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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3대 관음성지
동해 낙산사 홍련암-저녁산사에서의 묵념/ 서해 강화도 보문사-살아 있는 부처의 눈/ 남해 금산 보리암-바다처럼 출렁이다 산처럼 무너지다 2. 3보 사찰 양산 통도사-서럽다. 화두 30년./ 순천 송광사-사찰로 가는 마음, 성찰로 돌아오는 마음/ 합천 해인사-팔만대장경, 그 장엄한 언어의 숲을 찾아서 3. 5대 적멸보궁 오대산 상원사-나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달라/ 설악산 봉정암-부처가 얼어죽으면 경전이 무슨 소용인가?/ 정선 정암사-이 세상에서 가장 여운이 긴 풍경소리/ 영월 법흥사-내 몸속에 절 하나 지어보아라/ 양산 통도사-서럽다. 화두 30년. 4. 절로 가는 마음 구례 화엄사-섬진강에서 화엄사의 종소리를 들어보았는가/ 화순 운주사-배가 되어 움직이는 절의 의미를 알겠느냐/ 고창 선운사-동백꽃은 다만 피었으므로 진다/ 영주 부석사-그리움이 사무치는 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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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송광사, 양산 통도사와 더불어 우리 나라 3보 사찰 가운데 하나인 해인사는 다른 절에 비해 유난히 직선적인 아름다움이 돋보인다. 일주문에서 대적광전을 거쳐 법보전까지 일직선으로 뻗은 가람을 축으로 하는 한편, 그 양쪽으로 면벽한 불전과 승방들의 배치는 경복궁의 배치에서 보듯 서릿발 같은 위엄마저 보인다. 각 당우들을 따로 떼어놓고 보아도 역시 수행에는 왕도가 따로 없음을 암시라도 하듯 대쪽처럼 각을 세우고 있다.
곡선이 갖지 못한 이 각의 날카로운 미학은 마침내 팔만대장경이 있는 장경각에서 그 절정의 숨결을 빚는 듯하다. 모두 4동으로 이루어진 대장각은 공중에서 내려다보면 죽비처럼 뻗은 기와지붕 능선과 처마 끝을 따라 파놓은 배수로 등의 정교한 배치가 마치 직사각형으로 각을 뜬 듯하다. 그것을 보노라면 마치 물을 베는 것처럼 내 몸속으로 피 한방울 흘림 없이 칼날이 지나가는 느낌이다. 안팎의 통풍을 위해 장경각을 모든 벽마다 아래위로 서로 다른 크기의 살창을 만들어 놓았다. 안쪽은 사람이 만든 공간이고 바깥은 자연이 만든 공간이다. 사람과 자연을 연결시켜 주는 유일한 코드는 살창의 작은 틈새 밖에 없다. 실핏줄 같은 그 틈새는 자로잰 듯 촘촘하게 벌어져 있어 들어가고 나오는 것들의 양과 수급을 조절한다. 그 틈새는 바람의 길이요, 햇빛의 길이다. 바람도 햇빛도 안으로 들어갈 땐 직각으로 들어간다. 들어가 다시 몇 차례 직각으로 꺽이고 나올 때 역시 직각으로 나온다. 물론 수급의 양도 자기 눈높이를 벗어날수는 없다. 각은 또한 그늘을 만든다. 그늘은 그림자와 다르다. 그림자는 빛의 이파리 같은 것이지만 그늘은 빛의 떨켜 같은 것이다. 잎은 지고 그 잎의 그늘에 숨어 있던 떨켜는 새로운 잎을 만든다. 그림자는 숨을 멈춘 지 오래지만 그늘은 그러나 숨을 멈추지 않는다. 장경각 안의 그늘은 들숨이 잠시 날개를 접는 곳이고, 바깥의 그늘은 날숨이 날개를펼치는 곳이다. 이 날개를 접고 펼치는 것의 차이를 없애주는 불이문이 바로 살창의 작은 틈새이다. 그 틈새는 아래위뿐 아니라 앞뒤의 크기도 서로 다르다. 안팎의 공기 순환이 맺힘이 없어야 대장경 역시들숨과 날숨으로 맺힘이 없는 것이다. 그늘진 각의 아름다움이 경판으로 하여금 비로소 숨을 쉬게 하는 것이다. 경판의 '절대 고독' 그 경판이 숨쉬게 하는 데에는 장경각 안의 바닥도 빼놓을 수 없다. 바닥은 모든 공간의 바탕이면서 또한 '접힌 공간'이기도 하다. 그 접힌 공간을 책받침처러 펼치면 그 안에 돌돌 말려 있던 산들이 주르륵 펼쳐진다. 산사태가 아니라 한순간에 시공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사태인 것이다. 허물어진 경계는 이미 경계가 아니다. 날아가는 새의 발자국이 허공에 남지 않는 것도 애당초 허공엔 경계가 없기 때문이다. 경계가 없는 곳, 가장 자연의 본질에 닿아 있는 곳, 그 장엄한 언어의 숲이 바로 장경각이다. 숨쉰다고 하지 말 일이다. 내가 숨을 쉬며 살아 있다고는 더욱 하지 말 일이다. 감히 말하건대, 팔만대장경 앞에서는 죄인 아닌 사람이 없다. 그 앞에서 피를 토하며 죽을 때까지 절을 한다 해도 경판의 그 '절대 고독'을 어찌 알 것인가. 장경각 안에는 그 흔한 좀벌레 한 마리조차 보이지 않는다. 바닥을 다질 때 소금과 숯을 흙에 섞어 같이 버무렸기 때문이다. 소금으로써 흙의 부패를 막고 숯으로써 공기와 습도를 조절하고 그 둘의 화학적 결합으로써 최적의 무균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이런 상태를 굳이 십우도에 빗대자면 소가 스스로 사람을 따라오는 '목우' 단계, 즉 이제 막 득력이 생겨 '한 화두'가 되는 단계쯤 될 것이다. 효봉 스님의 제자인 법흥 스님(현재 조계총림 송광사 회주 스님)은 "한국 스님들이 이 단계까지 가면 방장 될 자격이 있는 것"으로 본다. 소금에 삶은 뒤 맑은 그늘에 말린 경판재가 결이 부드럽고 휘어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강도로 더욱 깊어지는 것처럼 수행 역시 일정 단계를 거쳐야만, 어느 순간 마른하늘에 날벼락 치듯 '뚜껑이 활짝 열릴' 것이다. 그러나 뚜껑 열리고보면, 그 위에 구름이 있는 건 또 어찌할 것인가. --- pp 94~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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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의 높이를 낮추면 마음의 폭이 넓어지는 절
'일백 번 굽이쳐 흐르는 냇물이요, 천층으로 계단이 된 절벽이로구나.' 첩첩산중인 강원도 정선에서도 탄광촌으로 널리 알려진 사북과 고한으로 가는 길은 깊고깊은 골짜기들 사이로 난 외길이다. 그 길은 정선아리랑처럼 끝없이 돌고도는 길이다. '옛날에 이 산에서 저 산으로 줄을 매어 빨래를 널었다' 는 말도 있지만, 정말 우리나라의 골짜기란 골짜기는 다 집합시켜 놓은 듯했다. 그 골짜기들마다 가파른 비탈도 아랑곳없이 임시막사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는 낡은 집들의 풍경은 멀리서 바라보는 것조차 숨이 탁탁 막혀올 지경이다. 게다가그 위에 흩뿌리는 눈 탓인지 사양길로 추락한 탄광촌의 지난했던 삶이 그렇게 처연할 수가 없다. 골짜기를 겨우 벗어나는가 싶어니 또 다른 골짜기가 기다리고 있는 것, 그네들의 인생살이는 그렇게 익숙해져 왔을 것이다. 태백선 완행열차가 고한역에 도착해 내리자 간간이 뿌리던 눈은 어느새 진눈깨비로 변해 있었다. 좁은 고한 읍내는 탄광촌이 언젯적 얘기냐고 묻는 듯 고급승용차와 외지인들로 북적거렸고 거리 또한 서울 변두리의 유흥가와 다름없었다. 한 주민이 “그놈의 '카지노'가 점령한 다음부터는 탄광촌이 도박촌으로 변해 버렸다”고 한다. 추운 한겨울임에도 거리가 이렇게 들떠 있는 것 보면 도박은 계절을 가리지 않는 모양이다. 고개를 들어 보니 이런 오지에 눈에 밟히는 게 온통 전당포 간판들이었다. 24시간 영업하는 데도 많은데 그 안에는 '사람 빼고는 다 있다'고 한다. ▲ 청정한 절간의 낮은 돌담 정선의 깊은 산골에 있다는 정암사는 고한역에서 그다지 멀지 않았다. 이젠 도박촌으로 변한 탄광촌에서 얼마 되지 않는 거리에 이토록 청정한 '적멸보궁'이 존재한다는 게 기이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어쩌면 그곳은 이미 황폐해진 도박인생과 막장인생들이 마지막으로 잃어버린 자기를 되찾는 '마음의 산소호흡기'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궂은 날씨 탓인지 내가 도착했을 때는 참배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한 명도 눈에 띄지 않았는데 그 다음 날까지도 그랬다. 더욱이 염불소리나 목탁소리마저 들리지 않아 참으로 오랜만에 젖어보는 아늑하고 그윽한 분위기였다. 아마 내가 절에 있으면서도 '절에 온 것 같다'는 느낌이 든 것은 이때가 처음이 아닌가 싶다. 천천히 경내를 한번 둘러본 다음 종무소에 들러 주지로 계시는 화광 스님을 찾았더니, 머리를 두 갈래로 땋은 꼬마 아가씨 하나가 '스님은 지금 감기몸살이 아주 심해 며칠째 누워 계신다'고 했다. 내가 감기약을 꺼내려고 배낭 속을 뒤적거리자 살짝 웃으며 “우리 스님, 약 같은 거 안 드세요” 한다. 나는 모른 척하고 얼른 초콜릿으로 바꿔 슬며시 꺼내주자 “전, 단 거 안 먹어요” 한다. 정암사는 석가의 진신사라를 모셨다는 '5대 적멸보궁'중의 하나다. 신라의 국통이었던 자장 스님이 세우고 또 그가 입적할 때까지 머물렀던 절이기도 한다. 강릉 수다사에 머물고 있던 자장 스님이 하루는 꿈을 꾸었다. 당나라 오대산에 있을 때 만났던 한 스님이 나타나, “내일 그대를 대송정에서 만날 것이오” 하고는 사라졌다. 이튿날 아침 일찍 대송정으로 가니 문수보살이 나타나, “그럼 태백산 갈반지에서 다시 만날 것이오” 하고는 또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자장 스님이 다시 태백산으로 들어가 갈반지를 찾고 있는데, 커다란 구렁이 한 마리가 나무 아래 똬리를 틀고 있었다. 스님은 '아하, 바로 여기가 그 갈반지로구나' 여기고는 그곳에 석남원을 세운 다음 그 문수보살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 석남원이 바로 지금의 정암사이다. 자장 스님은 또 당나라에서 갖고 온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실 탑을 세우는데 그때마다 탑이 무너지는 것이었다. 스님이 식음을 전폐하고 간절히 기도하자 갑자기 칡 세 줄기가 흰 눈 위로 뻗어 나와 지금의 수마노탑이 있는 자리에 가서 멈추었다고 한다. 지금도 나이 드신 분들 가운데는 적지 않게 한자로 '칡 갈' 자와 '올 래' 자를 써 정암사를 '갈래사' 라고도 부른다. (…) ▲ 효봉 스님의 숨결소리 들리는 듯 정암사는 예로부터 많은 선객들이 모여 수행한 선 사찰로도 유명하다. 일제시대 때 죄수에게 사형을 선고한 뒤 판사를 그만두고 출가한 효봉 스님이 총독부의 추적을 피해 3년여 이상 머물며 수행정진했다고 한다. 또 해방 이후에도 지월, 서옹 스님 등이 이곳을 거쳐갔다 하니, 출가수행자들 사이에서는 더욱 각별한 의미로 다가왔는지도 모른다. 돌아오는 길에 자장 스님이 입적하신 곳으로 알려진 불타버린 조전터와 그 유골이 모셔져 있다는 석혈, 그리고 최시형을 비롯한 동학 핵심지도자들의 수련장소 겸 피신처로 알려진 적조암을 찾았다. 종무소의 '단 거 안 먹는다'는 그 아이가 생긋 웃으며 '이 정암사 계곡을 끼고 만항재 쪽으로 오르다 보면 양지촌과 평화촌이 나오는데 그 동쪽 산기슭에 있다'고 약도를 손금 보듯 그려준다. 그러나 큰길에서 산기슭으로 접어들자 나는 몇 걸음도 떼지 못하고 포기해야만 했다. 눈이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데다 갑자기 눈보라까지 휘몰아쳐 온 것이다. 설상가상이란 말은 이런 때 써먹으라고 있는 모양이다. 게다가 이렇게 쌓인 눈 속에서는 아무것도 확인할 수 없다는 정암사 원주 스님의 말도 떠올랐던 것이다. 아쉬운 마음이야 정선 골짜기에 쳐진 빨랫줄로도 다 묶을 수 없겠지만, 폭설이 더 내려 길이 완전히 끊기기 전에 나는 서둘러 정암사를 떠나야 했다. 길 위에 폭설이 그리움처럼 쌓인다. --- pp.132~1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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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고의 성지들을 찾아서
《적멸보궁 가는 길》에서 만나는 사찰들은 한국 불교에서 가장 성스럽게 여기는 '성지'들이다. 한국에서 불교는 종교라기보다 민족 신앙에 가깝다. 그런 만큼 오랜 세월 이 땅의 수많은 스님들과 신자들은 전국 곳곳에 수행의 흔적과 신심의 숨결을 남겼고, 이 유적들과 사찰들은 세월이 흐를수록 새롭게 의미를 더해가고 있다. '5대 적멸보궁'은 부처의 진신사리가 봉인되어 있는 곳으로 '성지 중의 성지'로 꼽힌다. 그래서 일반 불교 신도들이 가장 많이 참배하는 절이다. 또 통도사(불佛=부처=금강계단의 진신사리), 해인사(법法=가르침=경판전), 송광사(승僧=승려=국사전) 등 '3보사찰'은 우리나라의 불교 역사를 화려하게 장식할 정도로 많은 고승들을 배출했는데, 이 세 사찰은 모두 국보로 지정돼 있는 만큼 종교적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문화재로서의 가치 때문에 답사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그리고 동해 낙산사, 서해 보문사, 남해 보리암 등 '3대 관음성지'는 부처님의 영험이 많아 소원을 들어준다고 해 입시철 같은 때 장사진을 이룬다. 이 절들은 불교에서 자비의 화신으로 간주되는 관세음보살이 살고 있다고 믿는 곳이다. 또한 '절로 가는 마음'에서 소개하고 있는 화엄성지인 지리산 화엄사, 지장성지인 고창 선운사, 그리고 미완성 와불과 천불천탑으로 아직도 신비의 베일에 가려져 있는 화순 운주사 등은 풍광 그 자체만으로도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절이다. '적멸보궁'에 대하여 석가모니 부처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모신 전각을 말한다. 보궁은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후 최초의 적멸도량회(寂滅道場會)를 열었던 중인도 마가다국 가야성의 남쪽 보리수 아래 금강좌(金剛座)에서 비롯된다. 《화엄경 華嚴經》에 따르면, 깨달음을 얻은 부처는 처음 7일 동안 시방세계 불보살들에게 화엄경을 설법하기 위한 해인삼매(海印三昧)의 선정에 들었다 한다. 이때 부처 주위에 많은 보살들이 모여 부처의 덕을 칭송하였고, 부처는 법신인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과 한몸이 되었다. 따라서 적멸보궁은 본래 언덕 모양의 계단(戒壇)을 쌓고 불사리를 봉안함으로써 부처가 항상 그곳에서 적멸의 법을 법계에 설하고 있음을 상징하던 것이었다. 진신사리는 곧 부처와 동일체로, 부처 열반 후 불상이 조성될 때까지 가장 진지하고 경건한 숭배 대상이 되었으며 불상이 만들어진 후에도 소홀하게 취급되지 않았다. 오늘날 한국에서 적멸보궁의 편액을 붙인 전각은 본래 진신사리의 예배 장소로 마련된 절집이었다. 처음에는 사리를 모신 계단을 향해 마당에서 예배하던 것이 편의에 따라 전각을 짓게 되었으며, 그 전각은 법당이 아니라 예배 장소로 건립되었기 때문에 불상을 따로 안치하지 않았다. 다만 진신사리가 봉안된 쪽으로 예배 행위를 위한 불단을 마련하였다. 한국에는 신라의 승려 자장(慈藏)이 당나라에서 돌아올 때 가져온 부처의 사리와 정골(頂骨)을 나누어 봉안한 5대 적멸보궁이 있다. 양산 통도사(通度寺), 강원도 오대산 중대(中臺), 설악산 봉정암(鳳頂庵), 태백산 정암사(淨巖寺), 사자산 법흥사(法興寺) 적멸보궁이 그것이다. 통도사는 금강계단에 진신사리를 봉안해 계율 근본도량 불보종찰(佛寶宗刹)이 되었다. 오대산 중대 적멸보궁은 불사리를 안치한 장소를 알 수 없이, 뒤쪽에 석탑을 조각한 마애불탑이 상징적으로 서 있을 뿐이다. 설악산 봉정암에는 불사리를 안치한 5층 석탑이 있고, 태백산 정암사에는 산 위로 수마노탑이 있다. 사자산 법흥사에는 진신사리가 안치된 보탑과 자장이 도를 닦았다는 토굴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