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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서문
실종 체포 탈출 파리 도착 장군과 시대정신 피카소와 브라크가 만났을 때 카페부르바키의 업적 부르바키의 지배 레비-스트로스와 구조주의의 탄생 언어학적 기원 심리학, 정신의학, 경제학에서의 구조주의 울리포 그로텐디크와 고등과학연구소 부르바키의 죽음과 유산 주석 감사의 말 참고 문헌 찾아보기 |
Amir D. Acz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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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8월의 어느 날. 가장 통찰력이 뛰어난 20세기의 수학자로 꼽히며 직관력과 지성은 아인슈타인과 비교되던 알렉상드르 그로텐디크는 자신이 쓴 수학 원고 2만 5,000페이지를 불사르고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집을 떠나 피레네 산맥 속으로 홀연히 사라졌다. --- p.17
니콜라 부르바키는 도대체 어떤 인물인가? 왜 그의 연구가 현대 수학에서 그토록 중요한 평가를 받는 것인가? --- p.78 구조주의라는 새로운 철학 사상은 1940년대 후반 그로텐디크가 참석했던 파리의 세미나들에서 태동했다고 볼 수 있다. 창시자들은 앙드레 베유, 클로드 슈발레를 비롯해 그가 파리에서 만났던 거의 모든 교수였다. 파리의 카페 생활을 주도한 사람들 중에는 철학자와 작가, 예술가뿐이 아니라 수학자도 있었다. 근현대사에서 수학이 문화 전반에 걸쳐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한 것은 아마도 이때가 처음이 아닌가 싶다. 먼 옛날 고대 그리스에서 딱 한 번 그랬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 p.88 회의는 고성이 오가고 다른 사람의 발언을 자르는 등 혼란스럽게 진행되었으나 놀랍게도 회의가 끝날 무렵이면 의견 일치를 보곤 했다. 여러 차례 회의가 계속되면서 그들의 프로젝트는 점점 성과를 보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연구 범위를 더 확대하길 원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더 많은 것을, 처음보다 훨씬 많은 것을 원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실제로 이들이 단지 수학 강의계획서만 만들었다면(그것만으로도 야심찬 계획이었지만) 역사에 그렇게 대단하게 기록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연구자(진지한 연구자건 그렇지 않건), 공공 교육기관에서 가르치길 원하는 사람, 물리학자, 그 밖의 과학자를 포함해 모든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책을 써야 한다. 평균 지능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 책 또는 그중 중요한 부분들을 독학으로 공부할 수 있도록 쓰는 걸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최대한 강력하고 보편적인 도구를 제공해야 한다. 유용성과 편의성이 우리의 안내 지침이 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모든 대학에서 가르칠 만한 수학 강의계획서의 표준을 만드는 동시에 온갖 분야(수학의 여러 분야 외에 그 밖의 응용과학 분야까지)의 종사자들뿐 아니라 ‘평균적 지능’을 가진 보통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한다는, 서로 이질적인 일련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위원회는 그 기능을 항시 발휘할 수 있는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여러 소위원회를 두어 각각 임무를 배정했다. 해당 주제에 전문 지식과 관심을 가진 두세 사람으로 소위원회를 구성하고 간사도 임명했다. 또 책을 출판하는 데 필요한 경비를 조달하기 위해 자금도 모았다. --- pp.131-132 이전에 개발된 개념이 꽃을 피우려면 적절한 사람이 나타나 그것을 제대로 파악해 실용화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있다. 1942년 구조 개념에도 바로 이런 일이 일어났다. 위대한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는 언어학자 로만 야콥슨에게서 배운 구조를 인류학에 적용하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그러려면 구조의 수학적 기초를 이해하는 게 필요했는데, 부르바키가 그것을 제공했다. 1942년 레비-스트로스는 뉴욕에서 앙드레 베유와 만났다. 이 만남은 그가 친족 관계kinship에 대해 연구하던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계기가 되었다. 베유는 구조(사실은 위에서 언급한 수학적 군의 구조)를 사용해 레비-스트로스의 문제를 해결했다. 그리하여 구조라는 수학적 개념을 인류학으로, 그리고 다른 분야들로 옮겨갈 수 있게 해주었다. 따라서 부르바키는 구조라는 강력한 개념을 자유롭게 풀어놓는 결정적 기여를 한 것이다. 이 중요한 발전이 일어난 뒤로 우리의 문화는 이전과 완전히 달라졌다. --- pp.149-150 피에르 카르티에, 아르망 보렐, 알렉상드르 그로텐디크 등이 포함된 3세대는 수학을 하는 새로운 방법이 낡은 방법보다 더 낫다는 것을 증명할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이미 새로운 사고방식으로 수학을 배운 사람들이었다. 부르바키가 제창한 구조주의와 그들이 강조한 엄밀성과 추상성은 이미 수학계에서 대세를 이루고 있었다. 3세대 가운데 일부는 고등학교까지는 비효율적인 낡은 방식으로 수학을 배웠지만 고등사범학교와 파리의 다른 대학들에서 부르바키의 방식으로 수학을 배웠다. 따라서 3세대 부르바키는 독단적이지 않았고 어떤 것을 증명해야 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이 세대의 수학자들은 앞선 두 세대가 진행한 연구를 계속 이어가기만 하면 되었다. 부르바키의 업적은 이미 명백하게 알려져 있었고 부르바키 방식은 프랑스를 지배하고 있었다. 세계적으로도 수학자들은 부르바키가 일궈낸 성과에 큰 관심을 보였다. 그들도 새로운 방법을 연구했고 프랑스 수학자 집단이 개척한 접근 방법을 사용해 새로운 결과들을 얻고 있었다. 집합 개념을 사용해 접근하는 ‘새로운 수학’은 세계 여러 나라의 고등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주된 방법으로 자리 잡았다. --- pp.169-1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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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주의를 탄생시킨 20세기 수학 혁명의 파노라마
“이 책은 현대 수학의 역사에 관한 보고이자 구조주의 운동 역사에 대한 충실한 기술이다. 그동안 구조주의에 대한 연구는 언어학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거기에 수학이라는 또 하나의 기둥이 있었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레비-스트로스의 예가 보여주듯이 구조주의 운동은 언어학이 발견한 구조의 개념을 수학으로 형식화하여 다른 분과 학문에 적용시킨 하이브리드 전략의 선물이었다. 나아가 그 전략은 학문의 영역을 넘어 현대의 예술과 문학에까지 확장되었다. 그렇게 풍부한 결과를 낳은 위대한 정신적 창조의 바탕에 수학이 깔려 있었음을, 저자는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_ 진중권(비평가 / 동양대학교 교수) 부르바키는 어떻게 20세기를 지배하는가 20세기 학문과 예술에 영감을 불어넣은 천재 수학자 부르바키 이야기 프랑스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를 뒤흔들었던 사조가 있다. 사람들은 이 사조를 ‘포스트모던’이라는 부정확한 이름으로 부르는가 하면 그에 만족하지 못한 이들은 ‘포스트구조주의’라고 부르기도 했다. 뭐라고 부르든 이 사조가 그에 앞서 일어났던 ‘구조주의’ 운동의 필연적 귀결이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구조주의에 대한 거부이자 연장이었다. 그런데 20세기 후반의 정신세계를 각인한 구조주의 운동이 실은 한 사람의 천재 수학자와 깊이 연관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20세기가 낳은 가장 위대한 수학자 니콜라 부르바키 폴데비아 과학아카데미 소속으로 1930년대 세계무대에 등장해 수학에 엄밀성을 도입하고 수학적 증명에 관한 현대적 관념을 창안하여 현대 수학의 기초를 놓은 천재 수학자 니콜라 부르바키. 현대 수학자들 가운데 그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거의 없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의 영향력이 수학의 영역에만 한정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의 이론은 구조주의 같은 인문사회과학의 사상운동은 물론이고 ‘울리포’를 비롯한 현대 예술의 실험에도 큰 영향력을 끼쳤다. 하지만 이 위대한 수학자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았던 가상의 인물이라면? 가상의 수학자 20세기의 위대한 수학자 니콜라 부르바키는 허구로 창조된 유령이었다. 그의 조국 폴데비아 역시 실재하지 않은 가상의 나라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실존 인물과 똑같이 프랑스 과학아카데미에 논문을 발표하고 딸을 비롯해 가족, 친척은 물론 세례명, 그 밖의 다른 개인 이력들도 갖추고 있었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사실 ‘니콜라 부르바키’는 개인의 이름이 아닌 철학자 시몬 베유의 오빠이기도 한 앙드레 베유, 직관력과 지성이 아인슈타인에 비견되던 알렉상드르 그로텐디크를 비롯하여 프랑스의 대표적인 수학자들이 모여 만든 저자 집단의 이름이다. 부르바키와 구조주의의 탄생 1950년대 프랑스 지성계는 ‘3H’로 불리는 헤겔의 관념론, 후설의 현상학, 하이데거의 실천철학으로 대변되고 있었다. 이 책의 저자인 아미드 D. 악젤이 전후 프랑스 철학을 지배하던 사조로 든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철학 역시 이 세 흐름, 특히 하이데거의 연장선 위에 서 있었다. 여기에 결정적인 변화의 계기를 마련한 것이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가 쓴 《친족의 기본 구조》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이 책에서 그가 채택한 방법론은 곧바로 거의 모든 정신 영역에 받아들여져 ‘구조주의’라는 거대한 사상운동의 도화선이 된다. 당시 벌어진 패러다임의 전환을 푸코라면 아마도 ‘역사주의적 에피스테메에서 구조주의적 에피스테메로의 전회’라고 불렀을 것이다. 이 전회는 주로 소쉬르, 야콥슨, 트루베츠코이 같은 언어학자들의 영향으로 이우어진 것이라고 알려져 있을 뿐, 부르바키의 수학이 발휘한 결정적 역할에 대해서는 아는 이가 거의 없다. 아미르 D. 악젤은 부르바키의 수학자들, 특히 앙드레 베유가 ‘구조’라는 개념의 수학적 기초를 제공함으로써 어떻게 인문사회과학에 기여했는지에 대해 상세히 보여준다. 부르바키라는 우아한 지적 농담 수학자들의 치기 섞인 장난처럼 보이기까지 하는 부르바키라는 인물은 롤랑 바르트가 말한 ‘저자의 죽음’이라는 관념의 선취이기도 하다. 널리 알려진 대로 구조주의는 요소보다는 구조, 개인보다는 체계의 우위를 주장한다. 그런 점에서 수학의 발전에서 중요한 것은 개별 수학자의 능력이 아닌 여러 수학자의 협업 구조인지도 모른다. 부르바키 수학자들은 부르바키의 이름으로 발표될 논문의 내용을 치열한 논쟁을 거쳐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그런 점에서 부르바키라는 가상 인물은 그저 재미있는 조크가 아닌 구조주의적 관점에서 본 학문의 이상이었는지도 모른다. 《수학 미스터리, 니콜라 부르바키》는 부르바키라는 위대한 천재 수학자의 탄생과 죽음(?)의 과정 속에 얽힌 흥미진진한 비화를 담고 있다. 15개국에 번역 출판된 《쉽게 읽는 페르마의 정리》를 비롯해, 난해한 수학 원리나 과학적 개념을 독자들이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풀어내 전 세계 독자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저자 특유의 문체가 이 책에도 고스란히 살아, 마치 미스터리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도 이 책의 또다른 재미다. 또한 한국과학기술도서 번역상을 수상한 바 있는 옮긴이의 꼼꼼한 번역 솜씨가 더해져 독자들은 재미있지만 어려웠던 양질의 번역 교양서를 좀더 편안하게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평소 추천사 잘 안 쓰기로 유명한 진중권 교수가 이 책의 추천 서문을 쓴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