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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으로 직접 쓰는 한국 근대시 시리즈 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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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권
《손으로 직접 쓰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머리말
01 별 헤는 밤
02 서시
03 참회록
04 새로운 길
05 쉽게 씌어진 시
06 사랑스런 추억
07 자화상
08 십자가
09 태초의 아침
10 또 태초의 아침
11 소년
12 눈 오는 지도
13 코스모스
14 풍경
15 바다
16 내일은 없다
17 눈 감고 간다
18 길
19 간판 없는 거리
20 종달새
21 병원
22 바람이 불어
23 가슴 1
24 가슴 3
25 반딧불
26 산울림
27 오줌싸개 지도
28 해바라기 얼굴
29 굴뚝
30 고향 집
31 편지
32 못 자는 밤
33 아기의 새벽
34 빨래
35 참새
36 무얼 먹고 사나
37 기왓장 내외
38 닭
39 둘 다
40 나무
41 개
42 눈
43 할아버지
44 호주머니
45 비 뒤
46 달같이
47 그 여자
48 팔복
49 초 한 대
50 위로
51 장
52 슬픈 족속
53 아우의 인상화
54 트루게네프의 언덕
55 귀뚜라미와 나와
56 밤
57 햇빛?바람
58 버선본
59 거짓부리
60 빗자루
61 만돌이
62 조개껍질
63 햇비
64 병아리
65 비행기
66 봄
67 사과
68 눈
69 겨울
70 산골 물
71 거리에서
72 공상
73 남쪽 하늘
74 비둘기
75 이별
76 꿈은 깨어지고
77 황혼
78 닭
79 산상
80 오후의 구장
81 양지쪽
82 고추밭
83 아침
84 곡간
85 유언
86 비로봉
87 명상
88 이적
89 흐르는 거리
90 돌아와 보는 밤
91 새벽이 올 때까지
92 무서운 시간
93 삶과 죽음
94 간
95 봄
96 사랑의 전당
97 소낙비
98 흰 그림자
99 또 다른 고향 다른 고향

▶2권
《손으로 직접 쓰는 진달래꽃》
머리말
01 진달래꽃
02 해가 산마루에 저물어도
03 개여울
04 님의 말씀
05 금(金)잔디
06 저녁때
07 못 잊어
08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09 눈물이 수르르 흘러납니다
10 봄비
11 봄밤
12 반달
13 애모
14 접동새
15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16 가는 봄 삼월
17 풀 따기
18 그리워
19 가는 길
20 님의 노래
21 분(紛) 얼굴
22 동경하는 여인
23 외로운 무덤
24 불운에 우는 그대여
25 전망(展望)
26 엄마야 누나야
27 님에게
28 초혼(招魂)
29 먼 후일
30 오시는 눈
31 바다가 변하여 뽕나무 밭 된다고
32 나의 집
33 맘에 속의 사람
34 깊고 깊은 언약
35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36 꿈꾼 그 옛날
37 눈 오는 저녁
38 담배
39 비단안개
40 님과 벗
41 잊었던 맘
42 강촌(江村)
43 꽃 촉(燭)불 켜는 밤
44 맘에 있는 말이라고 다 할까 보냐
45 옛이야기
46 귀뚜라미
47 그를 꿈꾼 밤
48 꿈으로 오는 한 사람
49 산유화
50 구름
51 희망
52 춘향과 이 도령
53 가을 아침에
54 가을 저녁에
55 산
56 두 사람
57 부모
58 만나려는 심사(心思)
59 바다
60 붉은 조수(潮水)
61 개여울의 노래
62 기억
63 널
64 몹쓸 꿈
65 부귀공명(富貴功名)
66 부부
67 엄숙
68 산 위에
69 새벽
70 설움의 덩이
71 여수(旅愁)
72 우리 집
73 원앙침
74 월색(月色)
75 자주(紫朱) 구름
76 첫 치마
77 합장
78 황촉(黃燭)불
79 고적한 날
80 꿈길
81 기회
82 밤
83 바라건대는 우리에게
우리의 보습 대일 땅이 있었더면
84 천리만리
85 추회(追悔)
86 맘 켕기는 날
87 첫사랑
88 하다못해 죽어 달래가 옳나
89 하늘 끝
90 마음의 눈물
91 옛 낯
92 눈
93 들돌이
94 여자의 냄새
95 바람과 봄
96 열락(悅樂)
97 묵념

▶3권
《손으로 직접 쓰는 사슴》
머리말
01 정주성(定州城)
02 주막(酒幕)
03 외갓집
04 모닥불
05 적막강산
06 고향(故鄕)
07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
08 개
09 고방
10 광원(曠原)
11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12 동뇨부(童尿賦)
13 마을은 맨천 구신이 돼서
14 머루밤
15 멧새 소리
16 바다
17 흰 바람벽이 있어
18 박각시 오는 저녁
19 산(山)
20 통영(統營)
21 산비
22 흰 밤
23 비
24 노루
25 미명계(未明界)
26 가무래기의 락(樂)
27 초동일(初冬日)
28 성외(城外)
29 쓸쓸한 길
30 적경(寂境)
31 청시(靑枾)
32 하답(夏畓)
33 절간의 소 이야기
34 창원도(昌原道)
- 남행시초(南行詩抄) 1
35 통영(統營)
- 남행시초 2
36 고성가도(固城街道)
- 남행시초 3
37 삼천포(三千浦)
- 남행시초 4
38 북관(北關)
- 함주시초(咸州詩抄) 1
39 노루
- 함주시초 2
40 고사
? 함주시초 3
41 선우사(膳友辭)
- 함주시초 4
42 산곡(山谷)
- 함주시초 5
43 구장로(球場路)
- 서행시초(西行詩抄) 1
44 북신(北新)
- 서행시초 2
45 팔원(八院)
- 서행 시초 3
46 월림(月林)장
- 서행 시초 4
47 산숙(山宿)
- 산중음(山中吟) 1
48 향악(饗樂)
- 산중음 2
49 야반(夜半)
- 산중음 3
50 백화(白樺)
- 산중음 4
51 내가 생각하는 것은
52 가키사키(枾崎)의 바다
53 창의문외(彰義門外)
54 정문촌(旌門村)
55 여우난골
56 삼방(三防)
57 석양(夕陽)
58 수라(修羅)
59 여승(女僧)
60 이두국주가도(伊豆國湊街道)
61 연자간
62 오금덩이라는 곳
63 절망(絶望)
64 오리 망아지 토끼
65 삼호(三湖)
- 물닭의 소리 1
66 물계리(物界里)
- 물닭의 소리 2
67 대산동(大山洞)
- 물닭의 소리 3
68 남향(南鄕)
- 물닭의 소리 4
69 야우소회(夜雨小懷)
- 물닭의 소리 5
70 꼴두기
- 물닭의 소리 6
71 오리
72 추야일경(秋夜一景)
73 추일산조(秋日山朝)
74 칠월(七月) 백중
75 탕약(湯藥)
76 통영(統營)
77 남신의주(南新義州)
유동(柳洞) 박시봉방(朴時逢方)
78 여우난 골족(族)
79 북방(北方)에서
? 정현웅(鄭玄雄)에게
80 가즈랑집
81 고야

▶4권
《손으로 직접 쓰는 향수》
머리말
01 향수(鄕愁)
02 산너머 저쪽
03 난초
04 석류
05 슬픈 인상화(印像畵)
06 바다 1
07 바다 2
08 해바라기 씨
09 무서운 시계
10 삼월 삼질 날
11 딸레
12 종달새
13 병
14 말
15 산에서 온 새
16 바람
17 기차
18 고향
19 산엣 색시 들녘 사내
20 내맘에 맞는 이
21 숨ㅅ기내기
22 비ㄷㅡㄹㄱ이
23 가모가와(鴨川)
24 발열(發熱)
25 조약돌
26 지는 해
27 띠
28 홍시
29 산소
30 할아버지
31 별똥
32 무어래요
33 호수 1
34 호수 2
35 호면
36 겨울
37 피리
38 따알리아
39 홍춘(紅椿)
40 저녁해ㅅ살
41 뻣나무 열매
42 엽서에 쓴 글
43 새빨간 기관차
44 밤
45 달
46 절정(絶頂)
47 풍랑몽 1
48 풍랑몽 2
49 바다 3
50 바다 4
51 바다 5
52 홍역(紅疫)
53 비극
54 시계를 죽임
55 아침
56 바람
57 유리창 1
58 유리창 2
59 촉불과 손
60 해협
61 다시 해협
62 지도
63 귀로(歸路)
64 불사조
65 나무
66 은혜
67 별 1
68 임종
69 갈릴레아 바다
70 그의 반
71 다른 한울
72 또 하나 다른 태양
73 조찬(朝餐)
74 비
75 인동차(忍冬茶)
76 붉은 손
77 꽃과 벗
78 폭포 쪾
79 이른봄 아침
80 갑판 우
81 태극선(太極扇)
82 카페·프란스
83 장수산(長壽山) 1
84 장수산 2
85 비로봉(毘盧峰) 1
86 비로봉 2
87 구성동(九城洞)
88 옥류동(玉流洞)
89 나비

▶5권
《손으로 직접 쓰는 님의 침묵》
머리말
01 님의 침묵
02 알 수 없어요
03 복종
04 나룻배와 행인
05 당신이 아니더면
06 첫 키스
07 행복
08 타고르의 시를 (Gardenisto) 읽고
09 두견새
10 낙화
11 이별은 미(美)의 창조
12 후회
13 길이 막혀
14 하나가 되어주셔요
15 나는 잊고자
16 군말(序)
17 나의 길
18 독자에게
19 나의 꿈
20 떠날 때의 님의 얼굴
21 나의 노래
22 만족
23 인연설 1
24 인연설 2
25 당신을 보았습니다
26 해당화
27 꿈 깨고서
28 당신은
29 밤은 고요하고
30 꿈과 근심
31 심은 버들
32 꽃이 먼저 알아
33 찬송
34 꿈이라면
35 명상(冥想)
36 비
37 사랑의 불
38 사랑의 존재
39 사랑하는 까닭
40 여름밤이 길어요
41 잠 없는 꿈
42 고적한 밤
43 생명
44 사랑의 측량
45 진주
46 ‘사랑’을 사랑하여요
47 의심하지 마셔요
48 비밀
49 포도주
50 비방(誹謗)
51 님의 손길
52 선사(禪師)의 설법
53 그를 보내며
54 참말인가요
55 당신의 편지
56 달을 보며
57 반비례
58 어디라도
59 우는 때
60 버리지 아니하면
61 예술가
62 자유정조(自由貞操)
63 차라리
64 슬픔의 삼매(三昧)
65 착인(錯認)
66 ‘?’
67 참아주셔요
68 어느 것이 참이냐
69 정천한해(情天恨海)
70 금강산
71 님의 얼굴
72 낙원은 가시덤불에서
73 거짓 이별
74 인과율(因果律)
75 최초의 님
76 수의 비밀
77 당신이 가신 때
78 당신의 마음
79 요술
80 사랑의 끝판
81 거문고 탈 때
82 생의 예술
83 꽃싸움
84 쾌락
85 오셔요

저자 소개 4

韓龍雲, 만해, 한유천

승려·시인·독립운동가. 1879년 8월 29일 충남 홍성군에서 몰락한 양반 출신의 가문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속명은 정옥(貞玉), 아명은 유천이며, 용운은 법명, 호적상이름이자 본명은 한정옥이다. 6세 향리의 사숙에서 한문을 배웠고, 9세 『서상기西廂記』를 독파하고, 『통감』『서경』 등을 통달하여 총명한 어린이라는 말을 들었다. 당시 풍습이 그러함에 따라 14세 향리에서 천안 전씨全氏 전정숙과 일찍 혼인하였으나, 집을 나가 떠돌고 출가하기를 반복했다. 가출하여서는 동학농민운동에 가담했고, 고향 홍성을 떠나 백담사 등을 전전하며 불교서적을 탐독했다. 21세에 강원도 인제군 설악
승려·시인·독립운동가. 1879년 8월 29일 충남 홍성군에서 몰락한 양반 출신의 가문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속명은 정옥(貞玉), 아명은 유천이며, 용운은 법명, 호적상이름이자 본명은 한정옥이다. 6세 향리의 사숙에서 한문을 배웠고, 9세 『서상기西廂記』를 독파하고, 『통감』『서경』 등을 통달하여 총명한 어린이라는 말을 들었다. 당시 풍습이 그러함에 따라 14세 향리에서 천안 전씨全氏 전정숙과 일찍 혼인하였으나, 집을 나가 떠돌고 출가하기를 반복했다. 가출하여서는 동학농민운동에 가담했고, 고향 홍성을 떠나 백담사 등을 전전하며 불교서적을 탐독했다. 21세에 강원도 인제군 설악산 백담사 등지를 전전하였고, 이때를 전후해서 세계여행을 계획하였다.

1894년 동학군에 가담하여 투쟁하다 실패했다. 1896년 설악산 오세암에 은거, 수년 간 불경을 공부하는 한편 근대적 교양서적을 읽어 서양의 근대사상을 접했다. 1904년(26세) 설악산 백담사에 들어가 불목하니 노릇을 하다가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 27세 백담사에서 김연곡사金蓮谷師에게서 득도. 백담사에서 전영제사全泳濟師에 의하여 수계受戒. 백담사에서 이학암사李鶴庵師에게 『기신론』, 『능엄경』, 『원각경』 등을 수료. 29세 강원도 건봉사에서 수선안거(최초의 禪수업)를 성취하였다.

30세 강원도 유점사에서 서월화사徐月華師에게 『화엄경』을 수학하였고 4월, 일본의 시모노세키, 교토, 도쿄, 닛고 등지를 주유하며 신문물을 시찰하였다. 도쿄 조동종 대학에서 불교와 서양 철학을 청강하였으며, 10월, 건봉사 이학암사에서 『반야경』과 『화엄경』을 수료하였다. 31세에 강원도 표훈사 불교 강사에 취임하였고 1910년(32세) 『조선불교유신론』을 백담사에서 탈고, 1911년(33세) 박한·진진웅·김종래·장금봉 등과 순천 송광사, 동래 범어사에서 승려 궐기대회를 개최하고 한일불교동맹 조약 체결을 분쇄하였다. 1913년(35세) 불교강연회 총재에 취임하였고 『조선불교유신론』을 불교서관에서 발행하였다.

1914년(36세) 『불교대전』을 범어사에서 발행하고 1917년(39세) 『정선강의 채근담』을 신문관에서 발행하였고 항일 투사로 활동을 시작했다. 12월 3일 밤 10시쯤 오세암에서 좌선하던 중 바람에 물건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의정돈석擬情頓釋이 되어 진리를 깨치고, 오도송을 남겼다. 1918년 청년계몽운동지 [유심]지를 창간했다. 1919년(41세) 3.1운동을 주도, 최남선이 작성한 『독립선언서』의 자구 수정을 하고 공약삼장을 첨가하였다. 1923(45세) 조선물산장려운동을 적극 지원하였고, 민립대학 설립 운동을 지원하는 강연을 하였다.1924년 불교청년회 회장, 총재를 역임하였다.

1925년(47세) 오세암에서 『님의 침묵』을 탈고하엿다. 1927년(49세) 1월 신간회를 발기하였으며, 5월 신간회 중앙집행위원 겸 경성지회장에 뽑혔다. 1929년 광주학생운동 민중대회를 개최하였다. 1931년(53세) 월간 [불교]지를 인수하였고 청년승려비밀결사 만당卍黨의 영수로 추대되었으며, 1932년(53세) 조선불교 대표인물 투표에서 최고득점으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한용운 422표, 방한암 18표, 박한영 13표, 김태흡 8표, 이혼성 6표, 백용성 4표, 송종헌 3표, 백성욱 3표, 3표 이하는 생략. 불교지 93호에 발표됨). 1933(54세) 유숙원씨와 재혼하였고, 이때를 전후하여 『유마힐소설경』을 번역하기 시작하였다. 벽산 스님이 집터를 기증하고, 몇 분의 성금으로 성북동에 심우장尋牛莊을 지었으며, 이때 총독부 돌집을 마주보기 싫다고 북향으로 짓도록 하였다.

1940년(62세) 『불교』지 2월호에 『유마힐소설경』 연재를 시작하였고, 1943년(65세) 조선인 학병의 출정을 반대하였다. 1944년(66세) 6.29 심우장에서 영양실조로 입적하였으며 유해는 미아리 화장장에서 다비한 후 망우리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한용운은 불자의 신분으로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하였고, 민중에게 독립의 필요성을 설파하는 등 사회 참여가 활발했던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3·1운동에 가담하고 독립선언서를 공개하여 낭독하는 등의 활동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3년간 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1926년에는 시집 『님의 침묵』을 출판하여 저항문학에 앞장섰는데, 기존의 시조 형식을 깬 산문시 형태를 취했으며, 향토적 정서가 묻어나는 언어와 서민적인 시어 활용으로 민중정신을 반영했다. 독립을 향한 열망, 자연 등을 ‘님’으로 표현했고, 해석의 여지가 다양한 화법으로 검열을 피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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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素月, 김정식

1902년 9월 7일 평안북도 구성군에 있는 외가에서 부친 김성도와 모친 장경숙의 장자로 출생한다. 본명은 김정식이다. 태어난 지 백일 후부터 평안북도 정주군 곽산면의 본가에서 자란다. 1904년 부친 김성도가 당시 경의선 철도 부설공사를 하던 일본 목도꾼에게 폭행을 당한 이후 정신 이상 증세에 시달린다. 김소월은 광산을 경영하는 할아버지의 손에서 컸는데, 이 무렵 시인의 길로 가도록 영향을 준 숙모 계희영을 만났다. 1915년 평안북도 곽산의 4년제 남산보통학교를 졸업하고 평안북도 정주에 있는 오산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해 김억과 사제관계를 맺게 되고 한시, 민요시, 서구시 등을
1902년 9월 7일 평안북도 구성군에 있는 외가에서 부친 김성도와 모친 장경숙의 장자로 출생한다. 본명은 김정식이다. 태어난 지 백일 후부터 평안북도 정주군 곽산면의 본가에서 자란다. 1904년 부친 김성도가 당시 경의선 철도 부설공사를 하던 일본 목도꾼에게 폭행을 당한 이후 정신 이상 증세에 시달린다. 김소월은 광산을 경영하는 할아버지의 손에서 컸는데, 이 무렵 시인의 길로 가도록 영향을 준 숙모 계희영을 만났다. 1915년 평안북도 곽산의 4년제 남산보통학교를 졸업하고 평안북도 정주에 있는 오산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해 김억과 사제관계를 맺게 되고 한시, 민요시, 서구시 등을 본격적으로 접하게 된다. 후에 경성 배재고등보통학교에 편입하여 1923년 졸업했다. 이후 일본 도쿄 상과대학교에 입학 후 귀국했을 시점에 시인 나도향과 만나 친구가 되었다. 일제강점기 시절 이별과 그리움을 주제로 우리 민족의 한과 슬픔을 노래하는 시를 썼다. 김소월은 자신의 문학적 스승인 김억의 격려를 받아 그의 지도 아래 시를 쓰기 시작하였으며 1920년 「낭인(浪人)의 봄」, 「야(夜)의 우적(雨滴)」 등 5편을 소월(素月)이라는 필명으로 동인지 『창조』 5호에 처음으로 시 「그리워」를 발표하며 등단하였다. 오산학교를 다니는 동안 김소월은 왕성한 작품 활동을 했으며, 1921년 [동아일보]에 「봄밤」, 「풀 따기」 등을 발표했다. 1922년 「금잔디」, 「엄마야 누나야」를 개벽지에 발표하였으며, 1925년에 시론 「시혼(詩魂)」을 발표하고, 같은 해 7월호에 떠나는 님을 진달래로 축복하는 한국 서정시의 기념비적 작품인 『진달래꽃』을 발표하여 크게 각광받았다. 이는 시인이 생전에 낸 유일한 시집으로 기록된다. 그 밖에 1923년 『깊고 깊은 언약』 『접동새』 1924년 『밭고랑 위에서』 『생과 사』 1926년 『봄』 『저녁』 『첫눈』 1934년 『제이, 엠, 에스』 『고향』 등을 발표했다.

1923년 도쿄상업대학교에 입학하였으나, 같은 해 9월 관동대지진이 발생하자 중퇴하고 귀국했다. 김소월은 고향으로 돌아간 후 조부가 경영하는 광산일을 돕다가 처가가 있는 구성군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어 1926년평안북도 구성군 남시에서 [동아일보 지국]을 개설하고서 이도 실패하자 극도의 빈곤에 시달리기도 했다. 예민한 성격이었던 김소월은 이에 큰 충격을 받았으며, 이후 류머티즘을 앓으며 친척들에게도 대접을 받지 못하는 등 고생하다가 1934년 12월 24일 만 32세의 나이로 평안북도 곽산에서 아편을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939년 스승 김억이 엮은 『소월시초(素月詩抄)』가 발간된다. 1977년 [문학사상] 11월호에 미발표 소월 자필 유고시 40여 편이 발굴, 게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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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EK SEOK,白石,白奭,백기행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 가장 토속적인 언어를 구사하는 모더니스트. 1912년 7월 1일, 평안북도 정주 출생으로 본명 백기행이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신식교육을 받았다. 필명은 백석(白石)과 백석(白奭)이 있었는데 주로 백석(白石)을 많이 사용하였다. 일본의 시인 이시카와 타쿠보쿠(石川啄木)의 시를 좋아하여 그의 이름 중 석을 택해서 썼다. 오산고보 재학 중 백석은 부친을 닮아 성격이 차분했으며 친구가 없었다. 1936년 시집 ‘사슴’을 경성문화 인쇄사에서 100부 한정판으로 찍었다. 윤동주는 백석 시집을 구할 수 없어 노트에 시를 필사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해방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 가장 토속적인 언어를 구사하는 모더니스트. 1912년 7월 1일, 평안북도 정주 출생으로 본명 백기행이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신식교육을 받았다. 필명은 백석(白石)과 백석(白奭)이 있었는데 주로 백석(白石)을 많이 사용하였다. 일본의 시인 이시카와 타쿠보쿠(石川啄木)의 시를 좋아하여 그의 이름 중 석을 택해서 썼다. 오산고보 재학 중 백석은 부친을 닮아 성격이 차분했으며 친구가 없었다. 1936년 시집 ‘사슴’을 경성문화 인쇄사에서 100부 한정판으로 찍었다. 윤동주는 백석 시집을 구할 수 없어 노트에 시를 필사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해방 전 천재 시인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오산소학교, 오산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오산고보 졸업 후, 조선일보가 후원하는 춘해장학회의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일본 도쿄의 아오야마 학원 영어사범학과에 입학하였다. 김소월을 동경하면서 시인의 꿈을 키웠으며, 1930년 [조선일보] 신년현상문예에 단편소설 「그 모母와 아들」이 당선되면서 등단하였다. 1934년에 귀국하여 8·15 광복이 될 때까지 [조선일보], 함흥 영생여자고등보통학교 영어교사로, [여성사], [왕문사] 등에서 근무하며 시작 활동을 했다. 1935년 [조광] 창간에 참여하였고, 같은 해 [조선일보]에 시 「정주성定州城」을 발표하면서 등단하였다.

시작 활동 외에도 많은 외서들을 번역했다고 전해진다. 1936년 시집 『사슴』을 간행하였으며 같은 해 조선일보를 그만두고 함경남도 함흥 영생여고보 영어교사로 부임하였다. 1939년 [여성]지 편집 주간 일을 사직하고 고향인 평북 지역을 여행하였다. 1940년 만주의 신징(지금의 장춘)으로 가서 3월부터 만주국 국무원 경제부 말단 직원으로 근무하다가 창씨개명의 압박이 계속되자 6개월 만에 그만두었다. 1942년 만주의 안둥 세관에서 일하다 1945년 해방이 되자 신의주를 거쳐 고향인 정주로 돌아왔다.

1946년 북조선예술총동맹이 결성된 후 1947년 문학예술총동맹 외국문학 분과위원이 되었다. 이때부터 러시아 문학 번역에 매진했다. 1949년 조선작가동맹 기관지 [문학신문]의 편집위원으로 위촉되었고 [아동문학]과 [조쏘문화] 편집위원을 맡으며 안정적인 창작활동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1957년 동화시집 『집게네 네 형제』를 간행하였으나 1958년 ‘붉은 편지 사건’ 이후 격렬한 비판을 받게 되면서 이후 창작과 번역 등 대부분의 문학적 활동을 중단했다. 1959년 양강도 삼수군 관평리의 국영협동조합 축산반에서 양을 치는 일을 맡으면서 청소년들에게 시 창작을 지도하고 농촌 체험을 담은 시들을 발표했으나, 1962년 북한 문화계에 복고주의에 대한 비판이 거세게 일어나면서 창작 활동을 접었다. 1996년까지 삼수군 관평리에서 농사를 짓다가 사망했다는 내용이 드러났지만 정확한 정보는 알려져 있지 않다.

방언을 즐겨 쓰면서도 모더니즘을 수용하여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한 백석은 일제 강점기에도 모국어를 지키고자 하였다. 시집으로 『사슴』(1936)이 있으며, 대표 작품으로 「여우난골족」,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국수」, 「흰 바람벽이 있어」 등이 있다. 북한에서 나즘 히크메트의 시 외에도 푸슈킨, 레르몬토프, 이사콥스키, 니콜라이 티호노프, 드미트리 굴리아 등의 시를 옮겼다. 1936년에 펴낸 시집 『사슴』에 그의 시 대부분이 실려 있으며 수록된 시 「통영」, 「적막강산」, 「북방」 등 백석의 대표작들은 실향 의식을 바탕으로 서민들의 삶을 토속적인 언어로 현실감 있게 그려냈다. 한국의 대표 모더니즘 시인으로 평가받는 백석의 시는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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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芝溶

1902년 충북 옥천군 옥천읍 하계리에서 태어났다. 옥천보통공립학교,휘문고등보통학교,일본 도시샤대학 영문과를 졸업했다. 1922년 고교생 때 첫 작품 풍랑몽을 발표하며 데뷔했다. 시문학, 구인회 등의 문학 동인과 가톨릭 청년, 문장 등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휘문고보 교원을 거쳐 해방 후에는 이화여전교수, 경향신문주간, 조선문학가동맹 중앙집행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1950년 한국전쟁 시 납북되어 사망했다고 알려졌으나, 전쟁으로 인해 폭사했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아직까지 정확한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다. 1926년 일본 유학중 「카페 프란스」 등 9편의 시를 발표하고 본격적
1902년 충북 옥천군 옥천읍 하계리에서 태어났다. 옥천보통공립학교,휘문고등보통학교,일본 도시샤대학 영문과를 졸업했다. 1922년 고교생 때 첫 작품 풍랑몽을 발표하며 데뷔했다. 시문학, 구인회 등의 문학 동인과 가톨릭 청년, 문장 등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휘문고보 교원을 거쳐 해방 후에는 이화여전교수, 경향신문주간, 조선문학가동맹 중앙집행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1950년 한국전쟁 시 납북되어 사망했다고 알려졌으나, 전쟁으로 인해 폭사했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아직까지 정확한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다.

1926년 일본 유학중 「카페 프란스」 등 9편의 시를 발표하고 본격적으로 문단 활동을 시작했다. 1933년 9인회를 결성하고 [가톨릭청년]의 편집고문을 맡아 다수의 시와 산문을 발표하였으며, 시인 이상을 문단에 등단시키기도 하였다. 1935년 첫 시집인 『정지용 시집』을 출간하였으며, 1939년 [문장]의 추천위원이 되어 조지훈, 박두진, 박목월, 이한직, 박남수 등을 등단시켰다. 1950년 한국전쟁이 뒤에 납북되어 사망하였다.

섬세하고 독특한 언어를 구사, 생생하고 선명한 대상 묘사에 특유의 빛을 발하는 시인 정지용. 한국현대시의 신경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그는 이상을 비롯하여 조지훈, 박목월 등과 같은 청록파 시인들을 등장시키기도한 시인이었다. 1902년 음력 5월 15일 충북 옥천읍에서 좀 떨어진 구읍의 청석교 바로 옆 촌가에서 한약상을 경영하던 영일 정씨 태국(泰國)을 아버지로 하동정씨 미하(美河)를 어머니로 탄생한 그는 그 당시 풍습에 따라 12살 때(1913) 동갑의 부인 송재숙과 영동군 심천면 초강리 처가에서 결혼하였다. 이 부인 사이에 3남 1녀가 태어났으며, 그 가운데 차남과 3남은 6.25사변중에 행방불명 되었고, 현재 장남 구관과 장녀 구원만 생존해 있다.

그는 휘문고보 재학 시절 [서광] 창간호에 소설 「삼인」을 발표하였으며, 일본 유학시절에느 대표작의 하나인 「향수」를 썼다. 1930년에 시문학 동인으로 본격적인 문단활동을 전개하였고, 구인회를 결성하기도 하였으며 문장지의 추천위원으로 활동했다. 해방이 되서는 경향신문의 주간으로 일하고, 이화여대와 서울대에 출강하여 시론, 수필, 평문을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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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6년 04월 18일
쪽수, 무게, 크기
1240쪽 | 2008g | 138*214*82mm
ISBN13
9788967992613

출판사 리뷰

시대의 어둠을 밝힌 촛불,
윤동주를 만나다
나라를 빼앗긴 암흑의 시대에 별처럼 바람에 스치듯 살다가 짧은 생을 마친 윤동주. 그는 근대시문학을 대표하는 시인이자 시로써 일제에 끝까지 저항했던 독립 운동가였다. 안타깝게도 광복을 겨우 6개월 남긴 채 28살의 젊은 나이로 타계했지만〈서시〉, 〈별 헤는 밤〉, 〈자화상〉, 〈참회록〉 등 그가 생전에 남겼던 수많은 시들은 지금도 시대를 뛰어넘어 많은 사람에게 암송되고, 그때마다 새로운 감동을 주고 있다.
이 책에는 그가 생전에 남긴 주옥같은 시들 중에서 엄선한 99편의 시가 실려 있다. 윤동주의 시를 읽고 음미하는 것으로도 좋지만, 그의 시를 한 자 한 자 써가면서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새로운 감동은 물론 윤동주의 고뇌와 숨결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어둡고 처절했던 일제강점기, 이국의 하늘을 바라보며 조국의 슬픔과 고통을 위로하며 민족의 소망을 노래한 윤동주의 시를 직접 써 보면서 독자들의 가슴 속에도 확실한 소망을 키워나가기를 바란다.

한국인의 정과 한을 노래한
서정시인, 김소월을 만나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김소월. 우리나라의 가장 대표적인 서정시인으로 인정받고 있는 김소월. 그의 시들은 한국인의 정과 한을 담아낸 서정시다. 그의 대표적인 시 〈진달래꽃〉은 이별이 처절한 만큼 절제된 감정으로 표현되었다. 특별한 시어나 화려한 기교보다 강한 그의 진정한 매력이 담겨있다. 또한〈산유화〉, 〈님의 노래〉, 〈초혼〉 등의 시들은 일제강점기 끊임없이 상실의 아픔을 겪게 되는 우리 민족사 전반에 걸쳐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였다.
당대의 사람들에게만 공감을 준 것이 아니라 오늘날의 독자들에게도 감동을 일으키는 보편적인 정서를 지니고 있는 탓에 ‘국민 애송시’의 자리를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에는 한국인의 애송시인〈진달래꽃〉을 비롯해〈초혼〉, 〈산유화〉, 〈엄마야 누나야〉 등 그의 엄선된 시 97편이 실려 있다. 독자들은 김소월의 시를 직접 ‘손글씨’로 써 보면서 그동안 놓치기 쉬웠던 김소월 시의 새로운 면모와 진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토속적이면서 모던한 서정성을
지닌 천재 시인, 백석을 만나다
잊혀졌던 천재 시인 백석. 토속적이면서 모던한 서정성을 추구했던 그의 이름 앞에는 늘 ‘천재’라는 수식어가 따른다. 백석의 시에는 다른 작품에서는 느낄 수 없는 격조(格調)가 느껴진다. 또한, 백석의 시어는 정주 토속어를 그대로 쓰고 있어 향토색이 물씬 풍기는데 이것은 일제강점기 모국어를 지키려는 그의 의지라고 볼 수 있다. 백석은 해방 이후 북한을 택하면서 그의 작품도 함께 금기시됐다. 그러다가 1988년 해금(解禁) 이후 백석에 대한 연구가 본격화되면서 한국문학사에 ‘천재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가 생전에 남긴 단 한 권의 시집인 《사슴》은 한국 현대시 백년사에서 우리 시대의 시인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시집으로 뽑혔다. 이 책은 백석의 초판본 《사슴》에서 엄선된 81편의 시를 옮겨 담았다. 세월이 가도 사라지지 않을 그의 시들을 직접 쓰는 ‘손글씨’를 통해서 감상한다면 독자 여러분의 가슴에도 영원히 남아있는 진한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한국 현대시의 선구자이자
모더니즘 시인, 정지용을 만나다
한국 현대시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시인 정지용. 그는 한국 근대 문학사의 최초의 모더니스트이자 현대시의 선구자로 불린다. 정지용은 다양한 감정과 경험을 이지적으로 절제시키고 감각적인 이미지로 드러내는 방법을 통해서 ‘한국적인 모더니즘’의 시세계를 개척했다. 섬세하고 독특한 시어는 물론 생생하고 선명한 묘사에 특유의 빛을 발하는 그는 이상을 비롯하여 조지훈, 박목월 등 당대 시인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친 최초의 모더니즘 시인이었다.
이 책은 정지용 시인의 대표작인 〈향수〉를 비롯해 〈유리창〉, 〈호수〉 〈고향〉 〈바다〉 등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89편의 시를 실었다. 특히 시인이 의도적으로 활용한 방언과 고어, 띄어쓰기 등을 원본대로 살렸다. 따라서 시인이 의도적으로 활용한 방언과 고어가 잘 살아 있어 읽는 맛을 더한다. 독자들은 그의 감각적인 시들을 감상하면서 직접 ‘손글씨’를 쓰는 즐거움을 동시에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강직함과 부드러운 시어로 일제에
맞선 지식인, 한용운을 만나다
시인이자 승려, 독립운동에 앞선 민족대표 33인 중 하나. 그를 소개하는 말에는 이 외에도 여러 개가 있다. 하지만 가장 그를 ‘그답게’ 소개하는 말은 아마도 ‘민족시인’이 아닐까 한다. 만해 한용운은 일제강점기에 우리의 자주독립을 염원하며 ‘행동하는 지식인’의 모습 그대로의 삶을 살았다. 그래서 강한 독립에 대한 의지, 일제와 타협하거나 굴욕적인 삶을 살지 않겠다는 결심이 글 속에 나타난다. 하지만, 그가 항상 강한 글만 쓴 것은 아니다. 때로는 여성스럽고 부드러우며 이별을 극대화하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또, 그는 자주독립을 향한 의지를 굳은 시어 속에 녹여 주권을 잃어버린 우리의 슬픈 삶과 애환을 달래 주었다.
이 책은 그의 정신을 이어받아 시 원문을 따라 쓰면서 그의 시 세계를 이해하고자 만들었다. 본문의 왼쪽에는 한용운의 시, 오른쪽에는 독자가 손으로 쓰는 페이지로 꾸몄다. 만해 한용운의 서거는 50년이 넘었음에도 우리에게 꼿꼿하고 총명한 지식인의 시어를 보여 준다. 이 책에 실린 85편의 시를 직접 손으로 쓰면서 암울했던 시대의 지식인으로 사는 삶이란 어떤 것인지 가슴으로 느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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