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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역사의 발언
작고 행복한 나라의 역사 - 무한대의 자유 그리고 무한 책임 이보다 한심할 수는 없다 - 일본의 역사 교과서, 그리고 한국 것도 국가와 종교, 그리고 소수 집단 독재정치와 역사 "주먹 센 놈이 이긴다!" - 군사혁명과 서구의 흥기 지도자 동지의 배낭 여행 돈키호테의 시대 - 신화와 좌절 국회의원들의 뇌를 반으로 잘라서 서로 붙여라 "세상이여 망해라, 새 세상이 오도록" - 위기 시대의 종교 지구의 젖꼭지로 가는 모험 - 발견과 정복의 심성사 중국이 서쪽으로 가지 않은 까닭은 먹느냐 못 먹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 다이어트의 문화사 유행과 사치, 그리고 역사의 동력 근대사는 진보의 역사인가 역사 속의 인구 - 학문의 기본기 살아라, 그리고 기억하라 - <쇼아>, 고통의 기억 일본, 서구의 그림자 - 카케무샤(影武者) 영화와 프로파간다 - 소련의 영화 《먼나라 이웃나라》의 역사 인식 시오노 나나미의 역사 인식 1 시오노 나나미의 역사 인식 2 제2부 문학 속의 역사 나를 만나는 두려움 -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고대 그리스의 여인들 1 : 섹스로 세계 평화를 - 아리스토파네스의 《뤼시스트라테》 고대 그리스의 여인들 2 : 행동하는 '엽기' - 에우리피데스의 《메데이아》 지옥으로의 여행 - 단테의 《신곡》 중 <지옥편> 악마의 책 -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웃음의 사회학 - 몰리에르의 《부르주아 귀족》 시대를 증언한 철학적 우화 - 볼테르의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동화 1 - 인어공주와 필로멜라의 목소리 동화 2 - 아빠가 들려주는 옛날이야기 《유토피아》- 근대의 악몽 악몽의 실현 -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러시아, 신(神)을 가슴에 품고 사는 민족 - 솔제니친과 톨스토이 |
朱京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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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대화하는 한 가지 방식
---김대성 ziczic21@yes24.com
지난해 방송가에는 사극 열풍이 드셌다. 텔레비전을 보면 역사 공부 안 해도 된다는 우스개 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역사 관련 인문 대중서와 소설도 쏟아져 나왔다. 이들 중에는 시청률 수위를 다투거나 낙양지가를 올린 것들이 꽤 많았다. ‘태정태세문단세’를 외우며 재미없고 일방적인 역사 공부에 시달려 왔던 뭇 대중이 복수라도 하듯 이들 역사 대중물의 출현에 환호와 지지를 보낸 것이다. 이런 역사 대중물은 딱딱하게만 느껴졌던 역사를 쉽게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나름의 긍정적 의미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상아탑에 갇혀 있던 역사를 낮은 데로 임하게 했다고 해서 무작정 좋아 하고 칭찬할 일은 아닌 듯 싶다. 역사 대중물이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거나 잘못된 역사의식을 심어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역사 대중물에는 영웅적인 인물을 절대화하거나 승자와 지배 권력에 대해 일방적인 추종 경향을 보이는 것들이 많았다. 역사학계에서는 이런 역사 대중물의 위험성을 알리는 경고음을 끊임없이 내왔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역사학자들의 역할이 역사 대중물을 비판에만 머물러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역사학이 더 이상 소수의 지식인만이 향유할 수 있는 특별하고 전문적인 무엇으로 남아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역사를 우리 모두의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 책무가 역사학자들에게는 있다 하겠다. 어쩌면 우리는 한 줄의 역사적 사실을 남기기 위해 궁형을 감수한 위대한 사가 사마천 보다는 대화하고 토론하며 역사를 같이 이야기할 평범한 이웃집 아저씨나 친구 같은 역사 학자를 더 필요로 하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하겠다. 서양사학을 전공한 저자가 인터넷이라는 거대한 정보의 바다에 띄워 보낸 서른 세편의 역사 에세이는 짧고 경쾌하다. 누구나 한 번쯤은 궁금하게 여겼을 우리 삶 주변의 사소한 문제나 필자의 개인적이고 소소한 경험, 영화나 문학 속에 녹아 있는 역사의 문제를 끄집어내며 필자는 역사와의 대화로 우리를 서슴없이 이끌어간다. 짧은 글 속에 녹아있는 역사에 대한 통찰은 그러나 예리하고 엄정하다. 저주 받은 도시 테베의 예언자 테이레시아스. 진실을 말한 대가로 눈이 멀지만 대신 지혜 얻은 존재인 테이레시아스를 닮고 싶었다고 저자는 고백을 털어 놓는다. 그리고 이내 보수적이고 경직된 역사 해석과 자의적인 역사 인식 그리고 역사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에 칼날을 들이댄다. 때로는 현실 정치와 사회에 대한 거침없는 비판을 가하고 때로는 ‘역사는 과연 진보하는가?’하는 고전적인 문제에 천착하며 저자는 역사 전반에 걸친 깊은 성찰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에세이의 대목 대목이 가슴에 와 닿는 것은 늘 중심을 통해서 주변을 보려 했던 자기 자신에 대한 철저한 반성에서부터 이 책이 출발하고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반성, 자기 자신을 거울에 비춰보는 행동은 역사에서 우리가 찾고자 하는 최고의 미덕이다. 지난 15일 일본 대사관 앞에서 열린 종군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수요 집회 관련 기사를 읽으며 이 책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처절할 정도의 역사의식, 곧 한 민족의 기억을 지키고 공유하려는 엄청난 노력이다. 그 어떤 엄청난 사건도 우리의 기억 속에 살아남아 있을 때에만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유태인 학살을 다룬 영화 ‘쇼아’를 언급하며 필자는 이렇게 토로했다. 병든 노구를 이끌고 11년째 단 한 번도 거르지 않은 채 수요 집회를 이끌어가고 있는 할머니들. 계속되는 일본의 역사 왜곡과 부정에 대해 저항하고 있는 그네들이 어떤 의미에서 자신들의 역사를 되찾는데 이미 성공했다는 것을 이 구절은 증명해준다. 온몸으로 역사를 증언해낸 그네들은 기억될 것이다. 기억하는 자만이 역사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단순하지만 잊어버리기 쉬운 사실을 이 책은 우리에게 일러준다. 낮고 작은 목소리지만 그 울림은 깊고 멀리 그리고 오래도록 계속 된다. 역사의 은밀한 숨결을 느끼고 싶다면, 인간들이 지내온 시간과 마주앉아 대화를 나누고 싶다면 테이레시아스의 혜안을 갖는 것이 꿈인 한 역사학도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