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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_ 작가 27인의 은밀한 연애편지를 공개하며
태풍이 북상하고 있다 하성란 _ 태풍이 북상하고 있다 박상우 _ 첫 번째 연애편지에 대하여 함정임 _ 푸른 하늘 아래에 너는 존재하고 있다 정끝별 _ Y가 시인 정끝별에게 띄운 편지 마광수 _ 나와 연애편지 권현숙 _ 순간 속의 순간 박형준 _ 당신을 위해서라면 저의 피곤은 행복입니다 홍성식 _ 나, 아직도 너의 향기를 잊지 않았다 이홍섭 _ 달맞이꽃 영원한 마틸다에게 박철우 _ 교련복 입은 제가 교복 입은 당신에게 이승하 _ 그대의 사랑으로 나는 지금까지 행복하였소 송하춘 _ 늦은 봄의 화신 유현숙 _ 내 연애편지 돌려줘요 장성희 * 반칠환 _ 결혼 십 주년 기념 편지 박제천 _ 마틸다에게 보내는 첫 편지 길 위에서 몸을 생각하다 이재인 _ 시집보낸 책과 귀양 온 책을 생각하며 이재무 _ 연보랏빛 등꽃 같은 당신에게 최문자 _ 당신도 산을 걸으십시오 이문재 _ 길 위에서 몸을 생각하다 허연 _ 칠원, 나는 빛을 피해 걸어간다 정해종 _ 아프리카 타운십에서 띄우는 편지 이경 _ 하늘이 무슨 생각으로 허금주 _ 사랑시 한 편으로 타오르는 두 시인 다시 ‘사랑’의 메모장을 열다 김훈 _ 기거이 사랑이라 부르는 기억들 서영은 _ 책상 앞에 앉아 잠자는 지원에게 김동리 _ 長篇小說 ‘연애편지’ 엮은이 후기 _ 작가의 연애편지, 새로운 문학 장르의 가능성을 타진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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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풍은 찬 공기와 따뜻한 공기가 부딪치면서 생기는 현상이라고 어디선가 읽은 듯합니다. 돌풍이 분 시간은 기껏해야 삼사 분, 오륙 분. 그 짧은 사이에 지난밤의 평화는 깨졌고 모두가 잠든 사이에 바람이 누군가가 애지중지하는 강아지를 채갔습니다. 그런 대기 변화처럼 제 심정을 읽어주시면 안 될까요. 제가 잠자는 사이, 제 뜻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해주시면 안 될까요. H씨의 답장은 너무도 냉랭했습니다. 짧은 네 줄의 문장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혹시 미처 이야기하지 못하고 행간에 숨긴 마음은 없었나. _ 하성란의「태풍이 북상하고 있다」에서
새로이 살아갈 곳으로 옮기고 받은 우편함 열쇠를 열면서 네 이름을 보았다. 너의 푸른색의 필체를. 너의 모습을 더듬게 하는. 너는 전에도 그 색을 썼었지. 그 색을 좋아하나 보다. 그냥 너의 끌림인지. […] 지난겨울의 긴 시간들. 나는 한가로웠고 빛이 없었던 많은 날들을, 바람이 휘몰아치는 밤들을 쾰른에서 보냈었다. 나는 그곳에서 아마도 처음으로, 그리고 이 땅에서는 마지막으로 여유 있는 시간들을 보냈던 것 같다. 그래, 너의 존재는 나의 삶에서 부분이었다. 그런 생각을 자주 했다. 참견하는 나의 못남을 이해해주리라 믿고, 너의 생명력을 되찾으면서 간직하기를 나의 마음으로 바라면서. _함정임의 「푸른 하늘 아래에 너는 존재하고 있다」에서 함께 저녁 먹으면서 한 말처럼 흐린 날도 더러 있었지만 좋은 일도 많았지? 무엇보다 결혼 십 주년에 제일 선물은 내가 짜부라들지 않고 그나마 기를 펴게 된 것 다행이지? 더 열심히 정진할게. 놀 만큼 놀고 한눈 팔 만큼 팔았으니 이제 곁눈 가리고 경주마처럼 달려도 될까? 아니 경주마까지는 싫고 고삐 놓은 채 주인이 졸아도 제법 제 갈 길 찾아가는 말처럼만 될까? 새로운 날, 새로운 경험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네. _장성희*반칠환의「결혼 십 주년 기념 편지」에서 길 위에서 나는 시속 오 킬로미터의 속도로 내 몸을 되찾았다. 내 몸의 감각들이 매 순간 되살아나고 있다. 자연과 나 사이에 아무것도 없다고 말할 만큼 나는 몸으로 돌아가 있다. 나는 문자 그대로, 갱생하고 있다. 하지만 두렵다. 이 도보순례를 마치고 다시 거대 도시로 귀환할 때, 나는 또 얼마나 심한 부적응에 시달릴 것인가. 하지만, 나는 걷기 이전의 내가 아닐 것이다. 길 위에서 먹고 자고 걸으며 나는 알았다. 감각에 민감할 것, 감각에 충실할 것! 감각이 바로 몸을 복원하는 길의 출발점이었다! K, 길 위에서 먹은 밥이 그대로 힘이 되고 있다. 섬진강 제방길이 그대로 내 몸속으로 들어온다. 나는 어제도 아니고 내일도 아니다. 나는 내 몸은 오늘, 오늘이다. _ 이문재의「길 위에서 몸을 생각하다」에서 왜 너에 대한 소식에는 군더더기가 따르지 않을까. 하다못해 무슨 옷을 입었다든지, 누구랑 같이 있더라는 말까지도 생략되는 것일까. 어느 모임에서든지 너는 항상 한 발 물러나 있다. 너의 존재는 있는 듯 없는 듯하다. 사람들은 어떤 문제를 놓고 설왕설래하던 이야기가 언쟁에 이를 즈음이면 불현듯 어는 쳐다본다. 그럴 때 좌중의 분위기는 다들 땅바닥에 앉아 있어, 오직 한 사람만 의자에 앉아 있다는 것을 잊고 있다가 문득 그 차이를 무언중에 깨달은 것 같은 그런 것이다. _서영은의 「책상 앞에 앉아 잠자는 지원에게」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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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란의 위태로운 심연이 배어나는 편지부터
사랑을 사유하고 기록한 김훈의 편지까지 낡은 서랍 속에 은밀하게 숨겨뒀던 우리 시대 작가 27인의 연애편지를 공개한다! 작가의 연애편지, 새로운 문학 장르의 가능성을 타진하다 소설가 함정임의 첫 편지에서 소설가 김훈의 마지막 편지까지 작가 27인의 연애편지가 모이기까지 무려 삼 년의 시간이 걸렸다. 『작가들의 연애편지』에 실린 각 편지들은 소설가이자 문창과 교수인 김다은에 의해 기획되어 2003년 11월부터 2006년 1월까지 월간 《넥스트》에 게재된 것들이고, 소설가 김동리, 김훈의 것은 그 후에 보태어졌다. 김다은은 문인들로 하여금 서랍 속에 꼭꼭 숨겨뒀던 편지를 꺼내게 하고, 서간문이란 오래되고도 새로운 형식의 글쓰기를 실험하게 하여 ‘연애편지’라는 소중한 유산을 한자리에 모아냈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은밀하기에 공개조차 금기시됐던 연애편지는 어렵게 세상의 빛을 본 만큼 더욱 귀하고 귀하게 읽힌다. 이 책을 엮은 김다은은 이 년 전, 프랑스에서 열린 국제학술대회를 회고하며,“프랑스, 독일, 영국 등 유럽국가뿐만 아니라 일본에서 온 학자까지 작가의 연애편지를 문학 텍스트로 인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작가의 편지 문학은커녕 연애편지나 사적 서신의 공개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이는 편지의 기능이 안부나 감정 전달이라는 실용성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을 뿐, 편지 그 자체가 문학적 실험의 장이거나 텍스트라는 인식이 설정되어 있지 않”은 현 시점에서 작가들의 연애편지를 공개하여, 독자들에게 편지가 지닌 문학성을 환기시키고자 했다. 선뜻 연애편지를 공개하겠다는 사람은 많지 않다. 공개된 편지가 사생활 노출, 호기심 자극의 수단 혹은 가십이 될 수도 있는 까닭이다. 그러나 엮은이의 노고가 짐작되는 삼 년이란 녹록치 않은 시간 끝에 문인들의 귀한 연애편지가 독자들에게 공개됐다. 이 책에 실린 작가들의 연애편지는 진실성을 내포함과 동시에 작가의 글쓰기 실험의 장이라는 점에서 충분히 문학적 장르에 포함할 수 있는 픽션의 가능성이 있다. 유럽의 작가들이 실제 주고받은 편지를 수정해서 자신의 삶을 픽션처럼 만들어놓은 새로운 문학을 시도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런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소설가 함정임의 첫 편지에서 소설가 김훈의 마지막 편지까지 삼십여 편의 연애편지를 모으는 데 꼬박 삼 년이 걸렸다. 그 기간 동안 가장 큰 변화는 필자가 작가들에게 연애편지를 필사적으로 요청하던 시절을 지나 이제 작가들이 자발적으로 연애편지를 건네주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연애편지에 대한 우리 사회의 금기가 깨져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작가의 연애편지는 더 이상 가십거리가 아니다. 유럽 국가들처럼 한국 작가의 연애편지도 문학 텍스트로 당당히 거듭날 수 있음을 알리는 청신호가 켜진 셈이다. 이는 금기 뒤에 숨어 있던 우리의 슬픈 역사와 권력의 억압을 간파한 작가들의 통찰력 덕분이었다.” _ 엮은이의 머리말에서 작가 27인의 연애편지, 진심을 발신하다 연애편지의 지극한 사사로움과 은밀함은 곧 달콤한 욕망이다. 연애편지의 발신자, 수신자, 제3의 관찰자 모두에게 연애편지의 속살은 욕망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철저한 침묵으로 그 실체를 감춘 연애편지는 하나의 금기에 부쳐진다. 여기, 관습의 금기를 깨뜨린 작가 27인이 있다. 부러 꾸며대거나 수식하지 않은 자신의 비밀스런 연애편지를 당당히 공개한 것이다. 돌풍처럼 스쳐간 사내에게 끝내 이별을 고하는 하성란의 편지, 첫사랑이었던 여선생님께 세월이 흐른 후 진심을 고백하는 박상우의 편지, 짝사랑에 휘둘린 한 사내에게 받은 정끝별의 편지, 병약한 고학생이었던 자신과 결혼해준 아내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이승하의 편지, 연인보다 더 살가운 이성친구와 주고받은 함정임의 편지, 나어린 여대생과 격정적인 사랑을 나눈 마광수의 편지, 죽은 아내에게 보내는 박제천의 편지, 타인에게서 연인의 모습을 읽어낸 권현숙의 편지, 여행길에서 몸의 감각을 사유하는 이문재의 편지, 사랑과 기억에 관한 메모장을 들춘 김훈의 편지, 소설가 김지원에게 사랑과 우정을 전하는 서영은의 편지, 소설과 편지의 장르 구분을 허문 작고한 김동리의 편지까지 시인, 소설가, 극작가 27인은 이물감 없는 순수한 연애 감정과 뛰어난 문학성을 연애편지 속에 담아냈다. 『작가들의 연애편지』은 분명 작가의 은밀한 심상과 사생활을 엿보는 독자들의 관음증을 충족시켜줄 것이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것은, 줄글에 녹아 있는 작가의 진심과 인생에서 가장 황홀했던 한 순간의 포착이다. 밝은 눈으로 작가의 진심을 해석해낼 때, 독자는 작가가 쓴 한 통의 연애편지의 수신자가 된다. 연애편지, 다양한 의미로 변주되다 『작가들의 연애편지』에 수록된 편지들은 전형적인 연애편지의 도식만을 좇진 않았다. 이책은 4부로 구성되는데, <1.태풍이 북상하고 있다 2.영원한 마틸다에게 3.길 위에서 몸을 생각하다 4.다시 ‘사랑’의 메모장을 열다>로 구성된 각 편지들은 확대되고 확장된 개념의 연애편지를 담고 있다. 찬 기운과 따듯한 기운이 충돌하여 발생하는 태풍의 특성을 은유하는 1부(태풍이 북상하고 있다)는 팽팽한 긴장감과 정염과 정열의 기억들을 모았다. 2부(영원한 마틸다에게)는 인애와 우정으로 발전된 부부간의 서신과 부부간의 위기를 모았다. 격정적인 과거의 사랑만큼 현재의 안정과 여유에 감사를 전하거나 부부가 헤어지려고 하는 위기적인 순간의 연서라 하겠다. 3부(길 위에서 몸을 생각하다)는 자아, 몸, 생명 등에 관한 사유가 기록된 편지글이다. 수신자는 사랑하는 그 혹은 그녀 등의 타인이다. 4부(다시 ‘사랑’의 메모장을 열다)는 특히 눈여겨 볼만하다. 김훈은 사랑과 기억 등의 단어에 관한 꼿꼿한 사유를 마치 익명의 독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혹은 산문처럼 적고 있다. 서영은은 동성애를 위장한 시적 글쓰기를 하고 있으며, 마지막으로 김동리는 ‘연애편지’라는 제목을 붙였으나 형식은 소설과 동일한 낯설고 실험적인 연애편지를 쓰고 있다. 이 책은 연애편지가 절절한 애정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도구뿐만 아니라,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다양한 형식의 그릇에 담을 수 있는 새로운 글쓰기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