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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제1부 해체주의와 철학의 운명 제1장 해체주의 시대와 철학의 종말 제2장 니체가 예인한 반이성주의 제3장 마르크스주의와 포스트-구조주의 제2부 해체하는 철학·철학자들 제4장 푸코 다시 읽기 제5장 오늘의 푸코는? 제6장 데리다의 해체 실험들 제7장 철학과 문학의 해체 놀이 제3부 유목하는 철학·철학자들 제8장 반철학으로서의 포스트-모더니즘 제9장 정주의 종언과 노마드적 사고 제10장 표류하는 리비도의 철학 제11장 기호의 해체와 포스트-구조주의 제4부 해체 이후와 철학적 심포니 제12장 해체, 〈이건 너무하다〉 제13장 예술의 종말과 그 이후 제14장 포스트`-`해체주의와 미래의 철학 제15장 미래학으로서 반(反)해체주의 참고 문헌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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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7월 4일 프랑스의 로요몽에 모여 니체 르네상스를 개막한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푸코도 거기에서 「니체, 프로이트, 마르크스」를 발표하면서 학문에 대한 자신의 새로운 인식의 계기가 니체에게 있었음을 밝힌 바 있다. ---p. 21
로요몽에 모인 니체 르네상스의 주역들은 푸코만이 아니었다. 사회자 M. 게루M. Gueroult를 비롯하여, 들뢰즈, 클로소프스키, 마르셀Marcel, 장 발Jean Wahl, 비로Birault, 보프레Beaufret 등 프랑스의 철학자, 콜Colli, 몬티나리Montinari, 바티모Vattimo 등 이탈리아의 철학자, 그리고 독일 철학자 뢰비트Lowith에 이르기까지 5일간 열일곱 명이나 발표에 참여하여 니체의 부활을 선언하였다. 또한 1967년에는 그들의 글이 『니체: 로요몽 노트Nietzsche: Cahiers du Royaumont』로 출판됨으로써 니체 르네상스는 물론 철학의 종말에 대한 선언도 세상에 더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p. 22 이 책은 얼핏 보기에도 헤겔의 고상한 절대지의 내용과 주네의 저속한 작품이 데리다의 독특한 도해 방법으로 배치(또는 접목)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기본적으로 데리다는 헤겔과 주네를 좌우 한 페이지씩으로 나누어 레이아웃하고 있지만 양자의 텍스트를 X자 모양으로 배열하고 전환하려는 대치 대구법chiasme을 사용했다. 그것은 마치 위상 기하학에서 중요한 구실을 하는 〈뫼비우스의 띠〉- 머리띠와 같이 기다란 사각형의 종이를 한 번 비틀어서 양쪽 끝을 합쳤을 때 생기는 곡면으로서 이 면은 표리의 구별이 없이 곡면 위의 한 점에서 한 바퀴 돌면 그 뒤쪽으로 오게 된다 - 를 연상하게 하는 배치법이다. ---p. 156 포스트-구조주의는 이처럼 그 주역들이 물러나면서 지금은 20세기의 한낱 텅 빈 무대로 변해 가고 있다. 그것은 미국으로 건너가 양키 패션으로 둔갑하여 세상을 풍미해 온 포스트-모더니즘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것 역시 본고장의 노쇠와 퇴조로 황혼을 보내고 있는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가깝게는 구조주의에 반발하고 멀리는 철학의 전통적인 구축을 거부하면서 전통으로부터의 이탈과 도주, 또는 유목과 표류를 강조해 온 이 해체의 철학은 주의(主義)와 학파를 싫어하는 프랑스 철학에 포스트-구조주의, 또는 해체주의 - 그들은 이러한 명칭을 싫어했지만 - 라는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반전통, 반이성 중심주의, 반정주적 사고 등을 외쳐 온 해체주의도 일찍이 분석 철학이 그랬듯이 이전의 철학에 대해 전례 없이 강한 반감과 경고음만을 남긴 채 이제는 그 숨소리마저 다해 가고 있다. ---p. 253 철학적 우월주의나 지역 중심주의에 맞서기 위해 메를로퐁티가 말한 <철학의 중심은 어디에나 있지만 그 주변은 어디에도 없다>는 철학의 무중심설도 미래에는 <융합의 철학은 어디에도 있지만 구조의 철학은 어디에도 없다>는 무구조주의, 즉 철학적 인터페이스론으로 대치되어야 할 것이다. ---p. 332 이처럼 이미 융합 현실로 접어든 포스트-디지털 사회에서는 (문자든 말이든) 언어 중심주의가 종말을 고하기 시작했다. 철학도 마찬가지이다. 영토와 결부된 정주적 인식론이 연고주의의 종언을 요구받기 시작한 것이다. 탈영토적(유목적) 영상 인식, 이미지 인식, 심지어 아우라 인식의 세대가 영토적(정주적) 언어 인식의 세대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이처럼 오늘날은 <왼쪽 뇌에서 오른쪽 뇌로> 주체의 인식 작용이 빠르게 전환되고 있다. 인식의 주체와 객체, 대상과 방법 등 인식 메커니즘이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p. 3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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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주의를 예인한 니체. 그러나 니체 르네상스는 왜 20세기 후반에서야 가능했던 것일까?
이광래 교수가 해체주의 논의를 시작하면서 곧장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플라톤주의에서 비롯된 로고스 중심주의, 형이상학에 대한 반론에서 비롯된 해체주의 논의의 징후가 19세기 니체에서부터 비롯되었음에도 불구하고, 20세기 말까지 철학 분야에서 니체의 존재감은 미미했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1910년대까지만 해도 독일의 주류 강단 철학은 니체 철학이 보여 주는 예외성과 급진성과 비체계성과 비합리성을 이해할 수 없었고, 심지어 니체의 철학을 최초로 연구 대상으로 삼은 R. 슈타이너R. Steiner마저도 니체의 철학을 병리학적이라고 비판한다. 특히 나치에 가담했던 하이데거가 니체의 「힘에의 의지」를 선구적 텍스트로 여겼기에, 니체 철학은 나치즘의 망령 속에서 제때 빛을 보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실제로 「힘에의 의지」는 니체의 여동생 엘리자베트 푀르스터에 의해 위조되고 조작된 원고로 출판되었다는 것이며, 이후 조르주 바타유는 「니체에 관하여Sur Nietzsche」(1945)를 펴내면서 「힘에의 의지」를 「악에의 의지」라고 비판한다. 그는 이에 맞서기 위해 자신의 책에다 「행운에의 의지volontede chance」라는 부제를 달기까지 했다. 1940년대 당시 프랑스에서 철학자로서의 니체는 이른바 3H(헤겔, 후설, 하이데거)와 실존 철학자들에게 가려진 인물에 불과했다. 그러나 바타유, 르페브르, 클로소프스키, 말로, 블랑쇼처럼 실존 철학에 주눅 들지 않은 당시의 문화적 아방가르드에게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상당 부분 니체의 철학과 맞닿아 있다. 니체의 후예들, 그들의 논리와 영향 20세기 후반, 니체의 후예들이라고 할 수 있는 푸코, 데리다, 리오타르, 들뢰즈 등의 등장과 더불어 「철학의 종말」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해체주의의 영향력은 가히 폭발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근대 사회를 열었던 데카르트의 인식론과 마르크스의 역사주의를 부정하는 등, 이들은 전통적인 일체의 권위와 질서를 거부하면서 전통의 해체를 주장한다. 「다시 말해 근대성의 부인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반전통, 반로고스 중심주의, 반정주적 사고 등 과거의 철학으로부터 전방위적인 이탈과 도주, 유목과 표류를 강조한다.」(이광래, 「미술을 철학한다」, p. 18) 이들의 논의는 포스트모더니즘과 포스트구조주의로 이어지면서 새로운 철학의 패러다임을 형성하게 된다. 저자는 이들의 논의가 니체와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모더니즘을 뛰어넘어 20세기 포스트모더니즘의 공급원이자 포스트모더니즘 그 자체가 되었는지 분석·정리하고 있다. 1992년 4월 13일자 「타임즈」는 푸코가 지닌 폭발적인 위력을 가리켜 「문화적 체르노빌 사건」이라고 평한다. 이광래 교수 역시 파편화, 미분화, 분산화, 단절화, 다원화, 다양화, 탈중심화, 탈영토화, 즉 모더니티를 해체하는 새로운 에피스테메(인식소)들이 이미 푸코와 더불어 시작되었으며, 이러한 푸코의 영향을 「푸코 츠나미」라고 정리하고 있다. 자신을 가리켜 「나는 본래 역사주의자이고 니체주의자다」라고 밝힌 바 있는 푸코는 지식의 견고한 축적이나 이성의 점진적 진보로서 역사를 해석하는 전통적인 역사 이해를 거부한다. 즉 역사의 각 시기는 그 시기의 개별적인 에피스테메에 의해서만 표현되고 특징지어진다는 것이다. 이처럼 역사를 단절과 불연속, 파열과 분리에 의해 이해된다고 본 그의 철학 - 모더니즘을 거부하는 반이성주의와 미시 권력 이론, 반역사주의와 반과학주의 등 - 은 포스트모더니즘의 공급원인 동시에 포스트모더니즘 그 자체였다. 푸코 효과가 여전히 위력적인 이유는 광기에서 성에 이르기까지 이성의 무제한적 횡포에 의해 배제되고 퇴출당한 비이성의 회복을 위해서는 아직까지도 푸코의 언설보다 더 효과적인 지렛대가 등장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뿐만 아니라, 해체주의 최전선에 서 있었던 데리다는 그만의 해체 실험을 통해 「철학의 머리를 절단하고, 철학을 통해 내고」자 하였다. 서양 철학의 역사, 즉 형이상학의 역사는 로고스가 형성한 기치관적·위계 서열적·목적론적인 시스템일 뿐이라고 하며 이를 탈구축, 즉 해체를 본격적으로 실천하고자 하였다. 데리다는 복수의 언어, 복수의 텍스트, 이중 상연의 전략을 통해, 로고스를 문자보다 우위에 둔 기존의 전통을 해체하려 한다. 이와 같이 데리다가 지향한 것은 철학과 문학의 구별의 해체, 한쪽이 다른 쪽을 차지하거나 소멸시키기 위함이 아니라 「새롭고 정력적인 구별들, 즉 그들 공간의 전체적인 재분배를 위한 텍스트의 공유 공간으로서 있는 것이다(p. 166)」. 그리하여 복수적인 의미를 드러내는 기호와 이에 대한 해독의 해체를 통해 새로운 글쓰기의 공간을 마련하고자 한다. 또한 유럽에서 시작된 해체주의 논의는 미국으로 수출되어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이름 문화 영역을 비롯한 전 세계적인 파장을 예고한다. 해체주의자들이 갈구하던 자유와 해방감을 만끽할 수 있었던 곳이 바로 미국이었다. 더불어 전 세계 문화 생산의 본거지인 미국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이라는 하나의 지배적 코드에만 묶여 온 모든 문화적 양태들을 풀어줌으로써 오히려 문화의 다수다양을 권장할 뿐만 아니라 창의적 생산과 자유로운 재현의 본질에 대해서도 새롭게 반성하자는 문화운동으로 탈바꿈하면서, 해체주의의 파장은 전 지국적인 규모로 확대된다. 20세기 후반에 밀어닥친 「푸코 츠나미」의 피해는 가히 「체르노빌 사건」에 견줄 만한 것이었다. 해체주의에 대한 이러한 활발한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포스트모더니즘을 통해 모더니즘과 단절하고 철학의 자기 극복을 시도하는 프랑스의 많은 철학자들 못지않게 그들에 맞서 포스트모더니즘을 비판하거나 비난함으로써 모더니즘을 지키려는 이들도 적지 않다. 저자는 모던과 포스트모던을 양자택일의 문제로 보거나, 포스트모던 문화에 대해 절대화된 도덕적 판단을 거부하며 이 둘 모두를 함께 다룰 것을 당부하고 있다. 해체주의 그 이후의 패러다임은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 시대와 문화가 바뀌었고 인간의 사고와 욕망이 달라졌으며, 마르크스와 마르크스주의가 예기치 못했던 방향으로 자본주의가 성장하면서 후기 산업 사회에서는 마르크스주의가 더 이상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없게 되었듯이, 유비쿼터스적 시공간에서는 포스트-구조주의도 해체주의도 구식이 되어 버렸다. 이광래 교수의 문제의식도 여기에 있다. 21세기 신인류가 발견한 신천지는 사이버 공간, 즉 가상현실이며, 이러한 포스트-해체주의 시대의 세상은 무구조, 무경계의 무한 공간이다. 「무한 공간을 연결하고 동시화된 그물망으로 모든 노마드를 동시에 연결하는 디지털과 인터넷을 통해 지구상의 문화적 폐역이란 더 이상 존재하지 어렵게 된다. 결국 해체 이후의 에피스테메는 「융합convergence」가 된다.(p. 322) 이광래 교수가 말하는 「융합」은 분명 진화생물론자인 에드워드 윌슨의 「통섭」 개념과는 다른 것이다. 윌슨의 포스트모더니즘이나 해체주의에 대한 비판에 대해 반과학적·반이성적 언설에 대한 적의이자 공격 심리라고 못박는다. 특히 윌슨의 이러한 반이성적, 반과학적 언설에 대한 반감은 그가 터한 생물학에서 발로한 것이며, 그가 주장하는 진화생물학이 유전적 결정론과 환원주의적 통섭이며 이것은 미래의 대안일 수 없음을 분명히 한다. 그리고 20세기 철학의 중심적 흐름이라고 할 수 있는 「해체주의」 논의를 발판으로 오늘날 해체주의의 새로운 미래상을 제시하고 있다. 플러스 울트라의 세기와 「융합주의」, 미래의 철학으로서 「무구조주의」, 「이미지 철학」이 그것이다. 이러한 상황인식에 근거하여, 미래의 철학에 필요한 것은 확장된 무구조의 현실을 해체하려는 열망이나 거기에 저항하려는 의지가 아니라 그 현실에 대한 감각적 통각을 넘어서 철학적으로 융합하려는 「플러스 플러스 울트라의 의지」라고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