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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_기원들 25
프롤로그 장애의 시대 31 장애생태의 흔적들 | 노출의 경로가 된 연결의 길 | 우리 몸이 땅이다 | 비장애중심주의적 생태학에 저항하며 | 미래는 장애를 입었다 *키워드_생태 75 1장 사막에서의 연대 77 기원의 장소들 | 이야기를 공유한다는 것 | 내 바퀴 아래의 땅 *키워드_대수층 135 2장 손상된 경관들 143 투과성의 몸들 | 하늘의 물이 지상의 물과 만나는 곳 | 손상된 물들 | 은유 이상의 것 | 대규모 장애화 | 진단과 의료화를 넘어서 | 투손의 예민한 대수층 | 생명에 대한 예민함을 위하여 *막간_추측에 근거한 대수층 205 *키워드_장애 217 3장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그리고 그걸 입증할 수 있나요?) 219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요? 별건 아닙니다(또는, 기원을 이야기하지 않으려면 대체 얼마만큼의 권력이 필요할까?) | 회피와 은폐의 기원 서사 | 바로 이것이 우리에게 일어난 일이다 | 당시에는 잘 알지 못했다(또는, 실은 그들은 그 사실을 입증할 수 없다) | 그들의 탓이 아니다 | 뿌리 깊은 기원들 | 당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 내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키워드_치료 319 4장 장애생태를 치료한다는 것 325 무엇이 복원인가? 누가, 무엇이 치료받는가? | 환경 위기는 언제나 건강 위기였다 | 건강 문제에서 분리된 환경보호 | 그 문제에 관한 한 도움을 드릴 수 없습니다 | 슈퍼펀드가 정의 실현을 가로막다장애생태를 위한 건강정의 | 우리는 어떻게 치료받기를 바라는가? *키워드_환경주의 397 5장 상처 입은 자들의 환경주의 403 비장애중심주의적 생태계 | 상처환경주의 | 투손의 상처환경주의 | 환경정의를 찾아서 | 돌파구 혹은 장벽 | 보건 연구의 지속적인 실패 | 피와 땀으로 지어진 TCE 보건소 | 환경주의를 일궈낸 주민들 | 장애의 시대 에필로그 상처를 안고 살아가기 459 감사의 말 475 연표 487 |
Sunaura Tayl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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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진 그 장애를 야기했다고 오랫동안 여겨온 그 오염을 연구하기 위해 2017년 여름 투손에 도착했을 때, 나는 자연의 이 대규모 장애화mass disablement가 인간의 장애화와 얼마나 철저히 뒤엉켜 있는지를 몸소, 절절히 실감했다.”
--- p.31 “장애가 부정의로부터 비롯되는 경우가 무척이나 흔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장애 자체가 본질적으로 부정의인 것은 아니다. 장애는 부정의를 만들어내는 체제에 대한 저항이 될 수 있다.” --- p.72 “이 책의 이야기 속 상실은 다면적이다. 방위산업이 초래한 오염과 전쟁 모두로 인한 생명의 상실. 능력과 건강의 상실. 투손에서 즐긴 첫 하이킹에서 긴코너구리 가족과 마주쳤을 때 딸의 반응이 어땠는지 옆에서 같이 걸으며 보지 못하고 파트너에게 전해 들어야 하는 상실. 고대에서부터 흘러온 물이 산업 생산과 채굴, 농업으로 인해 남용되면서 발생한 상실. 식민화된 남서부의 역사였던 공동체와 문화, 주권의 상실.” --- p.132 “투손에서 연구를 진행하면서, 이런 크나큰 기쁨과 신비로움에 눈을 떴다. 전에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친밀감, 즉 일종의 불구 친밀감crip intimacy을 경관에게 느꼈다. 이는 상상과 지식, 상처라는 공통의 경험에 동시에 바탕을 둔 친밀감이었다.” --- p.142 “물론 기원을 찾는 것 자체는 나쁜 실천도, 좋은 실천도 아니다. 단지 어떤 권력의 체제가 이런 탐색을 지지하는가, 누구를 이롭게 하는가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렇게 해서 나는 헨리 베가의 “그런 걱정은 하지 말아요”가 나에게 원인 찾기에서 손을 놓으라고, ‘극복하라’고 말해주는 가장 친절한 방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걱정은 그만두고 공동체를 위한 싸움에 참여하라는 뜻이다. 피해를 입은 것은 공동체니까. 우리는 틀림없이 이를 입증해낼 수 있다.“ --- p.317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하다. 당장 내일 환경파괴를 기적적으로 중단할 수 있게 된다 해도 우리는 변화된 생태계와 앞으로 그와 더불어 살아갈 존재들을 치유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나는 계속해서 다시 복원 프로젝트의 시스템과 사우스사이드 지역사회로 되돌아온다. 그들을 생각하며 묻는다. 미래는 장애를 입었다. 우리는 어떻게 치료받기를 원하는가?“ --- p.395~3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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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파괴는 장애화의 이야기다”
상처와 저항의 흔적을 안고 나아가는 혼물, 땅, 공기, 식물, 동물, 그리고 그 모든 몸과 삶 더 인간적이고 덜 인간중심적인 세계를 향한 경이롭고도 뭉클한 장애생태의 여정 ** 안희연(시인), 홍명교(활동가), 홍은전(기록활동가) 강력 추천 ** 기원의 장소로 돌아가다: 투손의 사막 그리고 오염 이 책은 미국 남서부 애리조나주에 위치한 사막의 도시 투손을 배경으로 삼아 장애 입은 생태와 동식물, 인간 존재의 이야기를 끌어내는 시도다. 그리고 그 이야기에는 저자 자신의 삶 역시 포함되어 있다. 자신이 가진 장애(관절굽음증)를 유발한 그 오염을 연구하기 위해 오랜 고향인 투손에 도착했던 것이다. 거기서 그는 오염이 자신과 같은 인간은 물론 인간 너머more than human의 존재들과 생태계에 얼마나 심대한 영향을 끼쳤는지 몸소 실감한다. 수나우라 테일러를 다시 사막까지 불러들인 그 오염의 기원은 국가(미국 공군)와 계약을 맺은 방위산업체들이 전후 호황기 투손의 사막 지대(특히 사우스사이드 지역)의 지표면에 유독성 화학물질을 그대로 내다버리기 시작한 195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중에서도 휴즈에어크래프트컴퍼니[약칭 ‘휴즈’]는 투손의 전후 시기를 지배한 주요 산업체이자 주요 오염 유발자였다. 1951년 투손 소노란사막 지대의 땅을 점유한 창업자 하워드 휴즈는 북서쪽으로 흐르는 산타크루즈강 유역에 항공기 제조업체를 세웠다. 소노란사막은 1년에 두 번 몬순 시즌에 풍부한 비가 내려 사막이라고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푸르고 수목이 울창한 생태계를 자랑했으며, 소노란사막의 상징과도 같은 키 큰 사와로선인장을 비롯해 다양한 동식물들의 터전이었다. 동시에 그곳은 애리조나 남부의 사막 선주민인 오오담 집단의 본거지(산 하비에르 인디언 보호구역)이기도 했다. 휴즈는 미국 공군 제44군수공장으로도 알려진 자신들의 무기 제조 시설에서 전투 요격기, 군사용 미사일 등을 생산하기 시작했고, 곧 미국의 주요 미사일 생산업체로 부상했다. 생산을 시작한 지 1년 만인 1952년, 해당 공장은 제조 공정에서 사용된 막대한 양의 중금속과 TCE(트리클로로에틸렌), 1,4-다이옥신, 6가크롬 같은 유독성 오염물질인 염소계 용제를 사막 지표면에 그대로 투기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10년 뒤인 1961년에는 무단 폐기 관행을 중단하고 폐기물을 저장할 구덩이들을 여럿 팠다. 그러나 폐기물이 누출되지 않도록 하는 울타리, 차수막 등을 설치하지 않은 탓에 저장된 폐수는 휴즈 공장 불과 30미터 아래에 위치한 투손 지역 대수층(지하수층)으로 흘러들었고, 지하수에 섞인 화학물질이 북서쪽으로 이동해 산타크루즈강에 혼합되었다. 그러나 강은 오염을 면할 수 있었는데, 투손시와 주민들이 설치한 우물 덕분이었다. 그 우물들이 오염물질이 지표수에 도달하기 전에 빨아들여 가정, 학교 등의 수도시설로 내보냈던 것이다. 투손시 당국과 휴즈사가 애써 덮으려 했던 사건의 실체가 세상에 드러난 것은 1978년 환경보호청의 슈퍼펀드 프로그램이 휴즈 부근의 우물에서 고농도의 크롬을 발견하면서였지만, 사우스사이드 지역 주민들은 이 국가적 프로그램이 오염 사실이 공식화하고 복원 방안을 마련하기 전부터 암과 같은 극심한 질병에 시달리거나 선천성 장애를 가진 아이를 낳은 주민들을 탐문하고 시민운동을 조직했다. 저자 자신의 장애 기원 서사는 곧 이러한 오염의 기원 서사와 시공간적 축을 공유한다. 저자는 선천성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그 아이들 중 하나였으며, 휴즈가 유발한 오염물질 탓에 자신이 장애를 갖게 되었다는 사실을 어릴 적부터 알고 있었다. 꼭 자신과 마찬가지로 이 역사와 결부된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저자는 그 기원의 장소(투손)로 수십 년 만에 돌아갔다. 그들의 이야기는 성공담에 가려진 불편한 현실, 나아가 상처와 장애의 흔적들을 생생히 보여주었다. “환경정의 서사들은 대개 공동체가 소송에 이겨 조사에 착수하고 복원 약속을 얻어내는 지점에서 종결된다. 하지만 그다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이 전투를 치르고 한 참이 지난 뒤, 사람들과 경관은 어떻게 질병과 장애를 가지고 계속해서 살아갈까?” 우리 몸이 땅이다: 장애의 시대를 건너는 존재들 사우스사이드 대수층의 이야기는 손상되었고 위태로우며 어딘가에 의존해야 하는 상태, 즉 상실과 투쟁으로 가득 차 끊임없는 지원과 편의제공, 창의적 형태의 돌봄이 필요한 상태를 가리킨다. 테일러는 장애인으로서 이를 장애로 인식하면서, 장애가 비단 인간의 몸이라는 경계에서 그치지 않고 환경 그리고 다른 동료 종들이 입은 피해와 뿌리 깊이 얽혀 있음을 강조한다. 실제로 사우스사이드의 주민들, 그리고 지역 내에서 조직된 환경단체 ‘깨끗한 환경을 위한 투손 시민들’은 환경주의자들과 사회정의운동가들은 인간의 안녕이냐 비인간 자연에 대한 보호냐를 놓고 격렬한 토론을 벌일 때 “인간이나 식물, 대수층이 마치 따로 고립되어 있다는 듯 그것들을 두고 싸우는 것 자체가 심각한 한계임을” 보여주었다. ‘장애의 시대’ 혹은 ‘장애세’라는 테일러의 용어가 적확하게 짚어내듯, 오늘날 이러한 피해는 전례 없는 규모로 발생하고 있다. 기후위기는 깨끗한 물에서부터 충분한 식량과 안전한 주거지에 이르기까지, 건강을 결정하는 사회적· 환경적 요인들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며, 이런 영향들은 인종, 젠더, 국적의 경계를 따라 불균등하게 나타난다. 기후붕괴는 단지 최근의 현상일 뿐, 상처 입은 환경은 그보다 한참 앞서 존재했다. 전 지구적 자원 추출extractivism, 증가하는 쓰레기는 막대한 양의 오염물질은 그것과 접촉한 모든 생명체에게 피해를 입힌다. 게다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역사는 전 세계의 빈민 공동체와 유색인 공동체에 불균형적인 생태적·사회적 위험을 초래하고 있다. 다시 말해 빈민, 장애인, 흑인/유색인, 토착민/선주민 등의 주변화된 존재들이 지구 행성의 황폐화에 더욱 취약한 현상은 인종차별적 자본주의 그리고 아메리카 대륙의 식민화라는 기원과 함께 시작되었다. 제국주의와 환경파괴는 그 기원부터 ‘장애화’의 이야기였던 셈이다. 자연으로 돌아가 쓴다는 것: 내 바퀴 아래의 땅 “어떻게 극복의 이야기나 인간이 자연을 망친 사례에 대한 증언과 다른 방식으로, 내가 느꼈던 연결의 감각과 연대의식을 중심에 두고 손상의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을까?” 이렇듯 장애와 상처를 공유하는 관계이지만, 저자와 자연/환경 사이에는 쉽게 넘을 수 없는 장벽이 존재한다. 테일러는 이처럼 자신에게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긴 대지와 대수층에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깊은 연대감을 느끼면서도, 그것들을 어떻게 알아가야 할지를 두고 깊은 고민에 빠진다. 이러한 난관은 자연과 접촉하고 연결될 수 있는 주체를 ‘장애 없는 몸’, 즉 비장애신체로 강력하게 상정하고 재현해온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문화로부터 발생한다. “다양한 연구자들과 연구가 보여주었듯 전통적으로 야생의 공간에서 안전과 소속감을 느낄 수 있었던 이들이 주로 백인 남성이거나, 이성애 규범에 부합하는 그의 가족들이 이따끔 포함될 뿐이었다는 사실을 별로 놀랍지 않다. 장애 없는 몸은 그런 소속감의 전제 조건이며, 이는 정치적 차원과 관계없는 당연하고 명백한 사실로 받아들여진다.” 테일러는 다른 몸과 마음을 지니고 있어 자연과 비규범적인 방식으로 상호작용하는 사람들의 서사에 주목하는 앨리슨 케이퍼의 논의를 마음에 품고서 “몸의 한계를 외면하거나 그 한계를 극복해내는 데 의존하지 않는 자연과의 불구적 상호작용”을 구체화한다. 신체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진부하고, 관습적이고, 여성혐오적이고, 식민주의적인 자연 서사의 기저에 깔린 인간의 오만을 경계하면서, 대수층이라는 물의 존재를 느낄 대안적인 방법들을 찾아 나선다. 이는 사막과 대수층에 대한 친밀성을 무조건적 사랑으로 절대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백인 정착자들이 자행한 (오염이라는) 폭력과의 관계 속에서 한번 더 굴절시키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연구자들이 제작한 각종 지도와 수문학적 도표들에 근거해 대수층의 형태/이미지를 상상하고, 그 상상을 자신만의 스케치로 표현한 〈추측에 근거한 대수층〉 연작 시리즈(책 209~215쪽)가 바로 그 결과물이다. “분명 상상일 뿐이었지만, 나는 물의 존재를 느꼈다. 손상된 지하는 내가 이 역사 속을 누비고 다니며 사람들과 인터뷰를 하고 아카이브를 뒤질 때도, 그저 일상생활을 소화하는 동안에도 일종의 동반자-인간 너머의 세계에 거주하는 불구 친구-가 되었다.” 당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기원 이야기가 할 수 있는 것 “‘당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라는 질문은 기원에 대해 이야기해달라는 요청이다. 그것은 초대일 수도 있고 요구일 수도 있다.” TCE 오염의 피해를 입은 사우스사이드 주민들에게 이 질문은 간절히 바라던 것, 누군가가 자신들에게 물어봐주었으면 하는 것이었다. 테일러는 장애인에게는 무례한 낙인(사람들은 “피 냄새를 찾아 코를 킁킁거리면서” 장애를 입게 된 것이 사고 때문이었느냐고 묻곤 한다)이 되는 이 질문이 주민들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에 대한 긍정, 다시 말해 부정의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그에 대해 무언가 손을 써보자는 초대”로 인식된다는 것을 포착해낸다. 테일러가 보기에 기원의 서사, 즉 어떤 일의 시작, 토대, 발생에 관한 이야기는 환경정의운동과 장애운동 사이에 존재하는 뿌리 깊은 긴장의 지대를 가시화한다. 환경정의운동 및 그 연구는 환경문제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자극하기 위해 장애, 질병, 환경부정의를 한데 뒤섞으면서 너무나 자주 장애의 공포(신체적 결함, 손상에 대한 선정적인 설명)를 활용해온 역사를 보유하고 있다. 그 결과 자신들이 돕고자 한다는 바로 그 사람들을 영원히 낙인찍곤 했다. 반면 장애운동은 장애를 단지 개인적 비극으로, 즉 근절되어야 할 끔찍한 운명으로 여기는 사고방식을 극도로 경계하고 비판하면서, 개인의 상실과 고통, 트라우마에 대해 논하는 것을 주저해왔다. 이러한 경향은 인종차별적 자본주의와 국가폭력이 오랫동안 장애를 유발해온 현실을 조명하는 일을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테일러는 기원 서사의 또 다른 가능성을 TCE 오염 사태에 맞서 자기 자신과 공동체, 더 나아가 비인간 생명체들의 치유를 고민한 사우스사이드 주민들에게서 기원 서사의 또 다른 가능성을 발견한다. 그 이야기는 두 운동의 긴장과 불화를 드러내는 데 그치지 않으며, 연대와 정치적 전략의 거점이 된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기원을 다음과 같은 새로운 탐구 및 논의의 입구로 삼는 것이다. 사람들은 어떤 투쟁에 참여하게 되며, 그 투쟁은 장애와 질병이 재현되는 방식을 어떻게 알려줄까? 기원 이야기를 공유하는 것이 언제 힘의 원천이 될 수 있을까? 언제 집단 차원의 정치적 전략이 될 수 있을까? 이와 반대로, 질문하는 사람의 압력 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경우는 언제일까? 이런 질문들은 거대한 상실, 트라우마와 결부된 기원의 서사를 낙인으로 기능하게 만드는 힘과 결별한다. 1981년 오염을 이유로 지역의 몇몇 우물을 폐쇄한다는 소식 이 사우스사이드 전역에 퍼지기 전부터 주민들은 동네에 심상치 않은 문제가 생겼음을 직감하고 있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심각한 질병(루푸스, 백혈병, 방광암, 유방암, 골암, 림프종, 심장질환 등등)에 시달리고 있었고, 저자와 같이 선천성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거나 사산되는 아기들도 적지 않았다. 이때 주민들은 “이웃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물어보는 단순한 행위, 즉 진단에 대해 묻거나 언제 어디에서 처음 증상을 알아차렸는지 묻고, 어디에서 나고 자라 학교를 다니거나 일을 했는지 확인함으로써 더 깊은 문제의 거대한 패턴을 찾아냈다”. 특히 멜린다 버낼, 마티 모레노, 캐럴 루스 세 여성은 주민들의 이름과 집 주소, 의료적 진단 내용을 일일이 머릿속에 새기면서, 지역사회에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산업체와 정부 기관에 맞서 피해 입은 개인들의 이야기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 초 TCE 오염에 대응하는 시민단체 ‘깨끗한 환경을 위한 투손 시민들’을 조직하여 집단적인 투쟁을 이어나간 또 다른 여성 로즈 어거스틴, 투손시 당국과 휴즈를 비롯한 업계 관계자들에 의해 묻혀버렸을 거대한 부정의에 관심을 가지고 취재를 이어나간 끝에 지속적인 폭로 기사를 발행한 기자 제인 케이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언론 매체와 관료들이 오염된 우물의 폐쇄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데 불만을 느끼고 직접 조사에 나섰고, 지역사회가 입은 피해를 취재했다. 케이는 앞서 언급한 세 명의 여성들로부터 적극적인 지원을 받아 500명이 넘는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눴고, 그 지역에서 발생한 특정 질병의 비율과 빈도를 보여주는 대단히 정교한 건강 설문조사를 개발해냈다. 놀랍게도 그 어떤 정부 기관도 나서서 하지 않은 일이었다. 이처럼 사우스사이드 주민들의 조직화와 활동은 애초 개인 차원의 질병과 장애 경험에서 시작되었다. 주민들 그리고 ‘깨끗한 환경을 위한 투손 시민들’의 활동가들은 이웃과 친구들끼리 얼굴을 마주하고 나누는 대화에서, 혹은 기자 제인 케이와의 인터뷰를 통해 테일러가 질병과 손상의 ‘기원 이야기’(병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출현했는지)라고 부르는 것을 이끌어냈다. 이런 이야기들은 개인의 특성으로 간주된 신체의 취약성이 곧 집단적 투쟁의 문제가 되는 현실을 드러냈고, 그 덕택에 구조적 인종주의, 건강과 관련된 사회적 지원의 부재, 사우스사이드의 자연세계에 가해진 피해의 긴 역사에 저항하는 강력한 운동이 촉발될 수 있었다. 상처 입은 몸으로 살아간다는 것: 우리는 어떻게 치료받기를 원하는가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하다. 당장 내일 환경파괴를 기적적으로 중단할 수 있게 된다 해도 우리는 변화된 생태계와 앞으로 그와 더불어 살아갈 존재들을 치유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나는 그들을 생각하며 묻는다. 미래는 장애를 입었다. 우리는 어떻게 치료받기를 원하는가?” 그러나 어떤 이야기는 역설적이게도 그 어떤 이야기도 풀어내지 않는 데 성공한다. 다양한 정부기관 그리고 ‘오염 유발자’이자 ‘책임 당사자’인 산업체(특히 휴즈)가 떠벌리는 빈약하고 모호한 ‘공식적인 이야기’가 그렇다. 말하자면 이들은 이야기하는 것 자체를 피할 수 있는 권력, 즉 자신들의 책임을 은폐하고 부인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지고 있다. 1980년대 초 오염 사건의 전말이 드러나고 우물들이 폐쇄된 후에도 지역 및 주의 기관들은 오염된 물이 공급되고 있다는 사실을 대중에게 은폐하고자 했다. 그 결과 TCE 노출 여부를 조사하기 위해 주민들을 대상으로 혈액 검사를 실시하는 것은 물론이고 어떤 동네와 거리에 독성물질에 오염된 물이 공급되었는지 정확히 조사해 지도화하는 작업 역시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사우스사이드의 오염 지역 일대가 미국 최초의 슈퍼펀드 부지로 선정되어 부지 정화 예산을 지원받고, 환경보호청의 원조 속에서 오염의 범위와 원인을 규명할 수 있게 되었을 때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주민들은 ‘깨끗한 환경을 위한 투손 시민들’을 조직하기 시작한 초기부터 (개인과 지역사회의) 건강, 사회구조, 환경(대수층)을 뗄 수 없이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파악하며 포괄적인 복원안(대수층에 대한 엄격한 보호 조치, 오염된 환경에 대한 치료, 체계적인 보건 연구, 연방정부의 즉각적인 의료 서비스 후원, 피해에 책임이 있는 산업체와 정부 기관에 대한 처벌 등)을 요구했지만, 환경보호청을 비롯한 관련 기관들은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가장 큰 문제는 애초 인간의 몸을 배제한 채 오염된 환경의 정화만을 다루고자 한 복원 작업에 있었다. 카운티와 주의 보건국은 보건 연구 및 모니터링, 의료 서비스를 요청하는 주민들의 목소리를 무시한 채 부지 정화 작업이나 지하수 정화 시스템의 설계 및 실행, 기반시설 개선에만 초점을 맞추면서 “공동체의 건강”을 외면했다. “인간의 몸은 환경 규제의 가장 중대한 명분으로 여겨지는 듯하지만, 정작 그 규제 과정에서는 기이하게도 배제된다. …… 하지만 피해에 정당하게 대응하기 위해 조직을 꾸리는 이들은 어떤 수역이나 땅 못지않게 자신의 몸과 공동체에도 치료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다.” 7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오염의 느린 폭력 아래에서 살아가고 있는 지역사회의 수많은 주민들은 지금도 여전히 오염 유발자들이 입힌 피해에 맞서 정의로운 해결을 요구하고 있다. 회의에 참석하는 주민들은 대부분 은퇴한 노인들로, TCE에 오염된 물이 대중에게 공급되었을 당시 10대였다. 자신이 오염된 물을 공급받았었는지 여부는 더 이상 이들에게 중요하지 않다. 이들은 대수층과 사람들 모두에게 도움이 필요하며, 복원이 인간의 몸이라는 경계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이미 충분히 알고 있다. 그 점에서 정의로운 대응은 우리 몸이 피부에서 끝나지 않고 물의 몸(수역)이 수면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 건강 혹은 신체의 취약성을 인간과 인간 너머의 개체들이 공유하는 특성으로 간주하는 것을 염두에 둘 때 비로소 이루어질 수 있다. 이것은 장애생태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진실이기도 하다. 상처 입은 자들의 환경주의를 향하여 “우리는 희생되는 것들이 살아남아서 다른 이들에게 살아남는 법을 보여줄 수 있는 생태적 미래를 창조해야 한다.” “처음에는 기병대가 들어왔고, 다음에는 철도가 들어섰고, 그 뒤에는 도심에 요새가 세워졌어요. 우리 땅을 덮친 이 모든 침략의 배후에는 군대가 있어요. 제게는 지금도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일이에요.” 오염의 역사를 사우스사이드, 더 넓게는 남서부 지역에서 계속되고 있는 인종주의와 식민주의의 오랜 역사 속에 놓는 것은 사우스사이드 주민들이 풀어내는 기원 이야기의 공통된 가닥이다. 오염에 대한 공식 서사는 보통 1940년대와 1950년대를 시작점으로 잡지만, 많은 사우스사이드 주민들은 그보다 훨씬 더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들은 이 오염이 발생 시점을 쉽게 특정할 수 있거나 결말을 예측할 수 있는 개별 사건이 아니라, 앵글로색슨계 정착민들과 그 이전부터 이곳에 거주했던 사람들(선주민 집단 토호노오오담, 멕시코계 미국인 공동체) 사이에서 지속되어온 공간적 폭력이라는 역사의 또 다른 한 줄기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오염물질로 인한 피해 그리고 공동체가 감내해야 했던 기나긴 방치의 역사는 그들이 물려받은 역사적 유산이기도 하다. 테일러는 사우스사이드 독성 오염 확산대가 만들어낸 장애생태의 이야기를 전하며 이를 더욱 오랜 식민주의 및 자본주의의 역사, 전쟁폭력의 초국적 흔적, 착취와 이익을 내세우는 전 지구적 경제라는 더욱 거대한 폭력의 줄기들과 연결한다. 이때 장애생태는 상처와 저항의 흔적, 조직적 피해의 광대한 네트워크를 드러내 무엇이 피해를 입히는지 가시화하고, 피해 입은 것들의 요구와 관점을 중심에 놓는다. 테일러가 제안하듯, 장애생태를 중심에 둔 이러한 결집은 ‘상처 입은 자들의 환경주의environmentalism of the injured’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을 우리에게 제안한다. 우리 몸의 취약성과 의존성이 생태계 및 다른 종들의 건강과 부인할 수 없이 엉켜 있는 이 행성적 위기의 순간에 필요한 것은 어떤 존재를 버리거나 희생시키는 ‘유기abandonment의 정치’가 아니라 장애와 상처를 우리가 살아갈 미래에 적극적으로 포함하는 상처환경주의injury environmentalism다. “장애가 부정의로부터 비롯되는 경우가 무척이나 흔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장애 자체가 본질적으로 부정의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장애는 부정의를 만들어내는 체제에 대한 저항이 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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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책 제목과 구문은 동일하지만 세부를 이루는 단어들은 달라졌다. ‘짐’은 ‘상처’로, ‘짐승’은 ‘존재’로 주어와 목적어가 바뀌어 있다. 다만 동사는 그대로 있다. 이 사실은 무엇을 뜻하는가. 짐이든 상처든, 무언가를 ‘끄는’ 것은 생명의 기본값이자 굴레일 수밖에 없다는 뜻일까. 상처도, 상처를 끄는 일도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조건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우리가 이 책을 통해 질문해야 할 것은 그다음의 일, 우리의 상처들을 어떻게 재배열하고 재구성해 어떤 미래에 도달할 것인가의 문제다. 우리는 얽혀 있고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이제 당신과 내가 그 문턱을 넘어설 차례다.” - 안희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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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전쟁과 국가폭력, 산업재해로 인한 몸의 손상은 세계를 향한 총체적 파괴와 긴밀히 맞물려 있다. 몸과 생태계의 신음은 국경을 넘어 하나의 통증으로 연결되어 있다. 저자는 이 상처를 단순히 극복해야 할 결함이 아니라, 세상을 치유하고 연대하는 새로운 감각이자 ‘보편의 지혜’로 제시한다. 손상된 땅과 몸이 서로를 돌보며 살아내는 ‘상처 입은 자들의 환경주의’라는 전략은 기후위기라는 거대한 손상을 입은 지구에서 살아갈 우리에게 절실한 응답이 된다. 장애학을 보편의 지혜로 지위로 안내하는 저자에게 완전히 설득됐다.” - 홍명교 (《사라진 나의 중국 친구에게》 저자·플랫폼c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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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글을 읽을 때 나는 아주 필사적이 된다. 이 장대한 이야기 중 단 하나의 문장도 허투루 쓰이지 않았음에 전율한다. 어떻게 하면 이 파국을 막을 수 있다든지, 혹은 이 거대한 불의에 맞선 투쟁이 어떻게 승리했다든지 하는 거짓 결말을 물리치고, 손상되고 불완전한 것을 긍정하며, 치열하게 사유하고 복잡하게 사랑하려는 그의 태도는 정말이지 끝내주게 근사하다. 슬픔과 고뇌, 상실과 투쟁이 가득한 채로도 우리는 더 인간적이고 덜 인간중심적인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테일러가 그것을 눈부시게 보여주었다.” - 홍은전 (《전사들의 노래》 저자·기록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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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를 끄는 존재들》은 비판적 장애학과 환경주의 사이에 절실했던 대화의 장을 마련했다. 경계를 거부하는 독성물질들은 인간의 신체와 자연 경관 모두를 관통하여 흐르며, 따라서 우리는 시선을 우리 피부라는 경계에 멈춰 서게 해서는 안 된다. 수나우라 테일러는 환경 연구에 장애를, 장애학에 환경을 들여옴으로써 테일러는 두 영역 각각에 분석적 통찰을 선사했다. ‘장애생태’라는 그녀의 개념은 오염된 대수층처럼 역동적으로 고동친다.” - 애나 로웬하웁트 칭 (《세계 끝의 버섯》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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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찰과 지혜로 가득한 이 책에서 수나우라 테일러는 자신의 심오한 핵심 사상을 설득력 있게 펼쳐 보인다. 장애를 갖게 된 신체와 환경이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것, 이 둘이 동일한 폭력에 의해 상처 입었을 뿐만 아니라 동일한 가치에 의해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이 바로 그 통찰이다. 《상처를 끄는 존재들》은 학술적 가치 역시 큰 저작일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 그리고 우리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자연 환경 사이의 연대를 이야기하는 고무적인 외침이다.” - 에드 용 (《이토록 굉장한 세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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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나우라 테일러가 보여주는 천재성은 독창적이면서도 한없이 다정하다. 그녀는 숨이 멎을 듯한 통찰력과 세계 전체를 감싸안는 공감을 통해 이 시대에 가장 시급한 비밀 한 가지를 우리에게 공유해준다. 그것은 바로 상처와 손상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야말로, 마찬가지로 상처 입고 손상된 이 지구 행성에서 어떻게 생존하고 더 나아가 번성할 수 있는지에 대해 가르쳐줄 것이 아주 많다는 사실이다.” - 나오미 클라인 (《도플갱어》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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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일러는 생태적 피해와 인간의 장애 사이의 얽힘에 관한 지극히 독창적이고 눈부신 저작을 우리에게 선사했다. 이 책은 인간의 몸을 땅과 물의 몸, 그리고 다른 존재들의 몸과 엮어주는 이른바 ‘상처의 확장적 그물망’을 조명한다. 《상처를 끄는 존재들》은 클로디아 랭킨의 《시민》이 그러했듯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담아내면서도 개념적으로 대담한 야심을 품는 책이다. 나아가 테일러는 랭킨과 마찬가지로 미학적 실험이라는 생생히 체감되는 삶의 방식을 통해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부정의에 대한 인식을 한층 더 확장시킨다.” - 롭 닉슨 (《느린 폭력과 빈자의 환경주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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