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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롤로그
2. 스물다섯 살 3. 아홉 번째 행성, 플루토 4. 난 지금 혼자 있고 싶지 않아 5. 결혼, 양부의 집에서 다른 양부의 집으로 6. 자기 생산과 자기 매매 7. 동시에 8. 중단된 편지 9. 센테멘털 왈츠가 끝났을 때 10. 초록 레이스 마을 교본 11. 저기 노루가 있었어요 |
全鏡潾, 본명:안애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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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알려진 바와 달리, 스물다섯 살이란 여자들이 처음으로 심각하게 희망을 잃는 나이이다. 사회와의 절연인 결혼을 선택해 한 십 년쯤 아이를 낳아 키우든지 사생활 결핍이 내정되어 있는 독신의 길을 선택해 사회 친화적 캐리어를 맹렬히 쌓아가든지. 혹은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는 노마드적 의식으로 연애와 문화적 사치를 향유하든지, 생의 전도는 불구적이고 빈약하고 근본적인 결함이 느껴진다. 그런데도 수로 속을 흐르는 물처럼 주어진 구소 속에서 흘러가는 수 밖에는 없다.
--- p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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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이야기는 아니야. 깨닫지 못하거나, 솔직하지 않아서 일 뿐 대부분의 여자들은 자기가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하지 않아. 자신을 사랑하는 남자에게 선택되고 선택된 전제하에서 동의하지. 사실 남성 위주의 경제 구조가 오늘 날의 성의 구조를 만들었어. 남자들은 자신만의 아이를 낳는 한 여자에게 돈을 내고 배타적 섹스를 하고 여자는 한 남자에게서 돈을 받고 그 남자의 아이만을 합법적으로 낳는 배타적 섹스를 하는 그게 일부일처제지. 그 거래가 성립되지 않으면 부부관계도 폭력이 되는 거야. 배타적 관계도 무너지지.
--- p.111-1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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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떠날 때, 언젠가는 엄마에게 진심을 말하리라 생각했다. 엄마, 나 의연하게 굴었지만 사실은 말이야. 그날 집을 나왔을 때 , 눈 앞이 보이지 않아 비틀거렸을 정도로 무지 슬펐었어... 슬픔이 블라인드같이 눈을 가린다는 것을 처음 알았어. 장님이 된 것 같더라니까. 슈퍼마켓 앞에서 어깨를 전봇대에 세게 부딪쳤을 정도로, 세상이 깜깜했어. 정말 엉망진창이었다구. 엄마를 실제로 떠나는 건 처음이었쟎아....
--- p.1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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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일이다. 이야기는 지워지고 배경과 소리들과 촉감과 냄새들만, 그 사소함과 고요함과 찬란함만이 이토록 생생한 진실로 되살아나는 것은, 그것들이 시간을 무너뜨리며 현기증이 나도록 빠르게 덮쳐와 몇 번이고 다시 현재성을 획득하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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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기를 지나 자의식이 눈을 뜰 무렵 세상에 대해 가장 먼저 생긴 의심은 아버지가 딸에게 가르치는 교훈들과 미덕들이었다. 물론 여기에는 부권 문화에 잠식되어 이의 없이 순응해온 엄마들의 공모도 포함된다. 이 사회의 지배 구조는 친딸에게조차 불공정하고 억압적이고 기만적이고 차별적이며 편의주의이다. 그러므로 딸의 생에 대한 진정한 자각이 없는 세상의 모든 아버지는 양부이며 그들의 양육은 양부의 양육이고, 그들의 교훈은 양부의 교훈인 것이다. 말하자면 우울하게도 우리는 대부분 양부의 딸이다.(2권p.204-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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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떠나게 되었을 때, 엄마는 지방에서 방 한 칸쯤은 얻을 수 있는 수표 한장을 여행 가방에 넣어주었다. 내가 만약 결혼을 하려했다면 겨우 그 정도의 비상금으로 해결하지는 못했을 것이었다. 어쩐지 쫓겨나는 억울한 기분과 지나치게 늦은 자립이라는 회한이 동시에 찾아들었다. 양부와 엄마는 나의 마지막 등록금을 냈던 그날로부터 바로 이날을 학수고대했을 것이다.
이제서야 그 낡은 이층 집엔 늙은 남편과 갓난쟁이 아기라는 혈통적으로 순수한 진짜 가족만이 남게 된 것이다. 여전히 경박할만큼 금술이 좋은 양부와 엄마로서는 동화의 결말 부분처럼 행복한 대단원이었다. 비록 집이 팔리는 대로 두 아들에게 얼마간을 나누어주고 작은 아파트로 이사를 해야 하지만 단촐한 핵가족이니 22평쯤 되는 서민 아파트로 이사를 간다 해도 문제 될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새들의 지푸라기 둥지처럼 헐겁지만 아늑하지 않을까. 마흔일곱 살의 엄마와 예순두 살의 양부는 둘 다 건강했다. 양부의 쾌청한 얼굴과 달리 엄마는 무표정했지만, 엄마 역시 새로운 생활에 대한 기대가 전혀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재혼한 후 거의 14년 만에야 전처의 아들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었고 데리고 들어온 미안스럽고 거추장스럽기 짝이 없었던 딸의 시선으로부터도 자유를 얻은 것이다. ---pp.151~1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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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그래. 내 인생에 어쩌면 내가 사랑하는 남자란 없을지도 몰라. 내가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살아가는 삶은 두려워. 대신 나를 사랑한다고 주장하는 남자로부터 보호받는 태만하고 안전한 삶이 내 몫이 되는거야. 아이를 둘쯤 옆구리에 끼고 사랑도 받지 못한 채. 아무도 보호해 주지 않는 이 세상에서 먹을 것을 찾아 헤매는 여자보다 더 슬픈 짐승이 있을까.
--- p.1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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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연약함을 경멸한다. 어느 때는 의도적으로 자신에게 가혹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처리한다 해도 연약하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 152, 153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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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당신은 어떤 사람이야? 여자에게 무엇을 바라는 거지? 어떻게든 정리를 좀 해봐.
- 바라는 것 없어. 난 사랑이 가진 모든 속성을 싫어해. - 너와 사랑에 빠진 여자는 아마도 자포자기한 여자일 거야. -이런, 나를 그렇게 다 파악해 버렸다는 말이야? 비겁하다는 말은 왜 안하지? -그야 자기 선택이니까. 나는 웃으며 농담으로 돌리려 했지만 내 마음엔 깊은 좌절이 생겼다. --- p.1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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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유리로 만든 배를 타고 낯선 바다를 떠도네... 새까만 동전 두 개 만큼의 자유를 가지고 이분 삼십초 동안의 구원을 바라보 있네... 난 유리로 만든 배를 탄채 떠도네... 벅찬 계획도 시련도 없이 살아온 나는 가끔 떠오르는 크고 작은 상념을 가지고 더러는 우울한 날에 너를 만마 술에 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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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유리로 만든 배를 타고 낯선 바다를 떠도네... 새까만 동전 두 개 만큼의 자유를 가지고 이분 삼십초 동안의 구원을 바라보 있네... 난 유리로 만든 배를 탄채 떠도네... 벅찬 계획도 시련도 없이 살아온 나는 가끔 떠오르는 크고 작은 상념을 가지고 더러는 우울한 날에 너를 만마 술에 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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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다섯 살, 생생한 존재 증명으로서의 여행과 도발 그리고 삶을 알아버린 후의 적막감
전경린 소설은 우리 문학의 선명한 이색이다. 오정희 이래로 이만한 개성을 보유한 적이 또 있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경린 소설에 대해서 발언하는 일은 일종의 위험(Risk)을 수반한다. 그녀의 작품에 대하여 선연하고, 직관적이며, 불온하고, 차갑다, 라고 말하는 순간 이미 우리는 “귀기” 혹은 “정념”이라고 지금껏 불리운 그녀의 개성에 승복했으며 그것에 감염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승복하는 것 혹은,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몹시 곤혹스럽고 불편한 일이다. 그녀의 눈과 혀는 늘 우리의 위태로움과 허술함, 곤궁함 등을 샅샅이 핥고 건드리기 때문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그녀의 작품은 우리 시대의 뛰어난 체감계이거나, 예민한 촉수가 되어준다. 이 작품에서도 작가의 영민한 귀재는 유감없이 발휘된다. 그녀의 성능 좋은 안테나 같은 직관은 우리 삶의 누추한 이면과 행간을 들추며 지나간다. 그 풍경은 해안 도시의 불온한 날씨와 폭염 아래 채워지지 못하는 한 여름의 갈망처럼 다가온다. 우리는 그 누구도 함부로 그런 주인공의 영혼을 거부하거나 조롱하지 못한다. 전경린의 작품은 이처럼, 왜곡된 존재들을 바로 세워 그들에게 새로운 존재의 의미성을 부과해, 삶의 은일한 본질을 들추어야 한다는 소설의 재래적인 기능을 알고 있는 많은 독자들을 안정적으로 포섭하는 동시에 그들을 도발적으로 회유한다. 전경린의 소설은 그러니까 하나의 허구적 당위로서 출발한다. 다시 말하자면 그녀의 소설적 진실은 허구이기 이전의 세계, 말하자면, 그것을 넘어서는 너무도 생생한 삶의 배후와 전경에서 태어난다. 언제나 그렇지만 전경린의 소설이 지시하는 것은 삶의 개연으로서의 징후라기보다는 사태의 핵심 속에서 생생하게 확인되는 본질에 가깝다. 까다롭게 감춰져 있는, 견고하게 은폐되어 있는 삶의 중심의 구조를 전경린은 언제든지 요량껏 휘젓고 해체시킨다. 그렇게 하여 그녀는 허술한 삶이 가진 극과 비극적인 것의 경계와 그 경계가 가지고 있는 태생적인 아슬아슬함을 드러내 보인다. 그것은 소설 속 ‘유경’이 보여준, 출렁이는 파도 위에서 전율도 없이 죽어가는 잠과도 같은 아찔함을 지닌다. 그녀가 그려내는 인물들은 인공의 포즈를 가진, 허우대만 가지고 있는 존재들이 아니라, 육체성에 대한 감각적인 자의식을 가지고 자신의 문제적 징후를 스스로 발견하는, 각성하는 자아들이다. 『아무 곳에도 없는 남자』의 ‘이나’ 『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의 ‘미흔’이 그렇고, 이 소설의 ‘은령’과 ‘유경’과 ‘이진’이 그렇다. 각성하는 자아들의 목소리는 우리의 허술한 삶의 공동을 날카롭게 울리기에 충분하다. 그녀에게 문제를 품지 않은 존재는 이미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전경린 소설의 이색적인 느낌은 그녀 특유의 집약적인 문체에서도 비교적 뚜렷하게 확인될 수 있다. 곳곳에 바늘처럼 숨어 있는 비약과 은유의 어법은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녀의 날카로운 직설을 꽤 용이하게 제어하고 수식한다. 날선 말들을 통해 그녀는 고통스럽게, 혹은 천연덕스럽게 생의 불합리하면서도 허술한 국면을 만들어내고 이를 무참하게 무너뜨린다. 여행은 문학적 소재에서 그것만으로 새로울 수 없으며 새로움을 획득하지도 못한다. 현대의 작가들에겐 전략 이후의 그 어떤 것, 보다 근원적인 것이 요구된다. 이를테면 단호하고 염결한 ‘입장’ 같은 것. 물론 전경린에게는 전경린류의 입장이 있다. 그것은 매우 충동적이며 위악적인 형식으로 드러나지만 그것이 범박한 의식이나 제스춰로 읽혀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실질적인 몸의 도발이며, 그 도발을 통해 비로소 그녀의 입장은 감행된다. 이 작품의 주인공 ‘은령’ 역시 도발한다. 양부를 떠나 지방의 해안 도시로 내려온 그녀는 그곳에서 ‘방랑하는 영혼의 전제 없는 사랑’을 꿈꾼다. 은령은 그곳에서 생의 근본적인 공허함을 잘 알고 있는 시인 유경과 여자에게 한 번도 사랑받아보지 못한, 욕망만이 남아 있는 재력가 이진을 만나 둘을 사랑하게 된다. 그 사랑은 제도화된 기성의 눈으로 볼 때 매우 혼란스럽고 부도덕한 형태의 사랑이다. 하지만 전경린은 이 사랑에 불합리하고 본능적인 생의 본질을 투영시키고 그것을 옹호한다. 그녀는 ‘은령’의 입을 빌어 이렇게 말한다. “넘쳐보지 않고는, 바닥까지 뒤집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그것이 삶이며 사랑이다. 이 전작 소설을 통해 전경린의 문학적 지도는 무한히 의미 있는 확장을 한다. 전작들처럼 이 작품도 폭발을 예비하는 성능 좋은 뇌관으로서의 요소를 갖추고 있으며, ‘귀기’와 마술적인 ‘계시’ 등을 활용하는 서사도 여전히 매혹적이다. 또한 이러한 테마를 선명하고 날이 선 육질감과 육성이 장려하게 수식한다. 이 보기 드문 육체성을 통과하면서 우리는 그녀가 나아가는 지점을 스스로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자리에서 그녀가 짓는 집은 전에 없이 융숭하며, 그윽하고 탄탄하다. 귀기와 정념의 비릿한 냄새는 다소 걷혀진 대신, 그 자리에 현실적이면서도 육중한 질감과 생생한 삶의 오브제로서의 오롯한 부감이 들어선다. 전경린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위험하고 불온하며, 혼란스럽다. 하지만, 이것들은 진실과 희망을 발견하고자 하는 존재들의 숙명적인 에피세트이다. 그 불안과 혼돈을 전경린은 초현실적으로 “다른 사람의 내면에 방문”하는 것을 통해 극복하고자 한다. 그것은 어쩌면 방민호가 해설에서 적절하게 지적한 것처럼 “제도를 넘어선 사랑, 혈연을 넘어선 가족에의 꿈”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전경린은 누군가가 오해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결코 삶에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결국 극중 ‘은령’은 모든 혼돈이 끝난 후(5년 후 서른 살이 되어) 비로소 평범한 사물들, 혹은 그것들의 소소한 관계가 만들어내는 일상에서 평온을 느낀다. 삶을 다 알아버린 후의 평화로운 적막감이 뜨거운 격통의 시기를 보낸 한 존재에게 찾아오는 것이다. 사물들과의 유리가 아닌 사물들과의 관계 속에서의 평화. 혹시 이것이 전경린이 꿈꾸는 희망일까. 그녀는 극중 ‘유경’의 입을 빌어 “삶을 위로하기 위해서는 사물들과의 관계가 필요한” 것이며, “사물은 내가 이곳에 살아 있음의 최소한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와 관련하여 그 문맥의 울림이 시사하는 바가 심상치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