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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
천재인줄 알았는데 시험은 왜 이리도 어려운지 오로지 한 여인만을 사랑했다 진실이 통할 날을 묵묵히 기다리다 - 평양시절 전쟁의 소용돌이 천막병원으로 밀려오는 환자들 합쳐야 힘이 된다 - 청십자 운동 함께 걸어가는 길 - 장기려의 친구들 그가 떠나고 남은 향기 부록 저자와 함께 떠나는 여행 장기려 박사의 생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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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박사가 더욱 외과의로서의 명성을 굳힌 것은 1943년의 간암수술 덕분이었다. 그때만 해도 간을 부분적으로 잘라내는 수술을 한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장 박사의 수술 3년 전에도 일본인 오가와 교수가 간암 수술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환자는 결국 숨을 거두고 말았다. 환자의 환부를 열어보니 암세포가 위쪽에서만 자라고 있어 그 부분만 잘라내면 될 듯하였다. 간은 한 덩어리로 보이지만 작은 덩어리가 몇 개 연결되어있는 것이므로 정교하게 잘라내면 암만 분리해서 잘라낼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섰다. “주여. 저에게 용기를 주옵소서. 이 환자를 위해 저에게 힘을 주옵소서.” 혈액이 꽉 차 있는 간은 조금만 잘못 잘라도 피가 터져나오는 장기라 여간 조심스럽지 않았다. 게다가 그 당시에는 마취술이 빈약하여 4시간 내에 수술을 끝내야만 했다. 온 정신을 집중하여 세심하게 암을 잘라냈다. 그 어려운 수술을 4시간 안에 끝낸 것도 기적이었고 그 후의 환자의 상태도 기적이었다. 다행히 합병증도 없었고 일주일이 지나자 혼자 화장실에 갈 수 있을 정도였고 곧 병원 마당으로 산책을 갈 수 있을 정도로 호전되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간설상 절제수술은 의학계를 뒤흔드는 경사였다. 수술환자가 퇴원하게 되자 기자들이 찾아와 장 박사에게 인터뷰를 요청하였다. 많은 간암환자들에게 큰 희망을 주게 된 쾌거이기도 하며 한국 의학계의 자랑이기도 한 사건이니 당연한 관심이었다. 소감을 말하여 달라는 기자들의 요청에 장 박사는 담백하게 이야기했다. “제가 한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라는 대로 수술칼을 잡고 명령에 따라 수술한 것뿐이지요.” 기자들은 지나치게 겸손한 소감이라고 생각했지만 장 박사는 진심이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 의사에게서 기대했던 화려한 말을 듣지 못하자 기자들은 환자에게 달려가 물었다. 환자는 장 박사를 하늘이 내린 분이라고 칭찬한 후, 수술 후 자기도 하나님을 믿게 되었노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장 박사는 하나님이 그 환자의 육신과 영혼을 다 구해주셨다고 생각했다. 더욱 유명해진 장 박사에게 치료를 받기 원하는 환자들은 점점 늘어만 갔다. 정신없이 바쁜 나날이 계속되었다. 휴일에도 무의촌에 의료봉사를 나가는 일로 또 바빴다. 자기 자신을 위해 사용하는 시간은 거의 없는 지경이었다. 무리한다는 생각을 할 겨를도 없었다. 그러다 그만 1945년 5월, 너무도 피로한 나머지 쓰러지고 말았다. 본인은 물론 가족들도 너무나 놀랐다. 이웃에 사는 박소암 박사가 와서 진찰을 해보더니 이 지경이 되도록 무얼 했냐면서 야단을 치고는 간염과 과로, 영양부실, 스트레스 등이 복합적으로 쌓인 병이라고 했다. 갑자기 쓰러지자 장 박사는 마음이 극도로 예민해졌다. 왠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한달 후 다행히 간염은 치료되어 나았지만 마음의 병은 쉽사리 낫지 않았다. 죽음에 대한 공포로 잠이 오지 않았고 신경쇠약에 걸려 헛것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7월이 되어도 마음이 안정이 되지 않자 아버지가 결단을 내려 경치 좋은 곳으로 장 박사를 요양을 보내기로 하였다. 장 박사와 부인은 묘향산의 작은 집을 빌려 지냈다. 신경쇠약이 너무 심해서 누우면 잡념에 시달리고 걸으면 온 몸이 아팠다. 일단은 모든 일에서 해방된 채 세상소식도 끊고 지내기로 하였다. 그러다가 동네에 다녀온 부인이 망설이다가 세상 소식을 한 가지 전했다. --- 본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