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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1장 ‘지혜로운 이인’이 지상에 내려오다 금지선을 넘어 천길 벼랑 끝으로-묘향대│절대고독 20년 세월의 동행-상무주암│부처를 품은 산 아래 작은 지붕-금대│깊은 골짝 안개 끝, 신령의 고향-영원사│변강쇠와 옹녀, 부처님이 함께 놀던 곳-벽송사│절보다 더 절 같고, 스님보다 더 스님 같은-기원정사 2장 하늘이 감춘 땅 영원히 정지한 첫사랑이여-월출산 상견성암│한반도 땅끝으로 달마가 온 까닭은-달마산 도솔암│어머니 같은 산에 퍼진 애끓는 사모곡-무등산 석불암│세인의 고단함 도닥이는 천상의 샘물-금수산 정방사│고와서 서러운 금단의 영역-운문사│하늘 등불 아래 천년 묵은 봉황-봉정사 중암 3장 신비가 문을 연다 천 길 낭떠러지 끝 구원의 밧줄-변산 부사의방│천상의 길 비추는 달빛-변산 월명암│하늘도 감동할 공덕을 보시라-사불산 사불부처│40여 년 묵언한 석봉의 자취를 찾아-계룡산 천진보탑│새로운 후천세계가 열리는 곳-대둔산 석천암│반 허공에 세워진 선지식 도량-영축산 백운암│두만강 너머 조국을 품은 터-간도 일광산 범바위 4장 달도 잠든 밤 나 홀로 밤을 밝히네 신과 인간의 경계가 허물어진 곳-희양산 월봉토굴│스님의 거처, 아니면 도둑의 소술-봉암사 용추토굴│흰 구름 머무는 암자 위의 천년학-봉암사 백운암│순백으로 뒤덮인 선사들의 도량-태백산 도솔암│네 종정이 부처처럼 머물던 천하 길지-운달산 금선대 5장 법당 안의 부처를 해탈케 하라 ‘못난 부처’ 홀로 웃는 부처님 집-팔공산 오도암│부처 아님이 없는 만생명과의 만남-천성산 화엄벌│깎아지른 절벽 위 ‘지혜’의 곳집-사성암│삼라만상에 개화할 불알의 씨-울금바위 원효방 글을 마치며 |
조현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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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추어도 드러나는 우리 절경 29
-- 최세라 (rasse@yes24.com)
차라리 알려지지 않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하늘이 감춘 땅에 사람이 자주 들어서 무어가 좋을까. 행여 본색을 잃을까, 침묵이 깨질까,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을까 감싸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그러면서도 29곳 중 가본 곳이 있기나 한지 먼지 훑어본다. 한 곳도 없을 줄 알았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2곳을 찾았다. 여행을 좋아하지만 역마살보다 열 배는 더 쎄게 타고난 게으름 탓에 철마다 남의 여행기에 입과 눈을 얹는 정도다. 부지런한 여행광들에게 들은 풍월로 어줍잖게 '좋다더라'라는 후기를 전하고, 직접 발로 다니지 못한 부끄러움이 모든 여행지 앞에 늘 앞장 서 있었으나, 이 책에 나온 장소들은 꼭 가봐야겠다는 결심보다 이렇게라도 알게 되어서 기쁜 겸손한 태도가 먼저 생겼다. (실제로 다니고 싶어도 워낙 숨어있는 험한 곳들이라 쉽게 엄두를 내지 못할 것 같다.)
저자 조현은 한겨레 종교전문기자이자 저술가이다. 지금까지 펴낸 저서만 10종인데 무엇보다 마음 깊은 곳에서 울림을 전하는 담백한 문체가 좋다. 읽다보면 복잡한 심정은 정리가 되고, 공허한 심장에는 따뜻한 온기가 스며든다. 한 줄 한 줄 그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동안 때론 부끄럽고 때론 자랑스러우며 때론 못난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히말라야를 비롯해 세상 사람들이 좋다는 곳을 찾아 30여 곳을 헤맸다. 달라이라마, 틱낫한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세계적인 영성가들도 다 만났다. 그러다 머나먼 중국도 인도도 아닌 자신의 발 아래 우리 땅에서 하늘이 감춘 땅 29곳을 발견했다. 그는 스스로를 바보였으며 이로 인해 무척 몸이 고단했다고 고백했다. 하늘이 감춘 땅의 비밀은 지리산 묘향대로부터 벗겨지기 시작해 변산, 계룡산, 월출산, 태백산을 다 거친 후, 전북 부안 울금바위에서 마지막으로 덮힌다. 금수강산 구석구석 빼어난 곳을 찾아 가파른 절벽, 한 길 낭떠러지, 하늘과 땅이 닿는 깊은 곳까지 두 발로 직접 걸었다. 함께 실린 기막힌 사진들을 보면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음을 알게된다. 거기에 장소마다 역사적 사실과 숨겨진 뒷이야기, 자신만의 에피소드들을 맛깔나게 버무렸다. 목차에서 마음에 드는 곳을 하나씩 골라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앞서 말했던 내가 가본 그곳은 고와서 서러운 금단의 영역, 운문사와 달마가 왔다는 한반도 땅끝 달마산 도솔암이다. 최근에 밀양에 갈 일이 많아지면서 가까운 청도에 있는 운문사도 이 책 덕분에 부쩍 자주 가게 되었다. 300여명의 비구니가 자기 집 안방처럼 깔끔하게 만져놓은 경내는 가까이 들여다 보는만큼 남들 모르는 감탄과 배려를 찾을 수 있다. 초입에 웅장하게 늘어선 소나무 행렬은 '기어코 차안(此岸)과 마지막 작별을 하게 하려한다'는 저자의 평가가 정확하다. 그 곳에는 신비롭게 자리잡은 아래로 자라는 500년 된 소나무, 딱 한가지 기도는 틀림없이 들어준다는 사리암, 쉴 새 없이 정진하고 일하고 미소짓는 아름다운 비구니들이 있다. 또 한 곳인 해남 달마산 미황사는 이 땅을 돌고 돌아 땅끝까지 가게 만든 내 청년시절 기백의 종착지였다. 오래 전 일이라 왠만한건 다 잊었는데 같이 간 친구들과 그곳에서 바라본 남해의 절경은 아직도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대학시절 일년에 4번식 답사를 다니는 전공 덕분에 29곳 근처까지는 대부분 가 보았다. 하지만 팔공산은 갔으되 오도암은 보지 못한 이런 식이라 지금 다시 돌이켜보니 모든 행보나 감동이 저자의 절반이다. 설령 끝까지 이르렀다 한들 저자의 백분지 일이라도 깨달음이 있었겠냐 만서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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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고단 산장과 임걸령과 노루목을 지나 아는 사람만 아는 샛길로 빠진다. 그때부터 겨우 사람 하나 지나다닐 만한 가파른 오솔길을 오르내리기를 몇 시간. 멀리 아련한 꿈속마냥 집 한 채가 보인다. 묘향대다. 바랑 하나 메고 전국을 만행하는 선승들조차 꼭 한 번은 가보고 싶어한다는 전설의 묘향대는 지리산 중봉 아래 있다. 굳건한 암벽 바위가 둘러싼 요새 중의 요새다. 묘향대는 여기서 독야청청이다. --- p.21
상무주암에 오르기 전 꿈속의 삶이 너무나 복잡다단해서였을까, 아니면 청정한 암자의 음식이 오히려 오염된 세인에겐 어울리지 않았던 것일까. 암자에 머문 3일 동안 설사가 끊이지 않아 찬물도 마시지 않고 설사를 멈출 일을 고심하는데, 스님은 오히려 딴소리다. “찬물도 계속 마셔서 몽땅 쏟아버려. 버릴 것은 버려야지!” --- p.39 종림 스님이 시종일관 손을 꼭 잡아준다. 마친 연인처럼, 엄마처럼. 새벽 공기는 찼지만 종림 스님이 꼭 잡은 손을 통해 전해오는 그 마음이 우주를 따사로운 햇살로 채운다. 추위도 잊고, 그곳이 동양제일의 명당인 것도 이제는 잊는다. 이슬 서린 지리산의 나무와 풀과 공기가 말한다. 세상을 온통 명당으로 만드는 것이 이렇게 따뜻한 손인 것을. --- p.48 그 청정한 수행터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동안, 나는 그분들과 별을 보면서 많은 수행담을 나눴다. 비록 출가하지 않았지만 출가 수행자들보다 더 청정하고 용맹하게 정진하는 그들의 모습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하룻밤을 그렇게 보낸 뒤 나이 든 재가의 선객들이 언제 다시 볼 줄 모르는 내 손을 놓을 수 없다는 듯 꼭 잡았다. 꼭 다시 이곳에 와서 수행을 이어가 견성하라는 간절한 서원을 담은 손짓이었다.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지 마세요.” 대덕행 보살이 눈시울을 적셨다. --- p.75 얼마나 앉아 있었을까. 저 멀리 고갯마루에서 인기척이 난다. 잠시 뒤 한 젊은이가 등짐을 지고 땀을 뻘뻘 흘리며 암자 마당에 들어선다. 삼십대 중후반인 듯하지만 용모는 이십대로 보일 만큼 젊고, 수줍음에 얼굴 붉어지는 그 표정은 어느 산골의 사춘기 소년이다. 상견성암에서 홀로 수행 중인 범종 스님이다. 오도 가도 못하는 장마철이 오기 전에 쌀과 김치를 구해서 지고 올라오는 길이다. 수줍음 많은 산승은 “도갑사에서 객이 상견성암에 올라갔다는 얘기를 듣고는 아래에서 시간을 지체하다가 이 시간쯤 되면 하산했겠지”라고 생각했단다. 그럼에도 이쯤 되니 불청객을 인연으로 받아들인다. --- p.86 석불암 대정 스님은 세파와는 도무지 상관없는 옛 선인의 모습이다. 세상 사람들과 섞여 살지 않는 자의 수줍음이 얼굴에 가득하다. 누구도 찾아오거나 들여다보기 어려운 이 깊은 산골로 어머니를 모시고 와서 17년을 살았으니, 세상과는 거리가 멀 수밖에. 그 어머니는 몇 개월 전 돌아가셨다. 그는 이제 혼자다. 홀로 된 자의 깊은 고독이 그의 눈동자에 어려 있다. 어머니 얘기가 나오면서 그의 눈은 뜻 모를 고독과 환희가 교차한다. --- p.167 ‘하늘이 감춘 땅’은 쉽게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봉암사 선승들만이 아니라 희양산의 산신도 외부인을 경계하는지 모를 일이다. 날다람쥐들처럼 숲속을 헤치고 달리는 산승들과 함께 가던 한 일행이 계곡에서 굴러 팔을 다친다. 토굴의 중간도 못 가서 사고가 난 것이다. 팔이 부어오르고 조금만 만져도 아파한다. 그러니 더 이상 그의 산행은 무리다. 하는 수 없이 일행을 주지 스님과 함께 하산케 하고 산행을 계속한다. 가파른 산길을 한 시간쯤 올랐을까. 멀리서 인간 세상이라곤 믿기 어려운 풍경이 나타난다. 월봉토굴이다. --- p.225 인간의 탐욕과 폭력 앞에 더 이상 갈 곳 없는 산짐승들이 인간들보다 더 산승을 잘 이해할지 모른다. 백두대간 일대의 산짐승들은 사냥꾼의 총소리가 나면 동물적 감각으로 살기 위해 희양산으로 도망쳐온다고 한다. 이 일대 산꾼들 사이에서 그런 얘기가 회자될 정도로 희양산은 동식물들의 낙원이다. --- p.228 선승은 무엇 때문에 전기도 전화도 없는 이 높고 춥고 외로운 외딴 암자에서 홀로 살아가는 것일까. 이런 의문과 가쁜 숨이 가슴을 옥죄어올 때쯤 멀리서 도솔암 해우소 한 켠이 눈에 들어온다. 과연 저곳에 오르면 ‘근심을 해소’할 수 있을까. 더욱 숨찬 가슴이 막바지 고개를 올라채는 순간 갑자기 막혔던 시야가 열린다. 지금까지 올라온 골짜기와 달리 도솔암에선 시야가 툭 트였고, 천하의 산이 눈 아래 도열해 있다. 도솔암은 마당 한 뼘 없고, 마루 아래는 위태위태한 벼랑 끝이다. --- p.248 예전에 한 수도승이 만행을 하다가 깊은 산속 암자에서 홀로 수행 중인 도반을 찾아갔는데, 도반이 잠시 밖에 나갔다 온다더니 서너 시간이 지나서야 애호박 하나를 손에 들고 돌아왔다고 한다. 멀리서 온 도반에게 아무것도 해줄 게 없던 산승이 도반에게 끓여줄 된장국에 넣을 호박 한 개를 구하기 위해 몇 시간에 걸쳐 하산했다가 올라온 것이다. 세간과 동떨어진 이곳에선 그런 자비와 배려와 정성의 마음이 곧 밥이요, 반찬이다. --- p.284 원효암을 출발한 지 한 시간쯤 되었을까. 화엄생명의 바다가 드러난다. 어떻게 산 정상에 이런 초원이 펼쳐져 있었을까. 희유한 일이다. 지율 스님이 목숨을 걸고 단식하면서 구하려 했던 바로 그곳이다. 내원사에서 산을 지키는 산감을 맡고 있던 지율 스님은 어느 날 산 정상부까지 굴삭기가 올라오는 현장을 보았다. 그때 까닭 없이 눈물이 흘렀고, 그 눈물은 좀체 그치지 않았다. 그는 산이 울고 있다고 느꼈고, 살려달라는 애원의 소리를 들었으며, 도와주겠다고 약속했다고 고백했다. 그 뒤 그는 무려 400여 차례나 이곳에 올랐다. 대승불교 보살은 동체대비의 화현이다. 그는 어느새 도롱뇽, 산개구리, 나비, 고란초, 일엽초 등 수많은 생명과 한 몸이 되어갔다. --- p.2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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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도 사람도 끊겼다. 그래서 그곳은 땅이되, 땅보다는 하늘에 가깝다. 인적이 끊긴 그곳엔 어두운 가슴 한켠으로부터 영롱한 별빛이 떠올라 불을 밝히고, 별똥별이 눈물처럼 녹아 가슴에 흐른다. 그러면 선녀와 천사와 수호신과 정령들이 나와 함께 춤을 춘다.
이제 우리는, 우리가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내 마음의 시원을 향해 떠난다. 깊은 산속 선승들의 칼날 같은 선답 “비우고, 버리고, 잘왔다 잘 가시게” 한겨레 종교/명상 전문기자가 거의 1년간 취재해서 풀어놓는 대한민국의 오지 암자 기행. 묘향대와 상무주암을 비롯한 지리산 자락의 여러 암자들, 화려한 기암절벽에 둘러싸인 달마산 미황사의 도솔암, 300여 명 비구니들의 정갈한 운문사, 두만강 너머의 일광산 범바위까지, 천상의 영역인 듯 속세로부터 슬쩍 비켜선 암자 29곳과 그곳에 사는 산승들의 모습을 사진과 글로 담았다. 오랫동안 전 세계의 생태ㆍ공동체 마을을 찾아다니고, 히말라야와 인도 오지를 순례하며 세계적인 영성가들을 만나온 저자에게, 이번 오지 암자 순례기는 “세인의 출입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에 사는 산승들과의 만남”이어서 더욱 특별하다. 길 없는 길을 찾아, 때론 금지선을 넘어 찾아간 심산(深山)의 수도승들은 전광석화와 같은 선답으로 깨달음이라는 선물을 선사한다. 속세의 발길이 뚝 끊긴 산속 암자에서 수십 년간 독살이와 묵언수행을 해온 은둔자들의 저 깊은 눈은, 눈앞의 사리사욕을 좇으며 애달아하는 세인의 등을 시원하게 내리치는 죽비와 같다. 웅숭깊은 휴식 한 대접을 선사하는 절집 겸손하고 소박한 ‘마음살이’를 배우라 ‘하늘이 감춘 땅’에서 독야청청 홀로 수행하는 이들의 얼굴은 맑기 그지없다. 하루에 고작 두세 시간 잠을 청하고, 스스로 땅을 일구어 먹을거리와 땔감을 마련하며, 수행하는 틈틈이 주변 동식물들까지 돌보는 산승의 하루는 느슨함 없이 꽉 짜여 있으면서도 여유가 넘친다. 그들은 온몸으로 수행과 휴식은 둘이 아닌 하나라는 가르침을 전한다. 그 모습을 보면서 오늘 나의 휴식은 진정한 것이었나 반문하게 된다. 휴식마저 경쟁하듯 의식적으로 치르는 이상한 세상이 된 지 오래다. 아무리 좋은 곳에서 놀고 즐겨도, 아무리 열심히 늘어져도 주말이 끝나면 어김없이 월요병이 찾아오고, 매년 여름휴가가 끝나면 그 시간만큼 후유증에 시달린다. 진짜 휴식을 취하지 못해 마음이 허허로우니, 몸 또한 고달프다. 도시에서 열심히 뛰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비워진 그 마음자리에, 무엇을 버렸는지 모른 채 허전했던 그 언저리가 ‘하늘이 감춘 땅’ 안에서 꿈틀꿈틀 채워진다. 저자가 이끄는 대로 그 발자취를 따라 걷는 길은 그대로 수행이며 휴식이다. 바라보는 나를 압도하지 않고 일상의 긴장과 피로를 소리 없이 가져간다. 이쯤 되면 하루라도 그냥 입 닫고 수행하고픈 마음 간절해진다. 저 깊은 산골이 아니라도. 나 홀로 독야청청, 끝내 홀로 가야 할 삶 하늘이 허락한 마지막 오지에선 산승과 도롱뇽과 잠자리와 메뚜기와 여치가 함께 살고 있다. 홀로이지만 홀로가 아닌 것이다. 산승은 그저 자연에게서 텃밭 한 평 빌리는 걸 송구스러워한다. 그의 삶을 엿보다 가만가만 일상으로 돌아오면 인간의 편의 때문에 파헤쳐지고, 상처투성이로 아파하는 이 땅의 오늘이 보인다. 온갖 길이 다 뚫려 반나절이면 못갈 곳이 없는 오늘이라지만, 굳이 속세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이들과, 이들의 터전이 끝끝내 세상에 자취를 드러내지 않고 그 자리에 고스란히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잠시 엿보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얻을 수 있는 고립무원의 암자들이 계속 남아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이다. 산승이 홀로 지낼 수 있는 곳이 마지막까지 남아 있어야 한다는 바람은 자신이 홀로 이 세상에 왔으며, 끝내는 홀로 가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끊임없이 ‘홀로’를 그리워하는 인간의 본능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