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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 Au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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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모든 것이 살아 있었다. 가장 작은 물체조차도 두근거리는 심장을 지녔고 구름들조차 이름이 있었다. 가위는 걸을 수 있었고 전화기와 주전자는 사촌 간이었으며 눈[目]과 안경은 형제지간이었다. 시계판은 사람 얼굴이었고 그릇 속의 완두콩 하나하나가 다른 인격을 가지고 있었다. 부모님 차 앞에 붙은 라디에이터 안전망은 수많은 이를 드러내고 씩 웃는 입이었다. 펜은 비행선이었다. 동전은 비행접시였다. 나뭇가지는 팔이었다. 돌멩이들도 생각을 할 수 있었고 신은 어디에나 있었다. --- p.9
여섯 살. 어느 토요일 아침 이제 막 옷을 다 입고 신발 끈을 매고(이제는 다 컸다. 제 할 일은 다 할 수 있는 소년이다), 아래층으로 뛰어 내려가 하루를 시작할 준비를 다 마치고, 이른 아침 봄날 햇빛 속에서 서 있는데 행복감이 밀려들었다. 평안과 기쁨을 억누를 수 없는, 황홀한 느낌이었다. 잠시 후 당신은 혼잣말을 했다. 여섯 살보다 더 좋은 건 없어. 여섯은 될 수 있는 나이 중에서 단연코 최고의 나이야. 당신은 그 순간을 3초 전만큼이나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날 아침으로부터 59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당신 안에서 조금도 줄어들지 않고 또렷하게, 당신이 지니고 있는 수많은 기억들 중 그 어느 것보다도 밝게 타오르고 있다. 이렇게 강렬한 느낌을 일으킨 것이 무엇일까? 알 수는 없지만 추측건대 자의식의 탄생과 관계가 있지 않나 싶다. 내면의 목소리가 깨어날 때 여섯 살 무렵의 어린아이에게 일어나는 일, 생각을 하고, 스스로에게 생각이 시작된다고 생각하고 있음을 말해 주는 능력. 우리의 삶은 그 시점부터 새로운 차원으로 들어선다. --- p.19~20 그 노인은 당신에게 소리 지르며, 당신을 집으로 돌려보낼 뿐 아니라 영원히 그의 집에 오지 못하게 할 것이며, 당신이 못되고 사악한 아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너 같은 족속을 싫어한다]는 말이었다. 당신은 두들겨 맞은 듯한 기분으로 비틀거리며 거기서 나왔다. 피터에게 한 짓 때문에도 비참한 기분이었지만 무엇보다 그 노인이 한 말이 계속 머릿속에 울렸다. [너 같은 족속]이 무슨 뜻이었을까? 당신은 궁금했다. 친구를 골프채로 때려서 피가 나게 만드는 그런 아이들인가 ― 아니면 훨씬 더 불길한 것, 무슨 짓을 해도 지워 낼 수 없는 영혼의 얼룩 같은 것일까? 너 같은 족속이란 그저 당신을 더러운 유대 놈이라고 부르는 것의 다른 표현이었을까? --- p.96 그래, 우리는 돌아왔어. 아니, 그다지 재미있지는 않았어. 바다를 보았냐고? 보았지. 코드 곶을 보았냐고? 응, 샅샅이 다 보았어. 보스턴을 보았냐고? 그래. 두 번. 퍼트니를 보았냐고? 응. 동창회관? 응, 아프리카 학생들로 가득하더라. 여행이 편안했느냐고? 아니. 아주 멀리까지 갔느냐고? 응. 1천 킬로미터도 넘게. 피곤하냐고? 응. 아주 많이. 뉴어크에 오래 있었느냐고? 아니, 몇 시간 있었어. 지금 뭐 하고 있냐고? 응. 밥은 샤워 중이고, 폴은 긴 의자에 앉아 리디아에게 편지를 쓰고 있지. 여행의 목적이 뭐였느냐고? 계획을 잘못 세운 모험의 한심한 이야기야. 교육적이었느냐고? 그럴지도. 웰플리트를 지나쳤느냐고? 응. 폴은 무슨 생각을 했느냐고? 리디아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그녀를 생각하면서 객관적이었느냐고? 사랑이 허락하는 한까지만. 그의 생각의 본질? 아쉬움. 끝없는 슬픔. 끝없는 갈망. --- p.201~202 ……다시 시작하려면, 글을 쓰려면, 단어의 진짜 의미를 깊이 생각해야 해. 정직한, 고통스러운 의미를. 그러면 숨겨진 것들이 나올 거야. 매일의 리디아, 너의 언니의 리디아, 너의 부모님의 리디아, 폴의 리디아는 잊어야만 해 ─ 하지만 그러면 다음번에는 《영감》을 잃지 않고도 그들에게로 되돌아갈 수 있게 될 거야. 두 세계가 양립 불가능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들 간의 상호 관련성을 네가 깨달아야만 하기 때문이야. --- p.203 네가 여기 있었으면 좋겠어. 나에게는 내 일밖에 없어. 고독의 극치. 그래, 물론 혼자 있는 게 제일 좋지. 일은 더 좋고. 그래, 더 좋아. 오래된 남풍이 몰아치고 있어. 공기가 매일 내 손끝에서 싹트는 아이디어의 씨를 뿌려. 그래, 일은 더 좋아. 내가 쓰고 있는 이상한 소설……. 그래, 잘되고 있어. 하지만 네 편지가 나를 너무 슬프게 만들 때면 뉴욕으로 돌아가서 발가벗고 바보 같은 춤을 춰서 너를 웃겨 주고 싶어. 책 너무 많이 읽지 마. 늙은 학자가 되어 혀 꼬부라진 소리를 하게 될 거야. 음악을 만들어. 태양에 대고 노래를 불러. 죽은 자들을 찬양해. 산 자들을 위해 레퀴엠을 써. 하지만 노래를 불러. 네 목소리가 네가 숨 쉬는 공기를 바꾸도록. 뭔가를 [만들어]. 시, 음악……. 인간의 구원은 [사랑으로 만드는 거야]……. --- p.213~2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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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세한 감수성의 언어로 복원해 낸
어린 날의 순수했던 내면 풍경 속으로의 초대 처음에는 모든 것이 살아 있었다. 가장 작은 물체조차도 두근거리는 심장을 지녔고 구름들조차 이름이 있었다. 가위는 걸을 수 있었고 전화기와 찻주전자는 사촌 간이었으며 눈[目]과 안경은 형제지간이었다. 시계판은 사람 얼굴이었고 그릇 속의 완두콩 하나하나가 다른 인격을 가지고 있었다. 부모님 차 앞에 붙은 라디에이터 안전망은 수많은 이를 드러내고 씩 웃는 입이었다. 펜은 비행선이었다. 동전은 비행접시였다. 나뭇가지는 팔이었다. 돌멩이들도 생각을 할 수 있었고 신은 어디에나 있었다. (본문 9면) 『내면 보고서』의 첫 부분은 이렇게 시작한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살아 있었다(In the beginning, everything was alive)]라는 작품의 첫 문장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In the beginning God created the heavens and the earth)]라는 성경의 창세기 1장 1절을 패러디한 듯 보이는 구절이다. 이와 함께 오스터는 태초의 에덴처럼 주위의 모든 사물들이 살아 숨 쉬는 신비로 가득했던 어린 시절의 세계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경이로운 마음으로 사물들을 바라보고 엉뚱한 상상 속에 잠기곤 하던 소년 시절 오스터의 섬세한 내면 풍경들을 보여 준다. 오스터의 또 다른 회고록인 전작 『겨울 일기』와 마찬가지로, 『내면 보고서』 역시 독특한 2인칭 시점으로 서술된 작품이다. 현재의 오스터가 과거의 자신을 [당신]이라 지칭하며 회상을 전개한다. 그만큼 과거의 자신으로부터 한 발짝 거리를 두고, 타인의 마음을 다루듯 세심하게, 어린 시절의 예민한 마음의 작용을 기록해 나간다. 마치 기억의 지층 속에 파묻힌 유물을 조심스러운 손길로 복원해 가는 고고학자의 작업 같다. 어린 시절의 자신은 어른이 된 현재의 자신이 함부로 규정하고 동일화시킬 수 없는 존재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일반적인 회고록이나 자서전 서술처럼 일정한 연대순에 따라 인위적으로 기억을 조직하기보다는, 자유로운 연상 작용에 따라 떠오르는 단상들을 한 장면씩 [발굴]해 나간다. 마치 암실 속에서 한 컷 한 컷 현상해 낸 선명한 사진처럼, 이러한 형식적 시도가 그의 기억 속 장면들을 더욱 생생하게 살아 숨 쉬도록 만든다. 오스터는 이처럼 자신의 어린 시절의 기억을 탐사하고 그 마음의 작용을 기록하는 작업을 하는 것은 결코 자신을 희귀하거나 예외적인 연구 대상으로 여겨서가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자신이 [모두와, 누구나와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언급한다. 그의 회고록이 매력적인 이유는, 남들이 겪지 않은 거창하고 대단한 체험들이 있다기보다도, 누구나 한 번쯤은 어린 시절에 느껴 봤을 감정과 인상들을 섬세하게 포착해 내는 특유의 감수성 때문이다. 어린 날 어머니와 함께 다람쥐를 관찰하며 도토리를 줍던 기억, 여름밤에 반딧불이를 잡아 만든 마법 항아리를 들고 수풀 속을 거닐던 일, 캠프에서 침대에 오줌을 싸서 남들 눈을 피해 몰래 시트를 빨았던 일 등 지극히 사소하고 일상적인 사건들도, 어린 시절의 그의 예민한 감수성과 공명하며 뇌리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는 강렬한 잔상들을 만들어 낸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기억을 따라가며 마치 우리들 자신의 어린 시절을 마주하는 듯한 반가운 기분에 젖어 들게 된다. 대학 시절 오스터의 생생한 육성이 담긴, 전 부인 리디아 데이비스와 주고받은 연애편지들 수록 불안정하면서도 치열했던 청춘의 초상이 담겨 있는 타임캡슐 회고록은 유년기와 사춘기의 기억을 넘어, 치열하게 글을 썼던 20대 초반기의 기억까지 이어진다. 이 시기의 기록을 담은 장에서는, 특별히 오스터가 그의 전 부인이며 작가이자 번역가인 리디아 데이비스와 대학 때 주고받은 편지들이 담겨 있어, 뒷날의 기억으로 가공되지 않은 그의 청춘 시절 이야기들을 그 당시의 육성으로 생생하게 전해 준다. 오스터는 당시 그의 여자 친구였던 리디아와 1백여 통이 넘는 수많은 편지들을 주고받았으며, 그중에서 그가 갓 대학에 입학한 해이자 그녀를 처음 만난 해이기도 한 1966년부터 대학교 4학년이 된 1969년까지 보냈던 편지들 중 일부를 발췌하여 이 책에 수록했다. 그는 이 편지들이 단순한 연애편지가 아니라, 그가 젊은 날에 쓰지 못했던 일기이며, 그의 [사춘기 후반과 청년기 초반을 담은 타임캡슐, 기억 속에서 거의 희미해진 시기를 가장 선명하게 잡아 낸 사진]이라고 말한다. 정신없이 써내려간 듯 짧은 호흡으로 이어지는 편지 속 문장들엔, 열정에 가득 차 있으면서도 어딘지 불안정한, 청춘의 정서가 고스란히 묻어 있다. 또한 친밀한 사이에서만 주고받을 수 있는 애정 어린 유머와 장난기, 솔직함과 엉뚱함이 편지를 읽는 생생한 재미를 더한다. 리디아에게 전하는 재치 넘치면서도 풋풋한 사랑 고백, 글을 쓰는 과정에서 느끼는 고뇌, 문학과 예술에 대한 짧은 논평들, 발작적인 불안과 외로움에 대한 토로, 당시 캠퍼스를 뒤흔든 정치 문제에 대한 비판과 분노 등 젊은이다운 그의 고민들을 엿볼 수 있다. 언론평 오스터는 이 시대 미국의 가장 위대한 산문가 중 하나로 인정받아야 한다. 그의 자전적인 글들은 완벽하게 세공된 보석들 같다. -뉴욕 타임스 북리뷰 그의 내면의 자아에 대한 독창적인 고찰. -라이브러리 저널 기억, 정체성, 독창적인 상상력이 상호 작용하며 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그려 낸다. 그의 열렬한 독자층들은 특히 주목할 만한 회고록이다. 오스터는 오랫동안 삶을 하나의 퍼즐처럼 만들어 왔다. 여기, 가장 의미심장하고 핵심적인 조각들이 있다. -커커스 리뷰 『내면 보고서』는 우리 시대 가장 위대한 작가에 대한 또 다른 퍼즐 한 조각을 더한다. 그의 폭넓은 정전에 추가할 만족스러운 작품을 더하는, 훌륭한 오스터식 전개와 성찰이 담겨 있다. -셸프 어웨어니스 오스터는 가슴 아플 정도로 재능이 넘치는 에세이스트다. -덴버 포스트 내밀하고, 밀실의 공포마저 느끼게 하는, 작가의 기억 저장소로의 여행. 이 여행은 그의 어린 시절과 성장을 다시 체험해 보려는 시도인 원초적 감정 폭발처럼 읽힌다. -오프라 매거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