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rles Bukows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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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른 아이들과 놀아도 된다는 허락을 받지 못했다. 「걔들은 나쁜 애들이야.」 아버지가 말했다. 「부모들이 가난해.」 「그래요.」 어머니도 동의했다. 부모님은 부자가 되고 싶어서 자기들이 부자라는 상상을 하곤 했다. --- p.32
그때 내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데이비드와 나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은 내가 [아웃]되기를 바랐다. 나는 [아웃]되어야만 했으니까. 아이들은 데이비드와 내가 친구라는 것을 알았다. 데이비드 때문에 아이들은 나를 원하지 않았다. 내야에서 걸어 나가면서 나는 데이비드가 반바지를 입고 3루를 보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파란색과 노란색 긴 양말이 발까지 흘러내렸다. 데이비드는 왜 나를 골랐을까? 나는 밉상으로 찍히고 말았다. --- p.40~41 기다리던 때가 왔다. 나는 그동안 키가 자랐고, 플레이트에 섰을 때 무척 힘이 넘치는 기분이 들었다. 그 애들이 바라는 만큼 내 실력이 형편없다고는 믿을 수 없었다. 나는 되는 대로 휘둘렀지만 힘이 있었다. 내가 강하다는 것을 알았고, 어쩌면 애들이 말하는 대로 [미친] 것에 가까울지도 몰랐다. 하지만 무언가 진짜가 있다는 기분을 몸 안에서부터 느꼈다. 그저 굳어 버린 똥일지도 모르지만, 이전보다 더 많아졌다. --- p.41 아버지의 얼굴은 끔찍했다. 앞으로 내민 입술은 기름기로 번들거리고 즐거움으로 축축했다. 아버지는 아무 일도 없었던 양, 나를 때린 적이 없는 양 행동했다. 침실로 돌아왔을 때 나는 생각했다. 저 사람들은 내 부모가 아냐. 나를 어디서 입양했는데, 지금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거야. --- p.53 교실은 끔찍할 정도로 고요했다. 나는 그때까지 교실에서 가장 인기 없는 아이였다. 그 애들의 심장을 모두 칼로 갈라놓는 것만 같았을 것이다. 「매우 독창적인 글입니다.」 프레타그 선생님은 내 글을 읽기 시작했다. 그 이야기는 내 귀에도 근사하게 들렸다. 모두가 귀를 기울였다. 내가 쓴 단어들이 칠판 끝에서 칠판 끝까지 교실을 채웠다. 천장에 부딪쳤다 튕겨 나왔고, 프레타그 선생님의 구두를 덮고 바닥 위에 쌓였다. 반에서 가장 예쁜 여자애들이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센 남자애들은 모두 열 받았다. 그 애들이 지은 글은 개똥만도 못했다. 나는 목마른 사람처럼 내 단어들을 들이마셨다. 심지어 그 말들이 진짜라고 믿기 시작했다. 후안이 내게 얼굴을 한 대 맞은 표정으로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두 다리를 뻗고 의자에 기댔다. 너무 빨리 모든 것이 끝났다. 「이 멋진 글과 함께,」 프레타그 선생님이 말했다. 「여기서 수업을 마치겠습니다.」 --- p.114 나는 바라보았다. 거미가 나뭇가지 사이에 거미줄을 쳤고, 파리 한 마리가 거기 걸려 있었다. 거미는 무척 신나 보였다. 파리는 빠져나가려고 발버둥 치며 온 거미줄을 흔들었다. 파리는 미친 듯이 무력하게 윙윙댔고 거미는 파리의 날개와 몸을 거미줄로 좀 더 칭칭 감았다. 파리가 윙윙대는 동안 거미는 빙빙 돌며 파리를 완전히 거미줄로 묶어 버렸다. 거미는 무척 크고 흉측했다. 「이제 접근하려고 한다!」 척이 소리쳤다. 「송곳니로 꽉 물려고 해!」 나는 아이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거미를 발로 차서 떨어뜨리고 한 발로 파리를 거미줄에서 떼어 냈다. 「너 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거야?」 척이 따졌다. 「이 개새끼!」 에디가 고함쳤다. 「네가 망쳤잖아!」 나는 물러섰다. 프랭크조차 나를 이상하게 쏘아보았다. --- p.118~119 바니는 턱이 축 늘어진 커다란 갈색 불독이었다. 무감각한 갈색 눈에 멍청하고 뚱뚱했다. 개는 꾸준히 으르렁거리며 서서히 앞으로 나아갔다. 목덜미와 등을 따라 난 털이 곤두섰다. 나는 개의 멍청한 엉덩이를 발로 차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개가 내 다리를 물어뜯어 버릴 것만 같았다. 개는 죽이고자 하는 마음에 완전히 몰두하고 있었다. 하얀 고양이는 채 자라지도 않았다. 고양이는 벽에 바짝 붙어서 식식대며 기다렸다. 아름다운 동물, 무척이나 깨끗한. 개는 느릿느릿 앞으로 움직였다. 어째서 애들은 이런 짓을 필요로 할까? 이건 용기의 문제가 아니라 그저 더러운 게임이었다. 어른들은 어디에 있었나? 말릴 권위를 가진 이들은 어디에 있었나? 그들은 늘 주위에 있으면서 나를 꾸짖어 놓고. 이제 그들은 어디에 있었나? --- p.122 그 애는 그저 딱풀처럼 내게 달라붙었다. 너무 불쌍해서 그냥 꺼지라고 할 수가 없었다. 굶주리고 사람들 발길에 차인 똥개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애와 어울려 다니는 게 기분 좋아지진 않았다. 그렇지만 나는 똥개의 기분을 알기 때문에, 그 애가 주변을 맴돌도록 놔두었다. 그 애는 말끝마다, 적어도 한 단어는 욕을 섞어 썼지만, 모두 가짜였고 그 애는 강하지 않았다. 그냥 겁이 났을 뿐이었다. 나는 겁이 나진 않았지만 혼란을 느끼긴 했기에 우리는 어쩌면 좋은 짝이었는지도 몰랐다. --- p.130 그 모든 작품이 내게 밀려들었다. 한 책이 다른 책으로 안내했다. 더스패서스가 따라왔다. 사실 아주 좋지는 않았지만 그럭저럭 좋았다. 그의 미국 3부작은 너무 길어서 읽는 데 하루가 더 걸렸다. 드라이저는 내게 별 감흥을 전해 주지 못했다. 셔우드 앤더슨은 줬다. 그리고 헤밍웨이가 따라왔다. 얼마나 전율이 일었는지! 그는 대사를 쓸 줄 아는 작가였다. 그건 기쁨이었다. 낱말들은 지루하지 않았고, 마음으로 하여금 콧노래를 부르게 하는 것들이었다. 그것들을 읽고 마법에 몸을 맡기면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고통 없이 희망을 갖고 살 수 있었다. --- p.215 나는 웃음을 터뜨렸고 정말로 마음이 열렸다. 곧 짐은 반 블록 차이로 처졌다, 한 블록, 두 블록까지 멀어졌다. 아무도 내가 얼마나 잘하는지 알지 못했다. 아무도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지 못했다. 나는 일종의 기적이었다. 태양은 노란빛을 여기저기 던지고 나는 바퀴 달린 미친 칼처럼 그 햇빛을 가르고 달렸다. 내 아버지는 인도 거리의 비렁뱅이지만, 세상 모든 여자들은 나를 사랑하지……. --- p.232 길을 걸으며 나는 혼자라 느끼지 않았고, 실제로도 혼자가 아니었다. 굶주린 잡견 한 마리가 따라오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불쌍한 동물은 끔찍할 정도로 앙상했다. 갈비뼈가 피부를 뚫고 나올 듯했다. 털은 대부분 빠져 버렸다. 남아 있는 털도 마르고 뭉쳐서 군데군데 붙어 있었다. 그 개는 사람들에게 매 맞고 위협당했으며 버림받아 겁을 먹었다. 호모 사피엔스의 희생자였다. 나는 멈춰서 무릎을 꿇고 한 손을 내밀었다. 개는 뒷걸음질 쳤다. 「이리 와봐, 난 너의 친구야…… 이리 와, 이리…….」 개는 더 가까이 왔다. 무척 슬픈 눈을 갖고 있었다. 「야, 사람들이 무슨 짓을 한 거냐?」 --- p.288~289 여자들은 돈 잘 버는 남자를 원했다, 여자들은 지위가 있는 남자를 원했다. 얼마나 많은 품격 있는 여자들이 밑바닥 건달들과 살고 있을까? 뭐, 어쨌든 나는 여자를 원하지 않았다. 같이 사는 것도 싫었다. 어떻게 남자들은 여자들과 살 수 있었을까? 그게 무슨 뜻이었을까? 내가 원하는 건 3년 치 식량이 있는 콜로라도의 동굴이었다. 엉덩이는 모래로 닦으면 된다. 무엇이든, 이 지루하고, 사소하고 비겁한 존재 속에서 익사하지 않을 수 있는 무엇이든. --- p.302 「이 자식이 저를 꼬여 냈어요.」 「우린 그 따위 건 신경도 안 써. 중요한 건 무슨 일이 일어났냐는 거지. 우리가 아는 건, 넌 해고라는 거야.」 「제 월급은 어쩌고요?」 「우편으로 부쳐 주지.」 「좋아요. 그럼…….」 「잠깐, 너 사물함 열쇠나 내놓고 가.」 --- p.310 히틀러는 그저 내게 또 한 명의 독재자일 뿐이었다. 다만 히틀러는 저녁 식사 시간에 내가 자기를 막기 위해 전쟁에 나간다면, 머리를 날려 버리거나 불알을 떼어 버리겠다는 설교는 늘어놓지 않았다. --- p.3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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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자신이 가장 좋아한, 부코스키 입문자를 위한 소설!
못 견디게 우스꽝스럽고 눈물겨운 소년 [헨리 치나스키]의 좌충우돌 성장담 찰스 부코스키의 장편소설 『호밀빵 햄 샌드위치』가 박현주 씨의 번역으로 열린책들에서 출간되었다. 부코스키의 분신 [헨리 치나스키]의 유년과 청소년기를 생생하게 그려 낸 성장 소설이다. 전 세계 독자들의 열광적인 호응을 불러일으키며 독일, 네덜란드, 스페인, 프랑스, 덴마크, 포르투갈, 러시아, 이탈리아, 일본 등 10여 개국에서 출간된 바 있다. 과거 국내에 소개된 부코스키의 작품들에서 보듯 [헨리 치나스키]는 떠돌이, 술주정뱅이, 호색한, 경마 도박꾼으로 밑바닥 삶 그 자체를 대변하는 인물이다. 『호밀빵 햄 샌드위치』는 치나스키의 남다른 인격이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을 면밀히 추적해 볼 수 있는 소설이라는 점에서 특히 눈여겨 볼만하다. 앞서 출간된 부코스키의 작품『우체국』과 『여자들』(열린책들)을 번역한 박현주 씨의 손을 거쳐, 작가의 세계관에 대한 높은 이해를 토대로 작품에 대한 심층적인 접근과 해석에 공을 기울였다. 1965년, 캘리포니아 산타로사에 위치한 출판사「블랙 스패로 프레스」의 대표 존 마틴은 우체국에서 우편물을 분리하는 사무직원으로 일하던 부코스키에게 일을 그만두고 전업으로 글을 쓰면 매달 1백 달러의 임금을 지불하겠다고 제안했다. 부코스키는 제안을 받아들여 글쓰기에 착수했다. 이전까지 시를 써왔던 그는 51세의 나이에 장편소설 『우체국』을 내놓으며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존 마틴은 사실상 부코스키의 작품을 출간하기 위해 출판사를 설립했을 정도로 열정이 대단했고 자신의 안목에 확신이 있었다. 그리고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부코스키는 미국 문학사상 전무후무한 개성을 지닌 캐릭터 [헨리 치나스키]를 창조해 내며, 수많은 추종자를 거느린 인기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또한 마틴은 두 사람의 약속 이후 24년간 단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부코스키에게 임금을 지불했다. 입맛을 다시게 하는 호밀빵 햄 샌드위치, 그리고 제목을 둘러싼 갖가지 추측들 제목의 의미는 발표된 지 30년이 넘은 지금도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가장 일반적인 추측은 역시 [호밀빵 햄 샌드위치]라는 설명으로, 미국인들이 가장 흔히 먹는 학교 도시락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작품 내에서는 치나스키가 첫 출근 때 싸 갔던 샌드위치가 이와 유사하다는 것을 근거로 삼고 있다. 미국적인 어린이의 삶을 묘사하는 도구로서 [햄 샌드위치]가 쓰였다는 추측이다. 다른 설명으로는 [호밀 위스키rye whiskey를 마신 서투른 배우ham actor]의 은유라는 말이 있다. 술에 취해 글을 쓰는 부코스키가 본인의 작품을 서투른 연기를 펼쳐 보이는 술 취한 배우의 연기에 비유했다는 뜻이다. [호밀]이라는 단어에서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을 연상하는 사람도 있다. 사회로부터 거부당한 소년들의 이야기라는 공통점이 있는 두 작품이기에 이러한 연결이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존 판테이의 성장 소설 『먼지에게 물어봐Ask the Dust』의 한 구절 [그녀는 내게 키스했다. 입에서는 호밀 리버워스트 샌드위치liverwurst on rye 냄새가 났다]에서 유래했다는 짐작도 있다. 인기 있는 설 중 하나는 호밀빵 햄 샌드위치가 부모 사이에 낀 아이로서의 부코스키/치나스키를 뜻한다는 것이다. 이 제목이 부코스키 본인의 선택인지, 담당 편집자였던 존 마틴의 선택인지는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작가, 편집자, 그리고 독자 모두가 이 모호한 제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듯하다. 의미를 알 수 없는 제목은 그대로 한 단어처럼 굳어졌다. (옮긴이의 말 중에서) 아버지의 폭압과 가난, 끔찍한 피부 질환…….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소년의 외로운 반항과 일탈 『호밀빵 햄 샌드위치』는 헨리 치나스키의 비밀스러운 성장 과정을 담고 있다. 순진무구한 어린아이에서 부조리한 현실과 성(性)에 눈뜨게 되는 청년기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이방인처럼 겉돌며 혼자만의 세계를 탐닉하는 소년의 일상을 그린다. 현실을 그대로 전사(轉寫)한 듯한 에피소드들과 거침없이 뻗어 나가는 특유의 문체가 인상적이다. 주인공 헨리는 매사 거칠고 의뭉스러운 데다 소통에 서툴러 누구에게나 툭툭대기 일쑤인 외톨이다. 그는 큰 어려움 없이 제 모습을 인정하고 사랑받는 여느 집 아이들과 다르다. 독일에서 온 이민자 출신으로 일찌감치 이방인 딱지가 붙은 헨리에게는 다른 사람들이 지닌 [평범함]이라는 것이 멀게만 느껴진다. 가난하면서도 가난을 경멸하는 부모님은 헨리가 가난한 친구들과 어울리는 일을 허락하지 않는다. 또 늘 자기보다 잘난 아이들과 비교되며 아버지에게 습관적으로 매를 맞는다. 소극적이고 의존적인 어머니는 폭력의 또 다른 조력자 혹은 희생자일 뿐, 어린 헨리가 기댈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하는 법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채 자란다. 그런 탓에 주위의 풍경은 헨리에게 언제나 스산하게 와 닿는다. 타인의 모습에서 자신이 지니지 못한 것, 자신에게 결여된 것이 무엇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헨리에게 접근하는 친구들 역시 무리에서 소외된 축이다. 겉도는 아이들. 육체적 결함이 있거나 가정의 울타리 밖으로 밀려나 있거나 혹은 억압에 익숙한 아이들. 그들은 헨리의 존재를 귀신처럼 감지하고 먼저 다가온다. 헨리는 또래에게 얻어맞고 흙투성이 꼴로 집으로 돌아가 부모에게 매를 맞는 친구들을 본다. 옳지 못한 일이라고, 부당한 일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한편, 점점 커가는 육체로 인해 그는 물리적으로 강해진다.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는 아이들의 세계 ― 어른 세계의 축소판 ― 에서 더는 당하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게 된다. 꽤 그럴듯하게 글짓기를 해 가 선생님에게 칭찬을 받기도 하고 야구와 풋볼 시합에서 기량을 뽐내기도 한다. 어느 날, 폭력 앞에서 더는 고통을 호소하지도, 두려움을 드러내지도 않자 아버지는 매질을 멈춘다. 형편에 맞지 않는 고등학교에 억지로 진학해 소외감을 느끼고, 넉넉하지 않은 집안 사정 때문에 남루한 꼴을 감출 수도 없다. 설상가상, 사춘기에 접어들어 학교를 그만둘 만큼 심한 부스럼과 흉터가 온몸을 뒤덮는다. 세상으로부터 홀로 버림받은 듯한 처참한 기분을 느끼며, 헨리의 마음은 점점 더 비뚤어진다. 지옥 같은 현실이 아닌 다른 뭔가가 있을 법하지만 그리로 나아갈 뾰족한 수는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주어진 하루하루를 살아갈 뿐이다. 인생에서 다만 쉽게 굴복하는 법을 배운다. 직접 목격하고 온몸으로 체험한 천박한 진실들. 그러나 도서관에서 찾은 D. H. 로런스를 비롯하여 수많은 작가들의 글은 숨은 진실의 동조자로서, 고독한 헨리의 영혼에 따스한 입김을 불어넣는다. 변함없이 아웃사이더로 세상을 냉소하고 비관에 젖어, 되는대로 막살지만 누구도 쉽게 깔볼 수 없는 인간으로 자라난다. 헨리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잠시 백화점 물류 창고에 취직한다. 같은 직원이면서도 판매직과 창고직으로 나뉘어 한쪽이 다른 한쪽을 천대하고 괄시하는 상황, 그에게 먼저 시비를 건 고등학교 동창들은 이유를 막론하고 일방적으로 대접받아야 하는 고객이라는 점, 맞닥뜨리는 모든 일이 자본에 의한 계층의 서열화와 차별을 드러낸다. 일자리를 잃고 아버지의 허영에 떠밀려 대학에 진학하지만 이미 웬만큼 정신이 성숙해진 대학생들 사이에서 적응하지 못한다. 헨리는 교수에게 반항을 일삼다 캠퍼스의 괴짜로 낙인찍힌다. 그러나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유소년 시절 학교에서 그러했듯, 그는 학내의 강경한 연설자, 궤변가로서 또 한 번 뭇사람의 주목을 받는다. 과연 어떤 이들은 헨리 치나스키의 감출 수 없는 기벽에, 무시하기 어려운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힘과 자본이 지배하는 약육강식의 세계 전쟁 같은 현실에서 문학은 한 줄기 빛이었다 『호밀빵 햄 샌드위치』의 주인공 헨리 치나스키가 가진 무언가,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그것은 설핏 드러나는 세상의 부조리를 포착하는 날카로운 시선만이 아닐 것이다. 그는 꾸밈없는 목소리와 약자를 향한 따뜻한 마음씨를 지니고 있다. 떠돌이 개, 사람들에게 괴롭힘당하는 고양이, 허섭스레기 같은 부모의 방관하에 술을 들이켜는 아기, 거미줄에 걸린 파리, 장애인, 이민자들. 헨리는 언제나 약자를 향한 동정심을 거두지 못한다. 그들은 마치 그 자신의 거울과 같아서 무자비한 폭력 앞에서 무력하고 순진하다. 생동감 넘치는 묘사와 더불어 정작 자기를 향한 연민이 느껴지지 않는 헨리 치나스키의 건조한 말투는 때로 읽는 이의 속을 찢고 눈물 고이게 한다. 감수성이 예민한 주인공이 억압된 자아를 노출시키며 어른 사회의 위선과 허위를 들춘다는 점에서 『호밀빵 햄 샌드위치』는 전 세계적으로 널리 읽힌 J. 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이나 J. M. 데 바스콘셀로스의『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와 맥을 같이한다. 누구나 겪는 통과 의례로서 사춘기의 아픔과 이를 통한 인격의 성숙을 드러낸다. 또한 1930년대의 대공황과 제2차 세계 대전을 차례로 겪으며, 동시에 전(前) 세대의 정신을 지배한 공허와 불안정한 심리의 영향 아래 놓인 소년의 성장 과정을 밀도 있게 다룬다. 그리하여『호밀빵 햄 샌드위치』는 어린 치나스키의 내면과 당대를 뒤흔든 사건의 음영을 고스란히 떠올리게 한다.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는 친구를 배웅하고 돌아오는 길, 헨리는 조그만 멕시코계 소년과 마주친다. 기계에 동전을 집어넣고 아이와 권투 게임을 하며 그는 생각한다. 이겨야겠다고. 왜? 그냥 중요하니까. 아이에게 연달아 패한 치나스키는 몸을 돌려 거리로 걸어 나온다. 컴컴하고 악취에 전 뒷골목으로. 그렇다. 이토록 무자비한 세계에선 생존만이 문제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