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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과 그 형제들 2
청년요셉 (토마스 만 장편소설)
살림출판사 2001.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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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저자 소개 1

토마스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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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mas Mann

1875년 북독일 뤼베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토마스 요한 하인리히 만은 곡물상이자 시의회 의원이고, 어머니 율리아는 반은 포르투갈계이고 반은 크레올계인 남부 출신으로, 그는 아버지에게는 북독일적인 이성과 엄격한 도덕관을, 그리고 어머니에게는 남국인의 정열과 예술적인 재능을 물려받았다. 그는 소위 니체가 말하는 [아폴로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모순]을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것이다. 토마스 만의 유년 시절은 부유하고 행복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회사가 정리되면서 가족들은 거기서 나오는 이자로 생계를 꾸려 나가게 된다. 학교생활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토마스 만은
1875년 북독일 뤼베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토마스 요한 하인리히 만은 곡물상이자 시의회 의원이고, 어머니 율리아는 반은 포르투갈계이고 반은 크레올계인 남부 출신으로, 그는 아버지에게는 북독일적인 이성과 엄격한 도덕관을, 그리고 어머니에게는 남국인의 정열과 예술적인 재능을 물려받았다.

그는 소위 니체가 말하는 [아폴로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모순]을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것이다. 토마스 만의 유년 시절은 부유하고 행복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회사가 정리되면서 가족들은 거기서 나오는 이자로 생계를 꾸려 나가게 된다. 학교생활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토마스 만은 일찍부터 글쓰기를 시작했는데, 1893년에는 산문 습작을 했으며, 자신이 발간하는 『봄의 폭풍우』지에 글을 기고했다. 토마스 만은 다니던 김나지움을 그만두고 가족이 이미 1년 전에 이주한 뮌헨으로 가서 화재 보험 회사에 취직해서 일을 시작하지만, 곧 회사를 그만둔다.

그리고 1895년에서 1896년까지 뮌헨 공과대학에서 미학, 예술 문학, 경제 및 역사 강의를 들었다. 그 시절, 김나지움 시절부터 이미 그를 사로잡았던 슈토름, 헤르만 바르, 폴 부르제, 헨리크 입센 등을 탐독하였고, 직접 『짐플리치시무스』지를 편집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1901년 첫 장편소설 『부르덴브르크 가의 사람들』을 발표하면서 국내외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으며, 이 무렵 단편소설들을 모아 단편집『토니오 크뢰거』(1903)도 발표하였다.

1905년 뮌헨 대학교 수학 교수의 딸인 카타리나(카챠라는 애칭으로 불림) 프링스하임과 결혼하여 3남 3녀가 태어났다. 하지만 토마스 만의 가족들에게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었다. 토마스 만의 두 여동생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듯이, 아들 클라우스 만이 자살했고, 막내 미하엘 만도 신경안정제 과용으로 의문사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에서 미국으로 탈출하다가 남편을 잃은 모니카 만은 정신병에 시달리기도 했다.

1912녀 폐병 증세가 있어 부인이 다보스 요양원에 입원했다. 그러나 문병을 간 토마스 만은 그곳의 분위기와 그곳에 체류하는 손님들의 모습뿐만 아니라 자신이 직접 느낀 인상에도 매료되었는데, 이런 체험을 글로 쓰기 시작, 점점 방대해져 12년 후에 완성된 것이 『마(魔)의 산』이다.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그는 창작을 중단하고, 평론집 『비정치적 인간의 성찰』(1918)과 같은 정치 평론을 발표했다. 전쟁 초기 독일 문화와 독일 시민 계층의 와해를 걱정하며 국수주의적 입장을 보이며 형 하인리히 만과 불화를 겪게 되지만, 평론「독일 공화국」(1922)을 통해 민주주의와 시민 계급에 대해 옹호하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러던 중 1929년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

1931년 히틀러가 총통에 취임한 이후 나치에 협조하지 않은 작가들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1933년 바그너 서거 50주년이 되던 날, 토마스 만은 뮌헨 대학에서 [리하르트 바그너의 고뇌와 위대성]이라는 제목으로 연설을 했다. 이 연설을 끝으로 그는 망명의 길을 떠나게 되었다. 1935년에는 나치 정권에 대해 공개 반박을 하기에 이르렀고, 1938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로 이주, 프린스턴 대학의 객원 교수가 되어 나치 타도를 부르짖었으며, 1944년 미국 시민권을 얻었다.

1949년 괴테 탄생 200주년 기념 강연 청탁으로 16년 만에 독일 땅을 밟았지만, 고국으로 돌아가진 않았다. 토마스 만은 현실의 공산주의에는 찬성하지 않지만, 사회주의의 기본 이념인 사회적 평등을 존중했다. 그래서 구동독 정권에 대해 분명하게 거부 의사를 밝혔음에도, 매카시 위원회는 그를 공산주의자로 몰아붙였다. 이에 환멸을 느낀 토마스 만은 1952년 미국을 떠나 스위스 취리히로 향했다. 1955년 동독 및 서독에서 F.실러 사망 150주년 기념강연을 하고, 고향 도시 뤼베크의 명예시민이 되어 스위스로 돌아왔지만, 혈전증 진단을 받아 8월 12일 81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취리히 근교 킬히베르크 교회 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저서로는 『키 작은 프리데만 씨Der kleine Herr』(1897),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Buddenbrooks』(1901), 「트리스탄Tristan」(1903), 「굶주린 사람들Die Hungernden」(1903), 「글라디우스 다이Gladius Dei」(1903), 「토니오 크뢰거」(1903), 「신동Das Wunderkind」(1903), 「벨중족의 혈통」(1905), 「피오렌차Fiorenza」(1906), 「대공 전하」(1909), 「베네치아에서의 죽음Der Tod in Venedig」(1912), 「주인과 개Herr und Hund」(1919), 『마의 산Der Zauberberg』(1924), 「무질서와 젊은 날의 고뇌」(1926)등이 있으며, 『요셉과 그의 형제들』(1943)는 1926년에 쓰기 시작해서 1943년에야 비로소 완간되었다.

또한 『바이마르의 로테Lotte in Weimar』(1939), 『파우스트 박사Doktor Faustus』(1947), 『선택받은 사람』(1951), 「속은 여자Die Betrogene」(1953)가 있으며, 1910년부터 쓰기 시작한 『사기꾼 펠릭스 크룰의 고백Die Bekenntnisse des Hochstaplers Felix Krull』은 1954년 [회상록 제1부]라는 제목이 덧붙여져 출간되었으나, 결국 이 소설은 그의 미완성작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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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1년 11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454쪽 | 565g | 128*188*30mm
ISBN13
9788952200662

출판사 리뷰

토마스 만의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은, 4부작으로 되어있는 그의 장편소설 『요셉과 그 형제들』이다. 이 작품은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인류 서사문학의 한 극점(極點)이기도 하다.
- 안삼환(서울대교수. 독문학)

■ 순수 집필기간 13년, 준비기간 16년

토마스 만 스스로 자신의 최고의 걸작으로 뽑은 소설 {요셉과 그 형제들}이 마침내 우리 나라에 완역되어 출판되었다. 이 장편소설은 1926년 12월에서 1936년 8월까지와 1940년 8월부터 1943년 1월까지, 약 13년이라는 긴 세월이 집필에 투자되었다. 자료를 찾기 위한 준비 기간까지 합하면 이 작품에 쏟아 부은 작가의 정열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또한 이 기간 동안 작가는 독일 나치정권의 집권과 제2차세계대전, 그리고 스위스 및 미국 망명 생활 등을 경험했다.
총 4부작으로 완성된 이 소설은 작가 스스로 자신의 최고 걸작이라고 시인하기도 한 작품이다. 잘 알려진, 그에게 노벨 문학상의 영예를 안겨 준 청년기의 작품 {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 한 가문의 몰락}과 작가가 50대에 쓴 {마의 산}, 그리고 70대에 접어들면서 완성한 이 {요셉과 그 형제들}, 이렇게 세 소설을 스스로 평가하면서 작가는, 처음 것은 독일 소설이었고, 두번째는 유럽 소설, 그리고 세번째는 신화를 토대로 유머러스하게 그려낸 인간에 관한 노래라 말하며, 이는 보다 풍요롭게 전개되어 간 정신의 성장 과정이라 할 수 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 인류의 기원에 천착―성서와 신화 읽기

이 소설은 구약성경 창세기 27장에서 50장까지의 짧은 이야기가 기초가 되었다. 그래서 성경에 나오는 요셉의, 형제들에게 미움을 받아 이집트로 팔려가 재상이 된다는 이야기를 아는 사람이라면 토마스 만이 그려낸 이 거대한 상상력의 세계에 얼마든지 쉽게 다가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성경에 소개된 요셉의 이야기는, 괴테의 표현 그대로 하자면 '너무 짧다'. 세계적인 문호 괴테는 작가라면 이처럼 아름다운 이야기를 세세하게 그려내야 할 것만 같은 일종의 사명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괴테가 이루지 못한 꿈을 토마스 만이 대신 실현한 것이다. 그는 <요셉>을 기독교 안은 물론이고 기독교 밖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도 충분히 읽힐 수 있도록 충만한 생명력으로 기록하고 있다.
토마스 만은 자신이 이 작품을 쓰게 된 동기 중의 하나가 나이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전에는 종교사와 신학이 자신의 관심사가 되리라고 짐작도 하지 못했었는데 나이가 들어 인생을 돌이켜보니 인간, 혹은 인류의 기원에 천착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몰두하게 된 것이 성서와 신화라고 했다.

■ 작품에 흐르는 정신사적 배경

이 책의 정신사적 배경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작품이 쓰여질 당시 독일에서 신화가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었는지를 살펴봐야 할 것이다. 토마스 만의 {요셉과 그 형제들} 제1권 [야곱 이야기]가 출판된 1933년은 히틀러가 정권을 장악한 해이다. 유대인과 슬라브 족을 증오하고 게르만 족의 부흥과 독일의 유럽 제패를 꿈꾼 히틀러의 나치즘은, 당시 독일인들에게 히틀러를 일종의 메시아로 받아들이게 했다.
당시 히틀러가 건설한 제3제국은 게르만 신화의 영광을 재현하자는, 신화의 구원시대로 인식되었다. 낭만주의 시대에 시작된 신화라는 테마는 니체를 거치면서 큰 활력을 얻었다. 특히 니체에 의해 언급된 '새로운 신화'(1871년)는 나치에 의해 왜곡된다. 이처럼 신화라는 테마가 '일상적인 구호'로 자리잡는데 큰 역할을 한 셈이기도 하다.
토마스 만 또한 신화를 고민하면서 이런 흐름에 전혀 무관할 수는 없었다. 그는 니체로 소급되는 낭만주의적인 신화 연구를 어느 정도까지는 인정했지만, 니체를 출발점으로 삼고 '새로운 신화'의 탄생을 왜곡하는 자들의 의견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토마스 만은 이들을 나치즘의 선구자로 해석한 것이다. 토마스 만은 파시스트들의 신화는 이성을 마비시키는 비합리적인 도취라고 평가했다.
그는 지성인이 앞장서고 있는 파시즘으로부터 신화를 빼앗아, 신화가 휴머니즘을 위해 사용될 수 있도록 기능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오래 전부터 써오고 있는 {요셉과 그 형제들}도 바로 신화가 다시 휴머니즘을 위해 쓰이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신화의 옷을 입은 주인공 요셉과 탐무즈-길가메쉬-오시리스-아도니스의 계보
이 소설은 다양한 신화들로 겹겹이 싸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토마스 만이 깨닫고 싶어하던 기원에 대한 답이 바로 '신화'라는 틀 속에 있다는 것이다. 인류가 가지고 있는 문화들은 모두 기원신화를 안고 있다. 즉 천지창조, 신들의 전쟁, 인류의 기원, 홍수 이야기 등 등장하는 인물들은 비록 다르지만 각각이 포함하는 요소는 거의 엇비슷한 기원신화들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토마스 만은 이들 신화들이 독자적으로 자생한, 독창적으로 창조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신화가 시대가 흐르면서 옷을 갈아입듯 조금씩 다른 형태를 띤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스 신화의 모태는 메소포타미아 신화인 것이다.
토마스 만은 자신의 소설 속 주인공인 요셉을 가리켜 '신화를 가지고 노는 사기꾼'이라고 익살스럽게 말한 적이 있다. 그는 요셉이 그리스 신화의 티폰의 계보에 속하는, 메소포타미아 신화의 탐무즈와 이집트 신화의 오시리스 그리고 그리스 신화의 아도니스와 디오니소스로 이어지는 유형이라고 했다. 고대인들은 특히 신화 속의 인물과 자신들을 동일하게 여기곤 했는데, 요셉 또한 바빌론과 이집트의 세력권에서 살았던 그곳 신화에 등장하는 탐무즈라든가 오시리스를 알고 있었을 것이므로 고대인답게 그 신화 속의 영웅들과 자신을 동일시하였다는 것이다. 고대인은 현대인과는 다른 자아를 가졌다는 것이 작가의 생각이었다. 스페인의 문화철학자인 오르테가 이 가세트 Ortega y Gasset는 "고대인은 뭔가 하기 전에 한걸음 뒤로 물러나 과거에서 전형을 찾아보고 마치 잠수복을 입듯이 그 안에 미끄러져 들어가 안정감을 얻은 다음 현실의 문제로 뛰어든다"고 말하기도 했다.
신화는 흔히 삶의 원형(아키타이프)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시간에 얽매이지 않는, 시간을 갖지 않는 하나의 경건한 고정틀, 생명이 피와 살로 그 틀을 채워 넣을 때마다 되살아나는 것이 신화라는 말이다. 작가는 신화의 반복으로 여긴 고대의 인물로 클레오파트라를 소개하기도 했다. 그 증거는 그녀의 죽음이라고 했다. 가슴에 독사를 올려놓고 죽은 클레오파트라. 그것은 메소포타미아 신화의 이쉬타르, 이집트 신화의 이시스를 재현하는 삶이었다. 이쉬타르는 흔히 뱀옷을 입은 모습이거나 아예 목에 독사를 감고 있는데, 클레오파트라는 자신이 누구인지, 누구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있는지 알았다는 것이다. 작가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예수의 삶 또한 기존의 종교적 문화유산이 모두 투영된 것이므로, 그의 이야기 또한 구약성서(또는 신화)를 원형으로 한 위대한 삶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 고대 오리엔트의 유대 전설과 바빌론·이집트 신화 읽기

그렇다면 우리 주인공 요셉은 누구의 옷을 입고 있는 것일까? 처녀 생산, 죽음의 문턱에서 부활하는 요셉, 텅빈 무덤(우물) 등은 그가 바로 예수의 전형임을 알게 한다. 물론 요셉이 입고 있는 신화의 옷은 한 가지가 아니다. 아름다운 그리스의 미소년 아도니스, 바빌론 신화의 갈기갈기 찢겨져 제물로 바쳐진 자 탐무즈이며, 또한 여신 이쉬타르가 몸 달아 한 길가메쉬이기도 한 것이다.

작가는 누군가를 '인용'하는 삶, 풀어서 설명하자면, 신화 속에 등장하는 어느 영웅의 말을 자신의 입에 올리거나 그의 행동까지 따라하는 삶, 즉 신화 속에 사는 인생은, 신화에 올리는 일종의 예배 의식(儀式)과도 같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자칫 이 신화들이 소설 읽기에 복병이 될 수도 있다. 토마스 만이 이야기하고 있는 신화들이, 우리에게는 널리 알려지지 않은 고대 오리엔트의 유대 전설과 바빌론, 이집트 신화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사소함 탓에 소설 읽기를 멈추는 어리석은 행동을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성경의 요셉을 아는 사람들이든 혹은 이 소설 전면에 깔려 있는 고대 신화들을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든, 요셉의 이야기를 신화와 접목시켜, 더 나아가 그에게 피와 살을 덧붙여 다시 생생하게 살아 숨쉬게 한 토마스 만의 묘사와 상상력에는 혀를 내두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 인간은 어떻게 경건해지나

메소포타미아의 탐무즈와 길가메쉬 신화, 이집트의 오시리스 신화, 성서의 요셉 이야기, 그리스·로마의 아도니스와 디오니소스 신화 그리고 예수의 생애는 모두 죽음을 넘어 부활하는 사상을 그 근간으로 삼고 있다.

토마스 만은 인간이 남긴 이들 가장 오래된 문서들에 파묻혀서 16년의 세월을 보냈다. 그리고 순수 집필기간만 13년이었다. 그는 이 소설을 통해서 태곳적 것이나 원시적인 것 혹은 야만적인 것에 대한 흥미로움을 찾으려 한 것이 아니다. 그가 진정으로 구하고자 한 것은 바로 인간의 존엄성과 인간의 사명이었다. 인생은, 그가 겪어온 인생은 질펀한 고통이 도처에 몸을 감추고 있는 시대였다. 나치즘을 경험한 시대의 사람들은 무엇이 '인간의 죽음'인지를 체험했다. 그리고 반드시 '부활'이 필요했으며, 죽음을 넘어선 부활이 바로 인생의 줄거리인 것을 이해했던 것이다. 새롭게 다시 산다는 것 그리고 신을 찾는 인간만이 경건해질 수 있다는 것을 그는 만년에 깨닫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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