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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련님은 어떻게 작가가 되었나 _007
오늘도 무사히 _041 너는 별을 보자며 _073 한 사람만 데려갈 수 있다면 _105 너는 지구에 글쓰러 오지 않았다 _143 모르는 사람 _169 낫과 밤 _203 나는 남조선 작가입니다 _235 해설 | 이경재(문학평론가) 불행히도 리얼한 대지 위에서 _2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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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눈썹 위에 올려진 성냥개비 같은 삶이란 그런 것입니다. 한없이 얇고 가벼운 성냥대 한쪽 끄트머리에는 작은 화약고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화약고지만, 스스로를 힘껏 으스러뜨려야 겨우 불붙는 화약고지만, 그 불이 무엇을 불사를지 알 수 없습니다.
---「도련님은 어떻게 작가가 되었나」중에서 잿빛 털은 윤기라곤 없이 땟국만 자르르했다. 주둥이인지 코인지 모를 부위에 길게 찢긴 상처가 보였다. 엉겨붙은 핏자국 위로 파리가 끓었다. 돼지국밥집과 부두를 한바탕 휘저은 그 녀석이 틀림없었다. 그런 건 그냥 알 수 있었다. 알다가도 모를 것은 사람들이었다. ---「오늘도 무사히」중에서 슬퍼할 일도 기뻐할 일도 아니다. 우리가 기억하고 상상하기를 멈추지 않는다면. 미래를 기억하고 과거를 상상하는 걸 포기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기억의 재료이자 상상의 재료에 지나지 않으리니. ---「너는 별을 보자며」중에서 다짐했던가. 뼈저린 후회도 뼈저린 회한도 없는 삶, 그런 삶을 살아보자고. 어느덧 실밥 자국마저 희미해졌지만 필호에겐 후회도 회한도 없었다. 그저 무언가와 아득하도록 가까워지고 생생하도록 멀어질 뿐. 가까울수록 아득해지는 연기처럼, 멀어질수록 생생해지는 강물처럼. 흐르며 사라지는 모든 것이 그러하듯. ---「한 사람만 데려갈 수 있다면」중에서 어둠이 있으라. 창세기에 이 문장은 왜 없을까. 어둠은 창조될 필요가 없었던 거야. 우주의 기본값은 어둠이니까. 우주의 중심에는 빛이 아닌 어둠이 있으니까. 블랙홀 같은 어둠. 어둠이야말로 파괴의 원천이자 창조의 원천이지. 지구에는 왜 온 거니? ---「너는 지구에 글쓰러 오지 않았다」중에서 큰 것이 오고 있다. 두렵지는 않았다. 저 부글대는 수평선이 예고하는 해일이 아무도 피할 수 없을 만큼, 그 누구도 빠져나가지 못할 만큼 거대하다면 괜찮았다. 기억 같은 건 아무래도 좋을 만큼 가차없이 공평한 불운이라면. ---「모르는 사람」중에서 우리를 가만히 지켜봐주는 눈동자 빛깔 말고 소설은 무엇을 묘사할 것인가. 수많은 밤을 나란히 통과한 사람의 얼굴에 새겨진 주름 말고 어디에 상상력을 헌정할 것인가. ---「낫과 밤」중에서 시곗바늘은 지금 몇시, 몇분, 몇초를 지나고 있습니까? 다 말하기도 전에 과거가 되어버리는 그 숫자는 오전에 속합니까, 오후에 속한 숫자입니까? 인간이 몸담을 수 있는 시간대는 현재뿐이라지만, 현재야말로 과거와 미래라는 무한 사이에 그어진 실선에 지나지 않습니다. 어디까지 과거이고 어디부터 미래인지, 둘로 나누려 가위질하면 사라져버리는 절취선. ---「나는 남조선 작가입니다」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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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을 초월하는 예술적·낭만적 가치를
다시 현실이라는 맨바닥에 붙들어놓는 아이러니 김경욱 작가를 수식하는 세간의 다양한 별칭이 있지만, 그를 가장 정확히 설명하는 말은 결국 ‘소설가’다. 『도련님은 어떻게 작가가 되었나』에는 그런 그의 정체성을 파헤치는 일명 ‘소설가 소설’, 즉 메타소설이라고 부를 법한 작품들이 다수 담겼다. 수록작 속 인물들은 대개 작가이거나 예술학교 교수,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책이나 글쓰기에 연관되어 있다. 자전적 성격을 지닌 이러한 설정들은 단순히 작가가 자기 삶을 기록하고 고백하기 위해 택한 도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소설가란 대체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정면으로 응답하기 위해 설계된 정교한 서사 장치에 가깝다. 「너는 별을 보자며」와 「너는 지구에 글쓰러 오지 않았다」의 화자는 등단한 지 오래된 소설가이자 소설 창작 수업을 이끄는 교수다. 이들은 매 순간 이해심과 인내심을 시험당하고 있다. “야심차게 준비한 신작이 2쇄도 찍기 힘”(78쪽)든 냉정한 현실 속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아내는 이제 무대 위에서 빛나는 자신의 ‘최애’를 좇는 데에 여념이 없고(「너는 별을 보자며」), “가르치는 일과 창작을 병행”(146쪽)하며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는 와중 상식 수준을 초월하는 별난 수강생의 등장이 ‘나’를 혼란에 빠뜨린다(「너는 지구에 글쓰러 오지 않았다」). 한편 「낫과 밤」의 화자가 겨루어야 할 상대는 자기 자신이다. ‘나’는 한때 대중적인 성공을 거둔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차기작을 내지 못해 세상으로부터 잊혀가고, 자신의 작품에 결여되어 있는 “시적 심연”(209쪽)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끝에 정신 착란까지 겪게 된다. 이렇듯 김경욱은 예술적 가치를 좇는 소설가란 직업을 낭만적인 영역에 가두지 않고 냉혹한 현실의 한복판으로 끌고 들어와 핍진하게 풀어낸다. 뿐만 아니라 『도련님은 어떻게 작가가 되었나』 속 인물들에게는 한가로운 사념이나 달콤한 고독에 젖어들 여유가 좀처럼 허락되지 않는다. 삶이란 때때로 불의의 사건, 예컨대 투신자살하는 사람과 부딪히는 희박한 확률의 사고에 의해 한순간에 무너지거나(「한 사람만 데려갈 수 있다면」) 치매로 인해 가장 가까운 가족은 물론 자기 자신마저 잃어가는(「모르는 사람」) 식으로 언제든지 참담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온갖 사건 사고와 질병으로 잠식된 삶의 현장에서 예술은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김경욱은 개인을 무력화하는 이 같은 좌절을 소설가의 정체성 문제와 팽팽하게 결부시킨다. “꽃을 피우는 마음이 뿌리 어딘가에 있다면 타오르는 마음은 성냥의 붉음에 있으리니” 「오늘도 무사히」와 「도련님은 어떻게 작가가 되었나」에는 90년대 학번으로서 김경욱이 경험한 시대상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오늘도 무사히」의 ‘복용’은 출판사에서 일하던 젊은 시절, 반정부 운동의 중심지인 서울대 캠퍼스에서 영업을 하다 프락치로 몰렸던 과거를 지니고 있다. 이후 평범한 가장으로 살아가는 듯했던 그의 삶은 아들의 실종을 계기로 균열을 일으키고, 그는 실패와 결핍으로 얼룩진 자신의 삶과 비로소 진정으로 마주하는 여정에 오르게 된다. 비슷한 시대적 배경을 공유하는 표제작 「도련님은 어떻게 작가가 되었나」는 서울대학교에 입학한 ‘지방 출신 도련님’이 ‘압구정동 도련님’인 과외 학생을 만나 의식적으로 각성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리는 작품이다. 누나들로부터 ‘주먹 속 공깃돌’처럼 내던져지고 속눈썹에 성냥개비를 올리는 괴롭힘을 당하며 순종적이고 수동적인 성격으로 자라난 ‘나’는 유복한 가정환경을 거부하고 집회에 나서는 고등학생 ‘강선재’의 삶을 가까이에서 목격한 후 변화하기 시작한다. 성냥개비가 올려진 속눈썹 같은 삶이란 그런 것입니다. 내동댕이쳤다 움켜쥐고 움켜쥐었다 내동댕이치는 주먹의 마음을 공깃돌이 어찌 알까요. 왜 내동댕이치는지 언제 움켜쥐는지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요. 하나 확실한 것은 둘의 뿌리가 다르지 않다는 것뿐. 그래서 소설을 쓰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속눈썹 위 성냥개비에 불을 붙이는 마음으로.(39쪽) “주먹을 흔들며 살벌한 구호를 외치는 상상만으로도 몸이 경직되”(14~15쪽)던 ‘나’가 타인의 고통과 슬픔에 공감하는 삶으로 나아갈 때 선택한 길이 ‘작가’라는 점은 동시대를 기록하는 자로서 소설가가 취해야 할 태도와 추구해야 할 올바른 가치가 무엇인지를 고찰해보도록 이끈다. 마지막 수록작인 「나는 남조선 작가입니다」에 이르러 김경욱은 소설이 두 발을 딛고 서야 할 곳은 낭만적 환상이 아닌 슬픔과 고통이 가득한 현실이라는 사실을 주지시킨다. “깃발 같은 작품 하나가 절실”(238쪽)한 20년 차 작가 ‘나’는 “최고의 뮤즈”(237쪽)가 되어줄 ‘고립’을 찾아 만리타국인 콜롬비아를 찾았다가, 소통 오류로 인해 현재 북조선 대사관에 억류되어 있는 상태다. 그곳에서 ‘나’는 자신이 작가이기 이전에 분단국가의 일원이라는 자명한 사실을 운명처럼 받아들인다. 이 같은 거대한 역사적 숙명 앞에서, ‘나’가 꿈꿨던 예술적 고립이라는 안온한 환상은 생존을 위협하는 냉혹한 시련으로 모습을 뒤바꾼다. 이토록 절망적이고 혼란스러운 현실 속에서 소설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 대답은 표제작인 「도련님은 어떻게 작가가 되었나」에 담겨 있다. 세상에 도사린 위험 속으로 뛰어들기를 망설이지 않았던, “아무도 웃지 못할 때”(29쪽) “나서서 큰 소리로 웃어주는 사람이 되”(30쪽)는 게 꿈이라던 강선재처럼 타인의 고통에 적극적으로 응답하고 역사적 슬픔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 “세상은 불행히도 분단되어 있고, 우리는 불행히도 그 리얼한 비극 속에 살고 있지만” 그것이야말로 “소설의 죽음을 말하는 시대에, 역설적으로 ‘왜 여전히 소설이어야 하는가’”(해설)란 유구한 질문에 대해 김경욱이 지금 우리에게 전하는 뜨거운 대답이다. · 작가의 말 서른하고도 세 해가 지난 지금 글쓰기는 여전히 고통스럽고 감내하기 힘든 절망을 안겨준다. 이야기는 경계심 많은 작은 새와 같아서 부러질 듯 앙상한 내 상상력의 잔가지에 내려앉을 기미가 없다. 나는 그저 기다릴 뿐이다. 서른세 해 동안 내가 갈고닦은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기다리는 능력이니. 기다리는 능력만 잃지 않으면 된다. 담담히 제자리를 지키는 능력만 잃지 않으면 쓸 수 있다. 앙상한 가지에 잎이 돋고 꽃이 피고 열매가 달리는 동안 새들에게 수없이 쉴 곳을 내어준 줄도 모르는 나무처럼. 이것이 아직도 물정 모르는 내가 소설 쓰는 일에 대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이야기다. 2026년 여름 김경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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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의 정체를 안다. 세상 사람들은 그를 ‘소설 기계’니 ‘암굴왕’이니 ‘브루스 웨인’이니 하는 별명으로 부르지만, 그것들은 모두 지나간, 그의 정교한 신분 세탁에 불과하다. 한 권의 책이 나올 때마다 별명이 계속 달라진다는 것은 그 자체로 문제적이다. 그만큼 그가 변신에 능하고 해석하기 까다로운 존재라는 뜻일 터. 하지만 이 책을 읽어보면 다들 감지하게 될 것이다. 그는 사실 줄곧 ‘작가-김경욱’일 뿐이었다. 1993년부터 지금까지 같은 이름으로 소설을 발표하고, 그 이름으로 우리 곁에 존재해온 작가 김경욱. 그의 열번째 소설집이다. 나는 한 작가가 열 권의 소설집을 낸 경우를 본 적이 없거니와(장편소설의 경우와는 비교할 수 없다), 앞으로도 만나기 어려운 사례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그는 마치 미리 열한번째, 열두번째 소설집을 준비하는 작가처럼 또다시 변모했다. ‘미래를 기억하고 과거를 상상하는’ 그의 방식은 그대로인데, 이번엔 유머까지 제대로 장착해버렸다(그러면 나는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그래서 나 역시 그의 별명을 하나 더 추가하려고 한다. ‘막쓰무쓰-김경욱’. 칭찬과 비난과 두려움을 감내하며, 그는 계속 쓰고 있다. 이 글은 그런 한 작가에게 바치는 나의 작은 헌사이다. - 이기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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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련님은 어떻게 작가가 되었나』는 상상의 우주를 비행하던 작가가 어떻게 지상의 중력을 의식하고 ‘동사적 실천’의 주체로 나아가는가를 보여준다. 상상력의 무중력적 도약이 소설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젖혔고, 세속적 중력과 실존적 비극은 소설이 딛고 서야 할 대지를 일깨워주었다. 그리고 종착지에 다다라 작가는 마침내 고립의 환상을 넘어 역사와 타인의 슬픔에 응답하는 윤리적 실천을 감행한다. 세상은 불행히도 리얼하여, 여전히 분단과 고통의 비극이 가득한 곳이다. 그러나 누군가는 아무도 웃지 못할 때 함께 웃어주고, 같이 울어주는 이 없을 때 소리 내어 울어주어야만 한다. 박제된 ‘명사’의 세계를 깨뜨리고 끊임없이 생동하는 ‘동사’의 세계로 전진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김경욱의 소설이 도달한 결론이자 오늘날 우리 문학이 경청해야 할 가장 뜨거운 목소리임에 분명하다. - 이경재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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