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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피오르드 건너편의 강
어린 나무의 눈을 털어주다 검은 십자가들 살얼음 바위산 아래 외로움의 산 뒤편에서 추와 종 동족 피오르드 건녀편의 강 만남 천천히 진실이 떠오른다 아직 시간이 있다 봄의 피오르드 다시 노래하다 내게 진실의 전부를 주지 마세요 커튼을 열다 산에게 해안에서 저녁 구름 산사태 큰 집은 춥다 겨울날 이백에게 눈 내린 저녁 노래여, 살며시 내 마음을 밟고 가라 2부 고양이 그다음엔 나는 슬픔이었다 진실 일상 늪을 건너며 오필리아 정상에서 고양이 씨앗 풍차 긴 낫 베르톨트 브레히트 화살과 총알 사포를 쓰지 말라 늙은 시인, 모더니스트가 돼보기도 하다 세 편 썼어 썩은 나무 둥치 가을이 오면 브라이어 꿈 3부 한 줄기 햇살에 모자를 걸지 않는다 밤사이 풀은 푸르러졌다 도연명 거둬들일 때 창가의 큰 사과나무를 벴다 5월의 볕 좋은 날 윌리엄 블레이크 이파리움막과 눈집 가르침 매일 시 한 편 언덕 꼭대기에 서서 소리치지 말라 파커 만년필에는 겨울을 보내고 집에 돌아오다 조금 위를 겨눈다 활과 화살과 함께한 여러 해의 경험 저 남자 한 줄기 햇살에 모자를 걸지 않는다 저울추 재받이를 비우다 새 식탁보 피오르드의 배 두 척 강 골짜기를 따라 오르며 잠 파울 첼란 비 내리는 어느 날 늙은 참나무 아래 멈춰 서다 스타레 미아스토 한국 추천의 말 | 고은 옮긴이의 말 | 황정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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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초역되는 노르웨이의 시성, 울라브 H. 하우게
노르웨이가 사랑하는 시인 하우게가 올해로 탄생 100주년을 맞는다. 1927년 만 19세의 나이에 데뷔, 38세의 다소 늦은 나이에 첫 시집 『재 안의 불씨』(1946)를 펴낸 하우게는 1980년까지 총 일곱 권의 시집을 출간했다. 이 시집들 안에 담긴 400편이 넘는 시들은 20세기 노르웨이 문학의 빛나는 성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고양이」와 같은 시는 노르웨이 사람들의 일상에서 아주 친숙하게 인용되는 소품으로 그가 노르웨이의 국민시인으로 일컬어지는 이유를 짐작케 한다. 바로 여기서 하우게 시의 첫 번째 특징을 감지할 수 있다. “그의 시로 들어서긴 수월했다,/나막신 두 짝처럼/문간에 놓여 있었으니.”(「베르톨트 브레히트」 부분) 하우게가 브레히트를 노래한 이 시는 하우게의 시 역시 그러하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의 시 세계는 무엇보다도 쉽고 평이한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제1의 특징으로 한다. 대중의 마음속에 살아 있는 시인이 문학적 성취를 동시에 이루는 일은 결코 흔치 않기에 노르웨이 문학에서의 그의 위치는 더욱 확고하다. 어쩌면 하우게의 시는 우리 앞에 너무 늦게 도착했는지도 모른다. 고은 시인은 “유라시아 대륙의 가장 서쪽에 있는 승화된 영혼이 이제야 가장 동쪽의 영혼을 만나러 왔다”는 말로 시집의 출간을 기념했다. 입센과 그리그의 나라, 피오르드 해안과 거친 북구의 신화로 기억되어온 노르웨이는 이제 하우게를 통해 한걸음 더 가까워질 것이다. 물리적 고립과 폭넓은 지적 소통이 빚어낸 우주적 시세계 울라브 H. 하우게는 1908년 노르웨이 서부 지역 울빅(Ulvik)에서 태어나 1994년 자신이 나고 자란 마을에서 세상을 떠났다. 20세기를 관통해 살다간 이 시인은 그러나 국경을 넘어 세계를 활보했던 당대의 다른 유명한 예술가들과는 판이하게 다른 생의 이력을 남겼다. 농업학교를 졸업한 뒤 한평생을 전문 정원사로 산 하우게는 십 대에서 오십 대에 이르기까지 정신질환으로 고통을 받기도 했지만 놀라운 지적 활력을 가진 인물이었다. 하우게는 영미 문학과 중국의 고대 문학을 비롯하여 문학, 철학, 종교, 정신분석에 이르기까지 여러 시대와 분야를 망라한 폭넓은 지적 소통을 이루어왔다. 한편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를 독학으로 습득해 이들 언어로 된 시를 번역하기도 했는데, 로버트 브라우닝과 같은 유명 작가들 외에도, 잘 알려지지 않은 외국의 문인들을 자국에 소개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고은 시인이 「추천의 글」에서 말했듯이 하우게가 “자신의 땅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면서도 세계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광활한 스펙트럼을 펼쳐”보였던 것은 그러한 삶의 두 가지 태도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북구의 풍광 속에 녹인 인간의 실존적 고뇌 옮긴이는 하우게를 낯설어하는 독자들에게, 그와 견주어 이해해볼 만한 좌표로 로버트 프로스트를 추천한다. 두 시인 모두 시 속에서 자연과 농촌의 삶을 그려냈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자연스런 연상으로 볼 수 있다. 옮긴이의 말에 의하면 이 두 사람의 연상이 갖는 흥미로운 대목은, ‘프로스트는 이런 시인일 것’이라는 일반적인 ‘인상’에 실제 프로스트 자신의 시보다 하우게의 시가 어쩌면 더 가깝지 않을까 한다는 것이다. 「가지 않은 길」이라든지 「눈 내리는 저녁 숲가에 멈춰 서서」같이 자연을 응시하는 가운데 삶의 진실을 드러내는 프로스트의 작품들을 좋아했던 독자라면 하우게의 관조적인 시선에서도 큰 기쁨을 얻을 수 있을 듯하다고 말한다. 가령 시집의 서시이자, 정원사의 질박한 마음을 담고 있는 「어린 나무의 눈을 털어주다」를 보면, 어두워지는 저녁, 눈 내리는 마당에서 나무의 눈을 털어내는 시인의 모습이 등장한다. 그는 “수확을 맺어본 나무”들과 대비하여 “바람 말고는 어디에고/숙이는 법을 /아직 배운 적” 없는 “어린 나무”를 염려하면서 인간의 실존을 투시하고 있다. 그 밖에도 피오르드, 바위산 등 주변 자연을 다룬 많은 시들이 있기도 하거니와 옮긴이는 사람들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야말로 하우게 시의 ‘프로스트적 인상’에서 주된 몫을 담당하는지 모른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시의 대부분이 어떤 매개를 거치지 않고 시인이 온전히 홀로 세계와 대면한 결과라는 것이다. 자연을 다룬 시 외에도 「추와 종」, 「노래여, 살며시 내 마음을 밟고 가라」, 「세 편 썼어」, 「이파리움막과 눈집」, 「매일 시 한 편」 등등 ‘시 쓰기’에 관한 시들과 「내게 진실의 전부를 주지 마세요」나 「잠」과 같이 소품처럼 느껴지는 시들 가운데 긴 여운을 남기는 시, 또 이백과 도연명, 베르톨트 브레히트와 윌리엄 블레이크, 에밀리 디킨슨, 파울 첼란과 같은 문학적 인물에 관한 시들도 나름의 재미를 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 시선집의 마지막에는 「한국」이라는 시가 실려 있어, 그가 대륙 저편에서 선험했던 한국전쟁의 고통은 우리의 역사를 되비추어보게 한다. 뿌리박지 않은 삶, 떠도는 삶이 유행이 되어버린 시대, 일평생 고향땅 울빅을 떠나지 않았던 하우게의 시는 역설적으로 정신적 유랑의 광활한 경지를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