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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외 교류 탐험을 떠나며
01 선사ㆍ고대 교류 캠프 첫째 일정, 선사 시대 교류의 현장에 가다 - 아프리카와 전곡리 사이-구석기 시대 인류의 대이동 - 바이칼 호수와 암사동 사이-신석기 시대 한국인의 형성 - 만주와 한반도 사이-최초의 국가 고조선 둘째 일정, 삼국 시대 교류의 현장에 가다 - 일본에 간 고구려, 백제 사람들 ㆍ별면: 일본 속의 백제 문화 - 중국에 간 신라 사람들 셋째 일정, 남북국 시대 교류의 현장에 가다 - 목숨을 걸고 동해를 건넌 발해 사신들 - 서해와 남해를 주름잡는 바다의 왕자 ㆍ별면: 고대의 이웃 나라들 02 중세 교류 캠프 첫째 일정, 고려 시대 교류의 현장에 가다 - '코리아'에 온 아라비아 상인 - 몽골에 간 고려 태자 둘째 일정, 조선 시대 교류의 현장에 가다 - 명나라 황제의 사절을 맞이하다 - 일본에 간 조선 통신사 - 청나라에서 서양 문물을 만나다 ㆍ별면: 1024년의 세계와 1408년의 세계 03 근대 교류 캠프 첫째 일정, 개항의 현장에 가다 - 일본이 개항을 강요하는 속뜻은? - 개화파와 척사파의 한판 승부 둘째 일정, 독립 외교의 현장에 가다 - 워싱턴에 간 독립운동가 - 모스크바에 간 독립운동가 ㆍ별면: 19세기 말의 세계와 1921년의 세계 대외 교류 역사 탐험을 마치며-세계 속의 대한민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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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조상은 강대국 옆에 살면서도 선진 문화를 받아들여 우리 것으로 만들었어, 그 덕분에 오늘의
우리가 있는 거야. 이번에는 조상들이 세계와 교류한 역사를 탐험해 보자!” 1) 선사ㆍ고대 교류 캠프 교통수단도 변변치 않던 석기 시대에 웬 대외 교류? - 선사 시대 교류의 현장에 가다 ‘대외 교류’를 주제로 10번째 역사 탐험에 나선 한국사 탐험대가 맨 처음 간 곳은 20만 년 전의 연천 전곡리. 마을도 듬성듬성 있고, 이렇다 할 교통수단도 없던 시대에 무슨 대외 교류가 있었을까 의아했지만 이곳 사람들이 쓰는 도구인 주먹 도끼는 무려 1만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아프리카에서도 발견된다고 한다. 아득한 옛날 구석기 시대에도 사람들이 멀리 이동하며 자기들의 문화를 퍼뜨려 왔다는 증거였을까?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빗살무늬토기가 발견되는 신석기 시대, 만주와 한반도에 광범위하게 돌칼이 발견되는 청동기 시대 등 선사 시대에도 꾸준히 이루어지던 문화 교류의 현장을 찾아간다. 치열한 외교전쟁! - 삼국 시대 교류의 현장에 가다 삼국 시대는 고구려?백제?신라가 한반도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던 시기였다. 따라서 중국이나 일본 같은 이웃 나라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외교 전쟁도 치열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일본에 갖가지 문화를 전해 주는 등 문화 교류를 게을리 한 것은 아니었다. 일본과 중국으로 가서 문화를 전해 주고 외교력을 발휘하던 담징과 김춘추를 만나 보자. “전쟁할 힘이 있으면 격구나 하며 놀지!” - 남북국 시대 교류의 현장에 가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고 옛 고구려 땅에 발해가 새로 들어서면서 두 나라가 나란히 공존하던 시대를 남북국 시대라 한다. 고구려 ? 백제 ? 신라가 서로를 제압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였던 앞 시대와는 달리 이때는 두 나라 모두 번영을 구가했고, 외교적으로도 평화를 지향했다. 발해는 신라와의 전쟁에 도움을 요청하던 일본의 요구를 거절했다. 일본에 가서 격구를 즐기던 발해 사신은 마치 “싸울 힘이 있으면 격구나 하며 놀지!”라 말하고 있는 듯하다. 2) 중세 교류 캠프 코리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고려 시대 교류의 현장에 가다 고려는 우리 역사에서 처음으로 고구려 ? 백제 ? 신라의 진정한 통합을 이루었다. 뿌리가 다른 백성들을 하나로 묶으려다 보니 개방적이고 포용력 있는 나라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외국 문화에 대해서도 무척 열려 있었고, 아라비아 상인을 비롯한 외국인도 많이 드나들었다. ‘코리아’라는 우리나라의 해외 명칭도 고려에 왔던 아라비아 사람들이 퍼뜨렸다고 한다. 고려의 국제 무역항 벽란도를 시작으로 고려 시대의 대외 교류상을 살펴보자. 사대와 교린으로 이룩한 평화! - 조선 시대 교류의 현장에 가다 조선 시대 하면 사대 정책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사대 정책이 단순히 힘센 나라에게 몸을 굽히는 것으로만 여긴다면 그건 오해다. 조선은 힘에 대한 현실적 판단에 기초하여 문화 국가를 지향했고, 문화적으로 뛰어난 나라를 존중했으며 단지 힘만 센 나라에 대해서는 자존심을 굽히지 않았다. 명나라에 대한 사대 정책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한편 중국 이외의 나라에 대해서는 대등한 차원에서 평화롭게 사귀는 교린 정책을 취했다. 조선에 온 명나라 사신과 일본에 간 조선 통신사를 통해 사대 교린 외교의 실상을 알아본다. 3) 근대 교류 캠프 일본이 개항을 강요하는 속뜻은? - 개항의 현장에 가다 1876년 강화도. 조선과 일본 대표들의 회담장인 연무당에는 싸늘한 공기가 감돌고 있었다. 일본 대표들은 일본 배가 강화도에 무단으로 접근하면서 벌어진 운요 호 사건을 트집 잡아 개항을 하라고 윽박질렀다. 그로부터 닷새 뒤의 서울 광화문. 최익현이 경복궁을 향해 꿇어앉아서 목숨을 걸고 개항에 반대하는 장문의 상소를 올리고 있었다. 도대체 개항이 무엇이기에 일본에서 그렇게 강경하게 요구한 것일까? 그리고 최익현은 왜 자기의 목숨을 걸면서까지 그에 반대했을까? 조선이 근대 세계로 끌려들어가던 19세기 말, 개화파와 위정척사파의 치열한 대결 현장을 살핀다. 워싱턴과 모스크바에서 외치는 ‘대한독립만세’! - 독립 외교의 현장에 가다 강화도 조약이 체결되고 34년, 조선은 결국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우리나라는 지도에서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나라의 이름을 내건 대외 교류가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중국 상하이에 임시 정부를 세운 독립 운동가들은 미국과 소련 등을 분주하게 오가며 힘겹지만 끈질긴 독립 외교를 펼쳤다. 워싱턴과 모스크바에서 독립을 호소한 이승만과 여운형을 만나 당시의 상황을 들어 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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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옛날부터 세계의 이웃들과 교류하며 살아온 우리 역사를 바로 보자.
이 세상의 어떤 민족도 다른 민족과 교류하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다. 세계가 한 마을처럼 가까워진 오늘날에는 더더욱 그렇다. 이 책에서 우리는 종교, 학문 등을 주고받는 문화 교류, 나라 사이에 정치적 관계를 맺는 외교, 필요한 물건을 주고받는 무역의 역사를 탐험할 것이다. 그러면서 다른 나라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세계 속의 한국인으로서 바람직한 태도는 무엇인지 살펴볼 것이다. 평화를 추구하며 문화적 교류를 주도했던 우리 역사에 대한 자긍심을 기르자. 우리 역사를 돌아보면 외교나 무역이 침체된 적은 있어도 학문, 예술 같은 문화 분야의 교류에서 남부끄러웠던 적은 없었다. 우리 역사에서 외교와 무역이 가장 원활한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그에 비해 우리 시대 문화 교류는 그다지 활발하지 못했던 감이 있었다. 또 한민족이라는 민족의식이 앞서 다른 민족이나 나라에 대해 개방적인 의식을 갖지는 못하기도 했다. ‘한국사 탐험대 10 - 대외 교류’는 역사 속 우리 선조들이 주변국과 끊임없이 교류해 왔고, 엄마 아빠,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나라 힘을 키우고 돈을 버느라 애썼던 사실을 일깨워주며, 그들이 자라서 우리 문화를 키우고 세계 사람들과 이를 나누는 데 힘쓰도록 북돋아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