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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생활 다 그런 거 아이겠나?
제21회 한겨레 문학상 수상작. 중국 내 한국 조선소에서 진수식이 끝난 배가 갑자기 쓰러지며 시작하는 이 소설은, 굉장한 현실성이 느껴지는 치밀한 소설이다. 진실과 무관하게 진행되는 책임공방과 월급을 받을수록 무뎌지는 우리들에 대한 디테일하고 힘있는 이야기.
2016.07.22.
소설/시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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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2부 작가의 말 추천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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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쓰러졌으니 회사가 무사할 리 없었다. 어쩌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터였다. 구직하러. 아무 기약도 없이 입사지원서를 쓰고 쓴 만큼, 죄송하지만 다음 기회 운운하는 답장을 받아야 할 터였다. 자기소개서에는 뭐라고 써야 하나? 배가 쓰러졌다고, 그래서 회사가 망해버렸다고? 넘어온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때였고 이전 경력은 조선업과 아무 상관 없는, 잡지사 기자였다. 망할! 곧 서른이었다. 내게 열린 문은 거의 없었고 그나마도 오므린 듯 좁았다. 겨우 한시름 놓으신 부모님에게는 뭐라고 해야 하나. 중국에서 일한다니 부럽게 나를 쳐다보던 친구들에게는 또 뭐라고 해야 하나. 아, 왜 이곳으로 왔을까. 왜 그렇게 도망치듯 서울에서, 한국에서 빠져나왔을까. --- pp.16~17
“회사란 집단이 원래 포기가 빠르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돈이 나가도 내 돈이 아니고 책임을 져도 나 혼자 지는 책임이 아니니까요.” --- p.43 “그래 좋은 학교 나와가 뭐할라꼬 이까지 왔습니꺼?” 오 대리는 종종 그렇게 말했다. 늘 자조가 있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밖에서 만나면 가장 먼저 회사의 불합리와 부당을 말했고 정 대리처럼 꾸미거나 에둘러 말하는 법조차 없이, 있는 그대로, 어느 놈 하나 때려잡을 듯이 말했다. 그러면서도 나나 부청, 또 혁준이 그것을 거들면 되레 회사를 감쌌다. “그기 그런 게 아이래예, 회사는 말입니더” 하고 말하는 오 대리의 눈에는 순진한 열정과 오만한 애정이 함께 있었다. (…) 회사가 커오는 것을 오 대리는 두 눈으로 봐왔고 그렇게 될 때까지 생산 일정 관리부터 파리들이 새까맣게 꼬여 죽어 있는 끈끈이를 사무실 천장에서 떼 소각장에 버리는 일까지 안 한 일 없이 다 했으며 볼 꼴, 못 볼 꼴 가릴 것 없이 보고 겪은 사람이었다. 그 많은 일화와 세월이 오 대리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회사 좋아하세요?” 일전에 내가 물었을 때 오 대리는 낯 뜨거운 소리라도 들었다는 듯 웃었다. “회사가 뭐라꼬 좋아한다, 만다 합니꺼.” 잠시 후 덧붙였다. “그래도 이기 우리 회사다, 그런 생각은 가끔 하지예.” 나는 동생을 내 동생이라고 말하지 않고 우리 동생이라고 말하는 부산 사람들의 말버릇을 생각했다. --- p.116 월급이란 젊음을 동대문 시장의 포목처럼 끊어다 팔아 얻는 것이다. 월급을 받을수록 나는 젊음을 잃는다. 늙어간다. 가능성과 원기를 잃는 것이다. 존재가 가난해진다. 젊음이 인생의 금화라던 황 사장의 말 역시 수사가 아니다. 이대로 10년, 20년 또 어느 회사에서 삶을 보내든 그 회사가 모두 이렇다면 내 인생의 금화는 결국 몇 푼 월급으로, 지폐로 바뀌어 녹아버릴 테고 나는 그저 노인이 돼 있을 터였다. 그다음은 끔찍하다. 명예퇴직, 권고퇴직, 그런 말 아닌 말로 수십 년 회사 일에만 길들고 늙은 사람인 채 양계장에서 풀어준 노계처럼 세상에 나올 것이다. 남는 것도 끔찍하기는 마찬가지다. 잘해야, 그것도 아주 잘해야 조 상무나 곽 상무 같은 사람이 될 터였다. 그 사람들은 그 방면에서 운과 능력이 모두 탁월한 사람들이었고 그래서 그 나이가 되도록 그 지위와 권세로 회사에 남아 있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황 사장은 어떤가? 불굴의 투사, 불요의 혁신가는? 결국 싸움에서, 이 끝없는 전쟁에서 내쫓기고 내쫓겨 패배하고 실패한 것이 황 사장의 종말이었다. 그래도 어떤 사람이 된다면, 황 사장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다 한들, 또 무슨 소용이 있는가? 이렇게 쫓기든, 저렇게 쫓기든 다 그만 아닌가? 모두 늙고 쭈그러든다. 희미하게 옅어지고 사라진다. 그렇지 않은가? --- p.301 “기사, 대리, 과장 한창 젊고 일 잘하고 많이 할 때지. 열심히 해다가 회사에 갖다 바쳐. (…) 임원들은 안 그래도 빡세게 일하는데 더 빡세게 시킬 궁리나 하면서 정작 자기들은 회사 차 타고 골프나 치러 다니고, 내가 니들 때는 그것보다 더했다, 개소리나 하겠지. 그래, 좋아. 그 사람들은 그게 좋고 그렇게 해왔고 또 그만한 터전 다 있으니까 좋다 이거야, 그렇게 살라고. 하지만 그 사람들 밑에서 일 같잖은 일이나 하는 사이에 우리는 늙는다고. 갈 데도 없어지고 새 일을 배울 기력도 점점 더 없어지는 거야. 남는 게 뭐야? 내 인생, 고작 그런 인간들 뒤나 닦아줬다는 거, 그거 하나뿐이잖아. 여기서 지내는 거 좋아. 집값, 술값, 그런 거 다 싸지. 하지만 그렇게 즐기고 누릴 때조차 우리는 늙어, 늙잖아.” 부청은 고개를 끄덕였고 술잔을 비운 뒤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겠냐. 흙수저 물고 태어났으면 다 그런 거지. 별수 없잖냐.” 혁준이 말했다. “야, 다 그렇게 살아. 그냥 다 그렇게 사는 거 아니냐?” 나는 반문했다. “그럼 다 그렇게 죽냐?” 혁준은 잠시 말이 없다가 해죽 웃었다. “아님 말고.” --- p.304 난 조 상무가 너무 싫지만 실은 나랑 비슷한 점이 있다고 봐. 그렇게 위로 올라가고 싶어 하고 또 인정받고 싶어 하고. 그러니까 더 싫어하고 욕하고, 그런 마음이 드는 거지. 사실 마음속으로는 그 사람이 그렇게 나쁜 사람이란 생각이 안 들어. 내가 좋아하지도, 잘할 생각도 없는 일을 그 나이 될 때까지, 또 자기랑 똑같은 윗사람에게 시달리면서 하다 보면 나도 조 상무처럼 될 수밖에 없을 거야. 문제는 너무 고생하면서 일을 한다는 거야. 그 고생을 했으니 나중에 위에 올라가서도 밑에 있는 사람들 고생이 고생처럼 보이지도 않는 거지. 군대에서도 그렇잖아. 별것도 아닌데 체육복 위에 깔깔이 입고 돌아다니는 병장들 보면 대단해 보이고 병장 되자마자 그것부터 하고. 밑에서 개고생해봤으면서 자기도 모르게 까라면 까, 그러고. 다 똑같은 사람인 거야. 내가 뭐라고 그 자리까지 올라가면 다르겠어? 다르게 살지 않으면 다 똑같아지는 거야. 몰라, 아직 다 안 살아봤으니. 하지만 정말 그럴 것 같아. --- p.305 그렇게 죽기는 싫었다. 적어도 나는, 정말 그렇게 죽기 싫었다. 말도 안 되는 인간들 뒤치다꺼리나 하면서, 그런 것이 회사 생활이라고 스스로 강박하고 세뇌하면서 일생을 보내다 늙고 병든 닭이 돼 죽기는 싫었다. 그렇게 살기에 나는 아직 젊었고 내게 남은 인생은 너무 길었다.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젊음이라는 것을 회사 안에서만 놓고 보자면, 내다 팔 수밖에 없는 것으로만 보자면 결국 아무 답도 찾을 수 없었다. 모든 것이 허무했다. 하지만 젊음은 내 위에 앉아 있는 임원들의 것도, 회사의 것도, 월급이나 연금에 저당 잡힌 것도 아니었다. 내 젊음이었고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내게 있는, 또 모든 사람에게 있는 유일한 대지였다. (…) 나는 내 젊음을 되찾아야 했다. --- p.3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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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누웠다. 하지만, 우리는 살아간다.
: 기업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주인공 문 대리는 ‘배가 쓰러졌으니 어서 회사로 돌아오라’는 오 팀장의 전화를 받는다. 멀쩡히 서 있던 배는 왜 쓰러졌을까? 하지만 소설은 ‘왜’에 집중하지 않는다. 배가 쓰러졌다는 사실을 말할 뿐이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누구도 책임을 지고 말하지 않는 진실을 비켜 이야기는 거대한 배처럼 의심을 뚫고 흔들림 없이 나아간다. 선가 피해액을 보상받기 위한 보험팀이 꾸려지고, 해상 사고 전문가인 홍 소장이 한국에서 중국으로 넘어온다. 그리고? 배가 진짜 쓰러진 이유야 어떻든 문서와 협의와 회사 간의 이익에 의해, 무엇보다 힘에 의해서, 배는 천재지변이란 단어로 정리되어 문서 위에서 최종적으로 쓰러진다. 누운 배 한 척이 그렇게 됐듯 사실이라는 것은, 참이나 거짓이라는 것은 힘으로 쥐고 흔들 수 있었다. 세상은 성기고 흐릿한 실체였다. 그것을 움켜쥔 힘만이 억세고 선명했다. 힘은 우스운 것이 아니었다. 아무리 우스운 것도 우습지 않게 만드는 것이 힘이었다. 배가 쓰러졌지만 변하는 건 없다. 아마 쓰러지지 않았어도 변하는 건 없었을지 모른다. 원칙을 뭉개고 규칙을 악용하며 회사는 돌아가고, 소설 속 인물들은 월급을 받아가며 고리타분하고 지루한 저 윗자리로 올라가려 아등바등한다. 보험팀의 모든 성과는 실무자들이 아닌 정 이사와 양 이사를 비롯한 임원들이 나눠 갖는다. “회장님이 배를 일으켜 세우실 거라던데?” 술자리에서 들었다는, 출처도 없이 떠도는 이야기는 새해 시무식에서 회장의 입을 통해 진짜가 된다. 하지만 그 일을 누가 책임질 수 있을까? 책임을 온전히 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보험사에서는 보험금 지급을 미루고, 회사는 어려워진다. 사장이 바뀌고, 새로운 사장인 황 사장이 와서 회사를 바꿔보려 하지만, 조 상무를 비롯한 회장의 사람들에게 가로막힌다. 모든 상황이 점점 나쁘게 굴러간다. 그리고 결국, 배를 일으켜 세워야지만 회사가 다시 돌아가고 월급이 나오고 승진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인정해야 하는 때가 오고야 만다. 어쩌면 저 배가 회사의 유일한 희망일지도 몰랐다. 그런데, 누운 배가 모두의 유일한 희망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좀 이상하지 않은가? 괴상하지 않은가? 누운 배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애쓰는 장면들은 부조리극의 한 부분처럼 아무 희망도 보람도 느낄 수 없다. 매일 굴러떨어지는 시시포스의 바위 같다. 누워버린 채 몇 년이나 방치된 배가 희망이라면 애초에 희망 따윈 없었는지도 모른다. 다른 희망은 없을까? 다른 진실은 하나도 없던 걸까? 어쩌면 그 희망과 진실을 찾는 건 소설을 읽는 우리의 몫일지도 모른다. “회사 좋아하세요?” : 우리는 무엇을 위해 노동하는가 《누운 배》는 사회 소설인 동시에 기업 소설이다. 회사에 다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이야기다. “회사 생활 다 그런 거 아이겠나?”라는 말로 대변되는 문 대리, 오 팀장, 정 이사, 양 이사, 조 상무, 황 사장 등의 말과 행동에서 우리는 쉽게 우리가 몸담은 회사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소설은 치밀하게 직조하고 치열하게 밀어붙여 소설 속 회사를 현실의 회사 위로 일으켜 세운다. 그렇기에 우리는 소설 곳곳에서 언뜻언뜻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쉽게 발견하고, 과거에 했거나 지금 하고 있거나 미래에 할지도 모를 행동을 대신하는 인물들을 마주하게 된다. 우리가 부인하든 부인하지 않든, 소설 속의 그 무수한 모습들은 모두 우리의 모습이다. 오늘도 우리는 의자에 궁둥이를 붙인 채 새로 온 직원을 환영하고, 떠나가는 직원을 환송한다. 불의에 맞서 의롭게 나서기도 하고, 자리를 지키려 비겁하게 물러서기도 한다. 무탈하게 함께 웃고 떠들고 일하며, 어느 날은 서로 언성을 높이며 싸우고 언제 그랬냐는 듯 술잔을 부딪치며 풀기도 한다. 하지만, 정말 그게 다일까? 사실 우리는 칸막이 너머 동료 직원의 배가 누웠건, 같이 점심을 먹은 다른 동료의 배가 누웠건, 어떤 사람의 배가 누웠건 아랑곳하지 않고 회사에서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아니, 혹여 내 배가 누웠다고 해도 그 모습을 보지 않으려 애쓰며 회사 사람으로 살아간다. 그게 회사 생활이라면 우린 잘 살고 있다. 월급을 받는 달이 많으면 많을수록 젊음을 잃고 나이 들어간다는 걸 알면서도, 가능성과 원기를 잃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우리에겐 다른 선택지가 없다. 주인공 문 대리 또한 회사 내부의 모순과 불합리한 권력 구조 앞에 절망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회사에 남을 수밖에 없다. 내년이면 서른하나였다. 다시 시작하기에 너무 늦은 나이였다. 우선은 붙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버티고 견뎌서 대리, 과장이 돼 이직이라도 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하고 현명한 선택이었다. 우리는 남아 늙고 쭈그러드는, 희미하게 옅어지고 사라지는 자신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대부분이 그렇고, 우리 대부분은 그 대부분에서 벗어날 생각이 없다.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 외에, 말단 직원으로서 상사의 지시에 잘 따르고 열심히 일하는 것 외에, 회사 내에서 벌어지는 온갖 부조리한 일들을 보고 끊임없이 회의를 느끼는 것 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그것이 좌초된 진실이라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문 대리의 고민도 우리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런 고민 속에서 문 대리의 생각은 우리와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스스로에게 무모하고 무책임한 곳으로 나아간다. 그는 다른 선택을 하게 될까? 배를 끌어 올릴 때 그랬듯, 운명에 맡겨야 할 것은 운명에 맡겨야 했다. 내가 해야 할 것은 내가 하고, 나머지는 담대하게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다른 선택을 하지 않은 우리를 기다리는 게 고작 “내가 뭐라고 그 자리까지 올라가면 다르겠어? 다르게 살지 않으면 다 똑같아지는 거야. 몰라, 아직 다 안 살아봤으니. 하지만 정말 그럴 것 같아. 다 똑같은 사람이 되는 것”밖에 없는 걸까? 그게 우리의 미래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그렇지 않기 위해서는 스스로에게 한 가지 질문을 해야만 한다. “회사 좋아하세요?” 그 질문을 마주하며 우리는 비로소 소설의 처음으로 돌아가게 된다. 저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누워 있는 배를 가만히 바라보게 된다. 누운 건 정말 배였을까. 누운 건 내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너무 오래 누워 있는 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