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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미안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깡촌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난 박원순
2장 석 달 동안 양말 한 번 안 벗었어요-서울대생이 된 촌놈 박원순의 공부법 3장 검사 그만두고 공부하고 싶었어요-6개월 만에 사표 쓴 청년 검사 박원순 4장 구석구석에서 할 일이 쏟아지는 원순 씨-인권변호사, 시대의 영웅들을 변론하다 5장 앞으로 나아간 2보는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밖에서 본 한국, 밖에서 한 궁리 6장 맥주 구걸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대한민국 안 걸리는 데가 없는 ‘박변 주소록’과 참여연대 7장 나눔과 봉사만큼 행복한 일이 또 있을까-아름다운재단의 아름다운 사람들 8장 한국 사회의 업그레이드를 꿈꾸며-희망을 나누는 희망제작소 9장 세상은 버린 만큼 얻는다-시민운동은 블루오션이다 10장 일하다 과로사하는 게 꿈입니다-즐겁게, 신나게 일하는 사회 |
朴元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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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승호 - 20년 넘게 명함을 모아 기록해둔 ‘박변 주소록’도 엄청난 분량일 텐데요.
박원순 - 제가 며칠 사이만 해도 이렇게 많은 명함을 받았거든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데요. 사람을 만나면 그때그때 정리를 했어요. 요즘은 하도 많이 만나서 정리를 못하고 쌓이기도 하는데요. 너무 많아서 완전히 체계적으로 정리하지는 못해요. 주제별, 지역별로 데이터를 올려놓고, 이 파일에서 키워드, 인명 검색해서 찾습니다. 우리 연구원들도 다 볼 수 있는데요. 무슨 일을 해야겠는데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면 들어가서 찾아볼 수 있게 하는 거죠. 제가 그동안 만난 사람들을 정리해보니까 대한민국에 안 걸리는 데가 없어요. 거대한 네트워크가 됩니다. --- '대한민국 안 걸리는 데가 없는 ‘박변 주소록’' 중에서 “당신의 삶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아름다운재단과 아름다운가게를 스쳐 지나간 많은 사람들을 통해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얻었다. 나 자신 역시 이곳을 통해 인생이 더욱 행복해졌다.” --- '나눔과 봉사만큼 행복한 일이 또 있을까' 중에서 농사일을 해서 보내주는 돈으로 공부만 했으니까 부모님과 누이들의 노고를 모르면 사람이 아니죠. 사실은 그래서 미안함이 많은데요. 공개유언장을 통해 유언에도 그런 내용을 썼지만, 변호사 해서 돈 좀 많이 벌었으면 누님이나 동생한테 집이라도 한 채 사주고, 그럴 만하잖아요. 다만 제가 그러지 않아도 지금 그런 대로 살고 있고, 집은 못 사줬지만 저를 조금은 자랑스러워하지 않겠어요. 그렇게 생각해야 제 마음이 편할 거고요.(웃음) 제 유언장에 저 때문에 공부도 못하고 농사만 뼈 빠지게 지은 동생에게 이렇게 썼습니다. 신라 향가, 제망매가祭亡妹歌에 가을 단풍이 낙엽이 되어 서로 흩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같은 가지에 태어나 가는 곳 모르겠구나”라고 했는데, 우리 남매도 저 세상에서 다시 만나면 오빠 노릇을 제대로 해보겠다는 것입니다. 그 약속을 제대로 지킬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생에서 제대로 못한 것에 대해 용서를 빌었어요. --- '미안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중에서 “1년 재수를 했는데요. 그때 서울 올라와서 작은 누님 댁에 있었는데, 도림동 쪽에 살았습니다. 종로 2가 YMCA 뒤에 있는 학원을 다녔는데요. 새벽에 나오면 저녁 늦게까지 거기서 공부하는데, 거의 굶다시피 했어요. 단팥빵 하나 겨우 사먹든지 그랬죠. 나중에는 독서실 같은 데서 마지막 3개월을 지냈어요. 3개월 동안 거의 못 먹었죠. 애들은 보니까 라면도 끓여 먹고 잘도 지내던데, 그런 친구들은 거의 3수, 4수 하더라고요.(웃음) 얘들은 의자 몇 개 놓고서 반듯하게 잠도 잘 자요. 저는 3개월 동안 양말을 한 번도 안 벗었어요. 그랬더니 땀이 차서 발바닥이 하얗게 뜨더라고요. 나중에는 감각이 없어질 정도가 됐죠. 영어와 국어 교과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다 외웠습니다. 문제집도 다 외웠어요. 그래서 무슨 문제가 나올지 다 아는 경지가 됐죠. 그렇게 열심히 했습니다.” --- '석 달 동안 양말 한 번 안 벗었어요' 중에서 “부장검사가 ‘그런 사건을 왜 구속 안 하느냐?’고 저를 혼내시는 거예요. 그때 이창구 판사님이 계셨는데, 제가 법원에 가니까 “영감, 또 관선 변론을 하러 왔냐?”고 했던 기억이 나요.(웃음) ‘제가 조사를 해보니까 이 사람이 안 됐더라, 하도 위에서 구형을 하라니까 하겠지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참고를 좀 해주시라’ 하는 얘기를 좀 했거든요.(웃음) 제가 변호사 아닌 변호사를 하니까, 그게 말이 되겠어요? 그다음 고등법원 관할 검찰청에서는 사형집형을 하는데요. 검사가 사형집행을 참관하게 되어 있어요. 여덟 명인가 사형집행을 하는데, 저는 도저히 못 가겠더라고요. 그래서 다른 분이 가게 했죠. 뭐, 그분들이라고 가고 싶겠어요. 이런 일들이 계속 힘들었죠.” --- '1년 만에 검사를 그만두다' 중에서 박원순은 조영래 변호사와 함께 활동하면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는 두 가지를 꼽는다. “사회적 통찰력을 가지고 법률을 통해서 사회적 어젠다agenda를 만들어가는 것”과 “그것을 혼자의 힘으로가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세력을 연대시키면서 풀어가는 것”이라 한다. 조영래 변호사를 통해 익히고 강화한 두 가지 능력은 그가 시민운동을 하는 과정에 큰 도움이 되었다. 특히 참여연대 활동이 그랬을 것이다. 나중에 그가 담당했던 서울대우조교성희롱사건 같은 경우, 한국 사회의 직장 문화라든지 남녀간의 권력 관계를 규정짓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7년을 끈 소송에서 판결이 나자 한국 사회 남성들은 ‘성희롱을 하려면 3천만 원은 있어야 해’라는 자조적인 농담을 했지만, 남성과 여성의 사회적 관계와 그 안에서의 권력 관계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 '인권변호사 박원순, 성희롱을 법정에 세우다 '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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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구석에서 할 일이 쏟아지는 원순 씨,
석 달 동안 양말 한 번 안 벗었대요. 맥주 구걸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을지 버린 만큼 세상을 얻을 수 있을지 삶의 이력과 담담한 그의 유언장을 공개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먼 길은 머리에서 가슴까지 가는 길이라 했던가. 가슴에서 다리까지 가는 길은 또 얼마나 멀고 험한가? 박원순은 머리로 이해한 것을 가슴으로 느끼고 발로 뛰는 이 시대의 실천가이자 행동가다. 내가 사는 시대, 다른 이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어떻게 그런 삶에 이르렀을까? 대화를 통해 동시대인의 삶, 일, 생각을 들어본다. ‘동시대인의 소통’ 시리즈 첫 번째 권인 공지영 작가의 《괜찮다, 다 괜찮다》에 이어 두 번째 권인 박원순 변호사의 《희망을 심다》가 출간되었다. 이번에도 지승호가 박원순의 인터뷰를 맡았다. 이 시리즈는 한국 사회에 영향을 미친 각계각층(정치, 경제, 사회, 문화, 학계, 종교계)의 인물 가운데 젊은이들에게 삶의 모델이 될 만한 인물을 선정해 비교적 접근하기 쉬운 인터뷰라는 형식을 통해, 그들의 삶에 대한 자세와 일에 대한 철학을 들어본다. 박원순은 우리 시대 가장 성공한 시민운동가다. 본인은 이 말을 극구 부인하지만, 여야를 막론하고 정계 진출을 권유하고 대통령 출마 권유도 끊이지 않을 정도이니 대한민국 시민운동의 대표 아이콘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름 그대로 원만하고 순한 이미지를 가진 박원순의 어린 시절은 그 또래들처럼 평범해 보인다. 박원순 정도 되는 인물에게 있을 법한 탄생 설화(?)나 어린 시절에 보이는 번뜩이는 천재성 같은 것도 없다. 박원순의 삶과 활동은 지극히 평범한 가운데서 비범함이 나오고, 지극히 평범한 가운데 진리가 있음을 보여주었다. 또한 박원순의 절제와 성찰은 이 시대 많은 사람들이 배워야할 덕목이 아닌가 싶다. 박원순은 지금 한국 사회에서 진보와 보수 사이에서, 그것을 둘 다 뛰어넘을 수 있는 새로운 사회적인, 정치적인 실험을 하고 있다. 그는 오늘도 “어떻게 하면 한국 사회를 업그레이드할 수 있을까, 조금 더 합리적이고 인간적인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박원순은 ‘21세기 실학운동’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문을 연 희망제작소의 상임이사답게 자신을 실증주의자라고 말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너무나 큰 거대담론 과잉의 시대이고, 이념을 흑백으로 무모하게 분류하는 시대이기 때문에 각론과 디테일한 부분을 고민해야 하며, 같은 부분에서는 합의하고 다른 부분에서는 조율해나가는 기술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국가 안보를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입니까? 국가보안법을 존치하자고 하는 사람들은 인권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입니까? 둘 다 해야 되잖아요”라고 말한다. 박원순은 젊은이들에게 주는 메시지도 잊지 않았다. “꿈을 꾸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윌리엄 스미스 클라크라고 미국 사람인데, 일본 홋카이도에서 교육운동을 하신 분입니다. 그분이 ‘보이스, 비 앰비셔스Boys! Be Ambitious’라는 말을 했죠. 앰비션ambition이라는 것이 꼭 좋은 의미로만 해석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사람은 그런 앰비션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꿈이잖아요. 좀 황당해도 좋으니까 젊은 시절에는 그런 꿈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의 메이지 유신 시기에 그 말 한마디가 젊은이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우리 시대에 제가 그 역할을 충분히 못했다고 생각하는데요. 더 큰 역할을 하는 사람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혼자 잘 먹고 잘 살겠다는 그런 천박한 꿈이 아니라 정말 세상을 향해서 자기 일생을 한 번 바쳐보겠다는 꿈을 꿔봤으면 좋겠어요. 인생을 살다보면 마모되고 성숙되면서 결국 현실화되거든요. 청년 시절에는 무모한 꿈도 꿔봐야 합니다. 그게 그들의 특권이고 장기고, 그럴 수 있는 유일한 시기잖아요. 세상을 살다보면 안 그래도 소시민이 될 가능성이 높은데, 젊은 시절 그런 꿈이라도 꿔봐야 하지 않겠어요?” |