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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어디에도 종속되지 않은 자유로운 삶
2장 탐험의 시대, 열광의 시대 3장 신학교에서 보낸 어두운 청년시절 4장 시대를 밝히는 위대한 스승의 초상 5장 종교의 르네상스를 꿈꾸던 시절 6장 인문주의의 위대성과 한계 7장 투쟁가의 천성을 타고난 루터와의 갈등 8장 종교전쟁에서 중립을 지키려는 고독한 투쟁 9장 루터와의 위대한 논쟁 10장 에라스무스의 패배와 방랑 11장 에라스무스의 유산 |
Stefan Zwei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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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라스무스는 우리가 사랑하는 많은 것, 문학과 철학, 책과 예술작품, 여러 언어와 민족을 사랑했다. 그리고 더욱 숭고한 과제인 교화를 위해 모든 인류를 차별없이 사랑했다. 그러나 그는 이 땅에서 단 한 가지만을 이성에 반하는 것이라며 증오했다. 그것은 광신이었다. 모든 인간 중에서 가장 비광신적인 사람, 아마도 가장 높은 등급의 정신은 아니더라도 가장 폭넓은 지식, 결코 요란하지 않은 관용의 마음, 진정 성실한 선의의 마음 자체였던 에라스무스는 모든 형태의 편협한 성향에서 우리 세계에 유전되는 질환을 인식하였다
--- p.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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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나라에도 정주하지 않았고 머무는 곳은 모두 고향으로 알고 지낸, 최초의 의식있는 세계주의자이자 유럽인이었던 그는 결코 다른 나라에 대한 어느 한 나라의 우월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모든 국가와 인종, 계층으로부터 선별한 고결한 사람들을 커다란 교양인 공동체로 불러모으는 것, 이 숭고한 시도를 그는 자기 삶의 본래 목표로 받아들였다.
--- p.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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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라스무스의 개인적 비극은 모든 인간 중에 가장 비광신적이고 반광신적인 바로 그가, 초국가적 이념이 승리를 확신하며 처음으로 유럽을 밝게 비추던 바로 그 순간에, 역사가 알고 있는 한 가장 난폭하게 터져나온 국가 종교의 대중적인 열광 속으로 휩쓸려 들어갔다는 데에 있다.
--- p.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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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라스무스의 삶과 인문주의
1486년에 태어났으리라 짐작되는 근친상간의 사생아 에라스무스. 신부의 아들 에라스무스는 아홉 살 때 수도원 학교에 보내진다. 1488년 그는 스테인의 아우그스티누스회 수도원에서 수도 서원을 한다. 그곳에 독일에서 가장 훌륭한 고전 도서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에라스무스는 일생 동안 종교 예복을 입은 모습을 거의 보이지 않는다. 에라스무스는 자기를 억압하는 모든 것을 드러나지 않는 조용한 방식으로 처리하고 자기 내면의 자유를 방어할 수 있는 처세술을 터득하고 있었다. 그는 스물 여섯이 되어서야 수도원을 빠져 나온다. 카브레 주교의 이탈리아 여행을 수행하는 라틴어 비서로 자신을 초빙하도록 만든다. 한번 자유를 맛본 그는 장학금을 주어 자기를 파리로 보내 주면 신학 박사 학위를 취득해 오겠다며 주교를 괴롭힌다. 그는 끊임없이 모든 나라를 돌아다닌다. 그의 철학적 성향에는 이 방황과 방랑이 집과 고향보다 더 가치있다. 권력의 그늘 아래서도 모든 책임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영향을 주고 조용한 방에서 책을 읽는 것, 그리고 글을 쓰는 것, 어느 누구의 하인도 되지 않는 것, 이것이 에라스무스 본래의 인생목표였다. 영국에서 그는 예술가로서, 지식인으로 최상류 사회에서 인정받는다. 세계 시민, 세계인인 에라스무스의 사랑은 지식과 문화, 교육과 책이 지배하는 곳이면 어디에나 존재한다. 에라스무스의 명성은 그의 나이 마흔과 쉰 사이에 단순한 문학적 혁명으로부터 벗어나 비교할 수 없는 거대한 힘이 된다. 그는 용감하게 그 힘을 세계사적인 행동을 위해 사용할 수도 있지만, 그러나 행동은 그의 세계가 아니었다. 그가 씨를 뿌린 종교개혁의 열매는 다른 사람들이 수확할 것이었다. 사람들은 그를 만물 박사, 학문의 군주, 고귀한 신학의 보호자, 세상의 빛으로 칭송한다. 바젤은 그가 있음으로 해서 하나의 성, 세계의 정신적 중심이 된다. 츠바이크의 예리한 시선은 에라스무스의 삶을 추적하면서 에라스무스가 일생 동안 잃지 않았던 자세, 바로 그 중립의 자세를 그대로 유지한다. 츠바이크는 균형을 잃지 않고 에라스무스의 위대함과 단점을 공정하게 서술한다. “난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는다.” 이러한 자신의 좌우명을 마지막까지 고수하며 에라스무스는 자기 자신만을 대표하는 사람이라는 자세를 끝까지 지킨다. 그러나 언제나 행동을 결정하는 결단력이 부족한 것이 에라스무스의 비극이었다. 에라스무스는 정신과 이념에서는 승리했으나 현실에서는 패배했다. 그러나 세속의 유혹을 뿌리치고, 기독교의 독단과 편협성, 광신과 폭력에 맞서 화합과 조화를 추구한 에라스무스는 역사 속의 승리자였다. 츠바이크는 종교개혁과 관련해 에라스무스 주변의 인물들 특히 루터, 후텐 등과의 관계를 밀도 있게 그린다. 독자에게 그의 삶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준다. 그리고 동시에 인간 관계의 긴장감으로 흥미가 더해진다. 에라스무스는 현재 광기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평화와 화합의 정신을 일깨워준다. 시대와 공간을 뛰어 넘어 우리에게 진정한 인간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준다. 츠바이크의 거울 에라스무스 이 작품이 간행된 1934년은 히틀러가 권력을 장악하여 제국 총리가 된 지 1년이 지난 시기이다. 평화와 자유를 갈구하는 휴머니스트 츠바이크는 나치라는 독선적 광신자들의 움직임을 결코 용인할 수 없었다. 1935년, 츠바이크는 나치를 피해 망명했다. 나치는 그의 작품을 금서로 묶었다. 츠바이크는 망명 전, 에라스무스의 모습을 빌려 자신의 사상적 입장과 신념을 밝힌 것이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단순한 평전이나 전기소설만은 아니다. 이 소설은 혼돈의 시대를 통과해야 했던 작가 츠바이크 자신의 내면적 자화상이며 정신적 상흔의 기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