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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읽는 세계사 2
나치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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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읽는 세계사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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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 바이마르 공화국
공화국의 탄생/강화조약과 등에 맞은 칼/독일 국가사회주의 노동자당의 창당

2. 안정에서 위기로
배상금과 인플레이션/경제회복, 공업과 농업/노동과 노동조합 /로카르노 정신/문화생활/경제 위기와 실업/독일 국가사회주의노동자당의 성장/공화국의 멸망

3. 민족혁명
의사당 화재/국가와 사회의 정화/나치즘과 교회/긴 칼의 밤/전체주의 국가/나치 이데올로기/ 나치당의 상징과 의례

4. 사회의 조직화
청년/여성/라디오와 신문/문학과 연극/조형미술과 건축/학교와 대학/당과 국가

5. 경제정책
첫 번째 조치들/실업의 타개/농업정책/노동계급/노동 조직/4개년 계획 /정치와 경제

6. 테러, 박해, 저항
법의 집행/합의와 침묵/질서와 테러/내부의 반대/대중의 불만/정치적 이민/지식인의 이민

7. 공동체
반유대주의/인종 청소/유전병과 불임시술/집시/뉘른베르크법/수정의 밤/독일인과 인종주의

8. 외교정책
베르사유 조약의 개정/이탈리아와의 관계 개선/군 최고위층의 변화/병합/ 베를린, 로마, 도쿄/ 체코슬로바키아의 분할/독소 조약

9. 전쟁
폴란드 침공/프랑스 침공/북아프리카 전쟁/바르바로사 작전/유럽의 신질서/내부 전선/전쟁 중의 나치 권력 체계/경제와 무장/제국의 금융 제도/제2전선과 전황의 변화/연합국 회의/패전

10. 홀로코스트
독일의 유대인/게토/기동대와 대량 학살/강제 이주/강제수용소/절멸수용소/안락사와 집시의 절멸/제국의 포로들

11. 분단된 나라
전후 독일/재판/연합국의 점령과 갈등의 증폭/두 독일/독일연방공화국/독일민주공화국/통일
연표 / 찾아보기 / 사진자료 출처

저자 소개 2

알렉산드라 미네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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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포스카리 베네치아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파시즘과 나치즘을 연구하는 역사학자로, 현재 국립 이탈리아해방운동사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하며 트리에스테 대학에서 독일사를 가르치고 있다.
서울대학교 대학원 서양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주로 토니 주트, 티머시 스나이더, 브루스 커밍스, 존 키건, 애덤 투즈 등 걸출한 역사가들의 현대사 저술을 우리말로 옮겼다. 옮긴 책으로 『항복의 길』, 『독재자들』, 『폭정』, 『1차세계대전사』, 『욕망의 향신료 제국의 향신료』, 『중독의 역사』, 『문명의 운명』, 『백인의 역사』,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 『나폴레옹』, 『20세기를 생각한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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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8년 09월 22일
쪽수, 무게, 크기
192쪽 | 751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19172148

책 속으로

나치당은 처음에는 독일에서 올림픽 경기를 여는 데 반대했으나 장대한 선전 행렬을 보여주는 데에는 올림픽이 유일무이한 기회라는 점을 이해한 후에 태도를 바꾸었다. 베를린의 올림픽 경기는 외국 선수들과 기자들에게 겉으로 보기에는 독일이 ‘정상’ 국가라는 인상을 심어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올림픽이 열리는 동안에는 광포하고 반유대주의적인 색채가 강하게 드러나는 선전은 줄어들고 질서와 효율을 가장한 겉모습만이 부각되었다. 이는 외국 언론을 완전히 바보로 만들었다. 그들은 올림픽이 제대로 진행되었다는 데 의견 일치를 보였다. --- p.63, 4장 「사회의 조직화」

1939년 전쟁 발발 직전에 성인 장애인을 살해하기 위한 체계적인 운동이 시작되었고, 이는 대중에게는 안락사 계획으로 제시되었다. 이 계획은 비밀리에 실행되었다. 친척들은 독일 여러 지역에 세워진 학살장으로 가족들이 끌려갔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유럽이 새로운 질서로 재편되기 전에, 그리고 유대인을 근절하려는 폭력이 시도되기도 전에, 국가에 의한 살인은 이미 합법적으로 확립되고 대규모로 실행되었다. --- p.103, 7장 「공동체」

1939년 8월 22일, 폴란드 침공과 참모본무에 대한 연설이 있기 며칠 전 히틀러는 이렇게 선언했다.
“……나는 전쟁에 들어가는 데 대한 이유를 제시하려 한다. 그것이 신뢰할 만한 것인지 그렇지 않은지는 중요하지 않다. 승자에게는 그가 진실을 말하고 있었는가 하는 사후 질문 따위는 제기되지 않는다. 전쟁을 시작하고 임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정의가 아니라 승리다. 자비에 대해서는 마음을 닫으라. ……가장 강한 자가 정의로운 자다. 최대한 가혹해져라.” --- p.138, 9장 「전쟁」

1942년 12월 연합국은 유대인 절멸 정책을 비난하고 그러한 범죄에 대해 제재를 가하겠다고 장담했으나, 당시에는 독일을 무너뜨리고 전쟁을 끝내는 일이 다른 어떤 일보다, 심지어 수백 만 명의 목숨보다도 중요했다. 교황청도 정보를 듣고 있었다. 교회 조직을 매개로 모든 나라에 학살 소식이 전해지고 있던 것이다. 로마 가톨릭교회의 반유대주의 전통은 분명 그 침묵과 무관심, 공모의 배후에 놓인 요인들 중 하나였다. 교회는 확실히 억압받는 자들을 지원하는 데 노력을 아끼지 않았지만, 범죄 행위를 분명하게 비난하지는 못했다. 국제 적십자사의 수장들도 소식을 듣고 있었으나 그들의 개입 여지는 제한적이었으며, 게다가 유대인의 강제 이송은 적십자사의 전통적인 활동 범위를 뛰어넘는 문제들이었다. --- p.174, 10장 「홀로코스트」

냉전은 은연중에 나치의 과거를 복권시켰다. 나치 전력자들은 단순히 군인이나 국가 공무원으로 자신의 의무를 다한 독일인들로 여겨졌다. 전쟁 이후 20년을 지배한 것은 집단적 무죄의식이었다. 이 침묵은 1960년에 와서야 깨졌다. 1961년의 아이히만 재판과 청년 세대의 새로운 정신 덕에 독일인들은 잊으려고 애썼던 과거와 직접 대면하게 되었다.

--- p. 185, 11장 「분단된 나라」

출판사 리뷰

나치즘은 무엇인가? 나치즘과 파시즘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역사학자 알레산드라 미네르비는 이 책을 통해 가공할 만한 폭력을 휘두른 이 집단 이데올로기의 다면적인 실체를 보여주려 애쓴다. 책은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나치당이 세력을 형성하게 된 사회 역사적 배경에서부터 권력 장악 후 그들이 펼친 정책과 전쟁, 패망 이후 분단된 독일, 그리고 재통일 이후까지를 다루고 있으며, 주요 인물과 사건, 흐름들을 박스 글을 통해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 책에서는 역사의 결정적 순간들을 포착한 로버트 카파, 데이비드 시모어 등 전설적인 매그넘 사진작가들의 사진들과 희귀 기록사진들을 만날 수 있다.
인종주의, 민족주의, 국가주의를 배경으로 한 나치즘은 독일을 광기로 물들였다. 나치즘을 배경으로 히틀러가 일으킨 제2차 세계대전은 5,000만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갔고, 수백만 명의 유대인과 집시들이 그 와중에 집단 학살되었다. 하지만 그 어두운 과거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인종과 민족, 국가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만행은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목격되고 있으며, 사회적 불만과 국가 간 분쟁은 그러한 폭력을 언제든 미화할 준비가 되어 있다. 나치즘의 본질을 이해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나치즘의 등장은 역사의 우연일 뿐인가?

1919년 제정된 바이마르 헌법은 시민권을 폭넓게 인정하고 복지국가의 틀을 제시하고 있었다. 당시로서는 가장 선진적인 헌법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왜 그러한 민주적인 제도 안에서 나치가 등장하고 권력을 잡게 되었는가? 나치즘의 역사는 인류 역사상 가장 잔혹한 범죄를 저지른 전체주의 세력이 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합법적’으로 권력을 잡게 되는 과정을 자세히 알려준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독일은 1919년 6월 28일 베르사유 조약에 서명하게 된다. 이 굴욕적인 조약으로 인해 독일은 국토의 13퍼센트를 상실했고, 독일 식민지들은 프랑스와 영국, 벨기에, 일본, 호주에게 넘어갔다. 더불어 막대한 전쟁 배상금 지불 의무를 떠안았다. 독일에 부과된 가혹한 조건들은 많은 독일 국민의 분노를 폭발시켰고, 새로운 민주주의 정부는 전쟁의 패배에 대한 책임을 뒤집어썼다. 대다수 독일인들은 굴욕감을 참지 못했다. 1919년 뮌헨을 토대로 등장한 나치당(독일국가사회주의노동자당)은 바이마르 정부를 상대로 투쟁하면서 민주주의의 절차 규정들을 무시하고, 이러한 사회적 불만을 자신들의 성공의 발판으로 활용했다. 민족주의에 호소한 그들의 행동주의는 특히 중간 계급에 큰 호소력을 가졌다. 실업과 극심한 인플레이션에 시달린 독일 국민은 질서를 요구했고, 장래의 안정을 보장할 수만 있다면 그 질서의 성격이 어떻든 상관없었다.
독일 제국의 권위주의적 전통의 뿌리는 매우 깊었다. 대다수 사람들은 바이마르 공화국이 없애려 애썼던 과거의 원칙들로 복귀함으로써 현상을 타개할 수 있다고 믿었다. 1930년에서 1933년 사이의 선거 결과는 나치가 얻은 표의 대부분이 전통적으로 부르주아 세력을 지지했던 유권자들로부터 나왔음을 보여준다. 나치당은 당선된 의원 수를 늘리면서 의회를 선전의 토대로 삼을 수 있었다. 나치당은 단체 행동을 조종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사용하는 데 뛰어난 수완을 발휘했다. 나치의 성공에 본질적으로 기여한 또 다른 세력은 독일 재계의 핵심이었다. 권위적인 질서를 회복시킬 필요가 있다고 확신했던 그들은 1930년 이후 나치당에게 많은 자금을 공급했다.
다시 말해 페인트칠과 그림엽서 제작으로 생계를 꾸리던 평범하기 그지없던 청년 아돌프 히틀러가 독일 민족의 지도자로 부상하게 된 데에는 다음과 같은 사정이 있었다. 먼저 사회의 보수파 중 적지 않은 집단이 바이마르 공화국에 집요하게 반대했다. 또한 경제 위기의 심화로 독일 국민 대다수는 불만을 폭발시킬 출구를 찾고 있었다. 연설가로서 비상한 재주를 타고난 히틀러는 바로 그러한 불만을 자신의 힘으로 이끄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 덕에 히틀러는 생활이 개선되기를 원했던 많은 독일인들의 눈에 구세주로 비쳤다. 그래서 이 불가사의한 이야기는 현실이 된다.

질서에 대한 강조와 테러는 어떻게 구별되는가?

대다수 독일 주민들이 나치 정책의 특정한 측면에 보낸 성원에는 테러 정책에 대한 동의가 포함되어 있었다. 히틀러는 ‘일탈자’나 ‘민족 공동체의 적으로 판단되는 자’들을 체계적으로 억압할 관료 기구를 설치했다. 이러한 과정들은 결코 비밀리에 진행되지 않았다. 신문과 라디오는 공개적으로 이러한 변화를 알렸으며, 매번 나치즘이 역사적인 이정표로 제시되었다.
대부분의 독일인들은 1933년에 벌어진 잔인한 좌파 진압을 차후로는 법과 질서에 대한 모든 위협에 대해 필요할 경우 폭력을 사용해 분쇄하겠다는 약속으로 인식했다. 비상시기에 대처하기 위해 설치된 기관들은 이후에도 폐지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사회를 전체주의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변형되고 강화되었다.
경제 위기가 지속된 몇 년 동안 행동의 자유를 가진 강력한 권력만이 결정적인 전환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생각이 점차 지지를 얻었다. 많은 사람들이 나치당의 충격 효과를 이용한 후 그들을 배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나치의 권력 장악 후 히틀러는 점점 더 많은 자율성을 획득했고 독일 국민은 정권의 성공을 오직 그의 공으로만 돌렸다.

침묵하는 반대와 자발적인 찬성 사이에 차이가 존재하는가?

나치 이데올로기는 민족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과 그로부터 배제된 사람들을 명확히 구분함으로써 지탱될 수 있었다. 나치는 동성애자들과 반사회적 인물 같은 소수자들을 민족 공동체에 소속될 자격이 없는 자들로 간주했고, 유대인, 집시 같은 열등 인종과 정신병자들이 독일인과 접촉하는 것조차 금지했다.
나치는 공동체 의식을 강조함으로써 집단적 규율을 강화하기 위한 추진력을 얻었다.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들이 자신의 운명에 발언권을 가진다는 생각은 행동의 통일을 가져왔고, 그것은 또한 분쟁 없는 사회라는 나치 정권의 주장을 확인시켜 주는 효과를 낳았다. 배제의 메커니즘이 법률적 제한을 넘어 다수 대중의 심리에 각인되었다. 폭력 행위가 점차 극단으로 치달았고, 폭력은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윤리적인 것이라는 확신 속에서 이루어졌다.
1938년에 출간되어 학교에서 교과서로 쓰인 「독버섯」은 반유대주의가 독일 사회에 얼마나 악의적으로 유포되었는지 분명하게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이다. 내용은 이렇다. 어머니와 아들 프란츠가 숲 속으로 버섯을 따러 갔다. 가는 길에 어머니는 프란츠에게 숲 속에 독버섯이 있는 것처럼 사람들 중에서 독버섯처럼 해로운 사람들이 있다고 말한다. 어머니는 아이와 대화를 나누며 독버섯이 해롭듯이 유대인들이 독일 민족에게 얼마나 해로운지를 설명하려 애쓴다.

“……설령 그들이 우리에게 자신들이 착한 사람들이라고 믿게 하거나 우리가 잘 되기 바란다고 수천 번도 더 말한다 해도, 그 말을 믿어서는 안 돼. 왜냐하면 그들은 유대인이고 또 변치 않고 유대인일 테니까. 그들은 우리 민족에게는 독과 같아. ……단 한 개의 독버섯으로도 가족 전체가 죽을 수 있는 것처럼, 단 한 명의 유대인이 마을 전체나 도시, 심지어 민족 전체를 전멸하게 만들 수 있어.” 이제 프란츠는 어머니의 얘기가 무슨 뜻인지 알아들었다. “엄마, 유대인이 독버섯처럼 위험하다는 사실을 유대인이 아닌 사람들은 알고 있나요?”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않단다, 아들아. 유대인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아직 수백만 명이나 있어. 바로 그 때문에 우리는 그들에게 말해 줘야 하고 유대인에 대비하게 해야 해. 우리도 우리 젊은이들에게 조심시켜야 해. 우리의 소년소녀들에게 유대인이 어떤 존재인지 알게 해야 한다고. 유대인이 이 세상에 가장 위험한 버섯이라는 점을 알아야 해. 버섯이 아무데서나 자라는 것처럼, 유대인도 세계 어느 나라에나 있어. 독버섯이 때때로 끔찍한 재앙을 가져오는 것처럼, 유대인은 가난과 고통, 전염병, 죽음의 뿌리야.”

유대인을 사회에서 축출하는 품위 없는 일에 만족을 느끼며 참여한 사람도 거의 없었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돕기 위해 적극적으로 항의하며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사람들은 체념하며 수동적인 태도를 보였고, 이는 그 자체로 더 심한 형태의 폭력을 암묵적으로 지지했다. 결국 사람들의 수동성과 체념은 전쟁 발발과 ‘최종 해결’이라는 극단적인 결과로 치달았다. 이는 나치 정권이 가장 크게 성공한 분야 가운데 하나였다. 무조건적 승인을 공공연히 받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수동적인 침묵은 얻어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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