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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보름
2. 졸업식 3. 밥상머리 풍경 4. 놀이 1 5. 놀이 2 6. 소꿉놀이 7. 점심시간 교실 풍경 8. 서캐를 아시나요 9. 봄소풍 10. 공동변소 11. 연애와 극장 12. 다방과 디제이 13. 아르바이트 14. 주전부리 15. 여름 나기 16. 반공 포스터 17. 여름 물 구경 18. 계와 복날, 그리고 피서 19. 시험 20. 자전거와 버스 이야기 21. 천렵 22. 부뚜막과 아궁이 23. 서리 24. 뒤란 25. 여름 야생 먹거리 26. 경대 27. 엿장수 28. 우물과 빨래터 29. 추석 30. 타작 31. 가을 운동회 32. 수학여행 33. 술 익는 마을 34. 등 · 하교 풍경 1 35. 등 · 하교 풍경 2 36. 버스 · 기차 통학 37. 소 38. 갯마을 39. 미장원 40. 김장하는 날 41. 겨울 사냥 42. 겨울 풍경 1 43. 겨울 풍경 2 44. 땔감 45. 짚 46. 잔칫날 47. 입학시험 48. 인형놀이 49. 이발소 풍경 50. 젖니 51. 봄소식 52. 점집 53. 옛날 옛적에 54. 보따리장수 55. 짝꿍 56. 다듬이 소리 57. 우체부와 편지 58. 민간요법 59. 기율부 60. 몸빼바지와 월남치마 61. 라디오 62. 꽃상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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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갑과 결혼식은 마을 잔칫날이었다. 논산 할아버지 환갑이 언제고 밀양 아재 딸 혼인날이 며칠 남았는지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품앗이나 '마실', 빨래터로 몰려다니며 뉘 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까지 알고 지내는 터에 잔치처럼 '큰일'을 모를 수가 없었다.
잔칫날이 가까워지면 동네 사람들 모두가 바빴다. 농사짓는 사람들에게 일요일은 휴일이 아니어도 동네에 잔치가 있으면 모두들 일손을 놓았다. 잔칫날 쉬기 위해 밀린 농사일도 서둘러 해치웠다. 전화가 없던 때여서 근동에 기별하는 일은 동네 청년들이 맡았다. 학교 소사에게 부탁해 낱장으로 등사한 청첩장을 노란 봉투에 넣어 마을마다 돌렸다. 먼 곳에 사는 이모, 고모, 외숙모 집에는 며칠에 한 번씩 들르는 우체부에게 청첩장을 부쳤다. 잔치 하루 전부터 온 동네가 떠들썩했다. 손님들을 맞기 위해 옆집까지 방을 치우고, 멍석과 그릇을 빌려주고, 쌀이나 보리쌀, 닭, 달걀, 나뭇짐 등 형편에 따라 미리미리 부조를 했다. 이웃집 아주머니들은 할머니의 지시에 따라 돼지고기를 삶고, 떡을 찌고, 전을 부치고, 김치를 담고, 국수를 삶느라 분주했다. 부엌 뒷문으로 연결되는 뒤꼍에는 큼직한 가마솥 몇 개가 걸리고 잘 마른 장작불에 국물이 절절 끓었다. 솥뚜껑을 잦혀놓고 그 위에 돼지 비계를 놓거나 들기름을 발라 부쳐내는 두부전 · 녹두전 · 명태전 냄새가 돌담을 넘었다. 다 부친 전에는 실고추와 달걀 지단을 올려 모양을 냈다. 각처에 흩어져 살고 있던 일가들도 분잡스럽게 몰려들어 일을 거들었다. ---pp.213~2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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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교길은 급할 것이 없었다. 들과 산이 온통 놀이터였고, 손에 잡히는 모든 것이 놀이 도구였다. 땅따먹기, 비석치기, 제기차기, 고무줄놀이, 팽이치기, 공기놀이, 고누, 딱지치기, 말타기, 오징어놀이 등등 놀이의 종류도 무궁무진했다. 책보 속에서는 필통과 빈 '벤또'가 딸그닥딸그닥 요란한 소리를 냈다. 책보를 멘 채 심하게 뛰어다니다 보면 아까운 연필이 멍들어 못 쓰게 되기도 했다. 그래도 심심하면 새알을 털고 호드기를 불고 진달래를 꺾고 물고기를 잡고 아카시아 잎으로 풀싸움을 했다.
오가는 길에 남의 밭에 들어가 참외, 오이, 콩, 땅콩, 고구마, 사과 등을 서리 해 먹었다. 길가에서 불장난을 하다가 산불을 내기도 했고 겨울철 불을 쬐다가 양말을 태우는 경우도 많았다. '가위바위보'로 서로 책보 들어주기 게임을 하는 풍경도 흔히 볼 수 있었다. 그 시절에도 소위 '왕따'는 있었다.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고 혼자 가는 길은 멀고 쓸쓸하고 서글펐다. 선생님은 가까운 곳에 사는 아이를 보내 며칠째 학교에 나오지 않는 외딴집 아이의 소식을 듣기도 했다. 특히 농번기에는 일손을 거드느라 학교를 빠지는 아이들이 많았다. '나쁜 짓'인 줄 뻔히 알면서도 집 나온 미친 여자를 따라다니며 놀려댄 것도 하교길이었다. 노는 일에 정신을 빼앗겨 큰 마을 이장 집에서 농약 받아오라는 심부름을 까먹었다가 혼이 나는 경우도 많았다. --- pp.163-16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