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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꿈처럼 아름다우면서도 덧없는 고대 왕녀의 사랑 이야기
나일 강에서 멀지 않은 왕들의 골짜기. 영국인 귀족 에반데일과 독일인 고고학자 룸피우스는 사람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은 무덤을 발견했다. 3500년이 넘도록 그 누구도 감히 잠든 파라오를 깨울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육중한 석관을 열었을 때 두 사람은 깜짝 놀란다. 미라는 아름답기 그지없는 한 여인이었기 때문이다……. 에반데일은 문득 3500년 전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틀림없이 이 여인을 사랑했으리라. 그 때 미라 어디선가 두루마리 하나가 툭 떨어졌다. 두루마리는 여인에 대한 신분과 지위 등 모든 중요한 사항이 적힌 원본이었다. 제사장의 딸 타오제르는 나라 안팎에서 제일 가는 미녀였다. 세상에 부러울 것 하나 없었으나, 좋아하는 청년 포에리를 앞에서는 불행한 여자일 뿐이다. 포에리는 타오제르를 거들떠보지도 않을 뿐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이 따로 있었던 것이다. 그런 타오제르를 사랑하는 사람은 바로 이집트 최고의 남자 파라오였다. 파라오는 타오제르를 데려다 최고의 부와 명예를 약속한다. 결국 이집트를 탈출하려는 히브리 노예들을 뒤쫓아 가면서 파라오 자리마저 타오제르에게 내주고 떠난다. 타오제르는 돌아오지 않는 파라오를 기다리며 이집트를 다스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타오제르 또한 숨을 거두고 말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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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든 미라에 얽힌 ‘고대 문명의 미스터리’
『미라 이야기』는 제목에서 드러나듯 고대 이집트를 배경으로 한 소설 속 소설이다. 소설이, 소설 속 소설을 함축하며 이야기 서두를 시작한다. 이야기의 한 축은 이집트 피라미드를 발굴하며 현대 주인공이 끌어가고 있고, 다른 한 축은 미라에 얽힌 고대 주인공이 끌어가고 있다. 실제 고대의 파라오가 다스렸던 시대에 실제 인물과 상황을 사실에 가깝게 재현하고, 성서를 근거로 한 히브리 노예들의 ‘출애굽’ 사건을 끼워 넣었고, 요소요소에 허구적인 인물들을 가미했다. 서양 문명의 두 가지 큰 젖줄인 신화적 코드와 성서적 코드가 함께 녹아 있는 것이다. 이는 작가가 밝혔듯 역사적 자료를 토대로 극작가 에르네스트 페도의 ‘고대 민족들의 장례 관습에 관한 이야기’에서 영향을 받아 쓴 작품이라고 한다. 1857년에 프랑스 일간지 <르 모니퇴르 유니베르셀>에 연재하다가 이듬해 단행본으로 엮어냈다. 이 작품을 통해 고티에는 ‘고고학 소설이라는 분야를 개척했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사실 테오필 고티에는 ‘예술을 위한 예술’을 주창한 작가로 유명하다. 시인 보들레르와 플로베르 등이 고티에를 표방하고 나섰을 만큼 시 문학의 거장이자 선구자로 이름이 높다. ‘예술을 위한 예술’은 원래 1818년 프랑스 철학자 빅토르 쿠쟁이 처음 만들어낸 뒤 1830년대부터 1870년대를 풍미한 예술 이론의 표어가 되다시피 한 말이다. 그것을 테오필 고티에가 가장 먼저 예술 지상적 유미주의를 내세우며 예술을 예술 그 자체의 목적으로 표방하고 예술이 가지는 그 어떤 도덕성, 사회성, 효용성도 일체 거부했다. 이는 1835년에 발표한 ≪Mademoiselle de Maupin(마드모아젤 모팽)≫ 서문에서 밝혔듯 “무용(無用)한 것만이 진정 아름답다. 유용(有用)한 것은 모두 추하다.”라고 한 것이다. 『미라 이야기』는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듯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묘사가 압권이다. 이집트 벽화와 미라, 이집트인 특유의 생김생김과 옷차림, 왕궁과 신전에 대한 묘사는 장면 제시를 넘어 장면에서 풍기는 분위기까지 전달하는 힘이 있다. “문틈이 벌어지자 35세기 만에 처음으로 한 줄기 빛이 어둠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 무덤 안으로 대담하게 뻗어 들어간 빛은 순식간에 벽 위쪽에서부터 굽도리까지 세로로 써 내려간 울긋불긋한 상형문자와 주변 장식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그 모든 것이 생생한 빛깔을 내며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매의 머리를 하고 파라오의 왕관을 쓴 붉은 빛깔 인물이 날개 달린 원반을 떠받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마치 영원한 세계의 문지기처럼 무덤 어귀를 지키는 것 같았다.” 이렇듯 작가는 색채감과 움직임을 동반한 비유를 활용함으로써 회화적 요소가 강한 문체를 구사했다. 그래서 화가가 연출한 그림 또한 이집트 벽화풍을 내기 위하여 돌이 주는 질감을 살려 아크릴화로 그렸다. 벽화에 그린 상형문자와 여러 이집트 신들이 아크릴화 특유의 좋은 회화감과 함께 깊이 있는 그림으로 되살아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