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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들의 말 / 특별하고 행복한 사건 / 청아, 류시화
첫째날 / 세상에 왔지만 세상으로부터 사라질 것들 / 현각 둘째날 / 이 몸, 이 무상한 수레, 덧없는 렌터카 / 명행 셋째날 / 나를 버리고 나를 만나다 / 텐진 위용 넷째날 / 모기는 전생에 나의 어머니 / 게셰 툰텐 룬둡 다섯째날 / 누구도 특별하게 태어나지 않는다 / 파나완사 여섯째날 / 나는 감각세계의 모든 것을 맛보았다 / 아잔 지틴드리야 일곱째날 / 고통은 자유를 거부한 당신이 치르는 대가 / 무심 여덟째날 / 불행은 오래 기다린 친구가 마침내 도착한 것 / 텐진 데키 아홉째날 / 왜 사는가? 오직 모를 뿐! / 무량 열째날 / 나는 죽음 없는 것을 발견했다 / 무진 마지막 날 / 어떤 꽃은 봄에 피고 어떤 꽃은 가을에 핀다 / 청고 |
玄覺, 속명: 폴 뮨젠 Paul Mun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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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안재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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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여름 끝 무렵부터 우리는 색다른 법회를 준비하며 그 기대로 조금 들떠 있었다. 11월부터 영어로 설법을 할 수 있는 국내외의 외국인 출가 수행자들을 우리가 있는 대전 자광사로 초청해 법회를 열기로 한 것이다.(중략) 외국인 수행자라고 우리와 통하지 못할 게 없었다. 우리 모두는 진리의 길을 찾기 위해 구도의 길을 걷는 사람들이며 수행자이기 때문이다. 일 년 내내 진행된 법회는 뜻밖에도 큰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그들의 법문은 진실했으며, 종교에 몸담은 이들이 흔히 갖기 쉬운 상투성의 언어가 아닌 살아 있는 진리로 청중의 가슴에 파고들었다. 때로는 웃었고, 때로는 눈물지었으며, 법문 사이사이의 침묵은 명상의 깊이를 더해 주었다. 힘찬 손짓, 수줍은 미소, 담담한 어투, 때로는 꿈틀거리는 눈썹이 더 많은 진리를 설했다. 청중 속에는 삭발한 승려들도 있었고, 간간이 가톨릭 성자들도 있었으며, 소문을 듣고 먼 길을 온 이들도 있었다. 영어로 진행되는 법문을 알아듣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렇지 못해 묵묵히 앉아 있기만 한 이들도 있었다. 한국에 와서 수행하고 있는 외국인 수행자들도 삼삼오로 찾아왔다.(중략) 사실 법회는 매우 단순하고 조촐하게 마련되었다. 분위기는 소박했으며 자연스러웠다. 중요한 것은 꾸며진 무대가 아니라 가슴으로 말하는 진정성이었다. 삶에서, 또는 진리 추구의 길에서 우리가 어느 순간 잃어버리는 것이 바로 이 진정성이다. 동양인과 서양인의 차이, 종교와 문화의 차이를 뛰어넘는 것 역시 진리를 추구하기로 결심한 인간의 진정성이다. 이 얼마나 행복한 사건인가. 우리 마음이 모두 하나가 된다는 것은.(하략)
--- 옮긴이의 말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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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현대 사회의 다양하고 많은 문제점들을 서양과 동양 두 쪽 모두에서 경험한 열한 명의 수행자가 나누어 주는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나는 무엇인가? 끊임없이 물어야 하다. 그 어떤 종교를 믿든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할 일이다. 모든 것은 변한다. 이 육신도 세상에 왔지만 세상으로부터 사라질 것이다. 고통은 그 변화를 막으려고 하는 데서 온다. 무상에 관해 명상하라. 우리가 생각으로 만들어 내는 이 세상은 근본적으로 무상한 것이다. 모든 생각, 모든 견해, 모든 관념들은 본질적으로 다만 무상하다. 그것들에 집착할 때, 그것이 무지이고, 고통의 원인이다. 하지만 생멸하는 이 모든 것 뒤에는 변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 파란 하늘에는 구름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온갖 변화가 일어나지만, 그 뒤에 항상 존재하는 그 무엇이 있다. 우리는 그것을 발견해야 한다. -현각 순수하고 맑아서 생과 사에 의지하지 않는 것이 있다. 그 순수하고 맑은 하나는 무엇인가? 삶과 죽음은 오로지 생각에 달려 있다. 물론 어느 날 이 몸은 죽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참나’는 결코 죽지 않는다. 이 ‘참나’를 얻으면, 생과 사로부터 자유 또한 얻는 것이다. 생과 사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오로지 순간순간 깨어 있고, 순간순간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간단한 진리이지만 대단히 흥미로운 인간 상황이다. 우리는 단지 이 몸, 이 무상한 수레, 어느 날엔가는 우주로 돌아가게 될 렌터카를 만족시키기 위해 우리의 생을 소비하고 있다. 하지만 만일 우리가 잠에서 깨어나 ‘참나’를 진정으로 이해한다면, 이 렌터카를 우주에게 돌려줄 때가 되어도 아무 문제가 없다. 그때는 문제될 것이 아무것도 없다. 죽을 때는 죽을 뿐이다. -명행 인간은 모두 같다. 마음 깊은 곳에서 행복을 찾고 고통을 피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우리모두는 똑같다. 만일 늘 더 갖기를 원하고 더 좋은 것을 원한다면, 언제나 고통스러워질 것이다. 왜인가? 더 갖기를 원하고 더 좋은 것을 원하는 마음은 그 자체가 고통스러운 마음이기 때문이다. 더 좋은 것을 갖고 싶어서 밖을 기웃거리는 마음은 불안한 마음이고, 혼란스러운 마음이다. 모든 고통의 원인이 외부에 있다고 생각하는 마음, 외부에 대고 화를 내는 마음은 늘 고통스러우며, 늘 적을 갖게 될 것이다. 반면에 내면에 만족이 있는 마음은, 마음이 모든 것을 지니고 있음을 아는 마음은 언제나 평화롭다. 이런 마음 상태에서는 무엇이 일어나든 집착할 것이 없음을 이해하며, 그런 사람들에게는 고통이 없다. -텐진 위용 생명 가진 존재들은 근원적으로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다. 모든 존재는 ‘조건 속에 내재된 이 고통’을 겪으며 살고 있다. 그 고통 속에서 벗어나는 길이 반드시 존재한다. 죽음의 순간에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 살아 있는 동안 키워 온 자비, 사랑, 만족, 마음의 평화 같은 긍정적인 것들이다. 이것들만이 죽음의 순간에 우리에게 도움을 준다. 즐거움의 순간, 즐거움의 기회, 우리가 원하는 것을 소유하는 순간에도 그 안에는 고통의 씨앗이 담겨 있다. 또한 인간 존재는 단순히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죽음을 향해 가는 과정 속에 있다. 자비는 우리를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한다. 자비는 생명 가진 존재들이 겪는 모든 고통의 근본 원인인 무지를 제거하려는 염원이다. 내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이 타인의 친절 덕분임을 알아야 한다. 이 모든 것들을 제공해 주는 일체 존재들을 위해 자신이 무엇인가 할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게셰 툽텐 룬둡 그 누구도 고귀하게 태어나지 않는다. 그 누구도 천하게 태어나지 않는다. 누구나 자신의 행위에 따라 고귀하게도, 천하게도 되는 것이다. 인간은 언제나 어떤 희망, 욕망 혹은 바람을 지닌 채 계속해서 앞으로 앞으로만 달려간다. 이것이 인간 삶의 방식이다. 인간은 언제나 달려가지만 최종적인 만족이란 어디에도 없다. 오직 좌절과 고뇌만이 있을 뿐이다. 어떤 소원이나 욕망을 이루면, 그것으로 끝이 나지 않는다. 우리의 욕망은 이미 그것으로부터 조금 더 앞서 간다. 우리는 또 다른 것을 얻으려고 할 것이며, 이런 악순환은 계속된다. 그것은 끝이 없다. 그때 늘 불만족한 채 살아갈 수밖에 없다. 욕망의 순환 속에서 벗어나야 한다. 모든 즐거움에는 하나의 조건이 전제되어 있다. 그것은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다는 것이다. 멈추어 서서 살펴보라. 멈출 때, 바로 볼 수 있다 -파나완사 가슴이 진정으로 갈망하는 자유는 진리를 아는 자유, 고통으로부터의 자유이다. 고통의 원인은 우리가 마음속에서 경험하는 집착과 갈망이다. 감각적 쾌락은 중독성이 있으며, 즐겁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또다시 그곳으로 가게 된다. 그러나 자꾸만 그곳으로 간다는 사실 자체가 고통이다. 금방 끝나 버리는 그 경험들로부터 쾌락을 얻기 위해 습관과 중독성을 키우기 때문이다. 그것이 어떤 측면에서는 즐거울지라도, 실제로는 그 내면에 훨씬 깊은 불만족을 불러일으킨다. 만일 평화와 기쁨을 경험할 수 있는 다른 길이 없다면, 우리는 외부에 존재하는 이런 것들에 의존하게 되고 그것들에 걸려들게 된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그 속에서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나게 되는데, 이 경험은 고통일 수밖에 없다. -아잔 지틴드리야 어떤 상태에서도, 어떤 장소에서도 일상의 ‘작은 나’를 따르지 말고 단지 명상하라.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우리의 삶 역시 분명해질 것이다. 그때 우리의 삶이 곧 우리의 수행이다. 자유의 상태에 머문다 해도, 그 상태에 아무리 오랫동안 머물더라도, 결국 고통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어떤 상태, 어떤 장소, 어느 순간에도 중단하지 말고 순간순간 명상하라. 일상의 작은 나를 따르지 말고, 단지 행동하라. 매순간 앉아 있든 서 있든, 걷든 누워 있든, 말하든 침묵하든, 그 어떤 상태, 어떤 장소에서도 중단하지 말고 명상하라.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우리의 삶 역시 분명해질 것이다. 그때 우리의 삶이 곧 우리의 수행이 된다. -무심 나의 행복을 바란다면, 타인을 소중히 하라. 바른 원인을 만들라.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다니! 왜 내가 이런 일을 겪어야 하지?“ 하고 불평하지 말라. 어떤 원인이 있었기 때문에 그 결과가 나에게 돌아오는 것이다. 오랫동안 기다려 온 친구가 마침내 도착한 것처럼. 지난날 나 자신이 쌓은 업이 현재의 나를 이 상황으로 몰아넣는 것이다. 업이란 부메랑과 같다. 업이란 행위를 의미하고, 원인과 결과를 의미한다. 즉, 내가 몸과 입과 생각으로 지은 것이다. 이 업은 생의 시작부터 우리와 함께 해오고 있으며, 전생들로부터 계속되어 오고 있다. 불운한 상황이나 곤란한 환경, 고통 등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스스로 원인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 -텐진 데키 우리는 왜 이 세상에 살아 있는가? 무엇보다 먼저 삶의 방향이 명확해야 한다. 명상은 우리로 하여금 내면을 보게 하고, 그때 우리의 마음은 평화와 자유를 얻는다. 모든 것이 변하고 또 변한다. 그러나 겉모습은 바뀌지만, 모든 것이 같은 본질을 지니고 있다. 이름과 형태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은 같다. 우리는 왜 이 세상에 살아 있는가? 무엇보다 삶의 방향이 명확해져야 한다. 이것은 곧 명상을 의미한다. 명상은 우리로 하여금 내면을 보게 하고, 우리의 생각 습관으로부터 약간의 거리를 갖게 한다. 그때 우리의 마음은 평화와 자유를 얻는다. 이것은 놀라운 일이다. -무량 진정으로 산다는 것은 과거의 경험으로 판단하지 않고, 비교하지 않고, 옛 생각을 끄집어내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곧 자유이다. 이 순간을 산다는 것은 진정으로 깨어 있는 것이다. 현재에 있음을, 깨어 있음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과거의 습관에 물들지 말라. 진정으로 새롭게 산다는 것은 과거의 경험으로 판단하지 않고, 비교하지 않고, 옛 생각을 끄집어내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곧 자유이다. 지금 당신은 살아 있다. 자유로워질 기회가 있다. 그 기회를 놓치지 말라. -무진 자신이 안다고 생각하는 것들과 체험한 것들을 내려놓는 것, 그것이 곧 마음의 수행이다. 수억 겁 동안 반복해 온 수많은 습관들은 우리의 마음 상태를 나쁘게 한다. 첫날에 생선은 신선하지만, 생선을 며칠 동안 주머니에 넣어 가지고 다닌다면 그 생선에서 악취가 나기 시작할 것이다. 굉장히 나쁜 냄새가 날 것이다. 자신이 안다고 생각하는 것들이나 체험한 것을 내려놓지 못하면, 이것들은 자신을 오만하게 하고, 다른 사람보다 더 알고 있다는 생각을 일으키게 한다. 이러한 것들을 내려놓는 것, 그것이 곧 마음의 수행이다. -청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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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고 울고 사랑하고 미워하는 이 마음은 누가 만드는가?
하버드, 예일, 코넬, 소르본, 제네바, 오하이오 대학을 졸업한 젊은 지성들 그들은 왜 안락한 삶을 포기하고 스스로 삭발하고 수행승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는가. 미지의 길에서 그들은 무엇을 발견했는가. ■ 국내외 외국인 출가 수행자들이 던지는 인생의 화두! 그 신작의 주제는 “마음공부” 눈 푸른 외국인 출가 수행자들이 던지는 인생의 화두를 담은 책 <공부하다 죽어라>가 조화로운삶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공부하다 죽어라>는 하버드, 예일, 코넬, 소르본, 제네바, 오하이오 대학 등을 졸업한 서양의 젊은 지성 열한 명이 그들이 가진 외적 내적 세계를 모두 깨고 만난 구도의 길에서 나누어 주는 감동적인 강의록으로, 2003년 11월 9일부터 그 이듬해 9월 12일까지 대전 자광사에서 매달 둘째주 일요일에 행해진 한국 최초의 ‘외국인 출가 수행자 초청 영어 법회’의 내용을 받아 적어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벽안의 이 수행승들은 대부분 서양의 종교와 철학에서 정신적 만족을 얻지 못하고, 완전히 자유로워지기 위한 길을 찾아 마음의 의문에 대한 해답을 추구하던 중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궁극의 문에 이르는 길을 발견한 이들이다. 달라이 라마로부터 계를 받은 게셰 툽텐 룬둡, 텐진 위용, 텐진 테키와, 아잔 차의 제자가 설립한 아마라바티 사원에서 수도 생활을 시작한 아잔 지틴드리야, 스리랑카에서에서 계를 받은 파나완사, 그리고 한국 불교에서 계를 받은 현각, 명행, 무심, 무량, 무진, 청고 스님. 그들은 왜 안락한 삶을 포기하고 스스로 삭발하고 수행승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는지, 미지의 길에서 그들은 무엇을 발견했는지 우리 앞에 펼쳐 보이고 있다. 산스크리스트 어에서는 인간을 ‘둘라밤’이라고 표현한다. 그것은 ‘매우 얻기 힘든 드문 기회’라는 뜻이다. 여기 열한 명의 외국인 수행자들은 매우 얻기 힘든 인간으로 존재하는 기회를 오직 진리 추구의 길에 바친 이들이다. 우리의 행복한 삶을 방해하고, 힘들게 하는 모든 고통의 요인은 무엇인가. 존재의 갈증은 무엇으로 풀릴 것인가. 끝없이 솟아나는 내면의 의문들은 답을 구할 수 있을까. 과연 이것들을 위해 먼저 누구에게 무엇을 물어야 할까. 삶에 더 깊이 들어가고, 진정 열심히 시도하고, 내면을 들여다보기 위해, 그 불꽃을 일으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공부하다 죽어라>는 우리를 그들이 만난 그 깨달음과 진리의 세계로 데려다 줌으로써 그 해답을 제시하고 있는 책으로, 생생하고 감동적인 일화들로 마주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자광사의 주지 청아 스님과 류시화 시인이 우리말로 옮겼고, 인도와 네팔 등을 여행하며 인간과 동물을 조화롭게 담아낸 이종선의 사진들로 본문을 장식했다. 이 법문은 불교TV 방송에서 수행자들과 구도자들의 깊은 관심 속에 여러 차례 방영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