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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_ 태종의 셋째 아들 충녕 대군이 왕위에 오르다
세종 일기 첫 번째 _ 조선의 국왕으로 즉위식을 가지다 세종 일기 두 번째 _ 대마도 정벌을 위한 어전 회의를 하다 세종 일기 세 번째 _ 집현전의 설치를 재촉하다 세종 일기 네 번째 _ 아바마마의 장례를 치르고 그리움에 울다 세종 일기 다섯 번째 _ 황희를 강원도 관찰사에 임명하다 세종 일기 여섯 번째 _ 정초로 하여금 <농사직설>을 완성하게 하다 세종 일기 일곱 번째 _ 우리 실정에 맞는 의학서를 편찬하다 세종 일기 여덟 번째 _ 예절서인 <삼강행실도>를 편찬하다 세종 일기 아홉 번째 _ 박연으로 하여금 아악을 연주하게 하다 세종 일기 열 번째 _ 파저강의 여진족을 정벌하기로 결정하다 세종 일기 열한 번째 _ 앙부일구를 제작한 장영실을 칭찬하다 세종 일기 열두 번째 _ 경복궁에 설치된 주자소를 둘러보다 세종 일기 열세 번째 _ 우리말을 연구할 시간을 갖고 싶다 세종 일기 열네 번째 _ 변방에 있는 김종서를 생각하다 세종 일기 열다섯 번째 _ 측우기를 만들어 농사에 도움을 주려 하다 세종 일기 열여섯 번째 _ 조세 제도 개선을 결심하다 세종 일기 열일곱 번째 _ 훈민정음 반포를 반대한 최만리를 꾸짖다 세종 일기 열여덟 번째 _ 조선의 업적을 담은 용비어천가를 짓다 세종 일기 열아홉 번째 _ 세상을 떠난 중전을 위해 불당을 짓다 세종 일기 스무 번째 _ 고려의 역사를 정리하다 에필로그 _ 세종이 여덟 째 아들인 영응 대군의 집에서 승하하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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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황해도에 침입한 왜구를 징벌하는 문제로 어전 회의가 열렸다. 아바마마와 함께 군사 문제를 논의하는 동안 등에서 땀이 흘러내렸다. 신하들이 모두 나의 의견에 반대를 표시하니 당황스러웠다.
해전에 능한 왜구와 바다에서 맞서기보다는 전함을 없애고 육군을 강화하자고 제안한 것이 실수였다. 이종무를 비롯한 신하들은 내 의견에 반대하며, 왜구를 정벌하기 위해 전함을 더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바마마도 이종무의 의견에 찬성하시는 모습이었다. 이종무는 아바마마와 함께 온갖 전투를 치른 명장이니, 그의 말이 맞을 것이다. 군사 문제를 너무 쉽게 생각하여 신하들의 믿음을 얻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다. 아바마마께서 딱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보시니, 송구스러워 나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졌다. 왕이 된다는 것이 이리 힘든 일이구나. 그렇다. 시작이 반이다. 노력하자. 노력하면 안 될 것이 없다. --- p.20 <1419년(세종 1년, 23세) 5월 14일 세종 일기 두 번째> 중에서 원래 장영실의 신분은 부산 동래현 관청에 소속된 노비였어요. 중국인인 아버지가 조선에 귀화하여 기술직을 담당하였지만, 어머니는 천민인 기생이어서 태어나자마자 천민 신분이 되었지요. 장영실은 어려서부터 재주가 뛰어나 그 소문이 태종의 귀에까지 들렸어요. 태종은 그를 궁궐로 불러 공장에서 물건을 제작하는 일을 맡겼지요. 그 뒤 세종이 과학 기구를 만들 기술자를 찾다가 장영실의 이름을 들었어요. 세종은 장영실에게 직책을 주어 일을 맡기려고 했지요. 이때 이조 판서인 허조가 장영실의 신분이 낮다는 이유로 반대했어요. 그러나 세종의 생각은 달랐어요. ‘비록 천한 신분이라고 능력이 있고, 나라에 공로가 있으면 신분을 상승시킬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한 세종은 장영실을 상의원(임금의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만드는 기관)의 별좌라는 직책에 임명하였어요. --- pp.96-97 <역사 깊이 알기> 중에서 요즘은 시민들의 의견을 듣는 여론 조사가 많아요. 대통령 선거 후보들에 대한 여론 조사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드라마가 끝나면 시청률이 얼마인지를 조사하기도 하지요. 그런데 550여 년 전 세종 시대에 벌써 여론 조사가 실시되었어요. 바로 새로운 세금 제도인 공법에 대하여 찬반 여론을 묻는 조사였지요. 이 여론 조사는 1430년 3월에 시작되었어요. 여기에는 중앙 관리부터 지방의 관찰사와 수령, 향리, 그리고 농민들에 이르기까지 빠짐없이 참여했지요. 여론 조사는 5개월 동안이나 이루어졌고, 이 여론 조사에 17만 2000여 명이 참여했어요. 결과는 어떠했을까요? 여론 조사 결과는 찬성이 9만 8000여 명이었고, 반대는 7만 4000명이었어요. --- p.143 <역사 돋보기>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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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형식의 위인전
<실록 밖으로 나온 세종의 비밀 일기>는 인물의 업적을 지루하게 나열하는 기존의 위인전과 달리 ‘만약 세종이 일기를 썼다면’이란 가상의 형식을 통해 세종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종을 조선의 정치, 경제, 문화의 기틀을 잡은 위대한 임금, 백성들을 위해 한글을 창제한 성군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종에게도 힘든 날들이 있었을 것이고, 고민도 많았을 것입니다. 이 책은 세종의 일기를 통해 그 당시 역사적 상황과 그에 대한 세종의 생각, 세종의 고민과 인간적인 측면을 상상해 봄으로써, 세종 대왕이 어떻게 어려움을 극복하고 위대한 임금이 되었는지를 어린이들에게 보여주고자 합니다. 기존의 위인전과 달리 실록에 기록된 사실들을 근거로 20꼭지의 ‘세종 일기’ 내용을 뽑고, ‘역사 깊이 알기’에서는 일기 내용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세종의 업적에 대한 구체적이고 다양한 사실들을 다루었기 때문에 세종에 대한 잘못된 상식을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또 ‘역사 돋보기’ 팁에서는 세종 시대에 대한 재미있는 역사 상식을 넣었습니다. ● <세종실록>에 근거한 구성으로 잘못된 역사 상식 바로잡기 기존의 세종을 다룬 위인전은 세종의 위대함을 강조하기 위해 사실을 과장하거나 잘못 알 고 있는 역사 상식을 그대로 싣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대마도 정벌을 세종이 주도한 것으로 알고 있다거나, 장영실이 앙부일구와 측우기 등 각종 과학 기구를 설계하고 만든 과학자로 알고 있습니다. 또한 한글을 집현전 학사들이 만든 것으로 배우기도 합니다. 그러나 <세종실록>의 기록에 따르면 역사는 다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세종은 즉위한 뒤 4년 동안 아버지인 태종의 지휘를 받았고, 대마도 정벌은 태종이 주도한 일이었습니다. 장영실은 과학자라기보다는 실력이 뛰어난 기술자에 가까웠습니다. 그리고 부산 동래현 관청의 노비였던 장영실을 한양으로 불러들인 사람은 세종이 아니라 태종이었습니다. 또 한글은 집현전 학사들 몰래 비밀리에 진행한 프로젝트라고 합니다. 이 책은 <세종실록>에 근거하여 세종의 여러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세종의 뛰어난 재능과 리더십, 그리고 개인적인 고뇌와 어려움을 함께 담아 보다 객관적으로 인물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를 통해 어린이들이 딱딱하고 교훈적인 위인이 아니라 살아 숨쉬는 세종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