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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두기 / 한국어판에 부쳐 / 들어가며
1부 이산가족의 운명 시작 / 나의 아버지 / “엄마, 조센징이 뭐야?” / 외삼촌과 외할아버지의 귀국 / 외할아버지 / 우리 가족의 결단 / 외할머니의 인생 / 외할머니가 흥얼거리던 노래 / 편지를 기다리는 할머니들 / 아버지와 어머니 / 전학이 잦았던 어린 시절 / 민족학교의 역사 / 일본학교에서 온 편입생 / 별명은 반쪽발이 / 고향은 김일성 원수님이 태어나신 땅 / 가난과 폭력과 죽음 / ‘안’에서도 ‘밖’에서도 폭풍 / 표적이 되는 치마저고리 / 린치와 가정 붕괴 / 학생수첩에 적힌 일본 이름 / 일본학교 안의 조선인 / 조용한 처형장 / 고등학교 생활 / 포기하자, 그리고 북으로 / 손에 쥔 졸업장 2부 ‘낙원’으로 떠나간 가족 한덕수 의장의 죽음 / 어머니의 방북으로 밝혀진 진실 / 문신이 말해주는 ‘귀국사업’의 결말 / 외할머니의 통곡-“다 도둑놈이야!” / 피로 물든 외삼촌의 편지 / 치유되지 않는 마음의 상처 / 고향으로 돌아갈 길을 잃어버린 재일조선인 / 계기-김일성 주석에게 보낸 편지 / 잘못 판단한 사람들 / ‘귀국’의 길 / ‘올해 벚꽃놀이는 평양에서’ / ‘낙원’으로 출항 / “우리 책임자는 나중에 돌아간다” / 귀국사업의 결말 / 그리고 렌짱은 북녘 대지로 향했다 / 북한은 왜 그들을 받아들였는가 / ‘인도’라는 이름으로 애물단지 추방 3부 나의 여행 외할아버지와 외삼촌 모습을 보다 / 씁쓸한 기억 / 지원자들 / ‘피해’와 마주한다는 것 1장 중국 국경의 탈북 난민들 살아서 국경을 넘은 사람들 / 중국 조선족 사람들의 말 / 국경의 아이들 2장 탈북 난민들이 말하는 북한이라는 나라 버림받는 사람들 / 여성들의 생활 / 정치, 교육, 군대 / 수용과 죽음 4부 백년의 여로 끝에 귀국한 사람들을 기다리던 것 / 타향 땅에서의 생활과 일 / 오해와 거짓 / 백년의 여로 끝에 / 이어지는 고리들-다시 일본 땅에 서서 / 911에서 917로 글을 마치며 / 부록 / 옮긴이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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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죽었다는데 기뻤던 적이 있다. 부음을 전해 들었을 때의 이루 말할 수 없는 해방감과 안도감, 형언하기 어려운 약간의 슬픔……. “이제 무슨 말이든 다 할 수 있어.” 그렇게 생각했다. 그때의 감정은 지금도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다만 그저 기뻤을 뿐.
죽은 사람은 1965년에 북한으로 건너간 나의 외삼촌이다. 건너간 지 14년이 흐른 1979년까지 줄곧 소식이 끊겨 있던 외삼촌의 생존을 알리는 편지가 평양에서 왔고, 이후 외삼촌이 돌아가실 때까지 스스로의 피로 지문을 찍은 절규 가득한 편지가 끊임없이 날아왔다. (중략) 외삼촌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나는 흥분하여 소리쳤다. 내 삶은 이미 충분히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뿌리치고 또 뿌리쳐도 끈질기게 엉켜왔다. 그야말로 악몽이었다. 나중에는 편지봉투조차 뜯어보지 않게 되었다. (중략) 나는 ‘자이니치’로서 국가와 국가 사이에서 살아왔다. “한국(북한)과 일본이 전쟁을 한다면 어느 편에 서겠는가?”라며 사상검증의 잣대를 들이대는 오늘의 시대를 살며, 입을 열어야 할 때가 왔음을 느낀다.--- p.20~21 내가 태어나던 해(1959년)의 12월 14일, 제1차 귀환선인 크릴리온 호가 니가타新潟 항에서 출항했다. 이 ‘귀국사업’은 그 후 내 인생에 계속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즈음 ‘낙원천국 북조선’이라는 환상은 많은 재일조선인 가정을 사로잡고 있었다. 북으로 가면 살 곳, 입을 것, 먹을 것을 넉넉히 준다고들 했다. 일본에 사는 조선인 중 많은 이들이 사회주의국가 건설이 착착 진행 중인 북한에서는 일본에서 꿈도 꾸기 어려운 의식주, 의료, 직장, 학교 등을 손쉽게 접할 거라고 믿었다. 당시 자이니치들은 일본 국적이 없다는 이유로 국민건강보험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병이 들어도 마음 편히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을 처지가 못 되었다. 집을 얻는 일도 쉽지가 않았다(이는 아직까지도 근본적인 변화가 없다). 취직 역시 차별을 감수해야 했다. 북은 아직 건국 초기이니만큼 충분히 잘살지는 못하더라도 같은 조선인들과 어울려 차별 없는 사회에서 살아가리라는 생각이 많은 동포들을 귀국운동에 나서게 했다.--- p.24~25 말이 전학이지 전학통지가 제때 오지 않아 하루만 나간 학교도 있었고, 겨우 며칠만 다닌 학교도 있었다. 전학생은 이지메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전학 간 첫날의 승부가 중요하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오늘부터 같이 공부하게 된 니이야마新山 양입니다”라고 나를 소개한 후에 꼭 학급위원 옆자리에 앉힌다. 하지만 자리에 앉기 전에 해둬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은 ‘짱’과의 승부다. “잘 부탁합니다”라고 머리를 숙인 후, 곧바로 그 반에서 제일 뻐기고 있는 녀석 앞으로 가 다짜고짜 실내화로 그 녀석 머리를 후려친다. “잘 좀 봐줘라.” 아이들은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어리둥절해하며 한순간 분위기가 얼어붙는다. ‘짱’이 전학 온 여자애한테 당한 것이니, 난리가 난다. 그게 내 방식이었다. 대장을 때려놓으면 일단 당분간은 당하지 않는다. 그런 식으로 초등학교를 전전했다. --- p.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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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긋기의 역학을 넘어서(2004년 2월 일본 <아소시에> 12호에 게재된 박유하 교수의 서평)
“100년이 지나도 끝나지 않은 역사가 거기에 있다”, “식민지 지배는 아직도 ‘과거’가 아니다.”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하는 저자의 의식은 바로 이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이미 반세기 가까운 옛일이 되어버린 재일조선인들의 북조선/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귀국 (귀환)사업’과,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온 ‘탈북 난민’이라는 사태를, 저자는 자신의 개인사?가족사와 연결지어가며 쓴다. 언뜻 시기적으로도 공간적으로도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두 가지 일이 결코 서로 무관하지 않음이 읽어나가는 가운데 명확히 드러난다. 일찍이 ‘국가’를 찾아 ‘돌아갔던’ 사람들이 지금은 ‘국가’를 도망쳐 나와 ‘난민’이 되어 있다. 도대체 그곳에는 무엇이 있었던가. 21세기 초두 동아시아 지역에 사는 그 누구도 그 배후를 주시하는 이 책의 날카로운 물음에서 벗어날 수 없으리라.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일본과 한국과 북한의 틈새에 끼여 만신창이가 된 몸과 마음의 기록임과 동시에, 그 ‘내부’사회로서의 ‘자이니치’사회 또한 결코 마음 편안한 안식의 장소 따위는 아니었음을 안으로부터 고발하는 책이기도 하다. 재일조선인에게는 ‘국가’뿐만 아니라 ‘학교’도 ‘가정’도 ‘마음의 처형장’이었던 것이다. ‘마음의 처형장’에서 항상 과녁이 되어 있었던 것은 제일 먼저 여자들이었다. 1901년에 태어났다는 저자의 외할머니의 한/한숨이나 딸과 동반자살하려고까지 시도했던 어머니의 절망은 이 100년간의 조선 여인들의 한이다. 그것은 이윽고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조-중 국경지대에서 몸을 파는 북한 여자들의 한숨이 될 것이다. 그것은 또 일찍이 국가를 위해(병사들의 위안을 위해) 몸을 내놓아야만 했던 위안부의 한이기도 했을 것이다. 국가는 언제나 남자들을 이용하고, 남자들은 또 여자들을 이용한다. 그리고 여자들은 그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대신 그것을 내면화하고, 자신들의 딸들을 남자나 국가에 바쳐왔다. 거기에는 근대 이후 계속되어온 국가 우선, 가정 우선의 사고가 있었다. 물론 국가와 가정이 어디까지나 남자 중심이라는 점은 잊혀진 채. 그러나 저자가 더 강하게 비판하는 것은 친척들로 하여금 갑작스럽게 바다를 건너게 한 일본의 배제의식과 그것에 가담한 한국이나 북한 등 ‘국가’의 공모 쪽이다. 일본은 가난한 ‘자이니치’들을 내쫓으려 했고, 북한은 받아들일 만한 기반도 없는 채로 재일조선인을 받아들이는 것이 자기네 정권의 정통성을 증명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한국은 많은 ‘자이니치’들의 출신지가 남쪽인데도(97퍼센트) 그들을 받아들이려는 자세 없이, 그저 재일조선인들이 북으로 가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식이었다. 개개인의 행복이나 기본적인 인권보장에 대한 관심 같은 건 없고, ‘국가’로서의 체면을 어떻게 지킬까 하는 관심뿐이었던 것이다. ‘해방’ 후 한국에서 자란 사람들은 그러한 ‘국가’를 의문시할 계기를 갖지 못한 채 지금까지도 ‘국가’에 절대적인 신뢰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지금도 때때로 맹목적인 내셔널리즘으로 폭발하는 그와 같은 심정을 그저 웃고 넘길 일은 아니다. 그것은 ‘국가’―자신의 의지를 반영하는 수단?도구로서의 국가―를 20세기의 전반기에 잃어버렸다는 트라우마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아직 그 트라우마를 완전히 치료하지 못한 상태다. 그리고 재일조선인들의 ‘국가’ 지향도 역시 그 연장선에 있는 것으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이 책 곳곳에 등장하는 수많은 중얼거림, 날카롭고 까다로운 질문, 엄혹한 운명을 강요당했고 강요당하고 있는 사람들―북한에 건너가 죽어갔던 사람들, 살아남아 고통스러운 생활을 강요당하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목숨을 걸고 국경 너머로 강을 건너는 난민들, 더욱이 지금도 일본사회에서 치마저고리 교복을 찢기는 공포를 안은 채 등교하는 재일조선인 여학생들―에 대한 마음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내어야 할까. 이제 저자가 말하는 ‘받아들이는 쪽의 역량’이, 각각의 장에서 시험대에 오르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