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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4
1. 예수의 부름 받은 늦깎이 고학생 서당에서ㅣ교회와 학교로ㅣ혼인 ㅣ회심ㅣ전도자로 부름 받아 2. 미국 유학에서 거둔 소득 유학길에 오르다ㅣ모친의 회심ㅣ칼빈주의ㅣ한부선과의 만남ㅣ기도의 원리와 설교 자세 3. 성경 주석에의 소명 주석 사역의 시작ㅣ나라와 교회의 난국에서 4. 망명 두 번째 유학과 고국의 정황ㅣ봉천신학교와 망명 생활ㅣ해방을 맞이하여 5. 회개 운동과 신학 교육 고려신학교ㅣ고신에서 박형룡과 박윤선ㅣ회개 운동/고신의 신학적 입장ㅣ화란 유학ㅣ부인을 여의고ㅣ화란 유학에서 거둔 소득ㅣ실의와 좌절 6. 진실 추구와 쓰라린 고립 갈등과 결별ㅣ예배당 소송 문제ㅣ주일 성수 사건ㅣ교단 합동과 재분립ㅣ고신에서의 집필 활동 7. 고난과 고독의 극복 고독을 극복하며ㅣ고신을 떠나서ㅣ동산교회 목회와 개혁신학교 8. 개혁주의 신학의 확산 총회신학교에서ㅣ신학 교육 이념ㅣ부산 분교에서ㅣ한성교회 개척ㅣ총신대학교 은퇴ㅣ성경 주석 완간 9. 박윤선의 주석과 신학 성경 주석과 저술 활동ㅣ성경관ㅣ성경주석과 칼빈주의ㅣ주석의 구조ㅣ주석의 설교와 예화ㅣ풍유적 해석ㅣ모형론과 풍유적 해석/바르트 비판ㅣ계시 의존 사색과 일반 은총 10. 교회 쇄신과 바른 신학 교육을 위한 마지막 헌신 1960년대 중반 이후의 한국 교회ㅣ총신 사태와 박윤선ㅣ합동신학교 태동에 참여ㅣ교회 분열과 분립ㅣ합동신학교의 출범ㅣ박윤선과 화평교회ㅣ박윤선의 죽음 11. 맺음말 참고문헌 박윤선 연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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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선은 성경 전체를 주석하는 대업을 이룬 주석가이다. 그는 주석을 통하여 한국의 설교자들에게 성경 해석에 눈을 뜨게 해 주었으며 설교를 위한 자료를 제공함으로써 크게 도움을 주었다. 신학 교육에서 그는 후학들에게 신학이 교회를 섬기기 위한 학문임을 말과 글로써 강조할 뿐 아니라 목회를 동반한 그의 삶을 통하여 역설하였다.
그는 한국 장로교회가 본래 표방하는 칼빈주의 신학, 즉 개혁주의 신학의 바탕 위에 서도록 많은 글을 쓰고 가르침으로써 교회의 쇄신을 도모한 개척자요, 개혁신학자이다. 그는 자유주의와 신정통주의 신학에 대항하여 정통 신학을 보수하는 한편, 기복 신앙을 탈피하지 못한 채 세대주의와 근본주의 신앙에 머물고 있는 한국 장로교회가 본래 표방하는 칼빈주의 신앙과 신학을 지향하도록 가르치는 일에 선구자적인 역할을 하였다. 성경 이해를 위하여 칼빈주의적 해석 원리를 강론하고 풍유적인 해석을 지양해야 할 것을 가르친 것과 칼빈주의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주권 사상과 함께 일반 은총을 가르친 일은 귀한 업적이다. ……………… 많은 동역자들과 제자들 및 후학들이 존경하고 높이 평가하듯이, 박윤선은 경건과 학문을 겸비한 신학자였으나 경건을 더 추구한 기도의 사람이요, 자신의 실수와 연약함을 솔직히 고백하는 진실하고 겸손한 그리스도인이었다. 성경의 진리를 사람들에게 전달하기 위하여 그는 강단에서나 교단에서 늘 진지한 어조와 자세로 열정을 쏟아 설교하고 가르쳤다. 그는 그를 아는 사람들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교회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모습의 사람으로 깊이 각인된 한국 교회의 참으로 귀한 스승이다.” -11. 맺음말 중에서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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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건과 학문을 추구한 박윤선
“경건과 학문”. 박윤선에게 헌정된 논문집의 제목이다. 이 두 마디의 말처럼 박윤선을 잘 말해주는 말은 없을 것이다. 그의 일생이 신자와 학자로서의 삶이었기 때문이다. “네 손에 들고 있는 성경이 하나님이 계신 증거이다.”라는 음성을 통해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확신하게 된 그는 평생 동안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하나님을 증거하는 성경에 대한 믿음에서 떠나지 않고 경건과 학문을 추구했다. 그가 78세 때 가진 인터뷰에서 이러한 모습이 잘 나타난다. “나의 일생 동안 나는 세 가지를 좋아하였습니다. 신학 교육, 주석 집필, 그리고 설교입니다. 나는 이 세 가지에 나의 생애를 완전히 바쳤습니다. 나는 이것들을 위한 특별한 열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내 마음속에 깊이 새겨져 있습니다.”(40쪽) 경건과 학문을 향한 박윤선의 이러한 열심과 성실함은 그가 열악한 한국의 상황에서 성경 전권을 주석해 책으로 펴냈다는 것만을 보더라도 잘 알 수 있다. 이 책 곳곳에 이러한 박윤선의 모습이 꾸밈없이 잘 드러나 있다. 교회 쇄신을 추구한 박윤선 신학 교육, 주석 집필, 그리고 설교는 결국 교회를 향한 박윤선의 사랑이 구현된 방식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특별히 국내의 거의 모든 주요 보수 신학교에서 강의하는 가운데 교회의 큰 분열과 교권의 문제를 경험한 박윤선으로서는 교회 쇄신에 깊은 관심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오게 된 책이 그의 말년에 집필한 『대한예수교장로회 헌법 주석』이었다. 그의 경건과 학문은 교회를 떠나서 존재할 수 없었고, 교회를 향한 열심이었기 때문이다. 다음과 같은 저자의 설명은 왜 박윤선이 신학교육과 관련해서 교회 쇄신을 추구할 수밖에 없었는가를 잘 말해 준다. “박윤선은 봉천에서는 신사 참배 문제로 인하여 양심적으로 신학 교육을 할 수 없는 처지여서 스스로 물러났으며, 고려신학교에서도 예배당 쟁탈 문제와 주일 성수에 대한 양심적인 발언으로 인하여 이사회와의 마찰을 빚어 신학 교육의 꿈을 접어야 했다. 총신대학교에서도 역시 교단의 여러 가지 부조리한 구조와 교권으로 인하여 마음에 상처를 입고 신학교육을 옳게 할 수 없다는 좌절을 일찍부터 경험하였다.”(230-31쪽) 이러한 박윤선의 입장과 고민이 분열이라는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합동신학교의 설립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만들었음을 이 책은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합동신학교의 설립은 박윤선에게 올바르게 신학교육을 시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요, 희망”(231쪽)이었기 때문이다. 진정한 개혁신학을 추구한 박윤선 박윤선은 근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약점과 위험성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개혁주의라 불리기는 하지만 개혁주의의 참 모습을 바르게 이해하고 있지 못한 보수적인 교회들을 향해 계속해서 바른 개혁신학을 따라가도록 권면했다. 한편으로는 서구 신학의 논의를 여과 없이 그대로 수용하여 기독교적 진리를 훼손하는 자유주의에 대항했으며, 또 한편으로는 반동적 성향을 지닌 나머지 복음의 풍성함을 오히려 제한하게 만드는 전투적 근본주의와 기복 신앙에 대해서도 경계하면서 하나님의 주권 사상을 가르친 것이다. 그러나 서영일 박사의 학위논문에 실린, 하비 칸/간하배 박사와 국가와 교회의 관계에 대하여 나눈 대화에서 볼 수 있는 정치 참여에 대한 문제나 요한계시록 해석을 통해 천년왕국에 관하여 (비록 세대주의적 전천년설과 다르다 할지라도) 전천년설 입장을 취한 것, 풍유적 해석을 극히 경계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해석에도 풍유적 해석이 드러나고 있다는 것 등은 아쉬운 점이라 할 것이다. 이 책은 하나님이 역사 속에 허락하신 한 인물을 겸손히 살펴봄으로써 개혁신학이라는 이상에 지나치게 관념적으로 경도되지 않으면서도 개혁신학에 대한 헌신을 불러일으키도록 우리를 돌아보게 만들 책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