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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1학년인 캐트리오나는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으며, 유명한 텔레비전 스타를 부모로 두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캐트리오나는 할머니와 단 둘이서 삽니다. 무명의 기간이 길었던 엄마 아빠는 그동안 지방 극단을 따라 옮겨 다녀야 했기 때문에, 캐트리오나를 돌볼 수 없었습니다. 캐트리오나는 할머니와 둘이 살면서도 자라면서 흔히 빚게 되는 결손 가정의 어려움을 겪은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할머니와 함께 하는 삶은 아름답고 활기차며 빛나는 것이었습니다. 할머니는 은퇴한 정신과 의사이며, 2차 세계대전 때의 공으로 기사 작위를 받았으며,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멋쟁이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 운영위원의 아들과 빚은 작은 시비로 인해 할머니와 캐트리오나는 곤란에 빠집니다. 여기에다 이제는 성공한 스타인 부모가 캐트리오나와 함께 살고 싶어 합니다. 졸지에 할머니를 떠나 자신을 전혀 모르는 엄마 아빠와 함께 살아야할 처지가 된 캐트리오나는 고민에 빠집니다. 딸과 싸울 의지가 없는 할머니는 시름만 깊어가고, 캐트리오나 혼자서 이 역경을 이겨내기 위해 방법을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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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는 아이들의 삶을 조종할 수 있는가
많은 부모가 보다 나은 아이들의 삶을 위해 적절한 간섭은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아직 자아나 정체성이 미성숙하고 완전한 것이 아니므로, 일정한 통제나 영향은 필요한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자칫 도가 지나칠 경우 아이들의 일상을 통제하고 간섭하게 됩니다. 심지어 친구 관계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생각까지도 조종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집니다. 그러면서도 스스로는 이것만이 진리라고 자신을 조종합니다. 이럴 경우, 참담한 결말을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작품 속에서는 아이의 현명한 선택으로 이를 비켜갑니다. 10여 년 동안 주인공을 할머니에게 맡기고 살던 부모가 이제 생활이 안정되었다고 하여 찾습니다. 그러면서도 주인공의 의견은 전혀 안중에도 없습니다. 얼핏 보면 자신들만의 감정에 빠져, 자신들만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아이의 현 상황과 그동안 아이와 할머니가 쌓아왔던 모든 신뢰나 사랑, 생활 등은 전연 도외시하고서 말입니다. 할머니는 자신의 처지(나이, 정신병 환자를 돌보는 것 등)와 자신의 감정과 딸(손녀의 행복과 딸의 성취감) 사이에서 말도 못하고 속만 끓입니다. 하지만 주인공 캐트리오나는 스스로 누구와 함께 살 것인가를 선택합니다. 할머니가 딸과 분란을 일으키는 것에 대해 조심스러워하며 망설이는 사이에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위해 변호사를 찾아 나섭니다. 소유물로서의 딸이 아니라, 주체적인 삶을 위해. 아이는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다 주인공 캐트리오나는 부모보다 할머니와의 삶을 선택합니다. 스스로 변호사를 찾아가 자신의 문제와 의견을 정확히 알리고 협조를 구합니다. 비록 그것이 법의 힘을 빌려 화해와 조정을 하는 것이긴 하지만. 이런 점은 우리의 현실에서도(이런 갈등이 사회적 문제가 된다면) 고려해 보아야 할 부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경우 우리의 현실을 어떨까요? 이런 가정사의 문제를 청소년들이 믿고 상담할 수 있는 기관이나,(있더라도 손쉽게 찾아가서 고민을 털어 놓을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진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의 청소년 복지 정책에 하나의 자료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주체적인 삶을 적극적으로 찾으려는 주인공 소녀의 노력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수상 내역 - 1996년 카네기 메달 후보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