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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erry Len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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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에 사라가 지각했다. 난 이제 확신한다. 그애한텐 분명히 무슨 걱정거리가 있는 것이다. 그 애는 심각한 혼란에 빠져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내가 그 애한테 해 줄 수 있었던 건 "왜 늦게 왔니?" 하고 물어 보는 게 다였다. "운하의 물이 얼었어요." 그 애는 이 말 한마디만 하고는 하루 종일 입도 뻥긋 안 했다. 쉬는 시간에 얘기를 좀 나눠 볼까도 했지만, 질문을 피하는 것 같았다. 하는 수 없이 부모님을 오시게 했다.
일기장을 다시 편 지금은 새벽 두 시. 잠이 오지 않는다. 입 안이 너무 쓰다. 나는 계속 사라만을 생각하고 있다. 사실 이런 일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아이들은 별것 아닌 일로도 순식간에 생활의 리듬을 잃곤 한다. 그렇다. 나를 우울하게 하는 것은 사라가 아니라, 바로 이 겨울의 추위이다. 운하가 얼어버린 것이다. --- p.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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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결하고 절제된 문장 속에 살아 숨쉬는 심리 묘사
성폭행, 성매매는 범죄의 한 속성이다.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했을 땐 더욱 범죄가 된다. 그러나 세계 어느 나라에서든 10대를 대상으로 한 성 문제는 사회 문제로 자리잡고 있다. 르냉은 이 작품을 통해 예술 욕망과 성 욕망을 이용해 어린이를 추행하는 어른의 모습을 과감히 고발하고, 짓밟혀 방황하는 10대의 어린 영혼을 보여준다.
『운하의 소녀』에서 열두 살 소녀 사라는 미술 레슨을 받으면서 미술 선생으로부터 은밀한 유혹을 받는다. 스킨십을 통한 짜릿한 쾌감을 생전 처음 느껴 본 사라의 마음을 이용해 미술 선생은 사라를 자신의 누드 작품의 모델로 세우고, 나아가 사라를 통해 성적 욕망을 채운다. 한편 20여년 만에 얼은 도시의 운하로 인해 사라의 담임 선생은 20여 년 전의 고통스런 사건울 떠올린다. 바로 담임 선생 자신이 여덟 살 때 삼촌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것. 어린 몸에게 가해지는 폭행은 삶에 대한 두려움과 영혼의 상처를 주었다. "그 날 아침, 빙판이 되어 버린 운하를 본 순간 난 운하의 물이 안 흐르는 것은 내 잘못 때문이라고 믿었다. 내 몸의 피도 흐르지 않는 건 아닌가? 돌이킬 수 없는 죽음이 예고되어 있는 것 갈았다."(본문 18쪽) 작품 속에서 두 여자를 묶는 매개는 20년 만에 꽁꽁 언 운하 말고도 어른의 성범죄라는 공통분모가 자리매김한다. 어른이 자신의 감정과 욕망을 채우기 위해 일회적으로 치른 한 행동이 어린 영혼을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고통의 나락으로 떨어뜨리는지를 이 작품은 여실히 보여 준다. 누우면 눈만 감을 줄 아는 플라스틱 인형의 배를 라이터로 검게 그을리고 배에 커다란 구멍을 내는 아이의 그로테스크한 모습, 남자 아이가 될 수 있을까 싶어 긴 머리를 짧게 자르는 아이의 단호한 변신... 사라는 미술 선생이 왜 옷을 벗으라고 하는지, 왜 머리를 쓰다듬는지,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생각하지 못하는 가운데 짜릿한 쾌감을 느낀다. 그리고 그 쾌감을 통해 냉랭한 엄마와 침묵으로 일관 하는 아빠에게서 받는 정서의 공허함을 대신 메운다. 그 메움은 쾌감을 원하면서도 피하고 싶어하는 방황을 낳고 그 가운데서 사라는 자책감을 느낀다. 그리고 "자신의 내면에 이중으로 갇혀 있"(본문 64쪽)게 된다. 자신의 문제를 말로 표현할 방법이나 대상이 없어 플라스틱 인형을 자신의 분신으로 삼는 사라. 맞벌이 부부 밑에서 외롭게 성장하는 아이는 의사소통의 출구를 잃어버리고, 학대받는 자신의 몸처럼 인형의 몸을 학대하고 다시 인형에게 용서를 구하는 일상을 반복한다. 우울하고 희망 없이 살아가는 사라를 엄마는 문제아, 변덕쟁이로 취급한다. 상처 받은 10대의 단면을 드러내주는 이 작품은, 결국 사라가 어떤 감정을 느꼈든 그것은 존중되어야 하며 다만 어른이 그 감정을 악용하는 것은 절대로 용납해선 안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운하의 소녀』는 10대라는 불분명한 영혼이 주변 환경의 유혹을 얼마나 이겨내기 힘든 순수한 영혼 인가를 보여줌과 동시에, 그 유혹에 빠졌을 때 그 밑도 끝도 없는 방황이 얼마나 어린 영혼을 황폐 화시킬 수 있는지를, 그리고 그 상처들 치유하기 위해선 마음을 이해하려는 따뜻함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을 피력하고 있다. 냉랭한 엄마와 침묵으로 일관했던 아빠가 사라의 상처를 알고서는 그 상처를 보듬어 주기 위해 따뜻한 손길을 뻗쳤지만, 결국 사라가 자신을 열어 보인 대상은 끊임없고 진실된 이해심과 따뜻한 눈길로 자신을 지켜 보던 담임 선생에게였다. 『운하의 소녀』는 대단히 간결하다. 이야기 길이도 짧고, 각 장도 짧고, 문장도 짧다. 르냉은 이 짧음 속에서 사라와 담임 선생의 주고받는 팽배한 긴장감을 잘 나열하고 있다. 때로는 관찰자 시점으로, 때로는 일인청 시점으로 이야기를 끌어가며 독자로 하여금 사라와 담임 선생의 멍에의 흔적을 발견해 나가도록 돕는다. 등장인물들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아끼되, 인물들의 각 심리 묘사가 한 문장 한 문장 속에 오롯이 담겨 있다. 절제된 언어가 보여주는 이야기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어린이에 대한 어른의 성추행이라는 소재와 알맞게 이야기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