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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말
머리말 1부 처음에... 1. 시스티나 예배당은 무엇인가 2. 사라진 예술 언어 3. 반항아가 태어나다 4. 아주 특별한 교육 5. 정원에서 나와 세상 속으로 6. 운수 사납게도 2부 시스티나 예배당 관람 7. 문지방을 넘어서 8. 둥근 천장 9. 다윗의 집 10. 우주의 네 귀퉁이 11. 두 그룹의 예언자들 12. 천장의 가운뎃길 13. 작별의 한 방을 먹이다 3부 천장을 넘어서 14. 현장으로 돌아가다 15. '최후의 심판'에 감추어진 비밀들 16. 그후의 비밀들 17. “거룩하게 변모한 세계” 맺는 말 그래서 시스티나 예배당은 무엇인가? 감사의 말 Bibligraphy Illustration Credits |
Benjamin Blech
Roy Doli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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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종교적 걸작 속에 숨겨진 메시지, 마침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다!
2008년 4월 미국에서 출간된 이후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스페인 등 16개 언어로 번역 출간된 화제작!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화에 미켈란젤로의 비밀 메시지가 숨겨져 있다는 얘기는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자신을 괴롭힌 교황들을 저주했다는 둥 교황제와 교황청에 대해 반기를 들라고 선동했다는 둥…… 그러나 이 책에서 마침내 밝혀지고 있듯이 그의 메시지는 숭고하고 심오하고 원대한 것이었다. 종교간. 인종간? 문명간의 화해를 주창한 것이다. 이로써 미켈란젤로는 한 예술의 천재에서 위대한 사상가로 거듭나고 있다.” _ 옮긴이 김석희 500년 동안 감추어진 걸작 속의 비밀들 마침내 밝혀지다 해마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인류가 만든 최고의 작품 중 하나이며, 미술계의 가장 보물 같은 작품’인 시스티나 천장화를 보기 위해 바티칸을 방문한다. 하지만 이 많은 관람객 중에 바티칸의 심장부에 세워진 교황 전용 예배당이 고대 솔로몬 왕이 지은 예루 살렘 성전을 그대로 본뜬 건물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 예배당 안에 미켈란젤로가 은밀하게 메시지를 숨겨놓았 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거의 없다. 그러나 더욱 충격적인 사실 은 그 메시지가 도그마화한 가톨릭 교황제도의 핵심을 공격하는 사상을 담고 있다는 사실이다. 교황 바오로 2세는 1986년 4월 13일 로마의 유대회당을 방문했고, 2005년 전 세계 106명의 랍비와 칸토르(유대교회에서 예배를 맡아보고 기도문의 독창부를 노래하는 사람)들을 바티칸에 초대했다. 가톨릭과 유대교의 인도주의적 유대를 강화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마지막 단체 접견에 초대된 세 명의 유대교 지도자 중 한 사람이 바로 이 책의 저자인 벤저민 블레흐이다. 1999년 복구 작업이 끝난 시스티나 천장화를 쌍안경으로 살펴보던 벤저민 블레흐는 천장에 그려진 두 인물이 히브리어 문자인 알레프(aleph)와 아인(ayin)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자신이 발견한 이 새로운 의문점을 해결하기 위해 6년간 피렌체와 로마의 도서관을 드나들면서 자료를 모으고 연구했다. 그 결과 탄생하게 된 이 책 『시스티나 예배당의 비밀』은 지난 5세기 동안 감추어져 있던 걸작 속의 비밀 메시지를 밝혀줄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곳곳에 흩어져 있는 미켈란젤로의 작품들을 완전히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안내해주고 있다. 시스티나 예배당은 어떤 곳인가 바티칸 시티를 둘러싼 고대 요새의 성벽 안에 있는 교황 전용 예배당이 시스티나 예배당이다. 유대의 율법 해설을 집대성한 '탈무드'는 예루살렘 성전을 본떠지어서 신전으로 사용하는 것을 금지했다. 하지만 교황 식스투스 4세(1414-1484)는 탈무드가 금지한 솔로몬 성전을 복제한 교황 전용 예배당을 가톨릭의 심장부인 바티칸에 세웠다. 너비 13.4미터, 길이 40.9미터, 높이 20.7미터로, 구약성서에 나오는 솔로몬 성전과 똑같은 비율로 지어진 이 시스티나 예배당은 오늘날까지 교황을 선출하는 추기경회의 ‘콘클라베’의 개최장소로 쓰이고 있다. 솔로몬 성전을 복제한 시스티나 예배당이 지어지기 전까지이 자리에는 ‘팔라티나’ 예배당이 있었다. 그러나 식스투스 4세의 치세가 시작되었을 때 팔라티나 예배당은 거의 다 허물어지고 있었고, 이는 당시 가톨릭교회 자체의 위기를 상징했다. 프랑스 루이 11세 같은 군주들은 추기경과 주교 선임권을 놓고 바티칸과 대결하고 있었고, 이탈리아 전역이 교황의 관할권을 거부했으며, 오스만 터키 군대가 이탈리아로 진격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위협 속에서 식스투스 4세는 가톨릭교회의 위엄을 드높일 화려한 성전을 짓기를 원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식스투스 4세가 새로운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 끌어들인 바초 폰텔리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개방적이고 관용적인 도시 피렌체 사람이었으며, 신플라톤주의와 유대교의 주제와 가르침에 익숙한 건축가와 예술가를 많이 알고 있었다. 그러나 더 의아한 것은 시스티나 예배당을 장식하는 예술가들을 소개한 사람이 바로 로렌초 데 메디치였다는 사실이다. 메디치 가문을 제거하려는 음모를 꾸몄던 식스투스 4세의 개인 예배당을 장식하는 일에 로렌초 메디치가 협조한 것은 왜일까? 그것은 공식적으로는 ‘화해’를 내세운 제스처였지만, 결과적으로는 가톨릭의 심장부에 자리한 예배당에 교황에 대한 모욕과 비판으로 가득한 이미지들로 되갚아주는 것이었다. 로렌초가 소개한 당시 최고의 화가들, 곧 산드로 보티첼리, 코스모 로셀리, 도메니코 기를란다요 등은 바로 로렌초가 의도한 그 거대한 복수를 충실하게 실현해주었다. 조각가인 미켈란젤로가 프레스코를 그리다 그러나, 꿀대교 대신 기독교가 일신교의 진정한 계승자임을 입증하려던 교황의 의도를 진정 멋지게 조롱한 인물은 시스티나 예배당을 개축하는 공사가 시작되던 바로 그 해에 피렌체에서 태어난 미켈란젤로였다. '피에타''다윗'등을 조각해 이미 조각가로 명성을 얻고 있던 미켈란젤로는 프레스코에 경험도 별로 없었고, 회화라는 예술형식 이 따분하고 저급하다고 생각해서 극도로 싫어하던 인물이었다. 하 지만 이미 천재의 재능을 알아본 율리우스 2세는 1115평방미터에 이르는 천장 프레스코를 해낼 사람은 미켈란젤로밖에 없다고 확신 했다. 여기에는 교황청 공식 건축가인 브라만테의 시기심과 엉뚱한 계산도 한몫했다. 그는 몇 년 동안 미켈란젤로를 천장화 작업에 붙 들어 매어두면 자신의 인기나 명성을 가로채지 못할 것이며, 프레 스코를 한 번도 그려본 경험이 없는 미켈란젤로의 천장화가 공개 되면 당시 최고의 프레스코 화가들이 그린 예배당 벽면의'모세''예수'등의 작품과 비교될 것으로 짐작했던 것이다. 미켈란젤로가 그 누구도 할 수 없었던 시스티나 예배당에 걸작 천장화를 그릴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재능을 한눈에 알아보고 친아들처럼 키워주었던 메디치 가문의 로렌초 일 마그니피코의 후원 덕분이었다. 미켈란젤로의 재능을 누구보다 아꼈던 로렌초는 그를 메디치 궁전에서 살게 하며 베르톨도 디 조반니에게서 조각술의 기초를 배우게 하는 한편 폴리치아노 등 당시 최고의 지성들에게 교육을 받게 하였다. 미켈란젤로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친 스승은 피렌체에서 가장 위대한 철학자로 인정받던 마르실리오 피치노와 조반니 피코 델라 미란돌라였다. 혁신적이고 유대 사상에 강한 감명을 받았으며 그로 인해 종종 이단으로 낙인찍힌 두 스승은 미켈란젤로가 후일 시스티나 예배당에 유대와 관련된 주제를 선택하는 데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시스티나 천장화에 담긴 비밀들 가톨릭교회는 시스티나 천장화를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를 통한 구원의 약속’으로 설명하지만, 가톨릭교회의 가장 신성한 장소에 그려진 천장화에 나오는 300명이 넘는 인물 중에 기독교도는 단 한명도 없다. 아브라함에서 예수의 유대인 아버지 요셉에 이르기까지 기독교의 상징이나 형상 또한 전혀 없다. 이 유명한 천장화의 약 5퍼센트가 이교의 상징으로 이루어져 있고, 나머지 95퍼센트는 모두 유대교의 주제와 남녀 영웅들을 다루고 있다. 일례로 시스티나 예배당의 바닥 디자인은 ‘다윗의 별’이라고 부르는 솔로몬의 인장이 되풀이해서 나타나고 있다. 이 인장은 고대 유대인들의 밀교적 지혜를 아는 열쇠로 여겨 지는 것들로, 유대교의 상징 문양이다. 구약성서에 대한 유대인의 주석인 미드라시의 통찰을 보여주는 것은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화 패널 가운데 하나 인'에덴 동산'에 그려진 무화과나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중세 시대 모든 문화적 전통에서 선악과는 사과라고 믿었지만 미드라시에 따르면 지혜의 나무는 무화과나무이다. 미켈란젤로가 그린 천장화'에덴 동산'의'원죄'를 묘사한 패널화에 그려진 지혜의 나무 또한 바로 무화과나 무이다. 탈무드에서 훌륭한 자녀들의 경건한 아버지로 알려진 '‘아미나답’의 초상화'에는 노란색 고리가 그려져 있다. 그것은 4차 라테라노 공의회와 종교재판소가 유럽의 유대인들에게 강요한 치욕의 휘장으로서, 기독교회가 그리스도 가족을 박해한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교황의 명령을 받고 그린 그림에 어떻게 이런 유대 인물들과, 당시 지배하던 가톨릭 사상과는 다른 이런 이미지를 그려 넣는 일이 가능했을까. 걸작 속에 비밀 메시지를 숨기는 것은 어떻게 가능했나?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는 대규모 전망의 영향이 강력한 영감으로 작용해 보는 사람이 시각적으로나 감정적으로 압도당한다. 하지만 이것은 미켈란젤로가 자신의 작품 속에 감추어져 있는 심오하고 위험한 메시지를 감추기 위한 현란한 기법일 뿐이다. 트롱프뢰유(진짜와 혼동될 만큼 정밀한 입체화법으로 묘사한 그림) 건축물, 유대인들의 네 차례의 구원, 유대인들의 조상들의 계보, 예언자들, 시빌라들, 거대한 누드, '창세기'에 포함된 ‘토라’의 두 단락 등 천장화에는 정보와 감각 기관에 부담을 주는 장식이 너무 많은데, 이 모든 것들은 의도적인 것이다. 미켈란젤로의 천재적 재능은 자신의 메시지를 비밀로 남겨두기 위해 관람자로 하여금 너무도 많은 것을 보게 만들었다는 데에 있다. 또한 미켈란젤로는 천장화를 그리도록 명한 교황 율리우스 2세가 예수를 배치하기를 바란 중요한 자리에 유대 예언자 스가랴를 배치했다. 하지만 교황의 분노를 피하기 위해 고대 유대 예언자 스가랴 위해 교황 율리우스 2세의 초상을 포개어놓음으로써 교황의 눈길을 피해갈 수 있었다.(화보 그림 7 참조) 예술가로서의 열정과 고집 피렌체의 산토 스피리토 성당에 있는'십자가상'은 해부학상으로 놀랄 만큼 정확한 십자가상으로 평가받는다. 15세기 말에 제작된 작 품이라고는 상상이 안 될 정도로 해부학적으로 정확한 이 십자가상 은 고집스런 예술가의 열정에서 탄생한 것이다. 정열적인 이 예술가 는, 손의 근육과 몸의 나머지 부분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정확히 알기 위해 죽은 지 얼마 안 되는 시체를 실제로 못 박았다고 한다. 이러한 미켈란젤로의 열정과 예술가적 자존심을 보여주는 또 다른 일화가 있다. 빌레레 데 라그롤라 추기경이 주문한'피에타'에 얽힌 것이 그것이다. 예수의 수난에서, 아들의 주검이 십자가에서 내려져 비탄에 빠진 어머니 마리아의 무릎 위에 눕혀진 바로 그 순간을 묘사하는 ‘피에타’는 묘사하기가 어려워 어떤 미술가에게도 힘든 도전이었다. 작품 주문을 받은 미켈란젤로는 가장 질 좋은 카라라 대리석을 주문하여 작품을 조각하는 데에만 1년이라는 시간을 투자했으며, 예수의 몸이 안에서 빛나는 것처럼 보일 때까지 무두질한 가죽으로 몇 달 동안 수천 번을 닦았다. 1499년 드디어 작품이 완성되어'피에타'가 대중 앞에서 베일을 벗던 날, 미켈란젤로는 산 피에트로 기둥 뒤에 숨어서 사람들의 칭송을 듣기를 고대했다. 하지만 '피에타'를 본 군중들은 미켈란젤로의 이름을 칭송 하는 대신, 이 놀라운 작품은 피렌체 출신이 아닌 로마나 롬 바르디아 출신의 천재 예술가가 만들었음이 틀림없다고 주장 했다. 이에 화가 난 미켈란젤로는 그날 밤 목숨을 걸고 작품 이 있는 성당에 침입해 마리아의 가슴을 가로지은 띠에 “피 렌체 사람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가 이것을 만들었다”는 구절을 새겨 넣고 도망갔다. 아무리 뛰어난 예술가라도 자신의 작품 속에 이름을 새겨 넣을 수 없었던 당시에 예술가적 자존심 하나에 목숨을 건 미켈란젤로의 오기로 인해 89년 평생에 그가 창작한 작품들 가운데 유일하게'피에타'에는 창작자의 이름이 새겨졌다. 에피소드- 자존심을 건 두 거장의 대결 르네상스의 두 천재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는 상대의 솜씨를 조금도 존경하지 않았다. 레오나르도는 지나치게 근육이 발달한 남성 누드를 그리는 미켈란젤로의 경향을 ‘견과류가 가득 든 자루’를 보는 것 같다고 조롱했으며, 미켈란젤로는 2차원적인 회화가 ‘허위’일 뿐이라고 혐오감을 드러냈다. 1503년 피렌체 시장 소데리니는 시청 대강당에 거대한 프레스코 두 점을 두 대가에게 동시에 의뢰하기로 결정했다. 피렌체가 역사적으로 유명한 두 차례 전투에서 거둔 승리를 주제로 삼은 벽화에서 미켈란젤로에게는 카시나 전투를, 레오나르도 다빈치에게는 앙기아리 전투를 맡기기로 한 것이다. 둘이 벽화를 구상하고 구도를 준비하는 데에만 1년이 넘게 걸렸다. 실제 크기의 밑그림이 전시되자 도시 전체가 두 작품에 열광했다. 하지만 새 교황이 조각 작품을 만들어달라고 부른 것을 핑계 삼아 미켈란젤로는 작품을 끝내지도 않고 두말없이 로마로 떠나갔다. '시스티나 예배당'이 전하는 메시지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예배당의 제단 벽에 그린 프레스코의 제목은 '최후의 심판'이다. 그런데 같은 예배당의 천장에 그린 프레스코의 제목은 왜 없는 것일까? 그것은 제목으로 그림의 본뜻을 드러내기가 너무도 위험했기 때문이다. 만일 미켈란젤로가 살아 돌아와 천장화의 이름을 다시 짓는다면, 그 제목은 ‘다리’였을 것이다. -살아 있는 자들의 땅이 있고 죽은 자들의 땅이 있다. 그 양쪽을 잇는 다리는 사랑이니, 그것이야말로 유일하게 살아남은 것이고 유 일하게 뜻있는 것이다.- 거장 미켈란젤로가 자신의 천재적 재능으로 작업한 '시스티나 예배당'에는 관람객을 감탄하게 만드는 수많은 이미지들이 있지만, 그 무수한 이미지 속에서 미켈란젤로가 진정 말하고자 한 것은 종교와 성, 인종, 계급을 넘어 우리 모두는 한 가족이라는 것이다. 미켈란젤로는 이를 위해 이 간극들 사이에 화해와 용서의 ‘다리’를 놓고자 했다. 이것은 지금도 실천하기가 어려운 과제들이지만 그 당시에는 공공연히 입 밖에 낼 수조차 없는 위험한 철학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