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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철학논고
버트런드 러셀의 해설… 11 머리글… 31 논리철학논고… 33 철학탐구 머리글… 121 제1부… 124 제2부… 364 반철학적 단장 초판 머리글(1977년)… 447 신판 머리글(1994년)… 450 편집 노트… 452 반철학적 단장(신판)… 457 시… 583 비트겐슈타인의 생애와 사상 Ⅰ. 세기말의 빈… 587 Ⅱ. 전기의 사상… 600 Ⅲ. 과도기의 사상… 642 Ⅳ. 후기의 사상… 665 Ⅴ. 비트겐슈타인의 인간상… 708 비트겐슈타인 연보… 725 |
Wittgenstein, Ludwig Josef Johann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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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에 우연은 없다. 사물이 사태 속에 나타나려면 그러한 사태의 가능성이 사물 속에 선취되어 있어야 한다. (…) 무릇 공간적 대상을 공간 밖에서 생각하거나 시간적 대상을 시간 밖에서 생각할 수 없듯이, 우리는 어떤 대상도 다른 대상과의 결합 가능성을 떠나서 생각할 수 없다. 대상을 어떤 사태의 문맥에서 생각할 수 있다면 그 대상은 그러한 문맥의 가능성 밖에서 생각할 수 없다.
철학의 목적은 사고를 논리적으로 명료화하는 것이다. 철학은 학설이 아니라 활동이다. 철학 활동의 본질은 해명이다. 철학의 성과는 ‘철학적 명제’가 아니라 명제의 명확화이다. 사고 자체는 불투명하고 흐릿하다. 철학은 이런 사고를 명료화하고 뚜렷하게 경계 지어야 한다. (p.58) 내 언어의 한계가 내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 논리가 세계를 채우고 있다. 세계의 한계는 논리의 한계이기도 하다. 따라서 논리 안에서 ‘이러한 것은 세계에 존재하는데 저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 없다. ‘저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은 어떤 가능성을 배제하는 것 같지만 그러한 배제는 결코 일어날 수 없다. 만약 일어난다면 논리는 세계의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 그래야만 외부에서도 이 한계를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고할 수 없는 것을 사고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사고할 수 없는 것을 말할 수도 없다. 내일도 태양이 뜬다는 것은 하나의 가설이다. 즉 태양이 뜰지 안 뜰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무언가가 일어났으니 또 다른 것이 필연적으로 일어나야 한다는 강제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것은 오직 논리적 필연성이다. 현대의 모든 세계관에는 이른바 자연법칙이 자연현상을 설명한다는 착각이 그 밑바닥에 깔려 있다. 죽음은 삶의 사건이 아니다. 사람은 죽음을 체험할 수 없다. 만약 영원이 무한한 시간의 지속이 아니라 무시간성이라고 생각하면 현재 속에 사는 사람은 영원히 사는 것이다. 시야 속에 시야의 한계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삶도 또한 끝이 없다. --- 「논리철학논고」 중에서 우리의 고찰은 문법적이다. 그리고 이것은 오해, 즉 말의 사용에 대한 오해, 특히 우리 언어의 여러 영역에서 사용되는 표현 형식 사이의 어떤 유사성에서 생기는 오해를 제거함으로써, 우리의 문제에 빛을 가져온다. 이들 오해의 대부분은 한 표현 형식을 다른 것으로 대체함으로써 제거할 수 있다. 이것을 사람들은 우리 표현의 ‘분석’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 과정은 가끔 사물을 해체하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안다’는 말의 문법은 분명히 ‘할 수 있다’ ‘가능하다’라는 말의 문법과 밀접하게 관계하고 있다. 그러나 또 ‘이해한다’는 말의 문법과도 밀접하게 관계하고 있다. [어떤 기술에 ‘숙달하고 있다’는 것.] 철학적 질병의 주된 원인은 편식이다. 사람들은 자기의 사고를 단 한 종류의 여러 가지 예로 양성하고 있다. --- 「철학탐구」 중에서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에 사람을 놓아두면, 아무것도 본래의 기능을 다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 사람은 모든 부분에서 건강하지 않게 보일 것이다. 그 사람을 어울리는 장소에 되돌려 놓으면 모든 것이 힘을 발휘하고 건강하게 보일 것이다. 그러나 부당한 장소에 놓으면? 그때에는 장애인처럼 보이게 되더라도 거기에 만족할 수밖에 없다. 사상의 평화. 이것이야말로 철학하는 자가 갈망하는 목표이다. 철학자란 건강한 인간의 상식을 손에 얻기 전에 자기 안에 둥지를 튼, 많은 지성의 병을 고쳐야 할 사람들을 말한다. 우리 삶이 죽음에 포위되어 있다면 지성의 건강도(일상의 지성도) 광기에 에워싸여 있다. --- 「반철학적 단장」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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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할 수 있는 것만이 철학이다!
비트겐슈타인은 기존 철학의 “선(善)과 미(美)는 일반적으로 동일한가?”와 같이 매우 철학적인 물음이 실은 난센스에 불과하다고 딱 잘라 말했다. 왜냐하면 이 물음에 대답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비트겐슈타인은 “얼마만큼을 생각할 수 있는가”, “얼마만큼을 설명할 수 있는가” 하는 한계를 밝혀 나간다. 그 결과 지금까지의 철학이, 사고가 불가능한 과제에 도전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래서 그는 이런 철학을 난센스라고 생각한 것이다. 한편 그는 “논해질 수 있는 것은 명확하게 설명될 수 있다”라고도 말했다. 철학은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 논할 수 있는 것으로 한정되어야 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따라서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은 ‘세계의 분해’라 할 수 있다. 그는 이런 식으로 세계를 분해해 나갔다. “세계는 성립되어 있는 것의 총체이다. 세계는 모든 사실들로 분해된다. 우리는 사실의 상(像)을 만든다. 상은 논리 공간에 있어서 상황을, 즉 모든 사태의 성립과 불성립을 나타낸다. 상은 현실에 대한 모형이다. 상의 요소는 상에 있어서 대상과 대응한다. 상은 그 요소가 특정 방식으로 서로 관련되어 있을 때 성립한다. 상은 하나의 사실이다.” 그리고 마지막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생각하는 즐거움은 살아가는 기쁨! 비트겐슈타인은 말했다. “나의 사상을 즐긴다는 것은, 나 자신의 색다른 생활을 즐긴다는 것이다. 나 자신의 사상은 나의 색다른 생활과 동일하며, 그것을 즐긴다는 것은 살아가는 기쁨이 아닐까?” 살아가는 기쁨은 여러 가지다. ‘생각한다’는 것은 번민하거나 판단을 다그치고, 지적 능력을 요구하는 등 고생을 동반한다. 하지만 생각한다는 것은 고생스럽기만 할까? 철학자들은 생각하는 게 직업인 사람들이다.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생각한 사람이다. 그리고 "세계는 성립되어 있는 것의 총체이다. 세계는 여러 사실로 분해된다"고 한 것처럼, 세계를 분해해 보거나,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침묵해야 한다"는 말은, 생각하는 것을 멈추라는 뜻이 아니다. 생각하는 즐거움은 살아가는 기쁨이라는 말이다. 그 밖에도 생각하는 것, 철학하는 것에 대하여 비트겐슈타인은 「반철학적 단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일을 하면서 ‘자, 이걸로 끝내자’라고 자신을 달래는 것은 인간의 육체적인 욕구다. 우리가 철학할 때는 언제나 이러한 욕구와 싸우면서 계속 생각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철학이라는 일은 정말 힘들다.” 철학이란, 다른 일을 하는 것과 크게 차이가 없는 것이다. 「논리철학논고 Tractatus Logico-Philosophicus」 「논리철학논고」는 독일에서 1921년에 출판되고, 이듬해 11월 러셀의 도움으로 원문 독일어와 영어 번역을 병기하여 출판되었다. 비트겐슈타인은 「논리철학논고」 머리말에서, 철학 문제는 이 책 한권으로 해결되었다고 말했다. 굉장한 발언이다. 「논리철학논고」는 표제가 나타내듯이 논리학의 철학을 주제로 하고 있다. 거기에서 얻어지는 귀결은 철학의 거의 모든 영역에 걸친다. 이 책에서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의 본질을 ‘명제는 가능한 사태의 상(像)이다’라는 점에서 구했다.그러나 비트겐슈타인은 뒷날「철학탐구」에서 자신의 이 ‘전기철학’에 큰 잘못이 있음을 인정하고 반성한다. 이 책은 논리실증주의에 깊은 영향을 주었고, 20세기의 영어권 철학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논고」의 저술에 있어서 비트겐슈타인이 가장 힘을 쏟고 고투했던 것은, 삶의 가치에 대한 물음 자체에 답을 발견하는 것이었다. 그는 철학적인 여러 문제를 우리들 인간의 삶의 가치에 기초하게 하려고, 격렬한 정열로 그 해명을 위해 애썼다. 또한 명제의 논리적 구조, 논리적 추론의 본성, 신비로운 존재에 관한 사상 등을 전반적으로 다룬다. 「철학탐구 Philosophische Untersuchungen」 비트겐슈타인은 「논리철학논고」 이후 잠시 철학을 그만 두고 초등학교 선생으로 일했다. 「철학탐구」는 철학으로 복귀 후 비트겐슈타인 사색의 풍경을 일련의 스케치로 기록한 16년간 사색의 결정이다. 그의 생전에 출판되지는 않았지만, 실제로 완성되어 서문까지 쓰여 있었다. 서문에는 ‘나는 16년간 몰두해온 철학탐구 침전물인 사상을 간행한다. 그것은 의미, 이해, 명제, 논리의 개념, 수학의 기초, 의식의 모든 상태, 그 외 대부분의 문제에 관계하고 있다.’고 썼다. 비트겐슈타인은 「논리철학논고」에 중대한 사상적 실수가 있음을 인정하고, 그 반성으로서 「철학탐구」를 펴냈다. 「철학탐구」에서는, 언어적 활동이 사회적 활동 속에 편입되어 있음이 강조되고, 언어는 본질적으로 사회적인 것으로 파악된다. 「철학탐구」는 「논리철학논고」와 대비하여 이해해야 한다. 「논리철학논고」와 기본적으로 같은 언어비판의 정신으로, 철학적문제의 해명 및 소멸을 목적으로 언어의 문제에 몰두한다. 「반철학적 단장 Vermischte Bemerkungen」 「반철학적 단장」은 원석(原石)의 보고이다. 비트겐슈타인의 자세를 선명하게 전하는 문장이 여기저기 굴러다닌다. 이 책의 본디 제목은 「가지가지의 코멘트」다. 1914~51년의 기간에 쓰인 원고에서 직접적으로는 철학에 관계없는 문장을, G. H. 폰 라이트가 H. 니만의 도움을 얻어 편집한 것이다. 단장(斷章)은 쓰인 연대순으로 수록하였다. 테마로서는 철학의 작법?말?음악?문학?종교?건축?정신분석?자기관찰?유대인?서양문명 등 다방면에 걸쳤고, 비트겐슈타인의 문화와 가치관을 격언풍의 문체로 담아냈다.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에서는 혁명가였으나, 문화와 가치에 대해서는 보수적인 전통주의자였다. 이 대조가 여간 재미를 더하는 게 아니다. 20세기 사람처럼 독창성에 대한 열등감도 지니고 있었다. 「반철학적 단장」은 그러한 그의 생리를 잘 전하고 있다. 그러한 이유로 「반철학적 단장」은 비트겐슈타인 자신에 의한 모양새를 갖춘 비트겐슈타인 안내서이다. 또 동시에 철학자로서의 비트겐슈타인밖에 보지 못하는 사람들의 눈을 뜨게 해 주는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은 천재적 철학자의 범인과도 같은 뜻밖의 모습을 보여주어 독자에게 신선한 재미를 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