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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떠도는 나날
1장 춤을 춘 쥐 2장 생명 기계 3장 달리는 인간 4장 사막 5장 덫 6장 도마뱀과 인간 7장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날 2부 생각의 나날 8장 웃는 꼭두각시 9장 ‘나쁜 땅’과 학교 10장 틈과 눈 11장 키가 자라는 그림자 12장 시련이 다가올 때 13장 매들린 14장 작은 죽음 15장 윌리 16장 편지 17장 유령 세계 18장 반지 속 춤꾼들 19장 괴이한 전쟁 20장 손금쟁이 3부 의심의 나날 21장 푸른 벌레 22장 말하는 고양이 23장 엄청나게 큰 말벌들이 오다 24장 시간 교역자들 25장 대문자의 다른 노름꾼 |
Loren Corey Eiseley
金正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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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이란 늘 폐허를 갖고 짓는 거지만, 고고학자라면 누구나 알 듯, 그 모든 방을 발굴하거나, 묻혀진 길들을 따라가거나, 보물을 찾아 그 모든 저수지를 파볼 방법은 결코 없다. 우리는 그곳에 살던 이가 누구든 그에게 그 폐허가 어떤 의미였는지 알려 노력하고, 운이 좋으면 시간을 약간 거슬러 올라갈 길을 보게 되는 것이다.
--- p.2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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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로렌스라는 소읍의 산타페 기름차량 측면 주행로에서 졸고 있었다. 캔자스로 돌아왔다. (……) 갑자기 뜬숯에 찔려 나는 잠이 깼다. 다행히 무거운 것은 아니었지만, 내 얼굴로 떨어진 것이다. 갑자기 욕을 동반한 일제사격이 뒤따랐다. 알았어야 하는 건데. 언제나 능률적인 산타페. 세상에, 그 길을 얼마나 증오했던지. 자기네 보안경찰이 없으면, 그들은 읍 경찰을 부추기는 솜씨까지 구사했다. (……) 그렇게 작은 읍이 햇빛 그을린 부랑자 한 명에게서 뭐 대단한 걸 뽑아내겠는가. 내가 옳았다. 일제사격이 멈추고, 욕질이 사라졌다. 그리고 멀리 어디쯤에서 열차가 다시 굴러가기 시작했다.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비록 당시엔 깨닫지 못했지만. 육 년인가 칠 년 후 나는 바로 그 읍에서 선생 경력을 시작할 것이었다. 그곳에 주립 대학이 있다는 것을 나는 모르고 있었다.
--- pp.87~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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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경 대신 월계관을 써야 마땅한 올림포스 출신 권투선수가 있었다. 내 미래에 대해 그는 어떤 메시지를 갖고 있었을까? 딱히 뭐라 말할 수가 없다. 그는 그리스의 순수한 햇빛 속 어디쯤, 시간이 손을 거둔 곳으로 돌아가 있는 상태였다. 지금도 나는 그가 늙었을 거라고 생각할 수 없다. 마음이 그 생각을 그냥 거부해버린다. 아무렴, 그는 훌륭한 동지처럼 몇 세기를 넘어와 오디세우스의 배라도 되는 듯 플랫폼에 우리와 함께 누웠던 거였다. 팔꿈치 하나에 기대고 자는 그를 쳐다보았다. 한 팔을 아무렇게나 내팽개쳤는데, 순전히 무신경하고 통합근육적인 자만이 알고 있는 식이었다. 강철 스프링이 휴식을 취한다면 그런 식일까. 그는 아무 메시지도 주지 않았다. 그는 말한 적이 없다. 그는 너무도 높은 육체적 집중의 절정에 그냥 존재했으므로 그 주변 사람들은 누구나, 나 자신까지 포함하여, 망가지고 불완전해 보였다.
--- p.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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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의 과거를 발견해야 한다. 거기까지는 인정한다. 이제까지 나의 직업이 그거였다. 우리가 우리의 한계를 알고 장차 연민으로 생을 견디려면 그 길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제 믿는다. 무덤이 감춰져 있더라도, 비취 가면의 망자가 그냥 사원 중심부에서 잠을 자고 있더라도, 그리고 그 사원이, 또한, 침식해 들어오는 우림을 표시하는 기는 듯한 부벽 아래 쉬고 있더라도, 상관없이 지구가 우리 이야기를 말해줄 때가 있다는 것을.
--- p.1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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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가 우리에게 남긴 가장 아름답고 슬픈 자서전
『그 모든 낯선 시간들(부제: 어떤 생의 발굴)』(1975)은 캐나다에서 멕시코까지 사막과 협곡, 산지들을 누비며 광대한 시간의 비밀과 진화의 과정을 추적해온 고고학자 로렌 아이슬리가 남긴 자서전이다. 아이슬리는 탐사 망치를 들고 외롭게 분투하며 과거의 흔적들 속에서 인생을 보낸 과학자임과 동시에 ‘시인의 재능을 가진 과학자’라고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글쓰기로 정평이 난 작가이기도 했다. ‘20세기 과학자가 남긴 가장 아름다운 지적 유산 중 하나’ ‘현대의 고전’이라는 찬사를 받은『광대한 여행』, 출간 당시 미국 파이베타카파(Phi Beta Kappa)의 과학부문 최우수도서로 꼽혔던『다윈의 세기』, 언제나 수많은 청중을 몰고 다녔던 강연을 묶은『시간의 창공』등 여러 저작을 통해 아이슬리는 자연과학 저술가로서 확고한 명성을 얻었으며, 인간과 과학을 특권화하지 않고 자연과 세계를 해석하는 그의 과학관은 그에게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를 넘어서는 ‘20세기 최고의 자연주의자’는 호칭을 안겨주었다. 잊혀진 시공간의 탐구자 로렌 아이슬리, 스스로에 대한 고고학적 기억을 불러내다 이 먼지 가득한 자서전에서 아이슬리는 자신의 생애가 마치 화석이라도 되는 것처럼 기억의 단편들을 조심스럽게 끄집어내 관찰한다. 이 책의 부제가 말하는 대로 그것은 ‘어떤 생의 발굴’이다. 아이슬리의 자서전을 읽고 시간 순서대로 그의 인생을 정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책은 통상적인 자서전의 서술 방식을 따르지 않는다. 아이슬리의 성장 과정이나 인간관계, 혹은 일상적 삽화를 친절하게 드러낸 부분을 찾아보기 힘들다. 형식적으로 1부 ‘떠도는 나날’이 대공황 시절 화물열차를 타고 사막을 떠돌던 시간을, 2부 ‘생각의 나날’이 대학에서 보낸 시절, 즉 그의 사상이 태동하고 자리잡아가는 시기를, 3부 ‘의심의 나날’이 그의 말년을 다루는 연대기적 골격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다. 기억은 불쑥불쑥 떠올랐다가 어디선가 툭 끊어지고, 갑자기 다른 시간의 기억으로 넘어간다. 무의미해 보이던 돌 하나가 묵상의 대상이 되는가 싶더니 어느덧 과거의 숭고한 영역으로 흘러들어가 우주의 시간을 응축해놓은 비밀들을 풀어놓는다. 어떤 단편적인 이미지가 기억과 기억 사이를 유령처럼 떠돌다가 갑자기 현재의 생을 응시하던 만화경이 방향을 바꾸고 모든 것이 재배치된다. 자서전은 이렇게 연대기적 순서가 아니라 그의 의식이 방랑하는 시간을 따른다. 사막을 떠도는 나날 아버지의 죽음 후, 학문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품고 고향 네브래스카 주 서부 황무지에서 화물열차와 우편열차에 닥치는 대로 올라타 사막을 가로지른다. 그와 누더기 차림의 다른 부랑자들은 “뜨는 태양 아래 낑낑대며 동쪽을 향하는 화물차 지붕 위에 올라타” 흔들리는 열차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노끈으로 오른쪽 손목과 열차를 묶고 황량한 네바다 사막을 달렸다. 일단 떠나왔지만 가야 할 방향은 알지 못했다. 대공황기 모두가 먹을 것과 잠자리를 찾아 헤매던 시절, 어디에나 폭력이 있었다. 언제 권총강도로 변할지 모르는 부랑자 무리에 섞여 있다가, 화물열차 보조차장에게 “머릿속에서 붉은 살인 충동의 철사줄”이 고동칠 정도로 얻어맞기도 하고, 부랑자에게 증오를 품고 있는 어느 마을에서 경찰의 총격을 받기도 한다. 그렇게 해서 펜실베이니아 대학에 등록하기까지 십 년의 세월이 걸린다. 침묵의 기억, 어머니 『그 모든 낯선 시간들』은 흔히 자서전류를 채우기 마련인 이러저러한 인간관계에 대해 무심하다. 심지어 아내와의 만남에 대해서도 저자의 서술은 인색하다. 그런데 어떤 경우 아이슬리의 삶을 잠깐 스쳐지나간 몇몇 사람들에 대한 묘사는 놀라울 정도로 생생하다. 이는 아이슬리가 그의 생을 발굴하는 작업, 즉 자신을 형성한 근원을 짚어가는 작업과 상관없는 이야기는 철저히 배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신 어떤 기억을 환기시키거나 사유를 발전시키는 대상들에 대한 묘사는 그들이 아이슬리의 고고학적 호기심을 자극하기라도 한 것처럼 생명력이 넘친다. 과거로의 여행자, 미래의 예언자 “나는 무지를 견딜 수 있다. 그것이 나의 철학이다.” 아이슬리는 태어난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어느 시간에도 뿌리내리지 못했다. 그의 육체가 아닌 정신이 살아 움직이는 곳은 과거의 세기였고, 그 시대가 “그가 피와 살로 거주하는 세기보다 더 현실적으로 될 수” 있었다. 그렇다고 아이슬리는 시간의 고리들을 잇는 새로운 증거들을 찾기 위해 모든 것을 불사하거나 과거를 발굴하여 전리품처럼 현재를 장식하려고 하는 괴물과도 같은 열정에 사로잡힌 사람은 아니었다. 아이슬리는 비어 있는 지도를 전부 채우려 하지 않았다. 존재는 존재로 부재는 부재로 그냥 놓아둘 줄 아는 사람, 침묵에 접근하는 법을 아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대지를 사랑했으나 머물 수 없었다. 그가 자서전을 쓰던 1975년, 69세의 아이슬리의 머릿속에 폭군처럼 자리한 짐승이 아이슬리의 펜을 움직였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야만성, 나 자신에 대한 나의 야만성이, 오로지 이 페이지에, 한 번 또 한 번 그 내용을 휘갈겨” 썼다. 그 기억은 단절적이고, 일방적이고, 불완전하다. 아이슬리 자신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세계를 분석할 때 “언제나 충실한 개처럼 진정으로, 무지가 따랐”던 것처럼, 자신의 기억을 다룰 때도 그 한계를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렇게 너무 많은 것을 설명하지 않으면서,『그 모든 낯선 시간들』은 그가 사랑한 과거의 위대한 피조물들, 그리고 그의 의식 뒤편을 무겁게 짓누르던 황폐한 기억 속에서 그가 벌인 내면의 싸움을 너무나도 아름답게 펼쳐 보여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