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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문
2. 영원의 도시, 재의 수요일 3. 달걀과 우주의 비밀 4. 숫양자리에서 떨어진 별 5. 두 개의 검 6. 페스트보다 더 무서운 것 7. 시신의 행방 8. 물질 역시 의미를 내포한다 9. 불귀, 혹은 휘프노스의 머리칼 10. 영주의 만찬 11. 사순절 파이 12. 성물 보관소를 찾아서 13. 검은 태양 14. 후기 부록 발문 김연수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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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의 제왕으로 불릴 정도로 왕성한 식욕을 자랑했다던 샤를마뉴 대제, 프랑크 왕국이라는 대제국을 건설한 황제의 화려했던 식탁보다 더 푸짐한 듯했다. 전해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샤를마뉴 대제의 식탁에는 불꽃을 토해내는 공작새 요리가 나왔다고 한다.
풍성한 식탁을 접하고 보니, 문득 피렌체의 수도원 서고에서 본 적이 있는 우화시가 생각났다. 굶주림의 공포와 삶의 고난에 찌든 민중들의 염원과 환상을 그리고 있는 그 우화시의 내용을 기억이 허락하는 한 되살리면 다음과 같다. ……모든 집들의 벽은 연어, 청어, 농어, 잉어로 만들어져 있다. 서까래는 철갑상어로, 들보는 소시지로, 지붕은 햄으로 되어 있다. (……) 길거리에는 살찐 거위와 칠면조가 떼를 지어 스스로 마늘 소스를 묻히며 구워지고 있다. 밀밭은 돼지 순대와 온갖 고기 조각들로 빙 둘러져 있다. 강은 포도주로 넘치고 도로에는 흰 빵들이 깔려 있다. 나무마다 빵과 파이와 과자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고 하늘에서는 사과주와 우유가 번갈아 쏟아져 내렸다. 바람이 불면 언덕에 치즈가 산처럼 쌓이고 새벽이면 꿀서리가 내렸다…… 굶주림에 시달리며 늘 아사의 두려움에 떠는 빈한한 사람들에게 우화시에서 묘사된 그곳이야말로 천상의 예루살렘이었던 것이다. 그 어떤 복음의 말씀보다 우화시의 한 소절이 그들에게 더 큰 위안을 주지 않았다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겠는가. ---pp.208~2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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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름지기 말(言)이란 태양이 떠오르면 흔적도 없이 녹아 없어지는 들판의 눈처럼 덧없는 것, 하늘을 떠도는 구름과 같이 정처 없는 것, 시들자마자 사라지는 장미의 향기처럼 허망한 것, 하여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그 말의 거죽이 아니라 속, 즉 그 말이 드러내는 바가 아니라 그 말이 드러내지 않는 바, 은밀히 감추고 있는 것이다. 언어라는 것은 본시 의미를 드러내는 도구이나 종종 그 의미를 은폐하기도 해서 우리가 구하고자 하는 의미라는 것은 언어를 버릴 때 드러나기도 하는 법. 그 박학다식함이 오른편에 설 자가 없다는 알렉산드리아 사람, 움베르토 에코는 일찍이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자연이야말로 위대한 양피지이며 모든 것은 거기에 다 기록되어 있다.
--- p.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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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술의 비밀을 둘러싼 중세 수도원의 숨막히는 음모, 완벽한 지적 추리
서양 중세경제사에 대해 박사논문을 쓰고 있는 소설의 화자는 소르본 대학 도서관 고(古)문헌실에서 우연히 바스커빌 출신의 프란체스코 회 수도사 윌리엄--우리가 알고 있는 『장미의 이름』의 바로 그 윌리엄--이 14세기 초에 쓴 서책의 채록 편집본을 발견한다. 서책 『프랑스를 비롯한 전 세계에서 가장 고귀하고 가장 괴물 같은 일들에 관한 기록』은 영원의 도시이자 이단의 온상인 베르송의 피에르 주교로부터 급히 와달라는 서찰을 받고 수도원에 도착하면서 윌리엄이 겪게 되는 살인, 실종, 식인, 흑사병, 그리고 이단 재판과 화형 등 무섭고도 기괴한 사건들의 기록이었다.
이야기는 윌리엄이 알프스를 넘어 베르송에 도착하면서부터 시작된다. 윌리엄이 도착한 때는 마침 육식을 금하는 사순절이 시작되는 재의 수요일, 곧 성회례일(聖灰禮日)이다. 윌리엄은 성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끼지만 그 느낌의 실체는 쉽사리 밝혀지지 않고, 사건은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토록 건강하던 피에르 주교의 사인이 심장마비였다는 것, 죽은 주교의 얼굴이 적어도 십 년은 늙어 보였다는 것, 주교의 사망 선고를 내린 의사와 시종의 실종, 일개 지방도시 주교의 장례를 위해 속권과 교권의 수장들이 베르송을 방문하기로 되어 있다는 것 등등 이상한 점은 한둘이 아니다. 더구나 요리 담당 제롬 사제의 알 수 없는 이야기들…… 그에게서 이단의 냄새를 맡으면서, 윌리엄은 자기 안에 숨겨진 불온과 독신(瀆神)의 싹을 발견하기도 한다. 참사회의에서 벌어진 필립 4세의 오른팔 기욤과 당대의 이단 심문관 발렌티노의 설전, 그리고 이를 잠재운 페스트에 대한 공포, 비어 있는 피에르 주교의 관, 그리고 질베르 영주의 만찬 초대…… 속권과 교권의 수장들이 다 모인 만찬장에는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는 진귀한 요리들이 나온다. 부리에서 불꽃을 토해내는 꿩 구이, 아흔아홉 가지의 갖은 향신료가 들어간 산토끼 스튜, 토끼를 구워 쌓아올린 성 바비큐, 암컷을 유혹하듯 화려한 꼬리를 활짝 펼치고 있는 수컷 공작 구이, 골에서 김이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염소 대가리 찜, 칠리 소스를 끼얹은 낙타 혓바닥 스테이크, 털도 뽑지 않은 곰 발바닥 요리, 원숭이 골 푸딩, 그리고 그 자리에서 산 채로 구워진 메추라기 구이…… 육식을 금하는 사순절 기간, 사제들은 사색이 되지만 다행히 제롬 사제의 기지로 위기를 넘긴다. 하지만 모두들 맘 편하게 즐긴 사순절 파이는 또다른 사건의 시작이다. 만찬이 끝나고 교회로 돌아가는 길, 어디선가 나타난 실종된 의사의 개는 문제의 사순절 파이를 만든 장(Jean)의 가게로 들어가고, 일행은 장의 가게와 푸줏간--장의 쌍둥이 동생 로제가 운영하는--에서 비밀통로를 발견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발견된 것은……인육(人肉)! 그랬다. 그들이 그토록 맛있게 먹은 사순절 파이는 인육으로 만든 파이였던 것이다.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로제가 데리고 있는 벙어리 여인 마리에 대한 윌리엄의 정념과 요한 묵시록의 예언을 연상시키는 장과 로제의 독설, 그리고 마녀로 몰린 마리의 화형식, 피에르 주교가 죽기전 윌리엄에게 전한 서찰…… 사건은 점점 더 미궁으로 빠져든다. 소설의 첫머리에서 김경욱이 인용한 호이징가의 말처럼, 현실은, 그리고 삶은 늘 극에서 극으로 치닫는다. 피비린내와 장미향이 뒤섞이고 지옥의 공포와 순진한 쾌락이, 지상의 쾌락에 대한 절대적 경멸과 이에 대한 미칠 듯한 탐닉이, 증오와 선량함이, 그리고 선과 악이 한데 섞여든다. 피비린내와 장미향이 뒤섞인 속에서 삶은 그토록 격렬하고 대조적인 양상을 보였다. 이 시대 사람들은 마치 어린아이의 머리를 한 거인들처럼 지옥의 공포와 순진한 쾌락, 잔인무도함과 부드러움 사이를 왕래한다. 지상의 쾌락에 대한 절대적 경멸 아니면 지상의 쾌락에 대한 미칠 듯한 탐닉, 그리고 증오 아니면 선량함 등 둘 중 하나이다. 언제나 극에서 극으로 치닫는 것이다. 요한 호이징가, 『중세의 가을』 문우 김연수가 쓴 발문은 이들 세대의 소설가들이 당면하고 있는 소설적 곤경에 대한 명징한 고해(告解)다. 『황금 사과』를 써야 했고, 쓸 수밖에 없었던 김경욱의 고민을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다. 일독을 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