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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롤로그
2. 지지 않는 황혼을 향한 비행 3. 슈투트가르트의 피가소 4. 검은 숲과 흰 눈은 고요 속에서 5. 잠들지 못하는 희망 6. 아들을 위하여 7. 카를 마르크스, 압정이 박힌 초상 8. 독일은 통일되었는가 9. 미를레네 디트리히의 영혼 10. 케테 콜비츠를 만나고 오는 머나먼 길 11. 괴팅겐 밤하늘의 맑은 별빛 12. 변방이 없는 나라, 독일 13. 브로겐의 마녀는 어디 있는가 14. 독일 유학생의 두 초상 15. 낯선 곳에서의 한 가족 16. 사라진 나라, 독일민주공화국 17. 페르가몬, 독일제국주의의 허영 18. 로자, 리프크네히트 그리고 브레히트 19. 드레스덴, 지배자의 도시 20. 체스카와 도이치 21. 뉘른베르크, 소시지가 구해준 도시 22. 끝내 헤르만 헤세를 못 만나고 오는 독일여행 23. 에필로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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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에서 아침을 든든히 먹은 우리는 다시 모젤 강을 건너, 어제 굳게 문을 닫아걸었던 암피테아터로 진군했다. 문은 열려 있었고, 우리는 로마인들이 1600여 년 전에 함성을 지르고 흥분했었을, 그러나 지금은 고요하기만 한 원형경기장을 가로질러 걸었다.
경기장의 가운데쯤엔 지하로 통하는 길이 있었다. 지하 역시 어둡고 고요하기는 마찬가지였으나 거기엔 잔디에 덮여 있는 지상의 경기장을 보고 행여 느낄 수도 있는 평화로움이나 고즈넉함 대신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지울 수 없는 잔혹함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지하공간에는 우선 물이 고여 있었다. 지하수나 빗물이 아니라 일부러 만든 수로를 통해 들어온 물이었다. 그리고 그 물위로는 목교가 가로세로 놓여 있었고 사방 구석에는 비록 창살은 없지만 아무도 노예검투사들이 갇혀서 죽음의 게임을 기다려야 했을 방들의 흔적이 뚜렷했다. 로마의 평화는 이런 지하에서 죽어간 노예들의 고통 위에서만 가능한 평화였다는 사실이 새삼 전율로 다가오는 풍경이었다. 아들도 왠지 살풍경함을 느꼈던지 빨리 나가자고 채근이었다. 그 지하의 을씨년스러운 석굴방 벽에 어느 노예의 살고 싶다는 낙서는 없는지……. 그 위로 훗카이도의 탄광 갱목에 새겨진 징용노동자들의 "어머니, 배가 고파요"라는 낙서와, "근로기준법을 지켜라"는 전태일의 절규가 오버랩되고, 다시 이 천하무적의 자본주의에 팔려버린 수많은 인류의 영혼들이 내뱉는 신음소리가 오버랩된다. --- pp.119~1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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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이 이 집 자체의 역사이다. 나는 1층 전시실 입구에 있는 마르크스의 청동제 데드마스크 아래 아들을 세워놓고 사진을 한 컷 찍었다. 별다른 의미가 담긴 촬영은 아니었다. 아버지를 사로잡아온 한 사상가를 아들이 기억해주기 바라는 그런 정도였다. 아들이 마르크스가, 아니 이 할아버지가 누구냐고 물었을 때, 나는 '사람이 사람을 괴롭히고 못살게 구는 세상을 고치기 위해 노력했던 위인'이라고 대답했을 뿐이다. 어느 위인전에서도 이 할아버지의 얼굴과 이름을 본 적이 없는 아들은 고개를 잠깐 갸웃하는 것으로 이 인물에 대한 예의를 갖추었다.
--- p.1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