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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장 서론: 시간은 빠듯하다

2장 인생은 짧고 기예는 길다

3장 인생의 절반들

4장 차안과 피안에서의 빠듯한 시간

5장 짧은 시간들, 그리고 짧은 시간들

6장 빠듯한 시간의 경제학

7장 빠듯한 시간의 드라마

8장 유한성-무한성

9장 기한 및 일정과 더불어 살기

10장 빠듯한 시한에 대한 짧은 이야기들

11장 시간의 의미에 대한 에필로그

역자후기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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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2

하랄트 바인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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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rald Weinrich

하랄트 바인리히는 독일에서 문학교수로 활발하게 활동했으며 그의 문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다양한 분석서들을 저술해왔다. 그는 1927년 독일 비스마르에서 출생하여 불문학, 독문학, 라틴어문학, 철학을 전공한 후 뮌스터 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키일, 쾰른, 빌레펠트, 뮌헨 대학교의 불문학, 언어학, 독문학 교수직을 역임했으며 말년에는 프랑스 학술원, 파리의 콜레쥬 드 프랑스(College de France)에서 로만어 문학 교수로 재직했다. 또한 유럽과 미국에서 객원교수를 지냈으며 하이델베르크를 비롯한 여러 대학에서 명예 박사학위를 받기도 했다. 그의 평생 업적을 인정받아 한
하랄트 바인리히는 독일에서 문학교수로 활발하게 활동했으며 그의 문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다양한 분석서들을 저술해왔다. 그는 1927년 독일 비스마르에서 출생하여 불문학, 독문학, 라틴어문학, 철학을 전공한 후 뮌스터 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키일, 쾰른, 빌레펠트, 뮌헨 대학교의 불문학, 언어학, 독문학 교수직을 역임했으며 말년에는 프랑스 학술원, 파리의 콜레쥬 드 프랑스(College de France)에서 로만어 문학 교수로 재직했다. 또한 유럽과 미국에서 객원교수를 지냈으며 하이델베르크를 비롯한 여러 대학에서 명예 박사학위를 받기도 했다. 그의 평생 업적을 인정받아 한자도시 괴테 상(Hanseatischer Goethe-Prise), 요제프-브라이트바흐 상(Joseph-Breitbach-Prise), 프로이트 상, 그림형제 상 등 여러 학술·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현재 뒤셀도르프와 베를린, 피렌체 학술원 회원이며 바이에른예술원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레테, 망각의 기술과 비판』, 『거짓말의 언어학』, 『템푸스, 말해지고 이야기되는 세계』, 『돈키호테의 천재성』, 『언어문화의 길』, 『시제―논의세계와 서사세계』, 『독자를 위한 문학』, 『언어, 즉 언어들』등 다수가 있다.
건국대학교 모빌리티인문학 연구원 HK교수. 서울대학교 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상학의 현대적 해석에 기초하여 현대사회의 이동성·시간·공간의 문제에 천착하고 있다. 저서로 『모빌리티 인문학 미래세계』(공저), 『시간에 대한 현상학적 성찰』, 『모빌리티 에토스 공통문화』(공저) 등이 있고, 역서로 『경제학-철학 수고』, 『상상, 이미지의식, 기억』(공역), 『소외와 가속』, 『사물과 공간』, 『모빌리티와 인문학』(공역), 『에드문트 후설의 내적 시간의식의 현상학』(공역), 『헤겔의 세계』(공역), 『괴벨스, 대중 선동의 심리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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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8년 04월 21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430쪽 | 591g | 148*210*30mm
ISBN13
9788991508439

책 속으로

시간이 빠듯하다. 돈이 빠듯하다. 일자리가 빠듯하다. 화석 연료가 빠듯하다. 곧 물도 빠듯해질 것이다. 우리는 갖지 않은 것을 소유하고자 하지만 얻지 못할 것이다. 그것이 빠듯하기 때문이다. 좋고 아름다운 것들은 거의 모두 빠듯하거나 빠듯하게 된다. 대관절 이 ‘빠듯하다’라는 말은 무엇을 뜻하는가? ---p.9

인생이 짧다는 것은 인간이라면 모두 직관적으로 알고 있다. 아무리 늦어도, 나이가 들고 이제 남은 삶의 길이가 확연하게 짧아졌음을 확인하는 때가 되면 인생이 짧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가장 분명히 아는 사람은 의사다. 때때로 헛된 수고일 수도 있는 그들의 임무란 바로 사람의 삶을 가능한 길게 연장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위대한 의사 히포크라테스는 처음으로 그 유명한 말을 했던 것이다.
“인생은 짧고, 기예는 길다.” ---p.14

스토아 철학자로서, 세네카에게는 시간의 부자가 되는 것이 더 중요했다. 로마라는 분주한 도시에서 그는 사람들이 시간을 얼마나 부주의하게 다루는지, 이 귀중한 재화를 아무것도 아닌 목표들을 위해 얼마나 손쉽게 내버리는지를 매일매일 지켜봤다. ‘늘 바쁜 사람들occupati’은 인생의 시간을 손가락 사이로 흘려 내버렸고, 그래서 그들에게는, 아니 바로 그들에게만 인생은 정말로 짧은 것이었다. 그들 스스로 인생을 그렇게 짧게 만들기 때문이다. ---

〈시편〉 작가의 말에 따라 인간의 수명을 평균 70세라고 본다면, 테오프라스토스 및 많은 주석가들의 견해에 따라 인생 시간을 활의 형상으로 그려볼 수 있다. 여기서 상승하는 선이 35년이고 하강하는 선도 35년이다. 이 활의 정점을 이루는 것이 ‘인생의 중간’이다. ---p.45

그는 대략 삶의 중반쯤에 이르러, 그러니까 〈시편〉 작가의 계산에 따르자면 35세에 이르러 황금의 감옥인 바이마르를 벗어나 로마로 가고자 하는, 처음에는 비밀에 부쳤던 계획에 대해 점점 더 많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어쩌면 이때 그가 행동하도록 부추긴 것은 인생 시간의 짧음에 대한 세네카의 사색 때문인지도 모른다(2장 2절 참조). 괴테의 사적인 메모에는 세네카의 〈삶의 짧음에 대하여〉로부터 나온 준칙이 적혀 있다. “그대가 이용할 줄만 안다면 인생은 길다.” ---p.57

그 젊은이에게 신과 같은 지속적 젊음과 아름다움이 주어졌다. 그러나 대신 초상화가, 살아 있는 그에게는 비켜가는 시간의 파괴적 흔적을 지니게 되었다. 그리하여 도리안 그레이는 젊고 아름다운 채 남아 있었고, 초상화가 그를 대신하여 늙어가 ‘노령의 추함’을 드러냈다. 이제 젊음과 아름다움, 나이 듦과 추함이 도리안 그레이와 그의 초상에게 각각 배분되었고, 초상화는 일종의 희생양으로서 삶의 모든 역겨움을 짊어지고 장막 뒤에 숨어 있게 되었다. ---p.97

지옥의 깊은 깔때기 안으로의 하강은 이미 끝났다. 이제 시인의 앞에는 두 번째 영역인 연옥으로의 길이 놓여 있다. 이 길 위에서 단테는 무수한 ‘가련한 영혼들’을 만난다. 비록 그들에게는 이미 영혼의 영원한 구원이 약속되기는 했지만, 원뿔 모양의 정화의 산을 다소간 힘겹게 오르고 나서야 구원을 얻을 수 있다. 이렇게 산에 오르는 길은 역경과 고난으로 가득 차 있고, 이를 통해 그들은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해 값을 치러야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르 고프의 적절한 표현에 따르면, 연옥은 ‘임시 지옥’이다. ---pp.130~131

가난한 리처드가 말하듯이, “그대는 삶을 사랑하는가? 그렇다면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 왜냐하면 시간이 바로 인생을 이루는 질료이기 때문이다.” 가난한 리처드가 말하듯이, “그러니까 시간은 모든 것들 중 가장 귀중한 것이고, 시간 낭비는 가장 커다란 낭비이다.” 왜냐하면, 가난한 리처드가 또 다른 곳에서 말하듯이, ‘잃어버린 시간’은 “결코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시간이 충분하다고 말한다 해도, 언제나 그것은 충분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난다.” ---p.143

우리는 ‘적절한 시간’을 대표하는 카이로스 신으로부터 시간에 대한 완전히 다른 표상을 얻을 수 있다. 이 젊은 신은 어깨와 발꿈치에 날개를 달고 있으며 칼 끝 위에서도 균형을 잡고 경쾌하게 뛰면서 버틴다. 그의 상징은 저울이다.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거의 대머리에 가깝게 깎아버린 머리칼이다. 이마 에만 머리칼이 남아 있다. 인간이 이 기민한 신을 잡아서 놓치지 않으려 한다면, 그 신의 정면에서 머리칼을 잡아야 한다. 만일 그것을 잡는 데 실패한다면, 인간의 손은 신의 미끌미끌한 머리에서 아무것도 잡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적절한 시간을 놓치게 되고 그것은 미끄러져 사라진다. ---p.165

그렇다면 고전주의, 최소한 프랑스 고전주의가 시간 경제를 달리 부르는 이름에 불과하다는 말인가? 이것은 누구보다 라로슈푸코 공작이 잘 답할 수 있는 질문이다. 그의 《잠언과 성찰》은 프랑스 고전주의 시대 모럴리스트 문학과 아포리즘의 걸작이었다. 라로슈푸코는 표현의 빠듯함을 문체적으로 가장 높이 평가했고, 수사학을 활용할 때에도 기강을 중시했다. 저자 자신은 이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참된 웅변은 말해야 하는 모든 것을 이야기하되 말해야 하는 것 이상으로 말하지 않는 것이다.” ---p.197

마르셀, 그 연로한 화자는 시간에 대한 작품을 한 권의 책 안에 ‘안전하게 놓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오래 살지 않았는가? 이야기는 이에 대한 정보를 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화자가 적은 마지막 문장은 조건문이기 때문이다. 그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최소한, 아직도 충분히 오랫동안 내게 힘이 허여된다면, 내 작품을 완성하기 위하여…’
그러니까 그 작품의 마지막에는 시간의 성당이 화자의 정신적 시야에서 완성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게 된다. 그 건축은 그에 의해 실현되어야 할 미완의 작품인 것이다. 그러나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는 바로 이 조건문을 가지고 잃어버린 시간 그리고 마침내 다시 찾은 시간에 대한 작품을, 글쓰기를 시작한 지 9년 만에 완성하게 된다. ---p.232

프랑스의 프랑수아 라블레는 그로테스크할 만큼 과장되게 묘사한 장편소설 한 편을 썼다. 그 소설의 주인공(가르강튀아, 팡타그뤼엘)은 거인들이다. 그들이 거인이어야만 했던 이유는, 유한한 인생 시간 동안 거대한 지식의 과제를 집어삼키고 가능한 만큼 소화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목적 때문에 그들은 엄격한 시간 규율에 복종했는데, 하루 일과 중 단 1분도 시계의 통제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노력했다. ---p.237

시간을 절감해주는 기술들은 인간이 평온과 인내 속에서 ‘소망들의 정원’을 가꾸도록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빠르게 새로운 요구들을 불러일으키고 그 무절제한 요구들 앞에서 모든 능력 시간은 항상 빠듯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결국 여전히 인간 시간은 거대한 세계 시간과 비교할 때 냉소적인 웃음을 불러일으킬 만큼 짧은 순간에 불과하다. ---p.250

과거의 시계와 달력이 하나님이 주신 시간을 근면하면서도 척박한 삶을 위해 배분하는 일을 넘겨받았다면, 20세기는 일정달력을 발명했다는 사실로 인해 칭송받거나 지탄받을 것이다. 어젠다라고도 불리는 일정달력은 달력과 시계를 서로 결합한 유동적인 형태의 목록이다. 그중 사업에 활용되는 일정달력은 책자의 형태를 지닌다. 그 책에서는 일년의 하루마다 한 면이나 양 면이 주어져 있고, 이들은 다시 시간에 따라 질서 있게 나뉜다. 이는 시계의 숫자판을 펼쳐놓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p.264

우리는 인생 시간에 있어서는 오로지 죽음이라는 이름의 일정(영어로는 deadline!)이 우리의 ‘경과하는 시간’의 끝에 존재한다는 사실, 그리고 이 종말 시점이 영원히 잠재적이지는 않을 것이며 다만 살아 있는 자들에게 ‘당분간’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역사책 속에서 생존 인물들에게는 당분간 출생 연도만이 기입되고 사망 연도는 공란으로 남겨져 있듯이. ---p.297

이 동방의 상인과 사악한 악마가 이야기 모음집에서 보여주는 것은 《아라비안나이트》 동화집 전체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 우화집의 주도적인 모티프는 죽음에 직면한 초미의 위협에 의해 진행된다. 짧은 시한이라는 위협은 주인공의 기지, 즉 세련된 이야기로 인해 계속 새롭게 연장되고, 마지막에는 참으로 행복하게도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다. ---p.302

그는 [거래에] 착수해서 지체하지 않고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나는 그가 경이로울 만큼 숙련되게 내 그림자를,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조용히 풀어내고 들어올린 다음 둘둘 말고 접어서 마침내 챙겨넣는 것을 보았다. (…) 나는 그가 조용히 혼자 웃는 소리를 들었던 것 같다.

이 기이한 이야기의 주인공은 악마와의 계약으로 말미암아 단번에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거부가 된다. 그러나 그는 그림자를 잃어버려서 생전 처음으로 시간의 빠듯함을 겪게 된다. ---p.313

하비의 발견에 따르자면 관자놀이도 여전히 중요했다. 특히 관자놀이 동맥들이 붓거나 튀어나오면서 열이 많이 나는 상태인 경우 그러했다. 그런 경우에는 이 부분에 열이 많이 나면서 빨라지는 맥박을 느낄 뿐 아니라 눈으로도 그 상태를 볼 수 있고, 특히 한밤중 불면 상태에서는 귀로 들을 수도 있었다. 이는 환자들에게는 때때로 자신의 생명이 얼마나 이 심장 박동과 맥박에 의존하고 있는지를 몸 자체로 보여주는 불편한 경험이 되었던 것이다. 과거에는 오늘날처럼 잘 듣는 의약품이 없었으므로 병의 위험한 고비를 넘기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므로 삶의 시간이 조금 짧거나 길 수는 있어도 언젠가는 끝나게 된다는 인식 그리고 인간의 현존재 자체가 하이데거의 표현에 따르자면 죽음에의 존재라는 인식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p.366~367

모든 사람은 시간을 일상적으로 주목받지 않는 상태로, 관자놀이에서 ‘잠자게’ 놓아둘 수 있는 권리를 가지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근본적으로 이러한 나태함의 권리를 가질 두 가지 우호적인 상황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젊음과 건강이다. 젊고 건강한 사람은 (물음을 받든 받지 않든 간에) 시간이 무엇이고 존재가 얼마나 빠듯한 시한을 가지는지를 꼭 알 필요가 없고 예감할 필요도 없다.

---p.373

출판사 리뷰

충분히 젊은 혹은 충분히 오래 산 당신
빠듯한 시간 앞에서 절망한 적이 있는가?


“인생은 짧고 기예는 길다.” ―히포크라테스

“만약 아무도 나에게 묻지 않는다면, 나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물음을 받고 해명하고자 한다면, 나는 모릅니다.” ―아우구스티누스

“나는 서두른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오도 마르크바르트

“그대는 삶을 사랑하는가? 그렇다면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 왜냐하면 시간이 바로 인생을 이루는 질료이기 때문이다.” ―벤저민 프랭클린

책의 개요

연휴 마지막 밤, 무지무지하게 중요한 일의 마감 한 시간 전, 시험 전날.
공통점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한다는 것이다. “아, 하루만 더!”

시간은 늘 그렇다. 여유가 있을 땐 존재감 없이 숨죽이며 흘러가다가, 그것이 필요해지면 어마어마한 속도와 힘을 뽐내며 뒤통수를 때린다. 그래서 시간은 늘 ‘빠듯하게’ 체험된다. 하기야, 83세까지 천수를 누린 괴테도 죽기 직전 “나에게 빛을 조금만 더!”라고 외쳤다지 않은가.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아이러니하다. 지금 인류는 시간에의 강박을 풀어줄 수많은 기술들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가? ‘생명 연장의 꿈’을 실현하는 온갖 신약들이 개발되고, 단 하루면 지구 반대편을 왕복할 수 있는 시대에, 대체 무엇이 우리 삶을 이토록 재촉하는 걸까?

‘빠듯한 시간’의 겉과 속

이 책 『시간 추적자들Knappe Zeit』은 바로 그 ‘빠듯한 시간’의 실체와 의미를 새롭게 탐사해낸 역작이다. 평생 동안 서구 문학과 철학을 공부해온 저자 하랄트 바인리히는 신화와 경제, 철학자와 예술가들의 사유를 종횡무진하며 시간의 불가해한 모습을 추적한다. 이를 위해 저자는 운명의 실을 잦는 신화 속 세 여신들, 조단 당해 스케리아 섬에 당도했던 오디세우스, 단테가 안내하는 연옥, 세헤르자데의 위험한 침실, 파우스트가 30년 젊어지는 대가로 영혼을 파는 모습 등 수십 가지 이야기 속으로 독자를 안내한다. 여기에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하이데거에 이르는 서양 시간 문화사를 조근조근 들려줌으로써 지금껏 논의돼온 ‘시?공간’ 개념을 훌쩍 뛰어넘은 시간 철학, 삶(시한)의 진정한 가치를 통찰하도록 돕는다.

시간에 대한 이야기는 신들의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제우스와 테미스 사이에서 태어난 세 자매는 인간들에게 운명을 나누어준다. 이 운명의 여신들은 각각 운명의 실을 잦고, 붙들고, 잘라낸다. 인간의 생이 끝날 때까지 그 실은 감기고 얽히고 매듭지어지길 반복하지만 한 가지 일, 그러니까 한 번 자아진 인생의 실이 더 길어지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시간이 항상 빠듯한 재보財寶인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인생은 짧고 기예는 길다

고대 그리스 의사 히포크라테스는 결코 연장되지 않는 삶의 경제학을 몸소 구현한 현인이었다. 그가 남긴 유명한 경구, ‘인생은 짧고 기예는 길다’는 수많은 사상가들에 의해 번역되고 해석되면서 오랜 시간 동안 인류에게 시간 의식을 날카롭게 환기시켰다. 『금언집』을 주석한 기원전 2세기의 의사 갈렌은 히포크라테스가 자신의 경험을 왜 잠언 형식으로 기록했는지 해명한다. 그 이유는, 삶이 짧기 때문이다. 의술이라는 긴 기예를 장악해야 할 사람에게 두툼한 책들을 모두 읽어낼 여유는 없는 것이다. 그의 잠언에 주석을 다느라, 그리고 온갖 주석집들을 일별하느라 후대인들의 시간이 빠듯해진 것은 논외로 하고 말이다.

고대 철학자들이 짧은 인생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수없이 논쟁했다면, 종교와 결합한 중세의 시간 의식은 다소 경제적이고 상업적인 차원에서 다루어졌다. 페트라르카는 ‘지상에서의 이 시간을 이용하여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삶을 영위함으로써 천국에서의 영원한 지복을 얻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원의 시장에서조차 시간을 담보로 거래와 흥정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런 심각한 신학적 문제에 대해 단테는 ‘연옥’이라는 장치를 만들어냄으로써 상당히 우아하고 어느 정도는 변증법적이기도 한 해법을 제시했다. 비록 장 칼뱅으로부터 신성모독이라는 혹평을 듣긴 했지만, ‘속죄의 시간을 통해 죄 값을 복구한다’는 연옥 이론은 인류에게 획기적인 전환점을 마련해주었다. 그때까지 단 한 번뿐인 절대자의 심판을 외로이 견뎌야 한다고 믿어왔던 유럽인들에게 타인과의 관계와 기억이 오롯이 연장되는 ‘연옥의 탄생’은 적잖은 위로였을 뿐 아니라, 시간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크게 확장시키는 계기가 됐다.

시간은 돈이다

1300년 경 이탈리아 북부에서 발명된 기계시계는 점점 더 세련되게 발전하면서, 이후 인류의 일상과 시간 리듬을 규정하고 지배했다. 발달된 시간 장치들의 도입으로 사람들의 시간 의식은 보다 현실적인 층위로 내려왔다. 거기에 불세출의 시간 관리자 벤저민 프랭클린이 나타나 끊임없이 사람들의 나태함과 게으름을 지탄하면서 효과적인 시간 관리야말로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외쳤다. 시간의 환금성을 강조하는 그의 격언들은 만개한 자본주의와 맞물려 즉각적인 효과를 주는 영약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결코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남아 있었으니 흘려버린 시간, 금은보화로도 복구될 수 없는 시간에 대한 무력감이었다. 이 같은 절망과 안타까움은 문학 속에서도 선명히 드러났다. 파우스트 박사가 젊음을 담보로 메피스토펠레스와 거래하고, 오스카 와일드의 소설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 속 주인공이 자기 초상화의 아름다움을 영원히 유지할 수만 있다면 영혼이라도 바치겠다고 말했던 것처럼.

그들뿐이겠는가. 재깍재깍 돌아가는 시곗바늘의 공포는 21세기에도 진행형이다. 시간의 빠듯함은 인류가 삶에 대해 반성적으로 사색하게 된 이래 뿌리 깊이 각인되어온 느낌이겠으나 바로 나, ‘지금, 이곳’의 현실에서야말로 무자비하고 절실하게 체험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시간의 파괴력 앞에서 길을 잃지 않고 당당해질 방법은 없는 것일까?

시간의 파괴력을 이기는 방법

20세기의 철학자 오도 마르크바르트의 전언이 우리를 위로한다. 현명한 그가 보기에 속도와 가속으로 이어지는 현대인의 조급함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새로운 것에 대한 짧은 도취 이후 남는 것은 급속한 노후뿐, 가장 새로운 것들은 언제나 가장 빠르게 낡아버린다. 그래서 그는 현대 세계의 속도 안으로, 자신의 삶 안으로 다양한 ‘느림’들을 끌어들이라고 권고한다. 우리 각자의 삶을 강건하고 명예롭게 가꾸는 것만이 무차별한 시간의 파괴력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히포크라테스와 세네카, 라이프니츠와 파스칼, 괴테와 실러의 삶이 그러했듯이.

이 책 『시간 추적자들』은 웅숭깊고 다각적인 학문과 유려하고 정제된 문장으로 까다로운 유럽 독자들에게 사랑받아온 하랄트 바인리히의 2005년작이다. 독자들은 저자의 안내를 받아 고대부터 현대까지, 문학에서 철학과 영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공간과 수많은 장르를 종횡무진하며 시간의 문화사를 속속들이 아우를 수 있다. 나아가 ‘빠듯한 시간’을 내면적으로 체험함으로써 시간과 삶에 대해 깊이 성찰하게 된다.

이제 우리에게는 한 가지 일이 더 생긴 셈이다. 탁월하게 재미있는 이 책을 읽기 위해 시간을 충분히, 그리고 기꺼이 내는 일이다. 저자가 말하듯, 시간을 빠듯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아직 내면화하지 않은 사람은 시간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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