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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계절의 멋
봄은 동틀 무렵. 산 능선이 점점 하얗게 변하면서 조금씩 밝아지고, 그 위로 보랏빛 구름이 가늘게 떠 있는 풍경이 멋있다. 여름은 밤. 달이 뜨면 더할 나위 없이 좋고,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도 반딧불이가 반짝반짝 여기저기에서 날아다니는 광경이 근사하다. 반딧불이가 한 마리나 두 마리 희미하게 빛을 내며 지나가는 것도 운치 있다. 비 오는 밤도 좋다. 가을은 해 질 녘. 석양이 비추고 산봉우리가 가깝게 보일 때 까마귀가 둥지를 향해 세 마리나 네 마리, 아니면 두 마리씩 떼 지어 날아가는 모습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기러기가 줄지어 저 멀리로 날아가는 광경은 한층 더 정취 있다. 해가 진 후 바람 소리나 벌레 소리가 들려오는 것도 기분 좋다. 겨울은 새벽녘. 눈이 내리면 더없이 좋고, 서리가 하얗게 내린 것도 멋있다. 아주 추운 날 급하게 피운 숯을 들고 지나가는 모습은 그 나름대로 겨울에 어울리는 풍경이다. 이때 숯을 뜨겁게 피우지 않으면 화로 속이 금방 흰 재로 변해 버려 좋지 않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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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는 없던 수필이라는 새로운 문학 장르를 개척했다.
당시 여성은 황족 이외에는 이름조차 부여되지 않을 정도로 존재감이 희박했다. 철저한 남성 중심의 사회 구조 속에서 귀족 여성이 사회적인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천황의 자녀, 즉 친왕이나 내친왕의 유모가 되거나 천황비(妃)의 여방이 되어 입궐하는 것뿐이었다. 헤이안 시대 9세기 중반에 섭관 정치를 실시하며 세력을 키워 가던 후지와라 가문은 10세기 이치조 천황 때 최고 전성기를 이룬다. 특히 미치타카는 자신의 딸인 데이시를 이치조 천황의 중궁으로 삼고 권력을 공고히 했는데 그때 데이시 중궁 밑에 세이쇼나곤 같은 당대의 재능 있는 중류 귀족 여성을 여방으로 뽑아 문예를 이끌도록 했다. 세이쇼나곤은 어릴 때부터 와카와 한시문을 익혀 문학적인 소양은 이미 갖추고 있는 상태였지만, 미치타카에 의해서 궁궐로 출사하게 된 것이 재능을 발휘하는 큰 계기가 되었다. 그렇게 자신을 꿈에서나 그릴 수 있는 궁궐로 불러 준 주군인 미치타카와 데이시 중궁을 위해서 세이쇼나곤은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중궁으로부터 양질의 종이를 하사받은 그녀는 역시 데이시 중궁과 중궁을 둘러싼 사람들의 아름답고 흐뭇한 장면을 그려서 후대에 남기고자 마음먹었을 것이다. 세이쇼나곤은 자신이 보고 들은 것 중에서 인상적이고 흥미로운 장면을 골라 어떤 전통이나 규칙에도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고 솔직하게 쓰고자 했다.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던 세이쇼나곤에게는 주특기가 있었다. 전통적인 와카나 일기 속에 나오는 정형화된 소재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으로 우아하고 세련된 귀족 문학에서는 거의 거론되지 않았던 실생활의 소소한 것들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극대화한 것이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외부 세계에 대해서 활발하게 움직이는 강한 호기심, 그것이 ≪베갯머리 서책≫을 쓰는 데 큰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매일같이 세이쇼나곤의 눈에 비치고 귀에 들어오는 다양한 모습들. 그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흥미로운 풍경과 현상, 그리고 아 맞아 하고 무릎을 칠 만한 발견, 자신도 모르게 흐뭇해지는 감동, 평소에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던 것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했을 때의 기쁨. 그러한 것들이 ≪베갯머리 서책≫의 문장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세이쇼나곤의 간결하면서도 직설적인 문장은 당대의 다른 문학 작품?특히 여류 문학 작품?에서는 볼 수 없는 독창적인 것이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내숭 없이 솔직하게 내지르듯이 표현하는 문장이 통쾌함마저 느끼게 한다. 세이쇼나곤의 문장법의 본질은 옷자락의 바늘땀과 머리카락의 한 올까지도 잡아내는 극도의 리얼리즘이었다. 대부분의 헤이안 귀족들은 있는 사실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을 부담스럽게 느꼈고 은유적이고 상징적으로 표현해서 은근슬쩍 넘어가는 것을 좋아했다. 새로운 미의 세계를 향해 재빠르게 작동하는 예민한 호기심. 그리고 그것을 생생하게 묘사해 내는 뛰어난 문장력. 이 두 가지가 ≪베갯머리 서책≫을 만드는 실제적인 요인이었다고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