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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1. 포도에 대한 사랑 2. 유랑민이 된 프랑스 국민 3. 포도주 총통 4. 숨기기, 거짓말하기, 속이기 5. 으르렁거리는 배 6. 문 앞의 늑대들 7. 축제 8. 보물지키기 9. 독수리 둥지 10. 나치 협력자들 11. 집에 돌아왔더니 나는 이미 늙어 있었네 에필로그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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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에밀은 1896년에 태어났다. 그는 프랑스인으로 태어났으나, 2년 뒤인 1871년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의 결과로 알자스를 독일이 점령하면서 독일인이 되었다.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그는 다시 프랑스인이 되었다가 1940년 알자스가 독일에 병합되자 다시 독일인이 되었다. 그리고 1950년 에밀이 9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 그는 또다시 프랑스인이 되어 있었다.
이렇게 국적이 계속 변하자, 이 지방 사람들은 일종의 정신분열증을 겪게 되었다. 그래서 자신의 일부는 프랑스인이고 일부는 독일인으로 느끼지만, 자신의 대부분은 알자스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한 상황에서 포도주를 파는 일은 종종 힘겨운 생존 투쟁이었다. 대때로 갑작스럽게 달라져버린 경제 상황에 적응하는 것이 필요했다. 장 위겔이 쓴 글처럼, “하룻밤 사이에 지도상에서 국경선을 바꾸는 것은 아주 쉽다. 그러나 흔히 새로운 제도는 이전의 제도와 충돌하게 마련이다. 국내 시장이었던 것이 해외 시장으로 변해버리고, 관세 장벽 때문에 더 이상 거래가 불가능해진다. 반면에 이전의 해외 시장이 국내 시장으로 변한다. 잘 구축해놓은 거래 관계들은 더 이상 아무 쓸모없는 것이 되고, 힘든 노력을 기울여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 1939년 가을, 이러한 고통스러운 전체 과정이 다시 반복되리라는 것이 거의 학실해보였다. 선전포고와 함께 독일의 공역을 염려한 프랑스 정부는 라인 강을끼고 독일을 마주 보고 있는 도시 스트라스부르 주민들에게 대피령을 내렸다. 그러나 몇 주일이 지나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자, 20만 명의 주민 중 상당수는 잘못된 경보로 생각하고 다시 도시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 pp.46~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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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군에게 도전하는 것은 위험한 게임이었다. 보르도에서는 독일군이 열병을 할 때 한 남자가 항의의 뜻으로 주먹을 내밀었다가 총에 맞아 사망했다. 또 한 사람은 전화선을 절단하다가 붙잡혀 처형되었다. 기회가 닿을 때마다 저급 포도주를 속여 공급하던 알자스의 위겔 가족도 조심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히틀러의 영빈관인 플라터호프로부터 주문을 받으면, 우리는 항상 최고급 포도주를 보냈습니다.” 조르주 위겔은 말했다. “우리는 대개 일년에 두 차례 플라터호프로부터 주문을 받았는데, 그 주문은 아주 구체적이었습니다. 비록 히틀러는 포도주 맛을 구별할 줄 모른다지만, 그곳에는 훌륭한 포도주 맛을 아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지요. 우리는 감히 그들을 시험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과감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 당시 17세였던 제랄 뵈베르 같은 젊은이들이 특히 그랬다. 샴페인을 만드는 루부아 마을에 살았던 뵈베르는 따분했다. 그때는 7월 14일 프랑스 혁명 기념일이었지만, 비시 정부는 반독 데모로 비화될까봐 염려하여 전통적인 기념 행사를 일절 금지시켰다. 그러나 뵈베르는 세 친구와 함께 나름대로 기념 행사를 갖기로 했다. 그들은 금속 용기를 여러개 구해 그 속에다가 독일군으로부터 훔친 엽총 탄약에서 빼낸 화약을 채웠다. 그런 다음 다른 친구들이 몸을 숨긴 사이에 한 친구가 성냥에 불을 붙였다. ---pp.162~1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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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와인을 둘러싼 나치와 프랑스의 한판 승부
농부들에게 수확기는 일 년 중 가장 행복한 시기이다. 씨 뿌리는 봄을 지나 정성스러운 보살핌으로 여름 재해를 견딘 후, 곡식이 여물어가는 수확의 계절을 맞이한다는 것은 가장 자연적이며 인간적인 일일 것이다. 그래서 일찍이 뿌린 만큼 거둔다는 성실함의 미덕을 무엇보다 분명히 깨달았던, 이 가장 오래된 인간의 행위에서 인류는 성스러운 신의 모습마저 엿보았는지 모른다. 수확 때마다 봄에 한 약속들이 갱신되고 인간은 계속되는 순환 속에 살아간다. 그것은 분명 불멸의 느낌을 주는 것이다.
와인의 역사는 프랑스의 정신이다! 프랑스인들에게 포도재배와 수확에 깃든 정서가 바로 그렇다. 매일, 매주, 그리고 여러 달 동안 가지를 치고, 병에 걸리지 않았는지 살펴보고, 흐트러진 순들을 다시 묶어주면서 일꾼들은 포도나무를 일일이 알게 되고 생활의 리듬과 페이스를 포도나무에 맞추며 살아왔다. 또 그것으로 빚은 포도주는 문화를 넘어 그들의 역사요 그들을 정의하는 것 중 하나다. 실제 나폴레옹이 워털루 전쟁에서 진 것은 샴페인을 챙길 시간이 없어 벨기에산 맥주를 마시며 싸웠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고, 그 전쟁 이후 유럽 재편을 논의한 빈회의에서 최고의 요리와 보르도의 명주 '오브리옹'이 회의를 화기애애하게 이끎으로써 프랑스를 구했다는 얘기도 있다. 이렇듯 포도주는 그들에게 따라 마시기만 하면 되는 음료수나 제품이 아니었다. 국기인 삼색기처럼 프랑스 국민의 가슴과 정신에 호소하는 무엇이 있다. 포도주의 반출을 막는 레지스탕스 운동 천년 제국을 건설하려던 히틀러의 야욕이 전 유럽을 휩쓸고, 마침내 프랑스엑까지 그 영향을 미쳤을 때, 포도주를 맛본 히틀러는 “저급한 식초나 다름없다”고 폄하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서 포도주가 얼마나 평성이 높고 이익을 가져다주는지 즉시 알아챈 후, 프랑스 최고의 포도주들을 손에 넣어야겠다는 결정을 내린다. 그리고 프랑스 와인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을 모아 '포도주 총통'이라는 조직을 만들고 본격적으로 포도주 반출에 나선다. 한편 “프랑스인이라면 의당 조국과 포도주를 위해 싸워야지요”라는 각오로 레지스탕스의 활동도 활발히 전개했고, 전후 포도주 사업으로 재기를 노리려는 이들은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포도주를 숨겼다. 훗날 연합군의 승세로 독일이 패주하고, 독일 남부의 바바리안 알프스 산맥에 있는 베르히테스가덴에서 천여 미터쯤 위치한 산꼭대기 히틀러의 은신처(독수리 둥지)에서는 엄청난 보물이 발견되었다. 황금, 값비싼 보석, 대가들의 미술품, 호화로운 자동차, 무엇보다 프랑스에서 약탈해간 세계 최고의 포도주 수십만 병이 그곳에 있었다. 그들은 친나치인가 애국자인가? 또 '포도주 총통'들과의 거래를 통해 전시에 많은 돈을 벌었던 프랑스 포도주 양조업자들은 '나치에 경제적 협력'을 했다는 이유로 새 정부(드골 정부)의 숙청사업에 희생되어야만 했다. 약 16만 명이 혐의로 기소되었고 사형 800명, 징역 3만 8천여 명에 이르렀다. 그러나 사실 이들은 포도주 총통들과는 전쟁과 상관없이 전부터 와인 무역을 해왔던 파트너였고 친구였던 만큼, 오히려 조국을 위해 포도주 사업을 지켰던 유연한 레지스탕스요 애국자라고 할 수 있다. 후에 보르도의 경제적 자산(포도주와 그 항구)이 프랑스 국가 경제의회복에 중요하다고 판단했던 정부는 이들을 사면하고 회사로 돌려보냈다. 한 나라의 문화를 아는 것은 역사를 아는 것이다 한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는 것은 그 나라의 역사까지 이해하는 것이다. 선뜻 진홍빛 와인 한 잔의 낭만을 말하고, 샤또 라뚜르니 쌰또 무똥 로쉴드니 하며 이름하나 더 외우는 것으로 그 나라의 문화를 말할지 모른다. 정작 기호 식품 하나에 서려 있는 말못할 자국민의 역사까지는 꿰뚫어보지 못하는 것이다. 이 책은 놀랍게도 가장 프랑스적인 '와인'에 대해 다룬 것임에도 미국에서 출판되었으며 저자역시 프랑스인이 아니다. 그들은 관련 자료를 찾기 위해 프랑스 문서보관소, 프랑스 국립도서관을 찾았고 기록, 파일, 책을 뒤지고 수많은 마이크로필름을 조사했을 정도로 숨겨진(?) 것들을 찾아야만 했다. 또 책의 많은 부분이 사실적인 인터뷰와 취재를 바탕으로 씌어진 만큼 2차 대전과 친나치, 레지스탕스 운동에 얽힌 와인의 역사에 대해 프랑스는 그 동안 침묵했는지 모른다. 이 책의등장 인물들이 말하기를 꺼렸던 것처럼 그들의 역사를 어둠 속에 묻어두려고 했던 것인지 모른다. 「감사의 말」에서 저자가 밝혔던 대로, “이 모든 것은 이제 프랑스에서 공개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하는 프랑스 역사의 한 시기를 조명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