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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으로 가는 길
책을 펴내며 서경식 프롤로그 디아스포라와 서로주체성의 만남 제국의 보편과 고립된 개별성을 넘어서 자기상실의 역사를 넘어서 바벨탑의 공동체 1부. 씨 과의 만남―우리에게 5.18은 무엇인가? 나에게 5·18은 무엇이었나? 씨 은 누구인가 5·18의 고유성과 보편성에 대하여 2부. 역사와의 만남―기억하기, 증언하기, 저항하기 87년 이후 한국 사회의 기억력과 망각증 고통의 기억과 저항의 기억―프리모 레비와 서경식 유대인 문제에 대하여 탈식민주의라는 과제 앞에서 3부. 타자의 고통과 만남―교육, 교양, 예술 교육, 자기계몽과 노예화 사이 교육의 위기는 민주주의의 위기다 교양―만남을 위해 나를 비우기 예술―타자를 상상하기, 고통에 참여하기 에필로그 새로운 공동체의 꿈 해방은 우리에게 무슨 의미인가? 회귀도 획일성도 아닌 통일 우리는 누구인가? |
徐京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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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조선인 디아스포라의 존재조건 속에서
식민지배와 국가주의의 상처를 기억하고 증언해온 작가, 서경식 서경식은 재일조선인 지식인으로서 일본의 국민주의와 극우 내셔널리즘을 예리하게 비판해왔다. 그는 박정희 군부독재하에서 재일교포유학생간첩단사건으로 20년 가까이 옥고를 치른 서승·서준식의 동생으로 국가주의적 폭력의 생생한 증인이기도 하다. 그는 이러한 자의적 잣대에 의해 차별받고 자신의 땅과 언어로부터 공동체로부터 추방되어 떠도는 자들을 ‘디아스포라’라는 더 보편적인 정체성으로 연결시키고자 한다. 디아스포라는 단순히 국민주의, 국가주의, 민족주의의 결과물일 뿐 아니라 강요된 근대화, 식민화, 세계화, 자본주의화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그는 이렇듯 다양한 차별의 구조로 인해 고통받아온 이들의 역사를 기억하고 배움으로써 다른 차별들로 인해 고통받는 이들과의 연대로 나아가는, 더 열린, 더 보편적인 정체성과 공동체성을 사유하고자 한다. 특히 예술은 그에게 이러한 역사의 장벽과 분단선 바깥을 꿈꿀 수 있는 상상력의 원천이다. 철학을 통해 지금 여기의 모순과 싸우고 항쟁의 역사 속에서 참된 철학적 정신을 길어내는 철학자, 김상봉 김상봉은 칸트를 전공했고 플라톤과 그리스 비극 등 서양 고전인문학을 공부했다. 그가 서양 철학의 뿌리까지 거슬러 올라간 것은 단순히 그것을 잘 정리해 소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참된 ‘주체성’의 조건을 근본적으로 고민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렇게 거슬러 올라간 뿌리에서 ‘자유로운 인간’이라는 아름다운 이상뿐 아니라 너무 아름다워서 ‘자기’에만 매몰될 뿐 ‘타인’과 만날 수 없는 정신의 불임성을 보았다. 유영모, 함석헌, 한용운 등 20세기 한국사의 가장 어두운 시기에 ‘자기’와 ‘세계’를 사유했던 지성들을 다시 읽어내는 그의 작업은, 학문(제1세계의 언어)과 삶(제3세계의 현실)을 일치시키지 못했던 불행한 한국 철학을 반성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서양 근대가 제시했던 해방의 이상이 흔들리는 지금 새로운 보편적 ‘이상’을 꿈꾸기 위한 준비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5·18의 역사를 철학적으로 재해석함으로써 이러한 문제의식을 더 구체적인 맥락에서 드러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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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주의와 탈민족주의를 넘어서 다시 ‘우리’를 묻다
서경식은 일본의 극우 내셔널리즘은 물론 소수자를 인정하지 않는 모든 중심화된 국민주의·민족주의를 비판해왔다. 그래서 흔히 탈민족주의자로 오해된다. 하지만 그는 ‘민족’이라는 개념을 휴지조각 버리듯 쉽게 폐기하고 경쾌하게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로 발걸음을 떼는 탈민족주의 담론 역시 예리하게 비판한다. 그러한 탈민족주의는 역사를 넘어서기보다는 망각하도록 부추기기 때문이다. 그는 민족이 차별의 잣대나 낙인이 아닌 연대의 고리가 되기를 바란다. 김상봉은 동학운동에서부터 항일독립운동을 거쳐 1970∼1980년대의 민주화운동으로 이어지는 저항의 역사에서 이 땅의 고유한 철학적 이념을 길어내고자 해왔다. 그래서 흔히 민족주의자로 오해된다. 하지만 그는 상업적 민족주의, 지배계급의 이익에 봉사하는 민족주의, 정신적 허영으로서의 민족주의에는 관심이 없다. ‘나’의 이익이나 이해를 넘어서는 ‘만남’의 추구, 나와 다르지만 함께 싸워야 할 타인들과의 묶음으로써 ‘우리’가 중요할 뿐이다. 두 사람은 민족이 식민주의라는 차별과 억압의 역사를 품고 있는 중요한 기억의 단위이며, 그 상처에 대한 기억이 다른 차별을 겪고 있는 이들에 대한 공감의 원천이 된다는 것을, 서로 다른 입장에서 서로 다른 언어로 이야기한다. 이는 곧 ‘우리’ 내부의 ‘타자’들과 공존하는 방법, 나아가 그들을 인정함으로써 나를 확장하고 새로운 우리를 형성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로 옮아간다. 외국인노동자, 국제결혼 이민자, 재일조선인, 조선족 들이 공생하는 다언어·다문화 공동체의 전망을 모색하고, 또 우리 안의 타자인 비정규직이 해방되고, 종종 ‘말이 잘 통하는 외국인노동자’로 이해될 뿐인 북조선 인민(혹은 미개척 시장일 뿐인 북조선)이 해방될 수 있는 ‘통일’을 고민한다. 입장·관점·언어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대담은 비판의 힘을 상실한 공허한 탈민족론이나 배타적·상업적 민족주의에 대한 급진적인 성찰이라 할 수 있다. ● 한국 현대사를 기억하는 또 다른 방법 ―5·18과 홀로코스트에서 87년 체제와 일본의 전후민주주의까지 이 대담의 특징은 철학적 깊이와 함께 풍부한 역사적 담론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국민국가와 민족주의의 상상력을 넘어 어떻게 새로운 공동체를 꿈꿀 것인가’ 혹은 ‘분열된 주체로서 타자성을 끌어안으며 어떻게 저항할 것인가’라는 현대 정치철학의 첨예한 문제의식에 풍부한 역사적 맥락을 덧붙여간다는 것이다. 먼저 김상봉은 한국 근현대사를 ‘현존 국가기구’와 ‘씨?들의 나라’의 대립 속에서 보고 5·18을 그것의 가장 구체적이고도 이상적인 현실태로 해석해낸다. 서경식은 5·18의 기억을 과테말라 군부독재에 희생당한 원주민들의 기억의 투쟁과 연결시키고, 8·15 해방이라는 과거의 기억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현재와 교차시키며, 홀로코스트의 기억을 팔레스타인 난민 해방을 위한 투쟁의 연료로 변화시키고자 한다. 두 사람은 기억의 방식에 대해 팽팽하게 논쟁을 벌이다가도, 한목소리로 일본의 전후 민주주의가 쇠락한 과정을 돌이켜보며 역사를 망각한 사회의 위험을 경고한다. 이러한 역사의 환기는 적극적으로 ‘오늘 여기’를 반성하는 계기가 된다. 가령 이 모든 역사적인 논의를 거쳐 신자유주의적으로 민주화된 한국 사회, 육사학벌체제에서 서울대학벌체제로의 전환이라 할 법한 87년 체제가 언급된다. 또 이런 역사의 환기는 대선을 코앞에 두고 진보·개혁 세력에 대한 불신이 전사회적으로 팽배한 상황에서 냉소주의를 경계하고 한국 사회를 진보적으로 견인하기 위한 새로운 과제들을 더 명확하게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기도 하다. ● 타자의 고통에 대한 감수성이 중요하다 ―민주주의의 토양이 되는 교육, 교양, 예술 서경식은 『나의 서양미술 순례』, 『청춘의 사신』, 『디아스포라 기행』등 일련의 저작들이 보여주듯, 역사에 대한 성찰이 독특하게 녹아든 예술 에세이들을 계속해서 발표하고 있고 김상봉 역시 서양 고전음악에 대한 남다른 지식과 감식안을 자랑한다. 하지만 이들이 나누는 대담은 취향을 뽐내는 살롱의 담화를 넘어서 있다. 교육, 교양, 예술이 한데 묶이는 저 표제상의 자연스러움 아래로는, 그런 연결이 매끄럽다고 여기는 상식의 결을 정반대로 거스르는 거친 이야기들이 흐르고 있다. 두 사람은 국가발전이나 자본증식에 기여하는 경쟁력 있는 인재 양성에 주력하는 교육관을 뒤엎고, 안온한 응접실 교양을 발로 걷어찬 다음, 파편화된 감각의 밀실 속에서 기진해가는 오늘날의 예술에 죽비를 내려친다―‘역사와 타자의 고통을 망각하지 마라!’ 더 엉뚱한 것은 이러한 논의 속에서 ‘87년 이후의 한국사회와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문제에 대한 답이 도출된다는 점이다. ‘자기를 성찰하는 능력을 키우고(교양), 타자의 고통에 동참하며(예술), 모든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이 자기를 실현하는 공적 주체를 키우는 사회(교육)만이 민주주의를 지켜갈 수 있다. 민주주의란 타자와의 만남이 이뤄지는 역사적이고 공적인 지평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억압과 한계 ‘바깥’을 상상하도록 하는 근대 예술의 성찰성을 강조하는 서경식과, (형성의 정치성이 아닌) 비판의 정치성에 머물 수밖에 없는 근대 예술의 소외를 지적하는 김상봉은 때로 날카로운 대립각을 드러내지만, 그 안에서 타자의 고통에 대한 감수성이 자란다는 것은 두 사람의 논의가 만나는 접점이다. ● 안과 밖의 소통, 그 곤란함과 치열함의 생생한 기록 이 책은 ‘안과 밖 사이에 이루어진 진짜 대담’이다. 한국 사회 바깥에서 역사의 현장 바깥에서 성찰해온 이의 시선과 현장 안으로 자신을 이끌며 고민하고 행위해온 이의 몸짓이 만나는 자리다. 바깥에서 바라보는 시선은 넓은 시야로 인해 날카롭게 문제를 짚어낼 수 있지만, 스스로 안으로 들어가 행위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변혁의 주체는 될 수 없다. 또 내부의 시선에는 맹점이 너무 많다. 바깥의 성찰을 내부의 적극적 행위와 맞물리도록 할 수는 없을까? 그렇게 열린 상태를 지향할 수는 없을까? 몸 담아온 사회가 다르고 언어가 다르고 학문적 배경이 다른 두 사람이 만나 소통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이 어려움은 ‘언어와 문화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다양한 차이를 넘어 그 차이를 인정하며 보편적인 인간의 해방을 위해 소통하고 연대할 수 있는가?’라는 이번 대담의 핵심 주제와 연관되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니 그러한 어려움을 감추고 매끈하게 봉합해버릴 수는 없었다. 특히 프롤로그에서는 특정 어휘와 표현에 대한 의심, 질문의 본의를 빗겨가는 대답, 서로의 관점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 등이 다소 거칠고 날카롭게 날것의 상태로 드러나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대담의 독특한 리듬이 생겨나며, 후반으로 갈수록 정교하게 들어맞는 호흡과 점차 깊이와 폭을 더해가는 박동을 느낄 수 있다. 결국 단순한 지식과 교양을 전해주는 대담과는 달리 이 책은 (비록 하나 하나의 대담이 완결성을 갖기는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전체적인 문제의식과 고민이 거대한 몸체를 드러내는 광경을 지켜봄으로써 그 진가를 느낄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