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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와 자료들 (계속)
최초의 초고 (파리의 아케이드 1) 초기의 초고 자료들 부록 |
Walter Bendix Schonflies Benja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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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발터 벤야민인가?
왜 발터 벤야민인가? 그의 비극적 죽음을 두고 한나 아렌트는 “발터 벤야민은 20세기 최후의 지성인이다”라는 말을 한 바 있으며 그의 평생지기인 숄렘은 “벤야민의 죽음은 유럽 정신의 죽음이다”라는 조사를 남긴 바 있다. 그런데 최근 21세기가 시작되면서 급격히 사라진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서양 지성계에 불고 있는 ‘벤야민 르네상스’는 과연 이러한 평가들이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최근, 예를 들어 프랑스에서는 벤야민의 ‘앨범’이 몇 권씩 출간될 정도로 그는 이제 대중적 사상가마저 된 느낌이다. 그리고 하버드 대학 출판부에서는 4권의 방대한 선집과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출판한 것 말고도 ‘앞으로 출간될 모든 벤야민의 글’에 대한 저작권을 선매할 정도로 그의 사유는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지성계의 공백을 과거와는 전혀 새로운 각도에서 메워주고 있다. 과거에는 ‘문학 평론가’로서의 벤야민만이 주목받았다면 이제는 주로 20세기의 아포리아들을 가장 선구적이고 독창적으로 사유한 (정치) 사상가로서 새삼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예를 들어 자크 데리다도 말년에 벤야민의 ?폭력 비판론?을 주제로 국제 세미나를 개최한 바 있으며, 지금 세계 지성계를 강력하게 사로잡고 있는 ?제국?의 네그리 그룹이나 조르조 아감벤 등에게 미친 벤야민의 영향은 거의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다. 주권 문제, 폭력 문제, 신체의 문제, 기술의 문제, 삶-정치 문제 등 20세기에 가장 강력하게 제기되었지만 나치즘과 공산주의라는 극단적인 형태로 은폐되면서 정작 하나도 해결되지 못한 문제들이 21세기에 들어와 다시 강력하게 부각되면서 벤야민의 선구적이고 독창적인 사유가 다시 전 세계적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이 주장하는) ‘정의의 폭력’ 문제, ‘테러’에 대한 규정 문제, 신체를 통한 주권의 행사 또는 주권의 구성 문제 등. 이러한 문제들은 (20세기) 정치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이지만 거의 제대로 된 형태로 문제로 제기되어 보지 못한 채 그저 나치즘과 공산주의에 의해 극히 왜곡된 형태로 ‘실천’ 되어버리고 만 자본주의의 가장 내밀한 비밀이지 않았을까? 벤야민의 사유의 힘은 이러한 문제들을 가장 선구적으로 제시한 것을 넘어서 그것을 독창적인 지성사적 맥락에서 그리고 현실의 폭넓은 맥락에서 제기한 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19세기의 모든 것을 부활시키고 미래의 모든 것을 예견한 책, 모더니즘 소설가들의 위대한 소설들만큼이나 흥미로운 책, 역사를 이해하기 위한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노력 그러면 벤야민 본인은 막상 “진정 내 모든 악전고투와 내 모든 사상이 펼쳐지는 무대”라고 부른 이 ?아케이드 프로젝트?는 어떠한 책인가? 아마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목차만 보아도 이 책의 독창성과 풍부함을 일별해볼 수 있을 것이다. 아케이드, 패션, 권태, 바리케이드 전, 박람회, 광고, 산책자, 매춘, 도박, 파노라마, 거울, 회화, 모던스타일, 조명, 철도, 음모, 사진, 인형, 증권, 복제 기술 등. 결국 벤야민이 우리를 데려가는 것은 자본주의적 근대의 탄생 지점이다. 즉 자본주의의 육아일기라고나 할까 아니면 탄생 보고서라고도 할 수 있는 어떤 것이다. 이것은 예를 들어 마르크스가 ?자본?에서 자본-노동의 동시적 탄생을 추적하는 것, 그리고 자본의 종말을 그리는 방법과는 전혀 다른 방법과 시각에 입각해 있으며, 특히 그의 시야는 ‘자본-노동’의 축보다는 자본주의의 만화경 쪽에 더 가까지 다가가고 있다. 그리하여 예를 들어 그의 시각은 역사를 진보-보수 식으로 바라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다. 또 아날학파 식으로 역사를 아래로부터 구성하지만 그는 ‘민중적 관점’이 아니라 역사로부터 배제되고 폐기 처분된 ‘쓰레기’들로 구성할 때만이 자본주의의 진정한 독창성이 드러난다는 입장을 취한다. 즉 나중에 “죽은 자까지도 적으로부터 안전하지 못하리라든 것을 투철하게 인식하는” 역사가만이 과거로부터 희망의 불꽃을 점화할 수 있는 재능을 부여받을 것이라고 말하듯이 ‘죽은 자’와 폐기된 자들로 역사를 복원하려고 하는 것이다. 물론 이처럼 죽은 자와 폐기된 자는 역사의 약자나 패자들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케이드’처럼 19세기 초에 자본주의의 꽃으로 인식되었지만 얼마 후 곧 자본주의의 대표적 폐허가 된 것을 가리킨다. 그리고 이러한 사정은 단지 아케이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자본주의의 근본적 운동을 구성한다는데 벤야민의 독창적 인식이 들어 있다. 예를 들어 19세기의 만국 박람회로 마찬가지였으며, 온갖 사조가 명멸한 19세기의 미술 사조도 이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것은 먼 19세기 자본주의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지금의 우리 이야기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온갖 기능이 첨가된 고화소의 핸드폰은 얼마나 수많은 ‘최고급’ 핸드폰들을 순식간에 ‘고물’로 만들고 있는가? 이것은 아마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이처럼 그의 사유는 민중주의, 포스트모더니즘, 진보-보수주의 논쟁 등의 바람이 모두 지나간 후 우리의 현실적 삶은 점점 더 실업과 ‘테러’와 미래에 대한 불안에 의해 ‘쓰레기화되어’ 가고 있는 것만 같은 지금 여전한 현실성을 갖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내밀하게 이해하는 데 있어 ?아케이드 프로젝트?는 ?자본?을 넘어서 핵심적인 텍스트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