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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실점
뉴욕 별의 아메리카 실현된 유토피아 권력의 종언? 영원한 사막 옮긴이 해제 옮긴이 후기 |
Jean Baudrill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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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 보드리야르의 『아메리카』를 말한다
우러름도 비아냥도 없이, 미국의 거죽을 해석한다 - 우리의 아메리카 혹은 현대를 바로 보기 위해 분명한 ‘사건’이었던 오바마 당선 이후, 미국이 변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파국’ 앞에서 당혹하였던 세계는 이제 이 변화가 예정된 것이었다고 말하기 시작하고 있다. 현대성과 자본주의의 정점에 도달한 미국이 그 끝에서 새로운 길을 택할 것이고 또한 그렇게 예측해야만 세계의 미래를 좀 더 긍정적으로 내다볼 수 있기 때문일 터. 여기 20세기말에 이 파국과 파천황의 징후를 미리 읽어낸 책이 있다. 19세기에 약동하는 미국을 발견했던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가 있었다면 20세기말에는 사막화되고 화석화된 미국을 방문한 장 보드리야르의 『아메리카』가 있다. 1986년 파리에서 출간된 이 책은 1988년에 영역된 이후 영미학계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아메리카』는 보드리야르의 ‘형이상학적’인 상상력과 극도로 사질적인 관찰력이 투영된 기행 에세이다. 보드리야르가 기록한 ‘현대의 신화’이자, 차갑게 기억한 ‘현대의 묵시록’에서 이제껏 우리가 만나지 못한 미국의 맨얼굴이 드러난다. 『아메리카』는 ‘탈현대 사유의 거장’의 눈에 비친 기묘하고 매혹적인 현대성의 신기루들을 순간순간 명멸하는 빛살 같은 문체로 재현해낸다. 자동차 전용도로를 달리면서 맞닥뜨린, 소실점이 펼쳐진 풍경의 극한을 사유하는 보드리야르는 '현대성'이 생겨나 살아가고 또한 죽어버린 ‘실현된 유토피아’ 미국을 침착하고 냉정한 눈길로 바라본다. 보드리야르는 현실에 대한 이미지 지배를 뜻하는 시뮬라크르에 대해 사유하면서 실재계의 파국에 대해 말해왔다. 레이건 시대의 미국을 황단하는 보드리야르는 ‘실현된 유토피아’라는 체계가 얼마나 취약하기 짝이 없는가를 폭로한다. 그렇듯 『아메리카』의 시선에서 오늘날 미국의 변화와, 그를 모델로 하는 세계의 변화를 감지하기란 어렵지 않다. 미국의 변모, 아직은 그것이 새로운 변화일지 소리 없는 몰락의 길일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미합중국이 예전과 같은 ‘확고한 세계의 중심’은 아닐 것이며, 그것은 미국이 몰락해서라기보다 세계가 중심이 없는 상태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세계는 ‘현대성의 원판’인 미국의 행보를 주시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미국을 모델로 삼은 현대를 기획해온 한국에게, 영화를 비롯한 대중문화를 통해 미국의 이미지를 그려온 한국인에게 보드리야르의 눈에 비친 미국의 맨얼굴은 몹시 충격적이거나 쓸쓸할 것이다. ■ 『아메리카』 속으로 탈현대 사유와 문체의 선취자 장 보드리야르, 그가 발견한 아메리카의 극사실 풍경들 우리가 떠올리는 미국 이미지는 한정되어 있다. 할리우드와 아메리칸 드림이 있는 멋진 제1세계, 혹은 빈부격차와 인종차별로 얼룩진 천박한 자본주의의 원산지. 그러나 보드리야르가 찾은 아메리카의 풍경들은 독특하다. 그 풍경들을 따라가다 보면 미국의 다른 모습이 보인다. ▷ 현대의 원시사회, 별의 아메리카! : 죽어 있으면서도 살아 있는 미국, 그 서늘한 매력 영화관 밖에서조차 온 나라가 영화적이라는 것은 미국의 작지 않은 매력이다. 당신은 서부극 영화로서의 사막을 주파하고, 간판과 서식들의 스크린으로서의 도시를 배회한다. … 미국의 도시는 그것 역시 지금 막 영화 속에서 생겨 나온 듯이 보인다. 그러므로 비밀을 알기 위해서는 도시에서 스크린으로 가서는 안 된다. 스크린에서 도시로 가야 한다. 영화가 진실로 격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그것이 예외적인 형태를 취하는 곳이 아니라, 영화가 거리를, 온 도시를 신비한 분위기로 둘러싸는 곳, 바로 그곳에서이다. … 그들은 꿈꾸게 하지 않는다. 그들이 꿈이다. - 본문 108쪽 보드리야르를 매혹시키는 미국은 정체성 문제를 가지고 있지 않고, 기원이나 진정성에 신경 쓰지 않으며 현대성과 원시성이라는 상반된 개념을 아무렇지도 않게 공유시킨다. 또한 거기서는 실재와 모사가 한 몸이기까지 하다. 미국인은 관념으로부터 실재를 만들어내고, 유럽인은 실재를 관념이나 이데올로기로 변형한다고 보는 보드리야르. 아메리카에서는 모든 것이 모사인 동시에 실재이며, 그렇기에 사회의 모습은 엄청난 생동감을 지닌 죽음의 형상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또한 그렇기에 그들의 모습은 결코 위선적이지 않다. 진부하고 천박할지언정 위선이나 가장을 벗어버린 미국의 모습이 있다. 생생히 살아 있는 거리, 편안함을 추구하는 것, 공허하고 무관심한 미소로 인간관계를 매끄럽게 하는 등 실용적이고 건조한 삶의 방식은 무심한 생명력을 보여준다. 그런 한편, 조깅이나 마라톤 같은 ‘세계 종말적’ 퍼포먼스나 건강에 대한 강박관념 등은 사회 곳곳에서 강하게 감지되는 있는 죽음과 그에 대한 공포를 보여준다. 그렇듯 미국 사회의 여러 모습들은 단조로우면서 강렬한 대조로 가장 현대적인 이 나라를 오히려 야만적이고 원시적인 매력으로 다가오게 만든다. ▷ 실현된 유토피아 : 미합중국은 낙원이다. 그러나 누구를 위한 낙원인가? 우리는 그들의 위기를 우리의 위기, 오래된 유럽 나라들의 위기를 판단하듯이 판단해서는 안 된다. … 그들의 것은 그 지속성과 영속성의 문제에 직면한 실현된 유토피아의 위기이다. 자신들이 세계의 중심이며, 초강대국이고 절대적 모델이라는 미국인들의 한가로운 확신은 틀린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 확신은 자원이나 기술과 군비에 정초하기보다는 오히려 육화된 유토피아라는 기적 같은 전제,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천진난만하게 자신이 다른 사회들이 꿈꾸어 온 모든 것 ―정의, 풍요, 법치, 부, 자유― 이 실현된 사회라는 생각 위에 제도화된 사회라는 기적 같은 전제 위에 정초되어 있다 : 그 사회는 이것을 알고 있고, 그것을 믿고 있으며, 결국에는 다른 사회들도 그것을 믿게 되었다. - 본문 146쪽 보드리야르는 현대성 속에 탄생한 미국은 유럽이 실패했던 모든 현대성을 성취하는 승리를 거두었다고 말한다. 그들에게 있어 자유나 평등은 혁명을 통해 얻는, 가지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처음부터 가지고 있는 것이다. 처음부터 다인종과 다문화 사회라는 뒤섞임의 문화에서 출발했기에 다루지 못할 연방 문제도 없다. 그들은 실로 이상을 실현하는 ‘개척사회’의 모습으로 공존하고 있다. 미국을 사회적, 역사적 맥락이 모두 사라지고 오로지 현대성을 통해 실현된 유토피아로 제시하는 것이다. 그 현대성 속, 모사와 실재가 동일한 미국에서 권력조차 사라지고 남는 것은 ‘레이건의 미소’로 제시되는 권력의 시뮬라시옹 뿐이다. 물론 이 유토피아라는 용어는 역설적이다. 그들은 유토피아를 성공적으로 실현한 반면 반유토피아도 성공적으로 실현하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권력은 없고 권력의 모사만 남은 상태에서, 국가는 국민을 잊어가고 국가 역시 국민에게서 잊혀져간다. 그 유토피아에서 더욱 늘어나는 극빈층, 즉 ‘쓰레기가 되는 삶들’인 제4세계를 지적하며, ‘공허하고 허무한 낙원’으로서 아메리카를 상기시킨다. ▷ 영원한 사막 : 희망도 없고 욕망도 없어 더욱 매혹적인 곳 미국 문화는 사막의 상속자다. 이곳의 사막들은 도시와 대척점에 있는 자연이 아니다. 그것들은 진공, 모든 인간적 설립물들의 배경에 존재하는 근본적 벌거벗음을 지시한다. 동시에 그것들은 인간적 설립물들을 이 진공의 은유로서, 인간의 작품을 사막의 연속으로서, 문화를 신기루로서, 또 시뮬라크르의 영속성으로서 지시한다. - 본문 121쪽 보드리야르가 보기에 미국이라는 나라는 사막과 같은 아우라, ‘현실의 삶’의 모든 흔적이 사후 효과로서의 죽은 이미지만을 남겨놓은 채 사라져버리는 분위기를 가진다. 그는 사막이라는 죽음의 모델을 통해, 핵형태에 의해 지배되는 사회의 비밀을 발견하는 것이다. 사막은 사물의 변덕과 무관심이 지배하는, 그리고 인간 주체란 거기서 낯선 침입자에 불과한 풍경을 드러낸다.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매혹시킨 것은 사막의 순결함이지만, 미국의 사막이 보드리야르를 매혹시키는 것은 그것의 건조함과 침묵이다. 사막의 건조함은 유럽의 점액질의 ‘문명화된 기질’과 반대되는 것이고, 그 침묵은 공허를 방사하며 가시적인 것인데, 이 공허감은 아마도 그 속에서 우리 미래의 기호들을 발견할 수 있는 파국의 가능성을 목격했기 때문일 것이다. 보드리야르는 ‘이 나라는 희망이 없다’ 고 말하지만, 그럼에도 도덕, 미학, 문화, 역사 등 모든 것에서 해방된 무의미와 탈연결의 매혹을 사막 같은 아메리카에서 발견한다. 그는 미국을 통해 현대성의 한계를 발견하는 동시에 또 다른 확장점과 가능성을 발견한 것인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