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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삶 속에 살아 숨 쉬는 말
01. 언어 속의 문화, 문화 속의 언어_언어와 문화의 관계 02. ‘고맙습니다’는 ‘곰’에서 나왔는가_언어와 토테미즘 03. 말에는 신비한 기운이 있다네!_언어의 주술성 04. 접근금지 X_언어와 금기 2장 변하고 사라지는 말 05. 김유신과 계백은 말이 통했을까?_지역과 시간에 따른 언어 변화 06. 명칭이 어떻게 변하니?_언어 변화의 양상 07. 들온 말이 있으면, 나간 말이 있다_언어 접촉과 언어 변화 08.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_바람처럼 사라진 말 3장 말을 배우고 가르치고 09. 옛날에도 국어책이 있었을까?_선조들의 우리말 학습 교재 10. 옛날에는 외국어 공부를 어떻게 했을까?_외국어 교육과 역관 11. 마음을 담고 사랑을 담고_옛글에 나타난 한글 12. 우리말을 연구한 주시경의 선배들_근대 이전의 우리말 연구 4장 문화를 비추는 말 13. 우리말 속의 우리 생각 들여다보기_언어와 사고 14. ‘괴질’과 ‘콜레라’_전문어와 말다듬기 15. 어??리??_식민지 시대의 영어 열풍 16. ‘맛둥’에서 ‘김C’까지_이름에 반영된 사회상 5장 역사의 산 증인, 말 17. 말도 변하고 맛도 변하고_식민지 시대의 글과 삶 18. 한글 파동은 끝났는가_언어 정책과 언중 19. ‘뽀뽀뽀’와 ‘우리아빠 제일 좋아’_분단시대의 언어 20. 언어 간에 일어나는 치열한 권력 다툼_언어 권력과 언중의 자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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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풍습에는 아직도 말의 신성함이 묻어 있는 예가 있는데, 설날에 주고받는 덕담(德談)이 그것이다. 서로의 복을 빌고 소원 성취를 기원하는 풍습인데, 이는 말에 주술적인 힘이 있다는 믿음에서 나온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 말의 시제가 미래가 아니라 과거라는 것이다. “ 올해 장가갔다지.” “올해 대학에 합격했다지.”이 덕담은 올해에는 꼭 장가가기를 바란다, 꼭 대학가기를 바란다는 말인데, 이미 장가를 간 것으로, 대학에 합격한 것으로 표현한다. 요즘은 이런 과거 시제의 덕담을 찾아보기 어렵지만, 꼭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선인들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덕담과는 반대로 갓난아이에게 나쁜 말을 하는 풍습도 우리에게 있다. “ 참 못생겼다.”는 둥 “왜 이렇게 부실하냐.”는 둥 어찌 보면 듣 기에 거슬리는 말을 어른들이 하는 것을 보곤 한다. 이것은 마귀의 시샘을 피하기 위한 조상들의 지혜의 산물이다. 아이가 예쁘다고 하면 마귀가 시샘을 해서 마마신이 오는 등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고 믿었기 때문이다.(47쪽) 엘리베이터를 타면 4층을 표시하는 버튼이 ‘4’로 쓰여 있지 않고 ‘F’라고 돼 있는 것을 흔히 발견할 수 있다. 그 이유를 대자면 아마 숫자 ‘4’가 죽는다는 의미의 사(死)를 연상시키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건 미신이라고 콧방귀를 뀌던 사람이라도 병에 걸려 입원하게 되었을 때 4층에 있는 444호실에 입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 사람 모두가 ‘4’를 꺼림칙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꺼림칙하게 여기는 것 자체가 문화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서양에서는 보통 호텔이나 기차에 13이라는 숫자가 빠져 있다고 한다. 한국인이 ‘4’에서 받는 느낌을 서양 사람들은 ‘13’을 통해 느낀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한국인이든 서양인이든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들은 그것이 미신인지 아닌지를 검증해 보기보다는 그런 불길한 말을 입에 올리지 않는 길을 택했다.(50-51쪽) 언어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호열자’라는 말에 다시 한 번 시선을 돌릴 것이다. 왜 콜레라의 음역이 ‘호열자’인가? 음역이라면 그 소리를 차용하여 비슷하게 만든 것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호열자’와 ‘콜레라’는 소리의 유사성이 너무 먼 것이 아닌가? 클럽?俱樂部(구락부), 코카콜라?可口可樂(커커우커러), 펩시콜라?百事可樂(바이써커러) 등을 보면 어느 정도 소리의 유사성을 엿볼 수 있으니 말이다. 이 의문의 열쇠는 글자의 혼동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 콜레라가 창궐한 것은 조선조 고종 연간이었다. 이 병이 들어오자 당시 습속대로 중국의 이름과 꼭 같이 ‘虎列剌`’로 불렀는데, 중국 발음으로는 ‘훌리에라(虎列剌)’였다. 이쯤 되면 콜레라의 발음과 흡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훌리에라’가 ‘호열자’가 되었단 말인가? ‘虎列剌’를 우리 식대로 읽으면 ‘호렬랄’이다. ‘호렬랄’이라면‘훌리에라’와 어느 정도 유사성이 있지만 ‘호열자’는 거리가 멀어진다. 그런데 문제는 剌(이그러질 랄)이 刺(칼로 찌를 자)와 한 획이 다른 데서 비롯되었다. 이 병명이 보편화되자 ‘랄’과 ‘자’를 구별 못하는 사람들이 호열랄을 호열자로 오독(誤讀)하기 시작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호열랄’은 ‘호열자’로 굳어져 갔다. 여기에는 의미의 유사성도 한몫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그러지는 것’보다는 ‘칼로 찌 르는 것’이 더 무섭고 잔인하기 때문에 무서운 콜레라의 이미지와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188-189쪽) 광고에서 어떤 표기법을 선택하는가 하는 것은 광고하려는 제품, 사용자와 관련이 있다. 1930년대 신문은 대부분 한문 위주의 국한문 혼용체로 표기되어 있다. 국한문 혼용체는 신문이 처음 만들어졌던 시기부터 선택한 문장 표현법이다. 그런데 그런 중에도 신소설이나 몇몇의 광고 문구에서는 순 한글 표기를 사용하였다. 매독약 광고가 순 한글 표기로 이루어진 사실은 몇 가지 사회적 상황을 짐작케 한다. 1900년대에서부터 1940년대에 이르기까지 국한문 혼용체는 우리 사회에서 지배적인 문체였다. 일정한 교육을 받은 계층이 아니면 신문의 기사를 술술 읽어 내려가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1930년대 당시 한글 문맹자만도 통계에 따르면 전체 국민의 60퍼센트에 이르렀다고 하니 한문 문맹률은 이보다 더 심각하였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국한문 혼용체로 기사를 쓰는 것은 제한된 독자층만을 겨냥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유독 신소설과 약품 광고가 순 한글 표기를 선택한 것은 구독층을 식자 계층만이 아닌 일반 서민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음을 짐작케 한다.(227-228쪽)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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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말의 어제를 추억하며 오늘을 보듬고 내일을 만들어갈 소중한 우리말 교양서.
대학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네 명의 국어학자가 모여 펴낸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역사가 오롯이 새겨져 있는 우리말 이야기’를 담고 있다. 생생한 역사 자료를 토대로, 한 시대, 한 장면 우리말이 살아온 모습을 재구하여 독자 스스로 우리말 기행을 떠날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신석기시대부터 원시 한인들이 쓰기 시작한 것으로 보이는 우리말은 고구려, 백제, 신라가 힘 겨루던 삼국시대를 거쳐 고려와 조선의 중세 왕조 시대를 넘어 일제가 이 땅을 강점한 질곡의 시대를 견디면서 오늘에 이어졌다. 사람들의 애환을 담고, 시대의 갈등을 적고, 사랑의 아픔을 전하는 우리말의 흔적이 역사의 곳곳에 오롯하게 새겨져 있다. 이 책은 역사에 새겨진 우리말의 추억과 에피소드들을 찾아내어 보여주고 들려주려고 기획된 것이다. 원시신앙 토테미즘을 반영하는 언어, 입으로 외는 주문의 위력, 들어오고 나가고 생겨나고 없어진 말들, 조상들이 우리말 학습을 위해 만든 교재와 연구서, 양반들이 쓴 한글 편지, 무심코 사용하는 우리말 속에 나타난 우리 의식의 단면, 신문기사에 고스란히 드러나는 근대의 영어 열풍, 식민지 시대 광고를 통해 보는 그 시절의 삶, ‘한글 파동’의 전말, 분단 시대 언어 이질화의 현재와 미래, 언어 권력과 그에 대응하는 우리의 자세 등 우리말과 관련한 다양하고 흥미로운 내용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우리말의 역사와 변천에 관해 말하고 있지만 단순히 그 흐름을 시대별로 서술하지 않고 사건과 인물,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생생하게 구성하여 반드시 순서대로 읽지 않고 어느 곳을 먼저 보더라도 그 나름대로 역사의 한 장면을 볼 수 있으며, 이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말이 이런저런 역사를 거쳤구나 하는 쉬운 이해에 이를 수 있다. * 우리말은 조금 틀려도 괜찮다? 매일 쓰고 있는 우리말에 대해 우리는 어떠한 인식을 갖고 있는가. 무슨 말인지 알기만 하면 되는데, 글자 조금 틀린 게 뭐 대수인가. 우리말에 대해 이러한 인식이 알게 모르게 퍼져가는 사이, 어느새 우리 주변에는 틀린 글자가 버젓이 쓰인 글, 틀린 말을 하고도 틀린 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당장에 의사소통 문제는 없으니 언어의 기본 역할은 하는 것이라고 치더라도, 정작 문제는 갈수록 굳어져 가는 이러한 인식 자체에 있다. 결국 이러한 인식의 틈바구니 속에서 우리말을 연구하고 발전시키려는 노력은 점차 힘을 잃을 것이고 우리말은 중심에 서지 못하고 점차 그 권위와 수준이 떨어지며 주변어가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기우만이 아닐 것이다. 우리말이 힘을 잃을 때, 우리 문화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 책에서는 다음과 같이 우리의 태도를 반성하면서 인식의 전환을 말한다. 서구 나라와의 교류가 빈번해지면서 이름을 짓는 양식에도 변화가 생겼다. 서구식 발음 구조에 맞춰 이름이 변하게 된 것이다. 로마자 표기의 단순화를 고려해 모음을 단순화하는 경우도 있고, 받침이 없는 단어를 선호하고 받침이 있더라도 ‘ㄱ, ㅂ’보다는 ‘ㄴ, ㅁ’ 등을 선호하는 것이 그런 예라 할 수 있다. 이런 정도는 세계화 시대에 적응하기 위한 변화라는 점에서 자연스럽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것이 지나쳐 아예 영어 이름을 만드는 경우도 있다. 도시의 웬만한 동네마다 있는 영어 학원들. 아이들이 네이티브 스피커에게 영어를 배운다. 레벨 테스트를 마치고 클래스가 정해지면, 네이티브 스피커 티쳐는 아이들에게 이름을 정해 준다. “너는 대니, 너는 새라, 너는 알버트, 너는 줄리아.” 영어를 배우는 입문에서부터 창씨(創氏)까지는 아니더라도 개명(改名)은 하고 들어가야 하는 현상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영어를 생활화하기 위한 교육적 방법으로 봐야 할까? 아니면 발음이 불편한 한국 이름을 영어 화자들이 그냥 부르도록 내버려 두는 게 실례라는 속 깊은 배려일까?(214쪽) 얼마 전 경기도에서는 ‘한류우드’와 ‘그린웨이’를 조성한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한 적이 있다. 아마도 이 말의 정확한 뜻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은 듯하다. 한류우드는 대규모 문화관광단지의 이름으로 ‘한류’와 미국 ‘할리우드’를 합성해 만든 이름이며, 그린웨이는 오는 2020년까지 수천억 원을 들여 추진할 자전거 전용도로의 이름이란다. 영어식 이름이 더 멋있게 보이는지는 몰라도 국민의 세금으로 추진하는 대형 사업에 국적 불명의 외국어를 남용하는 것은 참으로 씁쓸한 이야기다. 그런데 이런 외국어 남용 사례가 어찌 경기도에 국한되겠는가? 주위로 조금만 시선을 돌려봐도 무수히 많은 외국어가 눈에 밟힌다.(104쪽) 사람의 자존심은 어떻게 생기는 것일까? 그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된다. 자기 자신에 대한 존경과 사랑은 자신도 몰랐던 자신만의 가능성과 아름다움을 발현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이는 언어에 관한 문제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권력 언어에 대한 숭배가 현실적인 선택이라면, 자신의 모국어에 대한 그리고 자신의 고향 말에 대한 사랑과 관심 속에 자신의 정체성이 유지된다는 사실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 (…) 방언을 사투리라 비하하면서 우리말을 좀먹는 벌레인 양 취급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김유정과 채만식의 소설에서, 그리고 백석의 시에서 방언은 우리말을 좀먹는 벌레가 아니라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극대화시키는 보석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문학적 감수성이 고향의 말 속에서 이루어졌음을, 그리고 고향의 말을 통해 제대로 표현될 수 있음을 깨달은 작가였다. 함경도 방언이 없었더라면 우리에게 백석의 시는 없었을 것이고, 강원도와 전라도의 방언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동백꽃의 알싸한 향과 탁류의 아이러니를 경험할 수 없었을 것이다.(256~258쪽) 결코 쉽지 않은 길을 걸어온 우리말의 역사를 보듬는 작업을 하면서 저자들은 단순히 외래어를 덜 쓰고 고유어를 살려 쓰자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말에 대한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연구와 발전 노력이 절실한 요즘, 그 바탕이 되는 인식의 전환을 이루도록 노력하자는 것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다. ‘우리말의 발전’이라는 커다란 과제는 우리말에 대한 개개인의 작은 사랑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네 명의 저자는 『우리말의 수수께끼』(2002)를 펴내 우리말에 관심 있는 많은 독자들의 호응을 이끌어낸 바 있으며, 이후 『한국어가 사라진다면』(2003)을 출간하여 2023년 영어 공용화가 전격 실시된다는 전제 아래 2523년까지 약 500여 년 동안 우리말을 포기할 경우 일어날 상황을 상상함으로써 현재 우리말의 위상에 경종을 울리며 사회적으로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처럼 우리말 관련서를 꾸준히 펴내온 저자들은,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 우리말의 역사를 둘러본 추억으로 우리말의 오늘을 보듬고 미래를 이어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 지금 우리에게 척박한 오늘을 견디고 내일을 이어가게 하는 힘이 되듯이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