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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衍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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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로 좁은 골목길에서 시위를 벌이던 김귀정이 죽어갈 때, 나는 정민을 찾아 골목길을 정신없이 뛰어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만난 투쟁국장에게서 쇠파이프로 어깻죽지를 세차게 얻어맞았다. 반즘 넋이 빠져 있던 투쟁국장은 나를 사복경찰로 착각했던 것이었다. 그때, 내가 누군지 소리치면서 왼손을 드는 내게 투쟁국장이 쇠파이프를 내리치던 그 순간은 오랫동안 내 뇌리에 남았다. 같은 시간, 거기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한 여학생이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그 순간은 영원히 내 기억 속에 남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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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여름, 이른바 ‘5월투쟁’이 끝난 후 혼란스러운 사회상황 속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던 대학생 ‘나’는 학생 예비대표 자격으로 베를린으로 건너가게 된다. 정식 대표가 올 까지 잠시만 머무르는 것으로 알고 떠난 것이었지만, ‘나’가 베를린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에서 학생운동 지도부가 갑작스럽게 붕괴되고 또 교체되는 와중에 ‘나’는 잊혀진 존재가 되고 만다.
북한으로 들어가게 될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게 될지, 아니면 독일에 계속 남아 있어야 할지,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불투명한 독일 체류기간 동안 ‘나’는 삶의 허무와 우연성에 맞설 수 있는 하나의 방편으로 노트를 하나 사서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다. 그 노트에는 ‘나’가 베를린에서 만난 사람들과 그들에게서 들은 온갖 사연들, ‘나’가 기억하고 상상하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뒤섞여 기록된다. 유대인 강제수용소에서 극적으로 생환한 뒤 죽은 동료의 이름으로 개명하고 제3세계 망명객들의 후원자가 된 피아니스트 헬무트 베르크의 이야기, 떠돌이 일용직 노동자에서 ‘광주의 랭보’로, 다시 혁명적 문화운동가 강시우로 “이 세상에 두 번 다시 태어”난 남자 이길용의 이야기, 모범적인 고등학생에서 느닷없는 폭행을 경험하고 결국 자살에 이르는 정민 삼촌의 비극 등 역사의 우연한 폭력에 의해 삶이 완전히 바뀌어버린 사람들이 이야기, 또 평생을 무주 산골에 살면서 세상천지 안 가본 데가 없다고 말하는 정민 할머니의 이야기나 서해 갯벌을 막아 논을 만들겠다는 만석지기의 꿈을 꾸다 간첩으로 몰려 실형까지 살게 된 ‘나’의 할아버지 이야기 등은 노트 안에서 저마다 독립된 이야기구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서로 그 끝을 물고 연결되는 하나의 큰 이야기로 모아진다. |
“나는 소설을 쓰는 소설가다. 프로 소설가다.”
‘프로 소설가’ 김연수는 언젠가 한 인터뷰에서 “글 쓰는 순간에만 (나의) 진실이 존재한다”고 했다. 말하자면 그는 도저한 문학주의자, 글쓰기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작가이다. 그는 말한다. “그게 안 찾아지니까 계속 글을 쓰게 되는 것”이라고. 그런 그에게 91년은 ‘세계관의 원점’이었다. 역사를 회의하고 진실을 열망하게 된 분기점이었다. ‘분신정국’ ‘죽음의 굿판’ ‘정원식 총리 밀가루 사건’ ‘전대협의 북한행’ 등 한국사회에서 ‘경계’들이, 한국사회 곳곳의 베를린 장벽들이 무너지고 있었다. 인생에서 가장 감수성이 예민했던 그 시절, 그는 “내게도 믿어 의심치 않았던 ‘확신’과 ‘경계’들이 그해 이후 사라져갔다”고 했다. 문학도이던 그에게 그 시간은 “리얼리즘 문학으로 쓸 수 없게 된 시대”로 다가왔다. 언젠가 그는 이를 두고 “은폐된 현실을 폭로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석하고 표현할 것인가가 내 소설의 관심사가 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렇게 그는 전통적인 소설 문법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그 이전의 사실주의적 문학과 다른 세계를 펼치게 됐다. 국경과 역사를 넘어선 ‘거짓말’을 쓰게 된 것이다. 진실보다 더 진실 같은 거짓말을 쓰기 위해 그는 고단하게 발품을 팔고, 수많은 기록을 더듬으며, 한 글자 한 글자 문장을 만들고, 두 겹 세 겹의 겹눈으로 세상을 살펴왔다. 2005년 겨울부터 2007년 봄까지 계간 『문학동네』에 연재했던 장편소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은 바로 그렇게, 몇 겹의 눈으로 들여다본 그 시절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학생회의 간부로 있는 작중화자 ‘나’는 어쩐지, 90년대의 굵직한 사건들을 마치 다큐멘터리라도 감상하듯 한 발짝 물러나 있다. 김지하의 글과 박홍의 기자회견으로 시작된 90년대의 혼란은 유서대필사건에서 절정에 이르렀고, 정원식 총리를 향한 계란과 밀가루 투척사건으로 완결되었다. 그러나 그건 역사가 자신의 논리를 위해 수많은 진실을 버리고 취사선택한 공동체의 기억에 불과하다. 김연수는 역사적 기록들의 틈새에 처박힌 개인의 진실을 파고들어, 역설적으로 ‘밝힐 수 없는 공동체’의 내면을 밝히고 있다. 작중화자 ‘나‘가 화양리를 걸어가다 들어간 한 서점에서 들춰본 어느 책의 한 구절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인생은 자기 자신이 지배하는 것이다. 너의 인생을 다른 어느 누구에게도 맡기지 말라. 무엇보다도 네가 선출한 지도자에게는 맡기지 말라. 자기 자신이 되어라.” “모두에게는 각자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다” 소설에는 1990년대를 살았지만 그 주변부에 내팽겨져 있던 수많은 인물들, 수많은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어쩌면 그들은 역사의 한 중심에 있으면서도, 아니 오히려 그 중심에 있었기에 오히려 역사 밖으로(자기 개인의 역사에서는 더더욱) 버려져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뜻하지 않게 방북 학생 예비대표 자격으로 독일로 가게 된 ‘나’, 일본군에 학병으로 징집돼 남양군도까지 가야 했던 할아버지, ‘나’가 독일에서 만나게 된 강시우(=이길용)와 독일인 헬무트 베르크, 그리고 여자친구인 정민의 삼촌까지, 작품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은 저마다 자신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텍스트 전체의 화자인 ‘나’ 역시 이야기의 한 주인공이며 또한 작중인물들의 이야기를 듣는 청자인 동시에, 무수한 이야기들을 정리하는 수집가이자 편집자, 그리고 논평자이다. 수많은 개인들의 기이한 이야기들은 끝도 없이 끼어들고 중첩되며 갈라지고 증식하며, 그 이야기와 이야기 사이에는 일관되고 필연적인 인과관계조차 부여되어 있지 않다. 작가 자신이 작품을 시작하며 “시작도 끝도 없이 한없이 이어지는” 일종의 “라운지 소설”을 의도했다고 밝히고 있듯, 김연수는 장편소설의 장르적 유연함을 한껏 활용하여 시공간을 종횡무진 넘나들며 다양한 개인의 수많은 이야기를 다채로운 파노라마로 엮어나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