 일에 천착해왔다. 이번에 펴낸 『봄을 잃다』는 신인작가 시절에 발표한 남녀의 애절한 사랑을 다룬 장편소설 『차와 동정』 『죽음과 사랑』 이후 20여 년 만에 발표하는 연애소설이다. 현재 ‘상상마당 춘천’에서 ‘당신의 작가수업’을 강의하며, 영미 주요 작가의 소설을 번역하는 일에도 몰두하고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15년 08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236쪽 | 278g | 130*195*19mm
ISBN13
9791195500697

책 속으로

“순간만이 영원하지. 사라져버리는 순간을 가질 수 있다면 영원을 가지게 되겠지. 때때로 사진이 그걸 가능하게 해준다고 하면, 맞나?”
“물론. 하지만 가짜야. 사진에 찍힌 건 순간이지만, 영원은 아니야.”
“어째서?”
“사라지지 않으니까.”
“사라지는 순간만이 영원하다?” --- p.69

“여전히 예전의 나일 수도 있지만 난 나를 다시 본 것 같아. 아이가 다소곳하게 머리를 내밀고 있으면 어른이 머리를 쓰다듬어주잖아. 혹은 야단을 치거나. 분명한 건 예전의 난 그런 데 전혀 관심이 없었다는 거야. 다소곳하게 머리를 내미는 아이도 아니었고, 야단을 맞는 아이도 아니었단 얘기지. 그런데 오늘 난 종일 머리를 쓰다듬기거나 야단을 맞았어.” (…)
“내가 주인으로부터 길들여지는 기분이었단 거지. 내게 주인이 있었다는 걸 몰랐으니까 당황스럽고, 내가 실은 염소였다는 걸 몰랐으니까 언짢았지. 그런데 그걸 알고 나니까 괜찮아졌어. 풀을 뜯어 먹는 맛이 괜찮은 거 같아, 하하하!” --- pp. 155-156

“평소에 남편이 그랬었죠. 인생이 한 번뿐이라서 억울하다고요. 군인이 돼서 사는 자신이 어색해서 거울을 볼 때마다 다른 삶을 살아야지, 너 지금 뭐 하고 있니, 그런다고요. 세상 떠나기 한 달 전에, 잠깐 휴가를 나와서 저랑 술을 한잔하면서 그런 소릴 또 하더라고요. 제가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남편한테 그랬어요. 목숨 붙어 있는 것들은 무엇이든 딱 한 번만 사는 거고, 그 스러지고 가는 걸 누구도 막아내지 못한다고요. 그 스러지고 가는 걸 즐기지 못하면 산다는 게 아무것도 아니질 않느냐고요.” --- p. 167

“어떤 놈이 있는데, 천하의 거짓말쟁이라 다섯 가지를 얘기하면 그 다섯 가지가 모두 거짓말이라. 그런데 그놈의 거짓말은 간혹 사람의 목숨을 살려내기도 했던 거라. 독립군이 숨어 있는 곳을 일본 순사한테 거짓으로 알려서 독립군을 살려내기도 했던 거라. 만약에 그놈이 가끔 참말도 하는 놈이었다면 그런 일은 있지도 않았을 거라. 그런데 그놈이 거짓으로 알린 걸 알아챈 일본 순사가 그놈을 잡아서 주리를 튼 거라. 왜 거짓말을 했냐고. 네놈이 독립군 밀정이 아니냐고. 이놈이 과연 뭐라고 했을까? 다섯 개를 얘기하면 다섯 개 모두 거짓말인 이놈이 뭐라고 했을까? 죽는다는 걸 뻔히 알면서 나, 독립군이요, 그랬을까?” --- pp.182-183

“그럼, 고객님께서 이 소설책을 사시는 이유가 혹시……?”
“혹시?”
“그 여자분과 헤어지긴 하지만 돼지로 남고 싶지는 않다는 뜻인가요?”
“그 반댑니다.”
몽인의 고개가 강하게 흔들렸고, 서점 카운터의 여자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몽인을 쏘아보았다.
“반대라면……?”
“난 이 책을 읽지 않을 겁니다. 읽지 않고 그냥 둘 겁니다. 여자가 생각나면 책을 꺼내 볼 겁니다. 물론 읽진 않고 그냥 볼 겁니다. 그때마다 난 내가 돼지라는 걸 확인하겠지요. 내가 돼지라는 걸 가르쳐준 그 여자에게 고마워할 겁니다. 진심으로. 난 돼지입니다.” --- pp.215-216

지난 2년의 꿈같았던 세월이 정말 꿈처럼 느껴졌다. 공허했다. 아침의 따뜻한 공기 속에서 조몰락거리던 손이 누구의 손이었는지, 암실 작업을 마치고 그 어두운 ‘카메라 옵스큐라’를 나왔을 때 환하게 웃으며 녹차를 우려내던 젊은 여자가 누구였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것은 물론 봄이었다. 그러나 그 봄은 누구였던가. 자신이 알고 있던 봄이 아니었다면 그건 봄이 아니었다. 그는 꿈속의 여자를 사랑하고, 꿈속의 여자와 사랑을 나누고, 꿈속의 여자에게 사랑을 속삭였을 뿐이었다. 실제의 봄은 몽인이 아는 봄이 아니었다. 돼지가 사랑한 여자가 아니었다. --- pp.216-217

몽인은 그들의 얼굴을 마치 아는 사람 찾아보듯 하나하나 확인하면서 걷다가, 그 모두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에 너무 좋고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여태까지 해본 적이 없는 경험이었다. 사진을 찍을 대상을 찾아 두리번거리다보면 눈에 들어오는 것은 하나같이 한 번도 만난 적 없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알아왔던 얼굴들이었다. 즉 몽인에게 있어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기억이라는 비물리적 존재를 물리적으로 프린팅해내는 작업과 같았다. 그래서 몽인은 가끔 사진을 찍을 때면 자신이 신처럼 느껴졌다. 신에게는 낯선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 이 4월의 아침, 카메라를 들지 않은 자신의 눈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의 얼굴은 낯섦 그 자체였다. 그는 더 이상 신을 생각하지 않았다. 낯선 사람들 속에서 그 역시 낯선 한 존재인 것으로 충분했다. --- pp.220-221

“사랑은 당신이 발견하는 뭔가가 아니라, 당신을 발견하는 무엇(Love isn’t something you find. Love is something that finds you)”이라 했던 명배우 로레타 영의 말이 뇌리를 스친다. 소설 속 중년의 남자가 발견한 것이 만약 ‘그 자신’이었다면, 그는 사랑을 잃은 것이 아니라 얻은 것이다. 그가 부럽다.

---「작가의 말」중에서

출판사 리뷰

“그렇다면, 가버린 거 아닐까?”

마흔 살의 몽인은 이혼 경력이 있는 사진가다. 그는 한 영화의 스틸사진을 찍다가 그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한 배우 봄을 보게 된다. 게다가 봄은 몽인의 네 번째 사진 전시회에 걸린〈40유로〉라는 사진에 대해, 다른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해석을 내놓아 몽인의 마음을 사로잡게 된다. 스무 살 가까운 나이 차이는 두 사람 사이엔 아무것도 아니었기에 두 사람은 급속도로 가까워졌고 결국 같이 살게 된다. 북촌 한옥마을에서 그녀와 함께 산 지 2년이 지난 어느 날, 그가 잠깐 눈 돌린 사이 그녀는 감쪽같이 사라진다. 그녀를 찾기 위해 동네 골목골목을 헤매던 몽인은 지쳐서 전처에게 전화를 걸어 그녀를 잃어버렸다고 하소연을 한다. 그러자 전처가 놀라운 말을 한다. 사라진 게 아니라 가버린 게 아니냐고.

20년 가까이 살아온 전처와는 별문제 없이 헤어졌다. 둘 다 더 이상 같이 살 필요가 없다는 합의에 이르러 자연스럽게 부부관계를 끝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여전히 친구처럼 잘 지내는, 자신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인 전처가 그런 말을 하자 몽인은 불길한 예감에 휩싸이면서도 봄이 가버릴 리 없다고 반박한다.

“절 아세요?”

다행스럽게도 몽인은 당일 날 밤에 봄을 다시 찾는다. 그러나 다시 찾은 봄의 첫마디는 생뚱맞다. “절 아세요?”

겉모습을 포함해 여러 가지 측면에서 분명 봄이 맞지만, 눈빛도 분위기도 식성도 몽인이 아는 그녀가 아니다. 그녀는 단기기억상실증에 걸린 것일까 아니면 연극을 하는 것일까? 어쩐 일인지 그녀는 몽인이 이끄는 대로 집까지 따라오지만, 2년 동안 자신이 살았던 그 집을 마치 집 구경을 하러 온 사람처럼 낯설게 대한다. 그러나 몽인이 봄이 쓰던 방을 보여주다가 한 소설책을 가리키며 그 책의 표지 색깔이 바뀌었다고 하자, 봄이 묘한 반응을 보인다.

“아뇨, 이건 원래부터 초록색 표지였어요.”

몽인이 이 책의 표지는 원래 하얀색이었고 자신은 이 책을 잘 안다고 하자, 봄은 그러면 이 책에 대한 퀴즈를 낼 테니 풀어보라고, 답이 맞으면 아저씨가 나를 안다는 사실을 믿어주겠다고 한다. 그제야 몽인은 봄이 지금 연극을 하고 있음을 확신한다. 봄은 그러니까 표지만 아는 책을 내용까지 안다고 섣불리 말하지 말라는 경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봄이라는 여자의 껍데기를 안다고 그 여자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경고를 하기 위해 실종이라는 연극을 벌인 것이었다.

따라서 다시 나타나 “절 아세요?”라고 물었던 봄의 질문은 거짓이 아니다. 하지만 경고를 받은 몽인은 여전히 황당하다. 봄의 획책은 눈치챘으나 왜 그런 획책을 벌였는지는 납득이 가지 않기 때문이다. 몽인으로서는 지난 2년의 세월에 전혀 불만이 없었다.

‘어떻게 된 것일까?’
몽인은 창문에 번진 희미한 빛의 윤곽을 바라보며 이유를 찾으려 애썼지만 불가능했다. 사람이 고작 열두 시간 만에 완전히 딴사람으로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자신이 찾으려 했던 것이 이것이었을 리는 없었다. 하지만 이게 아니라면 다른 곳에 있단 말인가.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자신이 찾으려 했던 것 자체가 이미 이 세상에 없었다는 사실을 몽인은 시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117쪽)

몽인은 혼란 속에서 습관처럼 또 자신의 전처에게 전화를 건다. 그러나 전처에게서 돌아온 대답 또한 황당할 뿐이다. 전처는 같이 살던 20년 동안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당신은 좋은 사람이 아니야. 그러니까 이렇게 생각해. 당신이 느끼기에 싫거나 이상하거나 하면 그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고. 당신은 이기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당신이 싫어하거나 이상하게 생각되는 사람이면 그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돼.”
(…)
“내가…… 그렇게 나쁜 사람이야?”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나쁜 사람인 건 아니지.”
“나는 왜…… 좋은 사람일 수 없는 거지?”
“한 번도 좋은 사람이 되기를 원하지 않았으니까.”
“내가…… 그렇게 이기적인 사람이야?”
“응. 당신은 이기적인 사람이야.” (130~131쪽)


사랑을 잃고 자신마저 잃은 남자의
1박 2일간의 오디세이

자정 넘어 집을 나선 몽인 앞에 펼쳐진 세상


2년 동안 같이 산 봄으로부터도, 20년 동안 부부로 살아온 전처로부터도 충격적인 얘기를 들은 몽인은 결국 자정이 넘은 시간에 집을 나설 수밖에 없게 된다. 봄을 잃어버리게 된 사건이 결국 자신을 잃어버리게 된 사건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그때로부터 마치 신이 계획한 듯 몽인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들이 자발적 비자발적으로 펼쳐진다. 말로만 알고 있었던 게이라는 존재와 술잔을 기울이게 되고, 오랜 세월 친구로부터 이야기로만 들었던 한 미망인의 얼굴을 직접 보게 되고, 무심코 지나쳤던 길거리 노숙자들이 하는 놀라는 게임을 목격하게 되면서 저도 몰래 눈물을 흘리게 된다.
몽인이 이제껏 가져왔던 자신과 인간과 세상에 대한 모든 판단은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일까. 그 해체의 여정이 결국 이르게 되는 곳은 과연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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