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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스승과 제자
베네치아를 다녀오신 스승 스승의 죽음 2. 스승의 말씀 삶에 대하여 인간의 법에 따른 순교에 대하여 생각과 명상에 대하여 첫 눈길에 대하여 첫 입맞춤에 대하여 결혼에 대하여 인간의 신성에 대하여 이성과 지식에 대하여 음악에 대하여 지혜에 대하여 사랑과 평등에 대하여 스승의 메시지 귀를 가진 사람들에게 사랑과 젊음 지혜와 나 두 도시 자연과 사람 내가 사랑한 여인 젊음과 희망 부활 작가연보 옮긴이의 글/강주헌 |
Kahlil Gib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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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영혼은 깨달음을 얻고 침묵의 귀에 이렇게 속삭였다.
모든 창조에는 불변의 지혜가 숨겨져 있습니다. 분노와 파괴가 있지만 결국에는 더욱 아름다운 세계를 만들어 가는 지혜입니다. 불기둥과 벼락과 폭풍은 자연에서 비롯되는 것이지만, 증오와 시기와 악의는 인간의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이 땅은 아름다운 신부입니다. 사람들이 만들어낸 보석으로 치장할 필요가 없는 아름다운 신부입니다. 푸르른 녹음이 펼쳐진 들판, 황금빛 모래가 반짝이는 해안, 산에 감추어진 귀석, 이런 것만으로 흡족해하는 아름다운 신부입니다. 그러나 나는 보았습니다. 분노와 파괴의 와중에도 거인처럼 우뚝 서서 땅의 분노와 자연의 횡포를 조롱하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사람들은 바빌론, 니네베, 파밀라, 폼페이의 페허 위에 불기둥처럼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영원의 노래를 목청껏 불렀습니다. 대지여, 그대의 것을 되찾아가라. 우리 인간은 다시 시작하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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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친구여, 그대를 힘겹고 불행하게 만드는 가난이 정의와 삶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안겨주는 안내자란 사실을 깨닫게 된다면 가난을 결코 한탄하지 않으리라, 오히려 그대의 운명을 흡족히 받아들이리라.
그렇다. 가난이 정의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해준다. 부자는 재물을 모으는데 정신이 팔려 정의의 올바른 의미를 탐구할 시간이 없을 것이기 떄문이다. 그렇다. 가난이 삶의 의미를 올바로 깨닫게 해준다. 강한 사람은 권력과 영화를 쫓는다. 정신이 팔려 진리의 길을 올바로 걷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가난한 친구여. 가난을 즐겨라. 그대가 정의를 말해 줄 입이 되고 삶을 기록한 책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가난한 친구여. 가난을 기꺼이 맞아들여라. 그래야 그대를 지배하는 사람들에게 미덕의 기준을 보여 줄 것이고, 그대를 다스리는 사람들에게 성결한 푯대가 되어 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pp.113~1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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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릴 지브란, 영원의 언덕을 향해 발길을 옮긴 자!
아름다운 영혼의 순례자 칼릴 지브란(1883-1931)은 예언자의 땅 레바논의 비샤리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랐다. 1895년 그는 고향을 떠나 미국으로 이주하였으나 2년 후 다시 레바논으로 돌아와 베이루트의 '지혜의 학교'를 다니고 아버지를 따라 전국을 여행하며 그림을 그렸다. 1908년 파리에서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을 만나 3년간 미술 공부를 한 그는 미국으로 돌아가 평생 독신으로 지내며 인류의 평화와 화합, 레바논의 종교적 단합을 호소했다. 젊은 시절 지브란은 빈곤과 불의와 부패, 제도화된 폭력을 규탄하며 인간의 존엄을 강조한 열렬한 인권옹호자였다. 또한 이미 20세기초에 아름다운 지구의 소중함을 일깨우면서 자연을 경배하고 보호하며 자연과 교감하면서 자연으로부터 배워야 한다고 강조한 선각자였다. 자신의 영혼 속에 동양의 신비주의를 간직하고 있었던 지브란은 문학을 통해 동양과 서양을 한데 녹여 그리스도교와 이슬람, 영성과 물질주의를 높은 차원에서 결합시킴으로써 신비로운 자신의 철학을 만들어 냈다. 그는 영혼의 양식이 결핍했던 황량한 시대에 '신의 세계가 인간의 양식'임을 외로운 음성으로 소리쳤다. 지브란에게는 시인, 화가, 철학자, 예언자, 신비주의자, 종교가, 이단자, 저항하는 사람, 평화주의자...,등의 수많은 명칭이 따라다닌다. 초기 작품들은 아랍어로 씌어진 산문시와 희곡들로 모든 아랍권에 널리 알려져 지브라니즘Gibranism이라는 용어가 생겼다. 지브란은 1931년 48세로 세상을 떠났다. 칼릴 지브란, 숭고한 메시지- 아름다운 스무개의 지혜의 기둥들 지브란은 그 시대의 지도자들과 지식인들에게 글로써 맹공을 퍼부었다. 그들의 위선적 행동을 매섭게 나무랐다. 그들의 탐욕에 신음하는 억압받는 사람들을 글로써 위로해주었다. 우리는 침묵하는 지식인을 나무란다. 지식인이 침묵하는 것은 세상에 죄를 짓는 것이나 다름없는 짓이라고 나무란다. 그러나 지브란은 지식인의 침묵보다 더욱 위험한 것이 비뚤어진 사다리에 몸을 지탱하고서 세상을 올바로 보지 못하는 지식인의 시각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이 세상을 올바로 보고 있다고 착각하는데 있다. 내 눈의 티끌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남의 눈의 티끌을 비난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