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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글 - 21세기에 더욱 유용한 쇼펜하우어의 걸작
프롤로그 - 모든 토론술의 기초에 대하여 1장 강하게 공격하는 기술 1. 동기부여를 통해 의지에 호소한다 2. 자신이 누리고 있는 권위를 최대한 활용한다 3. 논증이 안된 내용을 기정사실화하여 전제로 삼는다 4. 자기에게 유리한 비유를 신속하게 선택한다 5. 불합리한 반대 주장을 함께 제시해 양자택일하게 한다 6. 내용이 없는 말을 심오하고 학술적인 말로 둔갑시킨다 7. 상대방의 대답을 근거로 자기 주장의 진실성을 확보한다 8. ‘예’라는 대답을 얻어낼 수 있는 질문을 던진다 9. 상대방을 화나게 만들어 올바른 판단을 방해한다 10. 말싸움을 걸어 무리한 주장을 하도록 유도한다 11. 뜻밖의 화를 낸다면 그 부분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 12. 상대방의 침묵은 곧 상대방의 약점이다 2장 더 강하게 반격하는 기술 13. 상대방의 주장을 최대한 넓게 해석해 과장한다 14. 동음이의어를 이용해 교묘하게 반박한다 15. 상대적 주장을 절대적 주장으로 바꿔 해석한다 16. 전문지식이 부족한 청중들을 이용해 반박한다 17. 상대방의 말과 행동이 모순되는 지점을 찾는다 18. 상대방의 논거를 역이용해 반격한다 19. 단 하나의 반증사례만으로 상대방을 제압한다 20. 사안을 일반화하여 보편적인 관점에서 반박한다 21. 상대방의 주장을 이미 반박된 범주 속에 집어넣는다 22. 틀린 증거를 빌미삼아 정당한 명제까지도 반박한다 23. 상대방의 궤변에는 궤변으로 맞선다 3장 결론을 이끌어내는 기술 24. 상대방이 자신의 결론을 미리 예측하지 못하게 한다 25. 결론을 이끌어내는 질문은 두서없이 한다 26. 참 전제가 안 통하면 거짓 전제로 결론을 도출한다 27. 거짓추론과 왜곡을 통해 억지 결론을 끌어낸다 28. 근거가 되지 않는 답변마저도 결론의 근거로 삼는다 29. 개별 사인의 시인을 보편적 진리에 대한 시인으로 간주한다 30. 몇 가지 전제들에 대한 시인만으로도 얼른 결론을 내린다 4장 위기에서 탈출하는 기술 31. 반격당한 부분을 세밀하게 구분해 위기를 모면한다 32. 상황이 불리하다 싶으면 재빨리 쟁점을 바꾼다 33. 상대방에게 유리한 논거는 순환논법이라고 몰아붙인다 34. 질 것 같으면 진지한 태도로 갑자기 딴소리를 한다 35. 반론할 게 없으면 무슨 소린지 못 알아듣겠다고 말한다 36. 이론상으로는 맞지만 실제론 틀리다고 억지를 쓴다 37. 불합리한 주장을 증명하기 힘들면 아리송한 명제를 던진다 38. 인신공격은 최후의 수단이다 에필로그 - 논쟁적 토론술이란 무엇인가? |
Arthur Schopenhau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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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어떤 철학자가 특정한 철학적 도그마를 옹호할 경우, 우리는 그것이 그가 속한 교단의 근본교리와 간접적으로 배치된다는 점을 그에게 인식시켜 주면 된다. 그러면 그는 자기 주장을 금방 거두어들일 것이다. 많은 땅을 소유하고 있는 어떤 부자가 증기기관이 많은 사람들이 할 일을 대신하고 있는 영국의 기계생산 방식의 우수성을 옹호할 경우, 우리는 얼마 후에는 마차도 증기기관으로 대체될 것이고, 그러면 그의 목장에 있는 수많은 말들의 값도 폭락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이해시켜 주고, 그가 어떻게 나오는지 살펴보면 된다. 청중이 우리와 같은 종파나 길드, 직업, 클럽에 속한 사람들이고, 상대방은 그렇지 않을 경우에도 우리는 이 기술을 사용할 수 있다. 이 경우 지금까지 상대가 내세운 주장이 아무리 옳은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의 주장이 앞에서 예로 든 종파나 직업 등의 공동 이익에 배치된다는 사실을 암시해 주기만 하면 된다. --- p.23~24
이쯤 되면 나머지 사람들도 보편타당한 것으로 간주되는 그 견해를 따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이 보편타당한 견해에 반대하는 정신 나간 사람으로 간주되거나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체하는 건방진 놈으로 취급당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이제 이 견해에 동의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의 의무가 된다. 그리고 지금부터 스스로 판단할 능력이 있는 얼마 되지 않는 사람들도 침묵해야만 한다. 이 상황에서 말을 꺼낼 수 있는 사람은 자기 나름의 고유한 의견이나 판단을 내놓을 능력이 전혀 없고, 앵무새처럼 남의 의견을 따라가기만 하는 사람들뿐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만큼 더 역설적이고, 편협하게 이 견해의 방어자 노릇을 하게 된다. 그들이 자신과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을 증오하는 이유는 그가 자신들과는 다른 견해를 가졌기 때문도 아니고, 스스로 판단을 내리고자 하는 오만함 때문도 아니다. 오히려 그들 스스로 이런 의견 개진이나 판단을 내릴 수 없다는 사실을 은연중에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 p.34~35 상대가 우리 주장을 받아들이도록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원래보다 더 불합리한 반대 주장을 함께 제시하고 그에게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 특히 이때 이 반대되는 내용을 큰 소리로 강조해야만 한다. 이렇게 하면 그는 스스로 논리의 모순에 빠지지 않기 위해, 이것에 비해 훨씬 더 타당성이 있어 보이는 우리의 주장을 수용하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아버지의 말에 순종해야 한다는 우리 주장을 상대방이 시인할 수밖에 없게 만들려면, 상대방에게 이렇게 물어야 한다. “모든 일에 있어서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까, 아니면 복종하지 말아야 합니까?”또는 상대방이 어떤 사실에 대해 ‘자주’라는 말을 사용하면, ‘자주’라는 말을 ‘적은 경우’로 이해해야 하는지, 아니면 ‘많은 경우’로 이해해야 하는지 물어야 한다. 그러면 그는 ‘많은 경우’라고 말할 것이다. --- p.45~46 자기 주장의 정당성을 논증하기 위해 상대로부터 ‘예’라는 대답을 기대하고 던진 질문에 대해, 상대가 의도적으로 ‘아니오’라고 대답할 것 같은 분위기를 눈치 챘다면,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내용을 상대방에게 물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우리는 그에게 마치 우리가 원래 의도한 것과는 반대되는 내용에 대해 긍정적인 답을 얻으려고 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을 것이다. 최소한 우리는 그에게 두 가지 가능성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고민에 빠지게 만들어, 우리가 어떤 것에 대해 긍정적인 답변을 얻으려고 하는지 눈치 채지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 --- p.51 이음동의어(Synonyma)는 동일한 개념을 표현하는 두 개의 다른 낱말인 반면, 동음이의어(Homonma)는 같은 낱말을 사용하긴 하지만 두 가지 서로 다른 개념을 갖는 단어이다. 예를 들어 ‘깊다’, ‘잘리다’, ‘크다’등의 낱말은 물체나 소리에 같이 사용될 수 있는 동음이의어이고, 독일어의‘Ehrlich'와‘ Redlich’는 발음은 다르지만 둘 다 ‘정직하다’라는 뜻을 가진 이음동의어이다. 이것은 상대방의 주장을 단어의 동일성 외에는 토론의 내용과 전혀 연관성 없는 내용으로까지 확대 해석한 다음, 이것을 분명하게 반박함으로써 상대방의 주장을 물리친 듯이 보이게 만드는 기술이다. 이 기술은 궤변론에서 사용하는 동음이의어와 동일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궤변론에서 공공연하게 사용되는 동음이의어는 장난기 있게 상대방을 기만할 목적으로 사용된다. --- p.64~65 상대방이 어떤 주장을 펼칠 때, 우리는 그의 주장이 어떤 방식으로든, 안 되면 겉으로 보이는 것만이라도, 그가 이전에 주장했거나 시인했던 내용과 모순되지 않는지, 혹은 그가 칭송하고 인정하는 학파나 종파의 원칙, 또는 이 종파의 신봉자들의 행동, 심지어 진실하지 못한 사이비 추종자들의 행동이나 그런 주장을 펴는 상대방의 행동과 모순되지 않는지의 여부를 조사해봐야 한다. 예를 들어 그가 자살을 옹호한다면, 우리는 지체 없이 “그러면 왜 당신은 목을 매지 않습니까?”라고 반박하면 된다. 또는 그가 “베를린은 잠깐 머물기에는 불편한 도시입니다.”라고 주장한다면, 곧바로 우리는 “그러면 왜 당신은 첫 기차라도 잡아타고 당장 이곳을 떠나지 않으십니까?”라고 맞받아치면 된다. --- p.76 상대방이 참인 전제를 인정하지 않을 경우, 자기 주장의 진실성을 증명하기 위해 우리는 거짓 전제를 사용할 수 있다. 즉 상대방이 이 전제의 진실성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해 우리의 전제를 받아들이지 않을 때가 있다. 이때 우리는 그 자체로서는 거짓이지만, 논쟁 상대와 연관해서는 참이 되는 전제들을 내세우고, 상대방의 사고방식을 이용하여 우리 주장의 참됨을 인정받을 수 있다. 왜냐하면 참 전제로부터 거짓 결론은 결코 나올 수 없지만, 참된 결론은 거짓 전제로부터 도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상대방의 거짓 주장을 또 다른 거짓된, 하지만 상대는 참이라고 믿고 있는 주장을 통해서 반박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이 논쟁에서 우리의 상대는 바로 그이며, 따라서 그의 사고방식을 이용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그가 우리가 인정하지 않는 종파의 추종자라면, 그를 상대로 우리는 그 종파의 잠언을 논쟁의 전제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 p.93~94 상황이 내게 유리하게 끝날 것 같자, 그는 곧바로 화제의 전환을 시도했다. 그는 중국에는 죄를 지으면 신분을 막론하고 누구나 ‘태형(주로 발바닥을 치는 처벌-옮긴이 주)’이라는 벌을 받게 된다고 말하면서, 이것을 차를 많이 마시는 중국인들의 문화와 연결시켜, 이 두 가지 문화를 모두 비난했다. 이 때 그의 말에 모두 동의하는 사람은 그의 작전에 말려들어 논점으로부터 이탈하게 되며, 이로 인해 다잡은 승리를 손에서 놓치게 될 것이다. 진행중인 논쟁의 쟁점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기 위해서는 매우 뻔뻔스럽게 화제의 전환을 시도해야만 한다. 이를테면 그것은 다음과 같이 시작해야 한다. “좋아요. 얼마 전에 이런 주장을 하시지 않았나요?” 왜냐하면 화제의 전환은 일정 부분 객관성이 결여된 인신공격에 가까운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마지막 38번에 가서 자세히 다루겠다. 좀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화제의 전환은 인신공격과 논쟁 상대방과 연관된 논증 사이의 중간단계이다. --- p.104~105 상대방이 탁월한 사람이라 우리가 도저히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 인신공격이나 모욕 그리고 무례한 행동으로 공격을 해야 한다. 인신공격의 핵심은 논쟁의 내용(이 부분에서 우리는 패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을 떠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논쟁 상대와 그의 인격에 대해 공격하는 데 있다. 이것은 논쟁 상대와 연관된 논증과 구분하여‘인신공격을 통한 논증’이라고 불린다. 논쟁 상대와 연관된 논증이 순수 객관적인 내용, 다시 말해 상대방이 말했거나 시인했던 내용을 근거로 하여 출발한다면, 인신공격에서는 이런 객관적인 내용을 완전히 무시한 채 논쟁 상대의 인격을 공격의 목표로 삼는다. 즉 논쟁 상대에게 악의적인 독설을 퍼부음으로써 그의 마음에 상처를 주거나 거친 말을 사용하여 그의 인격을 모욕해야 한다. 이것은 이성적인 능력에 호소하기보다는 육체적인 능력과 야수성에 호소하는 기술이다. 이것은 매우 애호되는 기술인데, 그 이유는 누구나 이 기술을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이 기술이 매우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음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 p.114~115 ‘토론술(Dialektik)’과 ‘논리학(Logik)’이라는 말이 고대로부터 동의어로 사용되어온 까닭에, 이 두 단어의 의미를 자유롭게 구분해 낼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내가 바라는 바로는 ‘논리학’ ‘(숙고하다’, ‘계산하다’, ‘언어’, ‘이성’이라는 뜻의 희랍어 어원을 가지고 있음)은 ‘사고의 규칙’, 즉 ‘이성의 합리적 작용방식’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으로 정의되었으면 좋겠고, ‘토론술’ ‘( 담판을 벌이다’는 뜻의 희랍어 어원을 가짐)은 ‘논쟁하는 기술’로 정의되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가정한다면, 논리학은 모든 외적인 강요로부터 벗어나 순수하게 진리탐구만을 목적으로 한다. 다시 말해 논리학은 우리에게 어떤 외적인 강요 없이 순수한 생각으로 진리를 발견할 수 있게 하는 법칙이나 이성의 합리적 작용방식을 규명하는 학문이다. --- p.122 토론술을 순수하게 이론적으로 정립하기 위해서는 객관적 진리에(이것은 논리학의 문제) 대해서는 신경 쓰지 말고, 이것을 단순히 논쟁에서 이기는 기술 정도로 간주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우리 주장이 그 자체로 정당할 경우, 논쟁에서 이기는 것은 훨씬 더 쉬울 것이다. 하지만 토론술 자체는 모든 유형의 공격에 대해서, 특히 정직하지 않은 공격에 대해서, 자신을 방어하는 기술과 함께 자기모순도 없고, 반증의 여지를 전혀 남기지 않은 채 상대방의 주장을 공격하는 기술도 가르쳐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우선 객관적 진리를 순수하게 발견하는 것과, 자신의 주장이 진리로 간주될 수 있게 만드는 기술을 구분해야만 한다. 전자는 학술논문 한 편에서 다루어야 할 문제이고, 판단력과 깊은 생각 그리고 경험이 필요한 작업이며, 이를 위해서는 특별한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후자에서는 토론하는 기술이 목적이다. 사람들은 이것을‘허구의 논리학’이라고 정의하는데,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토론술은 거짓 주장들을 방어하는 데에만 사용되어야 할 것이다. --- p.130~1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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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술의 마키아벨리즘!
이 책은 객관적 진리를 탐구하기 위한 고상하고 점잖은 토론 지침서가 아니다. 왜냐하면 이 책은 토론에서 이기는 법, 다시 말해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청중들에게는 자신이 정당하게끔 보이게 만드는 기술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정말 철저하게 쇼펜하우어적이다. 이 책을 관통하고 있는 쇼펜하우어의 정신은 인간과 세계에 대한 염세주의이다. 쇼펜하우어는 확대해석하기, 딴청 부리기, 말꼬리 잡기, 인신공격하기 등등 논쟁과 토론에서 등장하는 갖가지 트릭들을 낱낱이 들춰내 보여준다. 쇼펜하우어에 따르면 논쟁에서는 인간의 사악한 본성 때문에 쟁점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논거를 이용할 수 있다. 너무 야비하고 치사한 거 아니냐고?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우리는 이러한 사실에 전혀 의아해 하지 않을 것이다. 논쟁의 이면에 숨겨진 술책에 대처하는 지혜! 그러나 쇼펜하우어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오직 논쟁에서 이기는 기술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 책의 진가는 상대방을 이기는 것 못지않게 잔꾀에 능한 상대방을 만났을 때 어떻게 대처하라는 방어적 성격을 강조하는 데서 더욱 두드러진다. 즉 오직 이기기 위한 전술을 가르쳐주기보다는 그런 전투적인 사람들을 만났을 때 어떻게 대처하라는 생존의 지혜를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쇼펜하우어는 이 책을 통해 논쟁과 토론에서 쏟아져 나오는 간계의 실체를 속속들이 들춰냄으로써 누구나 실제의 논쟁과 토론에서 부정직한 기만책들을 금방 알아차리고 나아가 그것들을 물리치게 되기를 소원했다. 헤겔과의 악연이 빚어낸 걸작! 대철학자 쇼펜하우어가 대체 무슨 생각으로 논쟁과 토론에 대한 책을 썼을까 하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사실 쇼펜하우어가 이 책을 내게 된 데는 헤겔과의 악연이 한몫하고 있다. 헤겔과의 인연은 베를린대학 재직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주류였던 헤겔의 철학을 멸시하던 차에 베를린대학 강사로 초빙된 쇼펜하우어는 의식적으로 헤겔과 같은 시간대에 강의를 개설했으나 치욕적인 패배를 당하고 결국 학교를 떠나게 된다. 그 이후 30년 가까이 은둔한 후 쓸쓸히 생을 마치기 전까지 쇼펜하우어는 평생에 걸쳐 헤겔이 현실성 없는 책상철학자, 그리고 뛰어난 수사학으로 인류를 현혹하는 소피스트라고 비난했었다. 이 책은 그런 ‘협잡꾼 헤겔과 그 도당’들의 교묘한 수사학에 대적하기 위해 고안된, 쇼펜하우어로서는 그야말로 절치부심한 끝에 탄생시킨 엄청난 결과물인 셈이다. 추천사 토론술과 논리학의 차이점을 통해 논쟁적 토론의 본질을 알 수 있게 해준다. 또한 실제 논쟁에서 구사할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토론전략을 실례를 들어 설명해 주고 있어 토론 공화국 시대의 토론 지침서라고 할 만하다. _허경호(경희대학교 언론정보학부 교수) 저자는 객관적으로 누가 옳은지에 관계없이 토론을 승리로 이끄는 여러 가지 방법을 설명한다. 확대해석하기, 딴청 부리기, 말꼬리 잡기, 인신공격, 궤변으로 맞서기, 억지 쓰기 등 온갖 잔꾀와 속임수가 꼬리를 문다. 이같은 ‘사술(詐術)’을 적나라하게 보여줌으로써 논쟁과 토론에서 쏟아지는 간계와 기만의 실체를 알아차리도록 돕는다. _한국경제신문 염세주의자인 쇼펜하우어는 이 책을 통하여 엄숙과 고상을 가장한 인간의 야비하고 사악한 술책을 통째로 드러냄으로써 역설적으로 진정한 토론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말하고자 한다. 논쟁에서 이기는 것을 즐기는 공격적인 토론가가 아니라면 잔꾀에 능한 상대를 만났을 때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법을 익히는 지침서로 활용해도 좋을 듯하다. _서울경제신문 19세기에 나온 책이지만, 21세기 독자들의 요구에 부응하여 나온 책인 것 같다. 이 책은 오늘날 사무실, 학교, 대학교, 인간관계 등에서 만능무기로 사용되고 있는 수사학을 수단으로 논쟁에서 이긴 강자가 정당성을 획득한다는 사실을 다루고 있다. _독일 아마존 독자서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