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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의 사금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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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의 사금파리
손때 묻은 동화
박완서
열림원 2002.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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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그때를 아십니까

저자 소개 1

朴婉緖

1931년 경기도 개풍 출생. 1970년 불혹의 나이에 『나목(裸木)』으로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당선되어 문단에 나온 이래 2011년 영면에 들기까지 40여 년간 수많은 걸작들을 선보였다.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배반의 여름』 『엄마의 말뚝』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친절한 복희씨』 『기나긴 하루』 『미망』 등 다수의 작품이 있고, 한국문학작가상 이상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이산문학상 중앙문화대상 현대문학상 동인문학상 한무숙문학상 대산문학상 만해문학상 인촌상 황순원문학상 호암상 금관문화훈장 등을 수상했
1931년 경기도 개풍 출생. 1970년 불혹의 나이에 『나목(裸木)』으로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당선되어 문단에 나온 이래 2011년 영면에 들기까지 40여 년간 수많은 걸작들을 선보였다.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배반의 여름』 『엄마의 말뚝』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친절한 복희씨』 『기나긴 하루』 『미망』 등 다수의 작품이 있고, 한국문학작가상 이상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이산문학상 중앙문화대상 현대문학상 동인문학상 한무숙문학상 대산문학상 만해문학상 인촌상 황순원문학상 호암상 금관문화훈장 등을 수상했다. 2006년, 서울대 명예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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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 우승우
서울과 대구에서 여섯 번의 개인전을 했으며 광주비엔날레 특별전, 화랑미술제 등 단체전 및 초대전을 통해 120여 회 출품했다. 필과 묵을 통해 인물화와 추상적 작업을 해오다, 한국의 정서가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생각에 자연에 눈을 돌려 우리의 들과 산을 사생하러 다녔다. 요즘에는 '산행일기'라는 주제로 작업을 하고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2년 10월 01일
쪽수, 무게, 크기
164쪽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70633343

책 속으로

학부형회 날이 왔다. 일학년 첫 학부형회라 거의 모든 학부모님들이 모였다. 모녀지간은 어쩌면 그렇게 서로 닮았는지, 우리 엄마는 우리 엄마답게 촌스러웠고 그 아이 엄마는 그 아이 엄마답게 젊고 예쁘고 멋쟁이였다. 만약 그 애가 갖고 있는 것 중에서 한 가지라도 나하고 바꿀 수 있는 게 있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그애 엄마를 골라잡겠다고 했을 것이다. 나는 그때 나의 촌스러움보다는 엄마의 촌스러움이 창피해서 죽을 맛이었다.
학부형회가 끝난 다음 나는 그애한테 "느네 엄마 참 예쁘다"는 선망의 말을 했다. 그러나 그애는 조금도 좋아하지 않았고 도리어 뾰로통하더니 한참만에 자기 비밀을 하나 가르쳐줄 테니 아무한테도 말 않겠다는 맹서로 새끼손가락을 걸자고 했다.
그애는 내 귀에다 대고 그 엄마는 의붓엄마이고 친엄마는 나쁜 의붓엄마 때문에 쫓겨났다고 했다. 내가 아는 의붓엄마는 콩쥐팥쥐의 엄마, 장화홍련의 엄마가 전부였으므로 그애가 의붓엄마하고 살면서도 매도 안 맞고 예쁜 옷 입고 다니는 게 암만해도 이상했다. 그애는 내가 믿지 않는 걸 알자 나쁜 의붓엄마라는 걸 어떻게든 나에게 인식시키기 위해 그 의붓엄마가 바에서 술 따르던 여자였다는 얘기까지 했다. 그리고는 그 말을 누구한테 풍기지 말라고 거듭거듭 다짐하고 나서도 못 미덥다는 듯 안달을 했다. 나는 내가 안 한닥 한 말은 절대로 안 하는 신용 있는 아이라는 걸 그애한테 인식시킬 수 있는 한 방법을 생각해냈다. 그것은 나 역시 그애한테 나의 비밀을 가르쳐주는 거였다.
나도 그애와 마찬가지로 엄숙하게 새끼손가락 걸기를 하고 나서 내가 주소를 속이고 이 학교에 들어왔다는 것과 나의 정말 주소는 고개 넘어 현저동 감옥소가 있는 동네라는 고백을 했다. 그애는 나의 고백을 별로 탐탁하게 듣는 것 같지 않았다. 그애가 탐탁해하지 않자 나는 내 비밀이 그애의 비밀만 못한 것 같아 무안했다.

--- pp. 75∼78

엄마의 희망은 집요했다. 합격, 불합격의 통지서가 배달될 날이 임박해서는 매일같이 사직동 친척집에 다녀오시는 거였다. 주소를 그리 옮기고 친 시험이니까 통지서도 그리로 배달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엄마는 희색이 만면에서 돌아오셨다.
"서울애들도 별거 아니더라."
엄마는 내가 서울애들을 물리치고 합격했대서 이렇게 으스대셨다. 그때 초등학교 시험이 몇 대 몇의 경쟁률이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따라서 내가 몇 사람의 서울애를 물리쳤는지도 알 수가 없다. 아마 정 공부할 능력이 없는 애만 떨어내는 정도의 시험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엄마는 대단히 의기양양해하셨다.

--- p 66

서울에서 나를 데리러 오신 엄마가 내 종종머리를 잘라내고 해준 서울식 단발머리란 게, 하필 뒷머리를 높이 치깎고 뒤통수를 하얗게 면도로 밀어내는 거였다. 그건 그 시절 두메산골의 상식으론 뒤통수가 잘났건 못났건 간에 상관없이 기상천외의 망측한 머리였다. 나는 동네 아이들로부터 뒤통수에도 얼굴이 달린 계집애라고 놀림감이 됐다.
엄마는 서울만 가면 다 괜찮아진다고 나의 딱한 처지를 일소에 부쳤다. 나는 할아버지가 유난히 귀여워해주셔서 그것만 믿고 응석이 심하고 발버둥쳐 울기 시작하면 잘 그치지 않는 못된 계집애였는데도 엄마 앞에선 꼼짝을 못했다. 오랜만에 만난 엄마는 누가 보기에나 서울사람이 돼 있었고, 그것이 나를 겁먹게 했다.
하직인사를 여쭈러 사랑에 들렀더니 할아버지는 오십 전짜리 은전 한 닢을 던져주시면서 "꼴 보기 싫다"는 한 마디로 나를 외면하셨다. 나는 할아버지께 나의 망측한 뒤통수를 보이지 않기 위해 뒷걸음질쳐 물러났다. 할아버지는 그때 내가 단발머리하고 서울 가는 걸 분명히 못마땅해하셨다. 할아버지는 여태껏 당신 비위에 안 맞는 일을 참으신 일이 없는 분이었다. 그런데도 적극적으로 나를 붙잡지 못하신 건 할아버지도 나처럼 엄마에게 주눅들어 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엄마늬 서울사람다움에.
처음에 오빠를 서울서 공부시켜 보겠다고 집 떠나실 때만 해도, 웃어른들 앞에 엎드려 빌다시피 해서 겨우 허락 아닌 묵인이나마 얻으실 수 있었던 엄마가 나를 데리러 오셨을 때는 그렇게 의젓하고 당당하고 권위마저 있어 보였다. 엄마의 그런 변모 때문에 나는 엄마의 서울살림을 우러르고 동경하는 마음이 가득했고, 단발머리의 우울함도 참을 수가 있었다.

--- pp 17∼18

줄거리

여덟 살이 되던 해 봄, 서울서 엄마가 나를 데리러 온다. 나는 종종머리를 잘라내고 서울식 단발머리를 하고 할아버지께 하직인사를 고하고 엄마와 함께 서울로 떠난다. 엄마의 서울살림를 동경했던 나는 형편없이 궁색한 비탈길 초가집 문간방에 세든 살림살이를 보고 크게 실망한다. 깍아지른 듯한 비탈 동네 아래 한길에는 전차가 지나다니고 그 너머로는 감옥소 벽돌담이 길게 늘어서 있는데 그곳에서 가끔은 전중이를 볼 때도 있었다. 뒤란에서 소꿉장난과 숨바꼭질을 하며 놀던 시골에서와는 달리 나는 이웃집 아이와 큰 감옥소 홈통에서 미끄럼을 타면서 노는 게 너무 신이 난다. 초등학교 입학시험을 치르기 전날 나는 그토록 동경하던 이발소에 처음으로 들어가 신기한 이발소 내부를 맘껏 즐기고 예쁘게 머리를 자른다. 그러나 학교에서 만난 서울아이들에게 나는 그만 주눅이 들고, 촌뜨기라는 생각에 스스로 외톨이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엄마는 서울아이들도 가기 어렵다는 학교에 들어가 공부를 썩 잘한다고 나를 대단히 자랑스러워하신다. 겨울방학 때 모처럼 시골 할아버지 댁에 간 나는 친구들에게 서울아이의 자만심을 뽐내려고 스케이트를 타다가 아이들의 비웃음을 사고 할아버지한테도 작두춤 흉내나 낸다고 혼쭐이 난다.
이처럼 책 속에는 1938년 무렵 서울의 산동네 및 개성의 시골 풍경과 주인공 여자아이의 심리가 잘 드러나 있다.

<가난하고 궁핍했던 그 시절, 그 속에서 피어난 보석 같은 추억들>

어린 시절 나에게 엄마는 절대적인 존재였다. 내가 동네 건너편 감옥소를 놀이터 삼아 놀았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딸 하나 잘 키워보겠다고 서울로 데려온 엄마는 곤궁한 서울살림의 비참함에 눈물을 보였다. 그후로 나는 다시는 감옥소 앞마당에 가지 못했다. 가난한 살림에도 엄마는 나와 오빠의 교육에 대단히 열성적이다. 나를 사대문 안에 있는 초등학교에 보내려고 엄마는 친척집으로 주소를 옮기고 내게 진짜주소와 가짜 주소를 항상 외우게 했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엄마는 세상에 둘도 없는 탁월한 이야기꾼이라는 사실이다. 어릴 적 시골집에서 할머니 할아버지가 잠드시면 나는 윗방에서 엄마와 단둘이 있게 된다. 이불이 내려진 빈 반닫이에 걸터앉아 엄마가 바느질을 하면서 들려주는 흥부놀부, 심청이, 콩쥐팥쥐, 장화홍련 이야기를 들으면 가슴이 간질간질하도록 행복하다. 나중에 읽은 전래동화도 엄마의 풍부한 상상력을 거친 이야기만큼 재미있지 않았으니, 내가 꿈 많고 정서적으로 풍요한 어린 시절을 보낸 것은 모두 뛰어난 이야기꾼이었던 엄마의 덕이라고 생각한다.

출판사 리뷰

한 작가에게 유년의 기억은 그의 문학이 형성된 발원지라고 해도 지나침이 없으며, 박완서 역시 예외는 아니리라. 이 책은 그 동안 발표된 소설이나 산문을 통해 독자가 알고 있는 작가의 유년시절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그 시절만을 독립시켜 본격적으로 풍부하게 전해주는 자전적 동화라는 점에서 남다르다. 작가가 여덟 살 소녀로 돌아가 들려주는 가난하고 남루했지만 엄마의 사랑이 있었고, 자신만의 기쁨과 동경이 있었던 그 옛날의 이야기는 때로 독자의 입가에 웃음을 머금게 하고, 눈가에 그리움의 눈물을 고이게 한다. 개성의 시골 마을에서 할아버지 할머니와 살던 '내'가 여덟 살의 어느 봄날 엄마의 손에 이끌려 서울로 가는 장면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서울에서 만나는 낯선 풍경과 엄마의 궁색한 살림살이, 초등학교 입학시험, 예쁜 서울아이들에게 느끼는 부러움, 밤이 새도록 듣고 싶었던 엄마의 옛날이야기 등 당시 생활과 풍속에 대한 묘사와 솔직한 감정 표현으로 흥미롭게 전개된다. 여기에 한국의 산과 들을 먹과 붓으로 표현해온 동양화가 우승우의 공들인 그림이 어우러져 손때 묻은 아름다운 동화 한 편이 완성된다.

"이건 내 유년기 이야기니까 아마 옛날이야기가 될 것이다. 그때는 세상이 온통 남루하고 부족한 것 천지였지만 나름대로 행복했노라고 으스대고 싶어서 썼다. 마치 신나게 롤러코스터를 타는 아이한테 감옥소 앞 홈통에서 미끄럼 타는 게 훨씬 더 재미있다고 말하는 식이니까 억지를 부리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나의 옛날 그리움이 결핍과 궁상이 아니라 어떡하든지 그걸 덮어주려는 가족간의 사랑과 아이들 스스로의 창조적인 상상력이라면 좀 말이 되려나 모르겠다." -<작가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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