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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옮긴이의 말
문학적 유산 창조 개척자들 서쪽으로 더 전진 이집트의 집 노예 생활로부터의 도피 사막의 방랑자 새로운 초원의 발견 가나안 정복 룻의 이야기 유대 왕국 시민전 선지자들의 경고 몰락과 망명 고향으로의 귀환 여러 서책들 찾아보기 |
Hendrik Willem van Loon
헨드리크 빌렘 반 룬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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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새로운 두 나라의 힘을 비교해 보자. 이스라엘은 유다보다 면적이 세 배나 컸고 주민도 두 배나 많았다. 목초지도 땅의 4분의 3이 황무지였던 유다보다 훨씬 더 비옥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 남쪽 나라보다 힘이 두 배 더 세거나 세 배 더 부유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러한 영토가 이스라엘에게는 재난이었다. 유다는 땅이 작고 인구 밀도가 높아서 중앙 정부 체제가 가능했으며, 침략에도 더 잘 저항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 p.2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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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질문은 바로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이다. 어떤 이들은 죽는 날까지 이 질문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이 정말로 답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인생을 똑바로 보려는 용기에 만족할 뿐이다. 그리고 절망적인 임무에 맞서는 용감한 병사들처럼 굴복을 거부하면서, '왜'라는 자랑스러운 단어를 간직한 채 영원 속으로 사라져간다.
그러나 이 세계에는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에도 그럴듯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런 설명이 없으면 새로 만들어내기도 한다. 지금으로부터 5,000년 전, 서아시아 사람들은 이 세계가 7일 동안 창조되었다는 이야기를 믿었다. 다음은 이에 대한 유대인들의 이야기이다. 그들은 땅과 바다, 나무, 꽃, 새, 남자와 여자를 자신들이 섬기는 여러 신들이 만들었다고 막연하게나마 생각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유일신의 존재를 가장 먼저 인정한 민족이었다. 이에 대해서는 모세(Moses)의 이야기를 할 때 좀 더 보충하겠다. 그러나 후에 유대 국가를 형성한 셈 족 역시 처음에는 주변 부족들과 마찬가지로 여러 신들을 숭배했다. 구약의 창조 이야기는 모세가 죽고 나서 1,000년 후에야 씌어진 것이다. 당시는 유일신의 개념이 유대인들간에 완전히 정립된 상태였기 때문에 그의 존재를 의심한다는 것은 추방이나 죽음을 의미했다. 이제 태초에 대한 최종판을 헤브라이인들에게 전해 준 시인이, 왜 창조라는 위대한 과업을 '여호와(Jehovah)' 또는 '하늘의 통치자'라 불리는 전지전능한 유일신의 급작스러운 의지 표출로 표현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pp.25~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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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그(노아) 자손들은 여호와의 진노를 살 만한 일을 했다. 그들은 유프라테스의 계곡으로 이동하여 바빌론 시를 건설했다. 이 비옥한 땅에 만족한 이들은 종족의 집결점이 될 만한 곳에 높은 탑을 쌓기로 하고, 벽돌을 만들어 거대한 건축물의 기초를 닦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호와는 그들이 한 곳에 계속 머무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전 세계에 흩어져서 살아야지, 작은 계곡에만 모여 있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사람들은 탑을 쌓느라 벌처럼 분주히 움직이는 와중에, 여호와는 갑자기 그들 모두 다른 지방의 사투리를 쓰게 만들었다. 그들이 공통적으로 쓰던 말을 잊어버리자 짓고 있던 비계 위로 사람들의 목소리가 시끄럽게 울려퍼졌다. 집을 지을 때 일꾼과 십장, 건축가가 중국어와 네덜란드 어, 러시아 어, 폴리네시아 어를 각각 말한다면 공사는 끝장난 것이나 다름없다. 결국 사람들은 단일 국가를 포기하고 탑 아래로 내려와, 곧 땅 끝까지 퍼져 나갔다. --- pp.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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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에게 성서는 무엇인가?
동서양 문명의 만남과 새로운 사상의 창조, 인류 문명에 도도히 흐르는 문화의 원류
서양 문화의 저류를 흐르는 원천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헬레니즘(Hellenism)이고, 다른 하나는 헤브라이즘(Hebraism)이다. 이 두 가지를 말하지 않고서는 서양 문화를 말할 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헬레니즘은 고대 그리스의 사상과 문화를 이어 이루어진 새로운 시대사조(思潮)이다. 알렉산더 대왕의 대제국이 성립되면서 그리스와 페르시아를 비롯한 동서양의 문화가 조우(遭遇)하여 헬레니즘 문화가 탄생했다. 마케도니아와 그리스에서부터 인더스 유역, 메소포타미아, 소아시아, 이집트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제국의 영토에 새로운 폴리스가 세워지면서 각 문화는 다양하게 융합되었다. 그 와중에서 그리스문화 우월주의는 사라지고 '세계시민주의'가 성립된다. 이러한 민족적 차별을 떠난 전 인류의 문화가 탄생하면서 정치철학이나 도덕철학 문제보다는 개인의 삶에 더 많은 관심이 집중되었다. 이 당시 그리스철학은 헤브라이 종교와의 결합을 꾀한다. 헤브라이즘은 고대 유대인의 종교에 근원을 둔다. 구약성서의 유대 민족과 하느님과의 약속에서 비롯된다. 이는 역사가와 선지자들의 활약을 거쳐 예수의 구제관(救濟觀)으로 완성된다. 이것이 예수의 여러 제자들에 의해 전파되어 그리스도교가 탄생한다. 그리스도교는 헤브라이즘의 전통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는데 그 형성기에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아 이론적, 철학적 성격을 정리하여 그리스도교 신학을 형성하였다. 즉 헤브라이즘은 그리스도교에 의해 서양사상의 근간을 이루게 된 것이다. 헤브라이즘은 '하느님'이라는 유일인격신(唯一人格神)을 받드는 신앙이며 하나님에 의한 우주의 창조와 세계의 주재(主宰), 신과의 계약에 따른 인간의 책임을 주장하는 세계관을 특징으로 한다. 또한 인간관에 있어서 헤브라이즘은 신의 인도에 의해 모든 것이 전개되며 '원죄(原罪) 관념'을 설정하여 신에 대한 인간의 책임과 의무를 강조한다. 헬레니즘이 서양문화에 개인과 인간의 자유롭고 무한한 상상력을 제공했다면 헤브라이즘은 개인의 가치와 함께 윤리적 기본 모태를 마련해 주었다. 가족과 사회의 절대적 구속으로부터 개인을 해방시키고 겸손과 인내와 화해를 강조하는 선(善)한 삶의 기준을 제시하였다. 개인의 가치가 신장됨으로써 자아의식은 심화되었는데 이것은 기도의 개인화에서 더욱 극명하게 나타난다. 동양과 마찬가지로 서양에서도 예전에는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로 평가받았다. 유대 사회와 로마 사회에서도 이러한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입장으로 평가한 헤브라이즘은 엄청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이는 구약에 나타나는 '드보라' 등의 많은 여성 지도자들과 여성을 남성 제자들과 동등하게 대했던 예수의 모습에서 잘 드러난다. 이 때문에 기독교는 초기 성장기에 여성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으며 로마제국의 다른 종교들과의 경쟁에서 단연 앞설 수 있었다.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은 상상력의 원천으로서 각 시대에 걸쳐 새롭게 거듭나는 과정을 통해 그 생생한 생명력을 문화에 불어넣었다. 역사, 철학, 문화, 사회 전반에 걸친 그 영향력은 실로 엄청나다. 인간 중심의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 르네상스 시기에 이루어진 예술 작품은 두 가지 부류로 나누어진다. 한 가지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내용을 구체화한 작품들이며 다른 한 가지는 성서의 이야기를 구체화한 작품들이다. 이 두 축은 현대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모습으로, 다양한 장르에서, 재해석되어 나타나고 있다. 지금 가장 각광받는 문화장르인 영화에서도 그리스 로마 신화와 성서의 상징과 은유를 모르고서는 영화의 진정한 의미파악을 할 수 없을 정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