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엮은이의 글
밥솥 선사님 살아있는 업 깨달음에 대하여 식물도 생명이거늘 무념無念의 행동 부처를 쏴라! 고봉 선사의 ‘오직 할 뿐’ 선禪이 어려워 보이는 이유 신神의 본체 욕망 곱하기 제로는 제로 참된 방생放生이란? 여자는 성불 못해! 만공 선사의 일원상一圓相 미친 마음 참 자유 독화살 좋은 것들 본연의 모습으로 톨게이트의 관세음보살 빗자루 타기 수행 이 세상의 시작 우리는 왜 여기 있는가? 진짜 부처는 어디에 있나? 선禪과 세계 평화 육조 혜능 대사의 실수 개가 조주趙州 선사를 죽이다 이무소득고以無所得故 무아無我와 진아眞我 죽고 싶어! 부동심不動心 삶과 죽음의 갈림 마법사 숭산 스님 하느님, 하나님, 선禪 선禪 수학數學 낙태 이 잠을 어찌할꼬? 영화映畵와 선禪 사랑에 빠진 큰스님 본성이 강하다고? 중생 제도의 끝은 어디인가? 선, 사주, 업 숭산 스님, 스승님을 회상하다 기행奇行을 통한 가르침 향수병 카지노로 간 숭산 뛰어난 방향 감각 당신은 로봇이오! 하늘은 왜 푸른가? 누가 당신을 만들었소? 큰 고통 큰 서원誓願 독재자에게 보내는 편지 |
玄覺, 속명: 폴 뮨젠 Paul Munsen
현각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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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가 좋은 습관과 나쁜 습관을 가지고 있어. 이 자체는 문제가 되질 않아. 찰나 찰나 오직 맑은 마음 상태를 지키면 올바른 행동이 자연스레 나와. 이걸 우리는 올바른 업이라고 하지, 선업이니 악업이니 말하지 않아. 좋고 나쁨의 경계를 넘어선 거야. ‘하늘은 푸르다’, 좋은 거야 나쁜 거야? 좋고 나쁨의 차원이 아니지? ‘물은 흐른다’, 좋은 거야 나쁜 거야? 이 역시 좋고 나쁨의 차원이 아니야. 좋다 나쁘다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 이름일 뿐이야. 착한 행동을 하면 죽어서 천당에 가고, 나쁜 행동을 하면 지옥에 가.
그러나 찰나 찰나 맑은 마음을 지니면 올바른 행동만이 나타나서 천당과 지옥에 걸리지 않게 돼. 이것은 생사를 초월하고 일체 중생만을 위하는 보살행이야. 제일 중요한 점은 ‘왜 하는가?’야. 자신만을 위해서인가, 일체 중생을 위해서인가? 그 답을 알면 어떤 행동도 문제 되지 않아. 아주 중요한 문제야. 이것이 바로 선 수행이고 선의 방향이야. ‘모르는 마음’은 모든 생각이 일체 끊어진 마음입니다. 모든 생각이 끊어질 때 마음은 텅 비게 돼요. 텅 빈 마음은 생각 이전의 마음입니다. 생각 이전의 마음은 본래 마음입니다. 계산기를 사용하려면 C 단추를 먼저 눌러야 해요. 그러면 화면에 0이라는 숫자가 뜹니다. 이게 텅 빈 마음입니다. 텅 빈 마음, 아주 중요해요. 텅 빈 마음 상태에서는 모든 게 가능합니다. 0 곱하기 0은 0이고, 2 곱하기 0은 0입니다. 1,000 곱하기 0도 0 이지요. 산 곱하기 0은 0입니다. 분노 곱하기 0은 0입니다. 욕망 곱하기 0은 0입니다. 마음이 0의 상태로 돌아가면 모든 게 0이 됩니다. 모든 게 텅 비게 돼요. 완전한 무애의 경지예요. 그렇게 되면 텅 빈 거울과 같은 마음이 이 우주를 있는 그대로 비추게 됩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천국에 들어가고자 하는 자는 어린이 같이 되어야 한다.’ 하는 가르침과 같아요. 아이의 마음은 텅 비어 있어서 세상을 있는 그대로, 즉 여여하게 볼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집착하면 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비출 수 없고, 중생을 위해 살 수 없어요. 고통만 생겨나요. 이 텅 빈 마음은 빈 것이 아닙니다. ‘비었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빈 것이 아니에요. 하늘을 보세요. 낮에도 빛이 있고 밤에도 빛이 있어요. 하늘은 하늘일 뿐이지요. 그러나 낮에 보면 푸르고 밤에 보면 검고 어두워요. 이 시각 여기 미국의 하늘은 푸르지요. 그러나 한국의 하늘은 검고 어두워요. 왜 그래요? 하늘도 마찬가지예요. 누가 하늘을 파랗게 만들었어요? 누가 검게 만들었어요? 본래 하늘은 무슨 색이에요? 누가 색을 만들었어요? 당신이 만들었어요. 하늘은 ‘나는 푸르다.’ 하고 말한 법이 없어요. 하늘은 ‘나는 검다.’ 하고 말한 법이 없어요. 당신이 그렇게 말해요. 그러나 ‘오직 모를 뿐’이라는 C 단추를 누르면 파란색도 없고 검은색도 없어요. 모두가 여여합니다. 텅 빈 마음은 낮에는 파란색을 비추고 밤에는 검은색을 비추지요. 이게 전부예요. 물, 얼음, 수증기는 모두 H2O야. 그러나 물에 집착하면 물이 얼음으로 바뀔 때 넌 물이 없어졌다고 생각할 거야. 그러면 ‘죽었다!’고 하겠지. 그러나 온도를 높이면 ‘짜잔!’ 물이 다시 ‘태어났다!’고 할 거야. 온도를 더 올리면 물은 없어지고 수증기가 돼. 그렇게 되면 물은 다시 ‘죽게’ 돼. ‘물’이라는 것에 집착하지 마. 이름과 모양에 불과하다 이 소리야. 이름과 모양은 본래 텅 비어 있어. 항상 변하고, 변하고, 변하고, 변하기 마련이야. 생각이 이름과 모양을 만들어. 물은 ‘나는 물입니다.’ 이렇게 이야기 한 바가 없어. 태양은 ‘나는 태양입니다.’ 이렇게 이야기 한 바가 없어. 달은 ‘나는 달입니다.’ 이렇게 이야기 한 바가 없어. 인간은 ‘물’이라고 말해. 인간은 ‘태양’이라고 말하고, ‘달’이라고 말한다고. 앞에서 말했다시피, 이름과 모양은 공하다 이거야. 자성이 없어. 생각이 지어낸 거야. 생사도 마찬가지야. 이름과 모양에 집착하면 H2O를 알 수도 없고 물, 얼음, 수증기를 올바로 사용하지도 못 해. 이름과 모양에 집착한다는 것은 외형에 집착한다는 소리야. 금강경에 보면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라고 나와. 만약 모든 상이 상이 아님을 바로 보면 곧 여래를 볼 것이다, 이런 뜻인데 다 같은 내용이야. 그러니 모든 생각을 끊어. 모든 생각이 끊어지면 마음이 텅 비어. 그러면 일체를 있는 그대로, 진리로 보게 돼. 있는 그대로 보면 물의 올바른 쓰임, 얼음의 올바른 쓰임, 수증기의 올바른 쓰임을 제대로 알게 돼. 이걸 다른 말로 실용(實用)이라고 해. 아주 쉬워. 그렇게 되면 너의 ‘참나’는 찰나 찰나 중생 구제를 위해 올바르게 살 수 있어. 그것이 바로 생사의 올바른 기능이야.” 제자는 깊이 머리 숙여 절하였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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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이미 완전하다. 단지 그걸 모를 뿐!”
달라이 라마, 틱낫한, 마하 고사난다와 함께 세계 4대 생불(生佛)로 추앙받았던 숭산 큰스님! 숭산스님의 가르침은 많은 이들에게 구도의 길을 열어주었다. 현각스님에게 숭산스님은 종교인이기 전에 삶의 길을 가르쳐준 스승이자, 모범을 보여준 아버지이고 어머니였다.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자란 현각스님은 1990년, 하버드대학원에서 열린 숭산스님의 강연에 매료되면서 한국의 선불교에 빠져들었다. 처음 만났을 때 숭산스님은 현각스님에게 물었다. “당신은 누구세요.” “제 이름은 폴입니다.” 현각스님이 답하자 숭산스님은 “그건 당신 몸의 이름이지 진짜 당신의 이름은 아닙니다. 진짜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다. 그때 큰 충격을 받은 현각스님은 점점 더 숭산스님의 인격과 법문에 빨려 들어갔다. 숭산스님은 다른 종교 지도자들처럼 자신을 따르라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나를 통해 너희들 자신의 본모습을 제대로 보라’고 말했다. 이번에 출간된 《부처를 쏴라》(현각 엮음, 김영사 刊)는 자신을 내세우기보다 진정으로 제자들이 영적으로 성숙하기를 바란 숭산스님의 가르침의 정수가 담겨 있다. 책 제목 《부처를 쏴라》는 임제선사의 말씀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祖師)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라는 살불살조(殺佛殺祖)에서 비롯되었다. 불교는 누군가를 믿음으로써 마음의 평정, 구원이 이루어지는 종교가 아닌 만큼 스스로의 깨달음을 통해 해탈의 경지에 오르는 것이 중요하다는 진리를, 깨달음을 얻는데 부처가 장애가 되면 부처를 없애야 하고, 조사가 깨우침을 얻는 데 장애가 되면 조사를 없애야 한다는 이치를 《부처를 쏴라》라는 제목으로 강조했다. 제자들에게 스님 자신의 가르침을 통해 깨치는 것이 아닌, 자신 스스로가 깨쳐야 함을 강조하신 숭산스님은 《부처를 쏴라》를 통해 부처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떻게 행동하고 어떤 말을 했든 간에 그 부처에게 집착하지 말라고 경계하고 있다. 2006년 샴발라 출판사에서 출간된 이 책의 원제(Wanting Enlightment is a Big Mistake)가 말하고 있는 ‘깨달으면 그르친다’는 의미와 한국어판 제목인 《부처를 쏴라》는 부처와 깨달음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남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