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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안’ 싸우거나 ‘잘’ 싸우거나 |전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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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끝에 두 여자를 만났다. 더없이 사랑스러우나 사랑할 수 없어서 아름답고, 아름다우나 아름다움만으로는 존재의 절반도 설명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그녀들. 냉방병에 시달리며 분별 없이 쿨럭거리던 내게 서늘한 바람처럼 불어와 뻑적지근한 문명의 열병을 다소곳이 식혀준, 자연냉각수 같은 그녀들. 우연히, 한꺼번에 조우하게 된 그녀들 덕분에 무기력하게 보낸 지난 여름이 갑자기 의미심장해진다. 아름다운 여인이란 그런 존재다. 가장 극렬하게 세상과 맞서면서도 절정의 한순간 세상의 복판에서 살짝 비껴서 한없이 공허해진 눈빛만 아롱아롱 반짝이는 순한 야수성의 현현.
그녀들은 인간의 가혹한 정념 한가운데서 비로소 자신의 아름다움을 빛내지만, 그 아름다움의 진원지를 돌아보면 그녀들은 늘 세상의 외곽에 길들여지지 않은 짐승 새끼처럼 머물러 있다. 우리가 냄새 맡는 아름다움은 그 작은 외곽에서 흘러와 거대한 중심을 휘감아 도는, 냉엄한 듯 푹신푹신한 야성의 향기다. 그 보기 드문 야성녀들의 이름은 스밀라와 금자 씨이다. --- p.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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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5년 1월부터 올해 2월까지 한국일보에 연재했던 칼럼들을 모았다. 연재를 하는 동안 10년 만에 두 번째 시집을 묶었고, 살이 많이 불었으며, 두 명의 애인을 떠나보냈다. 20세기 말의 10년 동안 마셨던 양의 딱 두 배만큼의 술을 2년 만에 마셔버렸다. 그 와중에 홍대 앞 술집을 같이 전전했던 선배 및 친구와 연재가 끝날 무렵 잠정적으로 결별했다. 신문사에서 적잖게 보내준 원고료의 절반 이상을 술값으로 날렸다. 그러고 다시 수개월, 그 이전의 딱 두 배만큼의 술을 더 마시다가 간신히 술을 줄이게 될 무렵, 이 책이 나오게 되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시든 무엇이든 쓴다는 일이 한정식집 식탁에 잔뜩 차려진 반찬들을 소리소문 없이 비우는 무심한 호흡법과도 같다는 걸 깨닫는다. 내가 비워낸 그릇들이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들의 식탁에서 다른 반찬을 담고 올라와 있을 걸 생각하니 문득 배가 고프다. 그러나 내가 먹고 싶은 건 음식이 아니라 영원히 가질 수 없는 누군가의 마음이다. 아마도 이 굶주림 때문에 연재 기간 동안 마감 직후면 그토록 술을 찾았나 보다. 절주할 줄 알게 된 내가 문득, 대견스럽다. 이제, 맛있게, 소리소문 없이 술잔을 비울 수 있을 듯하다. 파격적일 정도로 큰 연재 지면을 준 한국일보와 최윤필 기자, 횡설수설과 오만불손 아니면 문맥이 안 보이는 글들을 애써 읽어주신 독자들, 그리고 이 책을 누군가에게 선물하고 그 선물을 흔쾌히 거두어줄 미래의 독자들께 감사하다는 인사 전한다. 다 쓰고 나면 하고 싶은 말의 절반도 못했다는 후회가 늘 드는 건 일종의 직업병이라 간주하고 쓴잔을 달게 받아먹는 공력에 대해서나 곰곰 궁구하겠다. --- 2006년 겨울 서교동에서 강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