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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빈의 마음 공부
내가 걸어온 구도의 길 17년
김정빈 저
도솔 2002.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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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top100 1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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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작가의 말

1. 작가로서 농부가 되다(글과 돈과 정신의 자유에 대하여)
2. 버리고 비우기(출가, 무소유와 공생활에 대하여)
3. 무소의 뿔처럼 홀로 가라(실존의 제일법칙에 대하여)
4. 섬들은 물밑에서 하나다(너와 나의 관계에 대하여)
5. 안에서 바뀔 때 모든 것이 바뀐다(내면과 겉모습의 일치에 대하여)
6. 거짓된 종교, 종교의 거짓(가치의 3층 구조에 대하여)
7. 거저 주고 거저 받기(돈과 명예의 초월에 대하여)
8. 착한 사람은 왜 불행한가(선한 길을 가는 문제에 대하여)
9. 믿기만 하는 것이 종교는 아니다(죽음 그리고 수행에 대하여)
10. 그것은 맑고 시원하다(수행이 제공하는 맛에 대하여)
11. 독성은 결합하고 향기는 흩어지다(종교 조직의 부패에 대하여)
12. 세상 한가운데에서(노동과 야성에 대하여)

에필로그

저자 소개 1

『현대문학』에 수필이 추천되고,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동화가 당선되었으며, 〈계몽사 어린이문학상〉을 수상하였다. 1984년에 출간한 소설 《단(丹)》은 다음 해에 12개월 동안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하며 1백만 부가 판매되었고, 불교철학을 문학화한 《소설경》(2012년)은 《Six Month with Buddha》라는 제목으로 미국에서, 《단》과 《무》는 일본에서, 《논어》는 중국과 대만에서 번역, 출간되었다. 이후 문학과 비문학을 넘나들며 《숭어》, 《성자들의 마을》, 《마음을 다스리는 법》, 《피천득 수필 읽기》 등 총 73권의 책을 내었고, 이들 여러 책에 실린 글 중 4
『현대문학』에 수필이 추천되고,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동화가 당선되었으며, 〈계몽사 어린이문학상〉을 수상하였다. 1984년에 출간한 소설 《단(丹)》은 다음 해에 12개월 동안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하며 1백만 부가 판매되었고, 불교철학을 문학화한 《소설경》(2012년)은 《Six Month with Buddha》라는 제목으로 미국에서, 《단》과 《무》는 일본에서, 《논어》는 중국과 대만에서 번역, 출간되었다.
이후 문학과 비문학을 넘나들며 《숭어》, 《성자들의 마을》, 《마음을 다스리는 법》, 《피천득 수필 읽기》 등 총 73권의 책을 내었고, 이들 여러 책에 실린 글 중 4편이 중·고등학교 역사, 윤리와 사상, 도덕 교과서와 교육지도서에 채택, 수록되었다.
작가는 문학, 리더십, 명상 분야의 강의자로도 활동해왔는데, 그 과정에서 목포과학대학에서는 힐링명상학 교수를 역임하였고, MBC, SBS, 삼성그룹연수원, 경영자총협회, 인간개발연구원, 이화여대 100인 교수회, 정신세계문화원이 주최한 대기업체 연수부장 수련회 등에서 강의하였다.

e-mail : jeongbin22@hanmail.net
유튜브 : 김정빈 작가의 문학으로 삶을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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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2년 12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320쪽 | 470g | 153*223*30mm
ISBN13
9788972201311

줄거리

1. 작가로서 농부가 되다(글과 돈과 정신의 자유에 대하여)
글과 정신의 자유. 이 두 가지는 그동안 나를 이끌어 온 수레의 두 바퀴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농부로서 일 년을 보내는 동안 나는 그 두 가지에 한 가지를 더 추가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경제, 즉 돈이었다.
작가로서 돈을 번다는 것과 농부로서 수입을 올리는 것은 같은 것일까 다른 것일까. 돈과는 뗄래야 뗄 수 없는 현실인의 입장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수 없는 정신적인 가치를 어떻게 병립할 수 있을 것인가.
돈과 함께 논해지는 도(道)라니! 우리는 그런 도를 상상하기 어렵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다르다. 돈을 빼놓고 논하는 도는 진정한 도가 아닐 수도 있다. 그런 도, 그런 진리는 허울 좋은 거짓말일 수가 있다는 말이다. 실제상으로도 옛 성인들 또한 경제행위를 했었고(붓다나 예수조차도), 지금의 종교인들로 말하면 경제 행위를 드러내놓고 하고 있는 형편이다. 조직화된 종교의 경우 그들의 일차적인 관심이 돈과 연관되어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2. 버리고 비우기(출가, 무소유와 공생활에 대하여)
마음의 무소유란 마음속에 있는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을 제거하는 것이다. 마음 안에 이것이 있는 것이 번뇌의 원인이라는 것이 붓다의 가르침인 이상 승려가 된다는 것은 이들과의 투쟁에 돌입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적은 내부에 있다. 승려의 적은 기독교도 이슬람교도 아니다. 오직 자신의 마음 안에 들끓고 있는 탐진치 그것뿐이다.
착하지 않은 행위를 포기하겠다고, 계율을 철저하게 지키겠다고 결심을 하고 느슨한 승려복을 입고 법당에 앉아 보라. 또는 살랑 바람이 부는 야자수 아래에, 보리수 아래에 눈을 감고 조용히 앉아 보라.
모를 것이다. 안 해본 사람은 정녕 모를 것이다. 그때 어떤 느낌이 드는지를. 마음 안에 거리낄 행위를 하고자 하는 그 어떤 의도도 없는 채로, 먹고 입고 잠자는 일에 대해 최소한의 선에서 만족하기로 결심함으로써 그 문제를 다 털어 버린 채로, 물질적, 정신적인 모든 걱정과 근심과 염려와 준비를 다 버린 채로 앉아 있는 사람―그 사람의 심정을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이 어찌 알겠는가.

3. 무소의 뿔처럼 홀로 가라(실존의 제일법칙에 대하여)
나는 어쩔 수 없이 가족을 떠올렸으며, 그때에는 내 마음을 챙긴다느니, 외경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다느니 하는 명제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도대체가 나는 왜 여기에 와 있는가, 나는 왜 그토록 사랑해 마지않는 아내와 아들을 떠나 머나먼 이곳에서 그들과의 이별 연습을 하고 있는가.
그때 내가 새삼 상기한 것이 ‘실존의 제일법칙’이었다. 모든 존재는 저마다 혼자라는 것, 우리는 서로 사랑하면서 가족을 도울 수 있지만, 그리고 그들이 나를 돕고 아껴주고 격려해 줄 수 있지만, 그러나 끝내 나는 나이고, 그들은 그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으로서의 실존적인 기초라는 것―나는 그때 그 진실을 절감해야만 했다.
그리하여 나는 무아를 향해 나아갔다. 나를 비우고 또 비운다, 나를 없애고 또 없앤다―가 그것이다. 그러나 비우고 비워도, 없애고 없애도 나는 비워지지도 없어지지도 않았다. 나아갈수록 더 끈질긴 내가 나타났다. 이 길은 끝이 없는 것 같았다.
나는 울었다. 나는 왜 인간으로 태어났는가, 인간에게는 왜 짐이 지워져 있는가, 짐은 왜 나를 없애야만 덜어지도록 되어 있는가, 그런데도 나는 왜 이토록 비워지지도 없애지지도 않는 것인가―하는 탄식이 존재의 밑바닥에서부터 끓어올랐기 때문이었다.

4. 섬들은 물밑에서 하나다(너와 나의 관계에 대하여)
그렇다면 인간은 상호간 영원한 타자이기만 한가.
실존의 제일법칙은 인간이라는 존재를 출발시키는 첫 번째 법칙일 뿐 그것의 마지막 법칙은 아니다. 나는 나이며 영원히 네가 아니라는 점에서 우리는 영원한 타자이다. 그러나 우리가 밖으로 향했던 마음을 내면으로 돌릴 때, 그리하여 광장을 이차적인 문제로 돌리고 골방에 귀기울일 때, 그때 우리는 골방 안에서 우리의 본성을 만난다. 그 본성은 착하고 아름답고 양심적이고 정직한 것이다. 나아가 그것은 공공한 것이요, 사사로움을 떠난 것이다.
만일 우리가 사사성을 버리고 공공성만을 남기게 된다면, 남은 공공성이 비개체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렇다. 사사성은 우리가 우주로부터 떨어져 나온 한 개체라는 것을 가리키고, 공공성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개체로 구별될 수 없는 우주 그 자체임을 가리킨다. 나와 너는, 그리고 나와 세계는 각각이면서 하나이다. 그러나 각각인 우리가 물밑에서 하나임을 깨닫게 되기까지 수행의 길은 멀고도 멀다.

5. 안에서 바뀔 때 참으로 바뀐다(내면과 겉모습의 일치에 대하여)
일상 생활과 단상 생활의 일치. 일상 생활이 진지하기 때문에 단상에서도 진지하다면 문제가 될 것이 없으며, 일상 생활이 진지하지 않기 때문에 단상에서도 진지하지 않다면 그것 또한 문제가 될 것이 없다.
나는 사람들이 실존적 고뇌로부터 우러나오는 진실한 말을 듣고 싶어한다고 믿는다. 모든 사람이 일상 생활과 삶이 일치하는 사람, 교과서와 삶이 일치하는 사람, 단상의 말과 단하의 말이 일치하는 사람을 보기를 원하는 것이 아닐까.

6. 거짓된 종교, 종교의 거짓(가치의 3층 구조에 대하여)
끊어도 끊어도 살아나는 아카시아 나무의 뿌리처럼, 막아도 막아도 솟구치는 수도 파이프의 물줄기처럼 이기심은 마음 안에서 끊임없이 자라난다. 그 점은 종교 지도자라고 해서 다를 까닭이 없다. 그러나 그분들은 이기심을 극복한 경지에 도달한 것처럼 말할 때 포교가 용이해지는 입장에 있다. 그것은 그분들이 진실과 거짓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처지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직하게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길과 부정직으로써 자신의 경지를 호도하는 길. 선택은 그분들에게 달려 있다.

7. 거저 주고 거저 받기(돈과 명예의 초월에 관하여)
거저 주고 거저 받는 생활. 그런 생활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 같은 것이 될 것은 물론이다. 이 같은 거저의 관계가 기초되지 않고는, 조건을 초월한 관계에 도달하지 않고는 피와 살을 가진 인간으로서 온전한 해탈의 삶을 살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조건과 거래가 기본을 이루는 관계는 세속적인 것일지언정 진리의 그것일 수 없다. 거저 주어지는 명상법, 거저 주어지는 가르침, 거저 제공되는 진리, 그것만이 참다운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리의 스승이 되는 것은 어렵다. 거저 줄 수 있기 위해서는 물질보다는 정신(마음, 영혼)이 우위에 있는 가치라는 것을 몸으로 절절하게 체험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그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정신이 물질보다 우위에 있는 가치라는 것을 생각으로서가 아니라 몸과 혼으로써 깨달은 사람만이 외적으로는 물론 내적으로까지의 진정한 무소유자가 될 수 있고, 그런 스승만이 조건을 넘어선 경지에서 가르침을 줄 수 있다.

8. 착한 사람은 왜 불행한가(선한 길을 가는 문제에 대하여)
어머니는 아버지와 함께 살면서도 단 한 번도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시지 않았다. 자식들은 물론 이웃 사람들과도 얼굴을 붉히는 법이 한번도 없었다. 그런 어머니가 마흔여섯 젊은 나이게 돌아가셨다. 그것도 마지막 삼 년은 병석에 누워 지내다 돌아가셨으니까 어머니가 세상을 제대로 사신 것은 만으로 쳐서 마흔두 해에 지나지 않는다. 그나마도 어머니는 그중 대부분을 가족들의 뒤치닥거리와 여러 가지 문제로 뒤얽힌 진흙탕 한가운데에서 사셨다. 이럴 경우 착하다는 것의 의미는, 그리고 산다는 것의 의미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일까.
삶은 우리를 배반하지만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 착한 사람이 반드시 복을 받는 것이 아닐지라도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 그것도 지금까지 걸어온 길, 착하게 사는 그 길을 걸어가야 한다.

출판사 리뷰

“나는 때로는 골방에 천착하면서, 때로는 광장의 눈치를 보면서 글을 써 왔다. 전자로부터 후자로 갔다가 다시 전자 쪽으로 이동해 왔다고도 말할 수 있고, 전자와 후자를 반반씩 섞어서 글을 써 왔다고 할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시간이 흐를수록 글에 대한 결벽증이 심해졌다는 점이다. 그것은 내가 단순한 글쟁이가 아니라 구도자를 자처하는 글쟁이였기 때문이다. 남들이야 나를 어떻게 보든지 간에, 광장에서야 나를 ‘≪단≫의 작가’라고 부르든 무어라고 부르든 간에, 나는 내 내면을 들여다보아 큰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이 되고자 애써 왔다.”

“나는 글쓰기를 전공해 온 사람이 아니다. 나의 전공은 인생이었다”라는 그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평생에 걸쳐 삶과 마음에 대해 사색하고 성찰하고 실천해 왔다. 어려서부터 성자들에 대한 관심이 깊었던 그는 자라면서 동서고금의 스승들, 그리고 여러 종교 전통에 대해 탐구하였다. 그런 추구의 결론으로 1985년에 불교에 귀의하였다. 불교인이 되면서부터는 구도가 문학의 앞자리에 서게 되었다. 그때부터 저자는 종교에서 삶의 의미를 찾았다. 처음에는 믿음을 중심으로 하는 대승불교를 신앙하였지만 마지막에는 합리성과 실질을 중시하는 근본불교에 매혹되었다.

1989년, 그는 붓다의 근본 명상법인 위빠싸나(vipassana)를 만나게 되었으며, 얼마 뒤에는 인도, 네팔 등 붓다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성지를 순례한 다음 명상법을 배우기 위해 미얀마로 떠났다. 아직도 붓다 당시의 전통이 살아 있는 불교 국가인 미얀마에서 그는 삭발 승려가 되어 수행하였다.

--- 정신의 자유에도 비용이 든다

인간은 누구도 어찌해 줄 수 없는 저마다의 아픔과 번민을 안고 살아가는 존재라는 실존의 제일법칙에 사무치게 된 그는 수행에 더욱 전념하게 되고, 무소유와 공생활에 대한 강한 욕구를 느끼지만 그에게는 출가할 복이 없는지 승복을 반납하고 다시 속세로 돌아오게 된다.

“그러나 나는 지금 그런 생각을 갖고 있지만 아내에게 나를 떠나 보내 달라고 말하지 못한다. 그리고 설령 아내가 허락한다고 해도 나는 그럴 수 없다. 나는 아내와 두 아들에게 빚을 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얀마에서 돌아온 이후 여러 기관과 단체에서 명상에 대해 강의하였으며, 저술을 통해 위빠싸나 명상법을 한국에 널리 소개하였다. 그 후 시간이 흐르면서 그에게는 명상과 함께 ‘삶의 현장’에 대한 인식이 강렬해졌다. 그는 말한다. “명상은 자칫 관념적으로 되기 쉽다. 마음이니 명상이니 하는 말이 좌절과 실망을 감추는 데 사용될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별을 바라보고 걷지만 동시에 땅을 딛고 서 있는 현실인이라는 것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

--- 노동을 통해 발견한 또 다른 진실

“나는 내면에서 샘솟는 힘을 느꼈다. 야성적이라고밖에는 말할 수 없는 그 힘은 나를 지금까지와는 다른 사람으로 변모시켜 주었다. 나는 마치 수백만 년 전 원시 시대의 사람들이 가졌을 법한 힘을 느끼며 나는 나를 특징지어 주는 관념병과 체계병이 치유되는 느낌을 받았다.”

글의 순수를 지키기 위해 나이 쉰에 접어들면서 시작한 버섯 재배. 그는 버섯을 재배하면서 삶의 극한을 체험하게 되었다. 그 극한 속에서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희열을 느꼈다. 그 경험을 통해 지난 세월 자신이 추구해 오던 구도를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게 됨으로써 새로운 힘, 새로운 정신을 일깨울 수 있었다. 그리하여 출가를 하지 않고도 출가를 한 것 같은 결과에 이르렀다.
이것이 극한이다 싶은 순간을 한 번 넘고 또 넘고, 다시 넘고 또다시 넘게 되는 동안 마음은 극도로 단순해져 간다. 마음이 극도로 단순해졌다는 것은 곧 마음에 여한이 없어진다는 것이며, 마음에 여한이 없어진다는 것은 죽고 사는 문제까지도 염두에 두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극한적인 인식에 이르러 마음은 도리어 깨끗하고 청명해지는 것이다.

“노동은 나를 원시인으로 되돌려 주었다. 그것은 나의 원시적 속성(야성)을 일깨워 주었고, 그 속성이 파헤쳐지는 동안 나는 종교가 인간의 원시적인 실존 이후에 자리잡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까지 그는 인간의 삶과 활동에 대한 종교의 우월을 믿는다는 점에서 종교 원리주의자, 또는 종교 절대주의자였다. 그러나 긴 여정 끝에 그는 종교 원리주의자에서 인문주의자로 복귀하게 되었다. 종교가 모든 것이었던 그에게 이제는 그 또한 여러 문화 가운데 하나로 보이기 시작했고, 그리하여 그는 인생의 제3기가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길은 제2기를 거쳐가는 제3기의 길이기에, 앞으로 걸어갈 길이 필연적으로 종교, 또는 구도와 연관지어질 수밖에 없으리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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