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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1장 숙명, 가문 2장 미국을 떠나다 3장 보헤미안의 왕 4장 상속녀와 아나키스트 5장 본조 부부 6장 끝나는 것들과 시작되는 것들 7장 마흔 살, 돌파구 8장 새로운 인생 9장 구겐하임 죄느 10장 전쟁의 기운 11장 소장품의 시작 12장 금세기 예술 갤러리 13장 예술이 장미꽃 옷을 입을 때 14장 폴록 그리고 피긴 15장 금세기를 벗어나며 16장 전설이 되다 17장 베네치아의 영광 18장 예술 중독자의 고백 19장 마지막 날들 갤러리 소장 목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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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찬이 끝난 후 베케트는 그녀를 집까지 걸어서 바래다주겠다고 했으며, 페기는 그가 자기의 팔을 잡을 때 좀 놀랐다. 그는 페기가 임대하고 있던 아파트까지 데려다주었다. 그곳에 당도하자 베케트는 페기에게 자기와 함께 소파 위에 눕자고 했다. 그들은 침대로 가서 이튿날 저녁식사 때까지, 페기가 샴페인을 마시자고 하면 베케트가 그것을 가지러 나오는 것 말고는 줄곧 함께 침대에 있었다...며칠 후 페기는 몽파르나스의 정류장에서 베케트를 만나기로 하여 그에게 달려갔다. 만나자마자 그들은 침대로 가서 일주일 동안 그곳에 들어가 있었다. 페기는 이때를 "감격스럽게" 회상했다. 이때가 그들이 관계를 맺은 열세 달 중에서 유일하게 행복한 시간이었다. 페기는 "무엇보다도 그는 나를 사랑했으며 우리 둘은 지적으로 격앙돼 있었다"고 설명한다.
--- p. 220~2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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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까지만 해도 페기는 자신은 “결혼하지 않은 행복한 유부녀”라고 하더니, 겨울이 되서는 막스가 결혼하기를 거절하는 바람에 매우 안달하게 되었다. 그녀는 여기저기 여행을 다니며 막스의 마음을 돌리려 했지만 막스는 딴전을 피웠다...결혼을 하고 페기는 “안정감”을 얻었지만 이것이 두 사람의 언쟁을 멈추게 하지는 못했다. 특히 페기는 막스에게서 느끼는 거리감 때문에 상처를 받았다....돌이켜보면 막스는 처음에는 페기에게 관심이 있었지만 그에게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했던 그녀의 매력은 유럽을 안전하게 빠져나올 수단이었으며, 그렇게 해서 그림을 계속 그리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재정적으로 안정을 얻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었던 것 같다.
--- p. 305~3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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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가들은 곧 금세기 예술 갤러리에 중요한 위치를 부여하게 된다. 갤러리가 문을 닫은 지 10년이 지나서 루디 블레쉬는 가장 잘 팔린 현대미술서 중 하나인 그의 책에 이렇게 썼다. “온갖 미술관들과 온갖 활동들이 있었지만, 대공황을 견뎌내고 새로운 미국 미술이 태어나기 위한 진통을 겪었던 1942년에서 1947년까지 5년의 짧은 기간 동안 페기의 갤러리가 가장 중요한 것이었음은 거의 의심의 여지가 없다……. 조각품이 허공에 걸리고, 그림들이 보이지 않는 팔에 담겨 벽에서 나와 우리에게 다가오고, 마르셀 뒤샹이 필생의 역작을 옷가방에 담아 전시한 진열장 속을 들여다보면 축소된 사진들이 돌아가며 보이고, 테이블이 의자가 되고 의자가 전시대가 되던 그 기적적인 장소를 우리는 잊은 적이 없다."
--- p. 412~4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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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출간 의도
흔히 예술가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우리는 직접 예술 작품을 창작하거나 연주 또는 공연을 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생각한다. 화가의 경우 그림을, 음악가의 경우 작곡이나 연주를 그리고 작가의 경우 책을 놓고 그들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역사 속에는 이러한 예술가를 발굴하고 키워내어 예술사의 흐름을 새로이 만들거나 바꿔놓은 사람들이 있었으며, 그들이 예술계에 차지하는 비중이나 영향력은 작가들과 비교하여 결코 뒤처지지 않는다. 그런 후원자들의 혜안은 그 자체로도 또 하나의 예술사가 된다. 20세기 초 현대 미술계의 대표적인 후원가이자 수집가였던 페기 구겐하임은 뉴욕의‘구겐하임 미술관’의 창시자인 솔로몬 구겐하임의 조카딸로 그녀의 화려했던 삶은 20세기 서양미술의 산 역사라고 할 수 있다. 페기 구겐하임은 당시에 주목받지 못했지만 재능 있는 신예 화가 잭슨 폴록과 로버트 머더웰 등을 발굴하고 그들을 후원하여 미국 미술계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또한 미술품 수집에 열정적이었던 그녀는 신인 작가의 작품은 물론이고 자코메티, 파울 클레, 몬드리안, 데 키리코, 달리, 막스 에른스트, 이브 탕기 등 당대의 유명한 화가들의 작품을 수집하는 데 열을 올렸다. 심지어 화가들은 그녀가 자신들을 찾기를 기다리지 않고 먼저 그녀를 찾아가 아침 일찍 그녀의 집 문을 두드리기도 했다. 페기 구겐하임이 성장 가능성이 있는 작가를 발굴해내는 데 있어 탁월한 안목이 있었다는 것은 그 수집품의 현재 가치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녀의 수집품은 그녀가 사들일 때 가격에 비해 수 천 배 이상의 값어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물론 가격이 작품성과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페기 구겐하임은 보기 드물게 작품성과 사업성을 조화시킨 수집가로 평가받고 있다. 페기 구겐하임의 전기, 국내 첫 출간 이 책은 20세기 현대 미술계의 전설적인 컬렉터인 페기 구겐하임의 생애를 다룬 전기이다. 이 책의 저자인 메리 V. 디어본은 페기 구겐하임의 가족과 친구와의 인터뷰 그리고 방대한 자료 조사를 통해 명문가에서 태어났으나 자신의 주어진 삶에 안주하지 않고 스스로 삶을 개척하며 미술의 중심 무대를 유럽에서 미국으로 옮겨놓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한 여인의 삶을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선천적인 재능은 아니었지만 스스로 예술계에 몸을 던져 예술가들과의 교류를 통해 예술을 배우고 그들의 후원자 그리고 수집가로 성장한 그녀의 예술에 대한 열정을 꼼꼼하게 그리고 있다. 불행했던 어린 시절, 세 번의 결혼 실패와 미술 수집가로서는 성공했지만 엄마로서는 실패했던 그녀의 삶 그리고 마르셀 뒤샹, 이브 탕기, 사뮈엘 베케트, 막스 에른스트와의 교류와 정열적인 사랑, 이제는 전설이 되어버린 그녀의 성적 탐욕은 물론 그녀와 동시대를 살아간 많은 작가들의 알려지지 않았던 인간상을 생생한 시각으로 전하는 이 책은 독자들에게 또 다른 흥미를 제공할 것이다. 또한 돈 많은 상속녀의 예술 활동을 곱지 않은 시각으로 바라보았던 당시의 예술계의 풍토 속에서 잭슨 폴록이라는 미술계의 거장을 발굴해내었음에도 자신이 키워낸 예술가에 비해 주목을 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웠지만, 사랑했던 남자들에게서 끝내 진정한 사랑을 얻지 못했던 그녀의 외로웠던 삶을 이 책을 통해 그대로 엿볼 수 있다. 그동안 국내에 수많은 예술가들의 전기와 평전이 소개되었지만, 예술계의 무대 뒤에서 그들을 후원하고 재능 있는 예술가들을 발굴하고 키워내는 후원가와 수집가들의 삶을 조명한 전기가 출간된 적이 드물었다는 점에서 이 책이 갖는 의미는 크다고 볼 수 있다. 2. 페기 구겐하임의 삶과 예술에 대한 열정 1898년 스위스에서 미국으로 건너가 광산업으로 성공한“구리재벌”가에서 태어난 페기 구겐하임은 아버지 벤자민이 호화 유람선 타이타닉에 승선했다 침몰사고로 사망하자 어린 나이에 스스로 자기 진로를 결정해야만 했다. 파리로 건너간 페기는 작가인 로렌스 베일과 결혼하지만 곧 이혼하고 두 번째 남편인 존 홈스는 수술 중 사망한다. 이후 그녀는 수많은 염문을 뿌리며 오랜 방황의 세월을 보내다가 친구의 조언에 따라 화랑을 열어보겠다는 결심을 하고 런던에“구겐하임 죄느(Guggenheim Jeune)라는 화랑을 열었다. 오랜 친구였던 마르셀 뒤샹은 미술에 대한 열정이 있던 페기에게 여러 가지 조언을 해 주며 현대 미술에 대한 시야를 열어준다. 뒤샹은 그녀가 열 화랑의 전시 계획을 세워 주고, 당대 최고의 미술 평론가인 허버트 리드와 의논하여 좋은 수집을 위해서는 어느 작가의 어떤 작품을 반드시 사들여야 한다는 수집목록을 작성해 주기도 한다. 그러나 1939년 전 유럽을 뒤덮는 전쟁의 예감으로 페기는 일단 미술관 개관을 중단시켰으나 그림 수집은 계속된다. 그녀는 단 몇 달의 짧은 기간에 뒤샹이 적어준 목록 중 50여 점을 사들였다. 자코메티, 파울 클레, 몬드리안, 데 키리코, 막스 에른스트, 살바도르 달리, 르네 마그리트, 브랑쿠시 등등 당대를 대표하는 현역 작가들의 작품이었다. 1941년 봄, 독일군이 프랑스를 완전 점령하기에 이르자 페기는 그림 수집을 중단하고 뉴욕으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이 무렵 독일 국적의 막스 에른스트와의 조건부 결혼은 그녀가 기대했던 행복과 안정을 주지 못했다. 미국 땅에서 적국의 시민인 막스에게 그가 추방당하지 않을 유일한 길은 자기와 결혼하는 것뿐이라고 페기는 그를 협박했던 것이다. 결국 그녀는 막스의 사랑을 받지 못한 좌절감으로 2년을 채우지 못하고 결혼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만다. 막스와의 결혼이 실패로 끝난 후 페기는 그녀의 안식처인 미술로 돌아오게 된다. 페기는 이후 뉴욕에서 <금세기 예술(Art of This Century)> 화랑을 개관한다. 오프닝은 각계 유명인사로 초만원을 이뤘고 페기는 초현실주의와 추상파에 대한 중립적 입장을 보여주는 특유의 위트로 한쪽 귀에는 이브 탕기가 만든 귀걸이를, 다른 한쪽 귀에는 알렉산더 콜더가 디자인한 귀걸이를 달고 나타났다. 그러던 중 남편이었던 막스의 결혼소식을 접한 페기는 초현실주의에 깊은 회의감을 느끼고 젊은 작가들에게 눈을 돌려 그들을 발굴하고 후원하기 시작한다. 그 중 잭슨 폴록과 로버트 머더웰은 페기도 예상하지 못했을 정도로 20세기 현대 미술사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1946년 전쟁이 끝나자 그녀는 새로운 삶의 에너지를 찾아 베니스로 간 후 뉴욕 화랑의 문을 닫고 그곳에 정착했다. 베니스 정착 후 사교계의 스타의 나날을 보내던 페기는 친구의 권유로 자신의 소장품을 1948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전시했다. 그 해 페기의 전시회는 현대 미술의 국제적 감각을 대표하는 뛰어난 수집품이라는 극찬을 받았다. 이후 페기는 평생 서로 경쟁의식과 불화의 관계를 가졌던 그녀의 숙부가 세운 뉴욕의“솔로몬 구겐하임 미술관”에 모든 소장품을 기증했다. 81회 생일을 많은 축하객에 둘러싸여 화려하게 치른 후 페기는 심장마비로 쓰러져 1979년 사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